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물리학에서 입자와 파동의 진짜 의미
어렵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이 나와서, 장회익 선생님의 대답을 듣기에 앞서, 제 나름의 의견을 적어보려 합니다. (글은 우선 짧게 쓰더라도 나중에 시간이 허락할 때 더 개정하는 식으로 하겠습니다.)
시인처럼님이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 원자는 다시 전자와 핵으로, 또 그 핵은 중성자와 양성자로, 또 그것은 쿼크로... 하는 식의 알갱이들이 존재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상식을 버려야 할까?" 하고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가장 권위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 할 수 있는 물리학자들이 바로 그 '상식'을 널리 퍼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대답은 그 '상식'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것이 새 자연철학의 기조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어제 자연철학 세미나에서도 관련된 이야기가 조금 나왔고, 지난 주 보조 세미나에서도 "입자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나와서 그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이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금 더 들어가 보려 합니다.
(1) 양자역학에서 상태함수 대신 양자수로 상태를 표현하기
이 글의 제목을 "양자역학에서 입자와 파동의 진짜 의미"라고 달지 않고 "양자물리학에서..."라고 단 이유가 있습니다. 양자역학(QM, quantum mechanics)이라 부르는 것은 원칙적으로 상대성이론을 고려하지 않고 대상을 모두 질점으로 보는 접근입니다. 이와 달리 양자마당이론(量子場理論, QFT, quantum field theory)은 처음부터 대상을 모두 마당(場) 즉 확장된 의미의 '파동'으로 보는 접근입니다. 양자물리학은 이 두 상호보완적인 접근을 모두 아우르는 이름입니다.
비상대론적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 '에너지 준위'라는 개념을 씁니다. 이것은 장회익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특성'과 '상태'의 구별에서 보면 곧 '상태'의 의미입니다. 원론적인 자연철학을 설명하고 전개하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는 상태를 추상적인 함수 $\Psi (x, t)$와 같이 나타내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 있는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상태는 $|n, \ell, m, m_s\rangle$와 같이 네 개의 수(더 정확히 말하면 양자수)로 표시됩니다. 이를 흔히 아래와 같은 에너지 수준 도표로 나타냅니다.
(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출처: https://www.priyamstudycentre.com )
원래는 아래와 같은 상태함수를 일일이 써야 하지만, 표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냥 여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번호 $n, \ell, m$으로 이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Hydrogen_atom)
이 상태함수에 스핀 $m_s$에 해당하는 상태함수를 곱해 주면 수소원자에서 전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상태가 망라됩니다. 그것이 바로 $|n, \ell, m, m_s\rangle$입니다. 디테일로 들어가면, \begin{align} n&=1, 2, 3, \cdots \\ \ell&=0, 1, 2, \cdots, n-1 \\ m&=-\ell, -\ell+1, \cdots, \ell-1, \ell \\ m_s &=+\frac{1}{2}, -\frac{1}{2}\end{align}과 같습니다.
특이한 점은 상태들을 나타내는 주소가 모두 정수값으로 똑똑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번호들을 양자수(quantum number)라 부릅니다. $n, \ell, m, m_s$를 각각 주양자수(으뜸양자수), 부양자수(버금양자수), 자기양자수, 스핀양자수라 부릅니다. 대형 호텔의 방을 층과 호수 등등 네 개의 숫자로 표시하는 것과도 유사합니다. 주양자수 $n$이 층이라면, 부양자수 $\ell$은 각 측의 구역을 나누어 번호를 매긴 것쯤에 해당합니다. 다시 그 구역마다 자기양자수 $m$은 각 구역의 방번호쯤 되고, 스핀양자수 $m_s$는 각 방 안에 허용되는 두 가지 상태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서술모형이 '입자'입니다. 이것은 양자역학의 특성함수인 해밀토니언이 $$H (x, p) =\frac{p^2}{2m_e} + V(x)$$와 같이 철두철미 입자에 대한 특성함수이기 때문입니다.
