아인슈타인, 로렌츠, 푸앵카레
자료
상대성이론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3-03-13 22:30
조회
1951
상대성이론의 역사적 전개에서 아인슈타인과 로렌츠와 푸앵카레 사이의 관계는 매우 뜨거운 학술논쟁의 주제였습니다. 참고하실 수 있도록 제가 이전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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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역사에서 자주 오해되는 것이 있다.
1905년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말하고, 동시성의 상대성과 길이 줄어듬과 시간 늦어짐을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기라성 같은 물리학자들은 죄다 어리석은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있어서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고 뉴턴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다.
이런 신화화가 아인슈타인을 이상한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의 훌륭한 물리학자들이 어리석지도 않았고 아인슈타인이 갑작스런 천재였던 것도 아니다.
소위 상대성이론, 특히 특수상대성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본적인 틀은 1895년에 발표된 헨드릭 안톤 로렌츠의 이론에 사실상 모두 들어 있었다. 9년 뒤에 몇 가지가 수정되어 소위 '전자이론 Elektrontheorie'이란 이름으로 정리되었다. (여기에서 Elektron은 지금의 전자와 다르다. 원자의 질량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전하도 가지고 있는 기본 단위를 가리킨다. 지금의 원자와 비슷하다.)
앙리 푸앵카레는 1900년 경부터 로렌츠의 이론에서 부정확한 부분을 지적하고 예컨대 국소시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면서 이 이론의 정립에 핵심적으로 기여했다.
* Lorentz, Hendrik Antoon (1895). "Versuch einer Theorie der electrischen und optischen Erscheinungen in bewegten Körpern"
* Lorentz, Hendrik Antoon (1904). "Weiterbildung der Maxwellschen Theorie. Elektronentheorie."
Encyclopädie der mathematischen Wissenschaften, 5 (2): 145–288
* Poincaré, Henri (1898). “La mesure du temps”,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6: 1-13.
* Poincaré, Henri (1901). "Sur les principes de la mécanique", Bibliothèque du Congrès international de philosophie: 457–494
* Poincaré, Henri (1908). “La dynamique de l’électron”, Revue générale des sciences pures et appliquées 19: 386–402.
1905년 아인슈타인의 주요한 기여로 흔히 여겨지는 '광속 일정 원리'도 1898년에 푸앵카레가 이미 명확하게 서술한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어디에서도 로렌츠나 푸앵카레를 제대로 인용하지 않았다.
조금 넉넉하게 봐 주면, 1905년 당시 대학에 자리를 얻지 못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으로서는 프랑스어로 쓰인 푸앵카레의 저작들을 제대로 읽지는 못했을 것이고 로렌츠의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을 거란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다. 1902년부터 시작한 Akademie Olympia에서 아인슈타인은 모리스 솔로빈이나 콘라트 하비히트와 더불어 에른스트 마흐나 칼 피어슨을 읽었을 뿐 아니라 1904년에 독일어 번역판이 출판된 푸앵카레의 <과학과 가설 La Science et l'Hypothèse> (프랑스어판은 1902년 출판)을 함께 읽고 깊이 토론했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학부 시절부터 아우구스트 푀플(https://de.wikipedia.org/wiki/August_Föppl)의 유명한 교과서 <맥스웰의 전기이론 입문>Theorie der Elektrizität, Band 1: Einführung in die Maxwellsche Theorie der Elektrizität을 신주단지처럼 여기며 빼곡하게 공부했다. 푀플은 라이프치히 대학의 공학적 역학 Technische Mechanik 교수였고, 맥스웰의 전기이론을 해설하는 그 책은 매번 쇄를 거듭하며 개정되었다. 바로 그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이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이었고, 여기에서 마이켈슨-몰리의 실험을 비롯하여 로렌츠의 국소시간 이론 등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직접 푸앵카레와 로렌츠의 저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그 논의는 비교적 상세하게 이해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출판된 논문에서 푸앵카레와 로렌츠를 인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좀 특이한 일이다. 이후에도 아인슈타인은 로렌츠와 푸앵카레에게 충분한 크레딧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돌아볼 때 분명히 상대성이론의 기본 틀은 로렌츠의 에테르 이론과 푸앵카레의 확장 안에 있었다고 평가하는 게 옳다. 아인슈타인은 로렌츠와 달리 에테르 정지계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고, 어느 관성계에서든 시계로 측정하는 모든 시간을 다 대등하게 참된 시간으로 여겼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에테르 정지계를 긍정하는가 여부만이 다를 뿐,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로렌츠의 이론의 경험적 증거들은 전적으로 동등하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접근과 로렌츠의 접근은 같은 형식이론에 대한 구별되는 해석들로 봐야 한다. 또한 민코프스키의 4차원 시공간 개념도 상대성이론에 대한 세 번째 해석으로 봐야 한다. 형식이론상으로든 동등하지만 존재론적으로 아인슈타인의 해석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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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속 일정의 원리가 꼭 필요할까?"라는 글이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106-108쪽의 내용과 연관됩니다.
"에테르와 상대성이론"에 위의 글보다 더 다듬어지고 상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강영 교수님의 ‘스핀’에서는 아인슈타인이 로렌츠를 각별히 존경하여 자주 로렌츠를 방문해 조언을 구했고, 로렌츠 또한 아인슈타인을 아끼면서도 여전히 대가다운 날카로운 지적을 하며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다듬는 데도 도움을 주는 관계로 묘사가 되더군요.
어쨌든 일반적으로는 로렌츠나 푸앵카레가 닦아놓은 비옥한 지적 기반보다는 마흐의 영향력 얘기만 너무 부각되는 측면은 없지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로렌츠와 푸앵카레 두 사람이 대중적 저술가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난이도를 지닌 학문적 작업을 했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