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 사슬 모형과 양자장이론
양자마당의 개념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접근 중에서 입자사슬 모형을 이용하는 것이 꽤 도움이 됩니다. 단지 비유나 유비가 아니라 이 모형을 확장하여 제대로 된 양자장이론의 여러 계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여기에서 발전된 개념인 소리알(phonon)은 준입자(quasi-particle)의 일종으로서 결정을 이루는 고체물질의 물성을 이해하는 데 직접 활용됩니다.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의 95-100쪽에 있는 "마당 변수 정식화: 1차원 입자 사슬의 사례>를 복습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미묘하지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95-100쪽의 서술은 고전역학에서 입자들 사이에 용수철이 달려 있는 상황을 일련의 연속적인 극한으로 확장하면, 마당 변수를 이용하여 라그랑지안 특성함수로 풀어낼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242-246쪽에 소개되어 있는 소리알 이론은 양자장이론에 속한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에 속한 것입니다. 양자역학에서의 문제를 풀어본 뒤, 이를 개념적으로 확장적용하여 양자장이론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야코프 슈비히텐베르크의 <엉터리가 아닌 양자장이론: 학생에게 친숙한 입문>에서 유용한 그림을 가져오겠습니다.
- Jakob Schwichtenberg (2020). No-Nonsense Quantum Field Theory: A Student-Friendly Introduction. No-Nonsense Books. p. 108. https://amzn.to/3DozPw1
슈비히텐베르크는 침대 매트리스를 떠올려 보라고 말합니다. 너무 오래 사용해서 겉감은 다 찢어지고 용수철이 삐죽삐죽 나와 있는 낡은 매트리스입니다.
[그림 출처: Schwichtenberg (2020) p. 109]
이렇게 용수철이 달린 낡은 매트리스가 양자장이론과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합니다. 용수철 끝에 달린 작은 공 모양이 평형위치에서 벗어난 정도('변위')를 각 점에서 생각해 보면 각 시간마다 그 변위의 값을 매길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진동(oscillation)'이고, 이 경우는 특별히 조화진동(harmonic oscillator)이 됩니다.
[그림 출처: Schwichtenberg (2020) p. 109]
고전역학이라면 공 모양이 평형위치에서 벗어난 정도('변위')를 $x$라 쓸 겁니다.
[그림 출처: Schwichtenberg (2020) p. 110]
이제 이 용수철에 대해 동역학 이론을 적용해 보면, 앞에서 고전역학으로 풀어본 조화진동(95-100쪽)이나 양자역학으로 풀어본 조화진동(198-209쪽)의 결과를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특히 매트리스에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용수철들 사이의 간격이 아주 좁다고 생각하고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Schwichtenberg (2020) p. 110]
좋은 매트리스는 용수철이 옆의 용수철들과 별개로 탄성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양자장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모형이 되려면 용수철들이 고무밴드 같은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림 출처: Schwichtenberg (2020) p. 111]
이렇게 용수철들이 연결되어 있다면, 용수철이 제자리에서 진동할 뿐 아니라 그 진동이 옆으로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Schwichtenberg (2020) p. 111]
응원석의 파도타기 응원 같은 것을 떠올려도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이것이 다름 아니라 파동(wave/undulation)과 같다는 것이 바로 보입니다.
[그림 출처: Schwichtenberg (2020) p. 117]
이와 같이 용수철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슬 모형을 써서 고전적인 마당이론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으로 가면 고전적인 사슬 모형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일이 있습니다.