(2) 양자마당이론에서 '기본입자(素粒子)'는 상태의 다른 이름
현대 입자물리학의 기본언어는 양자마당이론입니다. 양자마당이론은 양자역학과 달리 서술모형을 처음부터 마당(파동)으로 놓습니다. 실제로 구체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꽤 어렵지만, 여하간 관련된 방정식(예를 들어 디랙 방정식, 맥스웰 방정식, 프로카 방정식 등)을 풀어내면 상태함수 비슷한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상태함수를 구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근사적인 방법을 써야 합니다. 이 때 소위 파인만 도식(Feynman diagram)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출처: medium.com)
(출처: medium.com)
실상 양자마당이론에서 '기본입자' 또는 더 줄여서 '입자'라고 부르는 것은 상태의 다른 이름입니다. 앞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양자역학의 에너지 준위를 나타내는 선분들을 모두 '입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기본입자'가 아닌 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름이 붙는데, 여하간 '질량'이라 부르는 것과 '스핀'이라 부르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번호(양자수)'입니다.
비상대론적 양자역학에서는 $|n, \ell, m_\ell, m_s\rangle$과 같이 네 개의 양자수로 상태를 표시했는데, 상대론적 양자마당이론에서는 $|m, s\rangle$과 같이 '질량' $m$과 '스핀' $s$로 상태를 표시할 수 있습니다. 질량과 스핀 모두 내재적인 속성입니다. 그래서 이 상태를 그냥 편리하게 '입자'라 부릅니다.
https://pdg.lbl.gov/2021/listings/contents_listings.html
이 링크에는 소위 다양한 입자들의 데이터가 모두 모여 있습니다. 전세계의 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이 사이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입자와 관련된 데이터의 표준입니다. 살짝 구경을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지만, '입자'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일종의 에너지 수준을 가리킵니다.
맨 위의 그림에서 빨간색 선분으로 표시된 것이 에너지 수준(energy level)입니다. 입자물리학, 즉 상대론적 양자마당이론을 기본형식체계로 삼고 있는 분야에서는 그 에너지 수준을 '입자'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고전역학이나 비상대론적 양자역학에서는 물체의 '질량'은 계산 결과 얻을 수 있는 '상태'의 속성이 아닙니다. 풀어야 할 문제에 처음부터 그냥 주어지는 '특성'에 해당합니다. 이와 달리 상대론적 양자마당이론에서는 질량과 스핀이 계산 결과 얻을 수 있는 '상태'에 해당합니다. 이름은 같지만 내용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3) 기본입자가 정말 '입자(粒子)' 즉 곡식알갱이의 모습일까? 또는 입자의 궤적
입자물리학을 홍보하는 맥락에서는 기본입자를 일종의 곡식알갱이처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스위스 쥬네브(제네바) 근처에 있는 "유럽 핵 공동연구소(CERN)"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기본입자의 목록입니다. 귀여운 모습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서 친근감을 주려는 것일 텐데, 이 캐릭터는 말 그대로 캐릭터에 지나지 않습니다.
(출처: CERN)
어린이들이 이런 입자물리학의 주인공들에게 친근감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좀 특이하게 생겼지만, 눈이 하나인가, 둘인가, 셋인가 하는 것으로 입자물리학의 '족(family)' 개념을 나타냅니다. up 쿼크는 윗쪽으로 향한 화살표로, down 쿼크는 아랫쪽으로 향한 화살표로 나타냅니다. 전자, 뮤온, 타우 입자는 매우 가벼우니까 날개를 달고 있습니다. 그보다도 훨씬 더 가벼운 중성미자 세 가지는 마치 유령과 같은 모습인데, 모두 흰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이 중에서 풀알(글루온 gluon)과 중력알(graviton)은 실험실에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기본입자 중 일부로 포함시켰습니다. 2012년 이전에는 '힉스'라는 이름의 '입자'도 아직 이론적인 것이었지만, 이제는 실험에서 확인된 것으로 이름을 올려 놓고 있습니다.
(출처: http://CPEPweb.org )
이 그림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세상의 물질이 모두 이런 구슬 모양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입자가속기에서 생겨난 여러 아원자입자들은 안개상자(cloud chamber) 또는 거품상자(bubble chamber)에서 수증기를 응결시켜 궤적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 멋진 예술작품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 궤적을 어떻게 이해하는 게 좋을까요?