양자역학은 물리량의 성향 즉 변별체를 만나면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성향으로서 '상태'라는 개념을 새롭게 부각시켰습니다. 고전역학에서 용수철의 조화진동으로 풀었던 상황을 슈뢰딩거 방정식이라는 미분방정식을 풀어서 새로운 에너지값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매우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에너지값이 $$E_n = \hbar \omega (n+ \frac{1}{2}) , \quad (n=0, 1, 2, \cdots )$$와 같이 주어지고, 그 각 에너지값에 대응하여 $$|n\rangle$$이라는 에너지 고유상태가 있습니다.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204-207쪽에서는 각각의 $n$ 값 사이를 오고가는 특별한 연산자를 도입했습니다. $$ \begin{align} \hat{a}^\dagger |n-1\rangle &= \sqrt{n}| n \rangle , \\ \hat{a}|n\rangle &=\sqrt{n} |n-1\rangle \end{align}$$
이를 도식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림 출처: Tom Lancaster, Stephen J. Blundell (2014). Quantum Field Theory for the Gifted Amateur. Oxford University Press. https://amzn.to/3q69iAx p. 23]
용수철이 하나뿐이었다면, 해밀토니안이 $$H = \frac{p^2}{2m} + \frac{1}{2} m\omega^2 x^2$$와 같이 단순하게 주어졌을 겁니다. 그러나 아래 그림처럼 아주 많은 수의 용수철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달라집니다.
[그림 출처: Lancaster & Blundell (2014). p. 25]
이렇게 여러 개의 용수철이 있다면 대상의 특성을 나타내는 해밀토니안은 $${H} = \sum_j \left[ \frac{p_j ^2}{2m} + \frac{1}{2} m\omega_j (x_{j+1} -x_j )^2\right]$$이 됩니다. 중간과정이 간단하지는 않지만, 푸리에 변환을 하면서 각 용수철의 위치 $j$ 대신 운동량 공간의 위치를 $k$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이를 그냥 '$k$-모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중간단계를 모두 따라가면 해밀토니안 특성함수가 $$\hat{H} = \sum_{k} \hbar \omega_k (\hat{a}^\dagger _k \hat{a}_k + \frac{1}{2})$$가 됨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 떄의 고유상태는 $$|n_1 , n_2 , \cdots \rangle = \frac{(\hat{a_1}^\dagger)^{n_1}}{\sqrt{n_1 !}} \frac{(\hat{a_2}^\dagger)^{n_2}}{\sqrt{n_2 !}} \cdots | 0, 0, \cdots \rangle$$가 됩니다.
여기까지는 여러 개의 용수철이 서로 연결된 대상에 양자역학을 적용하여 풀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풀어내고 난 뒤에 매우 놀라운 아이디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집단들뜸(collective excitation)과 준입자(quasi-particle)'라는 개념입니다. 대략 말하면 준입자 또는 집단들뜸은 미시적으로 복잡한 계가 마치 진공 속에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입자가 있는 것처럼 거동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준입자는 스핀이 반홀수인 페르미 입자를 가리킬 떄가 많고, 스핀이 정수인 보슈 입자인 경우는 집단들뜸이라 부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반도체의 양공(hole)은 준입자라 하고 소리알(phonon)이나 플라즈마알(plasmon)은 집단들뜸이라 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Quasiparticle
용수철 모형으로 서술한 것은 원자가 결정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구조를 지닌 경우인데, 양자역학을 써서 문제를 풀어내면, 개념상으로 마치 어떤 입자가 집단들뜸 또는 준입자로서 오고가는 듯이 말할 수 있습니다.
위의 매트리스 비유를 생각해 보면, 용수철의 변위는 매트리스의 각각의 위치마다 다릅니다. 위치를 $(x, y, z)$로 나타낼 터라 변위를 $x$로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럴 경우를 위해 그리스 문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평형 위치에서 벗어난 정도를 $\phi$라 쓸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Schwichtenberg (2020) p. 110 수정]
입자사슬모형에서 출발한 양자역학의 소리알 이론은 이제 양자장이론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변위가 $$\hat{x}_j = C \sum_k \frac{1}{\sqrt{2\omega_k}} \left(\hat{a}_k e^{ikja} + \hat{a}^\dagger _k e^{-ikja}\right)$$가 되는데, 양자장이론에서는 용수철이 놓인 곳의 번호 $j$ 대신 위치 $x$ 또는 $\vec{x}=(x, y, z)$를 쓰고, 변위를 $\phi$로 나타내면, 이 식과 유사한 다음의 식이 성립합니다. $$ \hat{\phi}(x) = \frac{1}{(2\pi)^{3/2}}\int \frac{d^3 p}{\sqrt{2\omega_p}} \left[\hat{a}(p) e^{i px} + \hat{a}^\dagger (p) e^{-ipx}\right]$$
이 두 식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246쪽의 (7-11)식과 258쪽의 (7-27)식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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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7장의 기조를 그림으로 요약한 것으로서,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용수철들이 연결된 사슬모형이 마당이론과 연관됨.
(2) 사슬 모형을 연결된 조화진동처럼 생각하여 생성연산자와 소멸연산자를 쓸 수 있음 (소리알 이론)
(3) 입자사술모형과 소리알 이론을 확장하여 양자장이론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음
참고로 <과학과 메타과학> 167쪽 표2(여기 클릭)에 있는 “양자탄성체이론(격자진동이론)”에 다름 아니라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7장에서 논의하고 있는 “소리알 이론(phonon theory)”이 포함됩니다.
감사합니다. 링크해주신 위키피디아도 참조해서 양자장 이론 구경을 더 해보겠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개념들을 상상하게 되었는지가 새삼 궁금해지네요. 거시적인 세계의 모형 중 양자장 개념과 가장 유사한 개념이 뭐가 있을까요? 매트리스에서는 입자는 안튀어나오고 먼지만 튀어나올 것 같아서요.^^
(추가) 결국 양자장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문제를 좀 더 단순화 시켜서 풀려는 일종의 수학적 접근법이기도 하군요. 입자를 일일이 따지는 것이 너무 복잡하니 일종의 연속체로서 바라보는 관점이 분자의 운동을 온도라는 거시적 변수로 해석하는 것과 비슷한 접근법으로 여겨지네요..
It is, therefore, a very effective approach to simplify the many-body problem in quantum mechanics. (출처: 위키피디아)
물리학사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19세기 내내 파동이론 내지 마당이론이 정교하게 발전했습니다. 유체역학은 물론이고 빛과 전기와 자기에 대한 파동이론이 확립되었고, 19세기말쯤에는 빛이 전자기파라는 파동이라는 관념이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여기에 문제를 일으킨 것이 바로 제이 제이 톰슨의 전자 발견입니다. 빌헬름 뢴트겐이 음극선관에서 알 수 없는 복사선을 찾아내어 이를 엑스선이라고 불렀는데, 여하간 논쟁이 있긴 했지만, 엑스선도 전자기파의 일종임이 점차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그 음극선관에서 물질에 보편적으로 들어 있다고 여겨지는 '전자(electron)'가 발견된 셈이어서 논란이 커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920년대 중반쯤에는 전자에 대한 기본동역학이 만들어진 것인데, 자연스럽게 전자기장과 빛이라는 파동의 양자이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바로 양자장이론이었습니다. 양자역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폴 디랙이 나섰고, 여기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도 끼어들었습니다. 덜 알려져 있지만, 하이젠베르크나 막스 보른과 더불어 양자역학의 한 형태를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파스쿠알 요르단이 양자장이론의 기본 틀을 마련했습니다. 1920년대 말의 일입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자와 원자핵과 빛알 외에 새로운 기본입자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미시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념과 이론이 요청되었습니다. 양전자나 중성자뿐 아니라 중간자라는 것이 계속 등장했습니다. 1960년대까지 이런 기본입자들이 수십 가지가 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쿼크 모형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쿼크라는 것을 서술하는 이론이 다름 아니라 양자장이론입니다. 다른 시도들도 꽤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양자장이론이 가장 신뢰를 받는 이론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온도가 0이 아닌 상황을 서술하는 물리학 이론이 통계역학인데, 형식적으로 보면 통계역학과 양자장이론이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조금 소개한 글이 "양자통계역학과 유한온도 마당이론"입니다.
설명 감사합니다. 링크 글로 넘어가서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