(4)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념의 의미
이 질문에서 더 심각하고 심오한 것은 "이루어져 있다"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일상 속에서는 A가 B를 이루고 있다거나 구성하고 있다는 말의 의미가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제도나 기관이나 집단은 더 직관적이지만, 가령 지금 책상 위에 있는 샤프펜슬이 몸체와 내부심과 용수철과 샤프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도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은 매우 심각하고 까다로운 주장입니다. 19세기 말 루트비히 볼츠만이 기체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 '기체 분자'라는 개념을 도입했을 때 정말 수많은 기라성 같은 물리학자들이 볼츠만을 맹공격했습니다. '기체 분자'라는 확인할 수 없고 허황된 존재론적 개념을 도입하여 물리학을 망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전에 쓴 글에 더 나옵니다만, 19세기 동안 원자(Atom), 분자(molecule), 미립자(corpuscle), 입자(particle, Teilchen) 등의 용어는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은 채 모호하게 혼용되었습니다.)
물이 물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물이 정말 $\rm{H}_2 \rm{O}$일까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책이 상당히 깊이 있는 논의를 전개했고, 매우 읽어볼만합니다.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2021) 물은 $\rm{H}_2 \rm{O}$인가? - 증거, 실재론, 다원주의. 김영사. (http://aladin.kr/p/cPSqK)
어떤 면에서 '원자'나 '분자'는 이미 그 존재성이 경험적으로 즉 실증적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박사학위논문이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고, 장 페렝은 원자의 존재를 증명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21세기에 '원자'나 '분자'를 의심하는 사람은 지구평평설이나 지적설계론을 믿는 사람만큼이나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따져보면 그것이 그렇게 만만한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원자나 분자 같은 것은 직접 존재를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운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원자핵, 쿼크, 빅뱅 등으로 가면 더 어려워집니다.
이 문제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이미 너무나 풍부하고 설왕설래가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철학 일반이라면 결국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2012년에 초판이 나오고 2021년 5판이 나온 다음과 같은 책이 있습니다.
Michael Esfeld (ed.) (2012). Philosophie der Physik. Suhrkamp. (https://amzn.to/3KOlVFJ)
이 책의 III부가 "입자와 마당"이고 "7. 데모크리토스의 삶. 철학과 물리학 사이의 원자론", "8. 아원자 입자란 무엇인가?", "9. 중성미자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입자물리학의 인과성과 실재론에 대한 사례", "10. 양자마당이론의 해석들", "11. 파인만 도표의 응용과 해석"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연철학, 특히 더 특정하여 물리철학에서는 이 문제가 여전히 가장 뜨거운 쟁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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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강독모임 계획 안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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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오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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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연철학 세미나 보완 계획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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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연철학 세미나 -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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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장이론의 개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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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 사슬 모형과 양자장이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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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장이론의 존재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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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장이론의 간단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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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상자와 입자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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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러의 뒤늦은 선택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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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양자지우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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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짧은 역사 (마르셀루 글레이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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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입자와 상호작용에 대한 표준 모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는 자못 충격적이네요. '원자'와 '분자'가 실증적으로 확인되었다 해도 이것이 알갱이인지 마당인지 이미지를 갖는 것과는 별개라는 말씀이라 생각하면 될까요?
그럼, 아래와 같은 원자의 사진을 찍었다느니 전자가 동그랗다는 것을 확인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알갱이 존재론을 확인해주는 경험이라고 받아들이면 안 되나요?
" target="_blank" rel="noopener">[A Boy And His Atom: The World's Smallest Movie]
"어서 와~원자 구경은 처음이지? 미시 세계로의 입장권, 전자현미경", [기초과학연구원 과학지식백과] 기사.
"'전자는 실제로 둥글다' 초정밀 관찰로 확인", <사이언스타임즈> 2018년 10월 18일자 기사
결국 핵심은 (1) 자연철학의 관점 (2) 물리학의 관점 (3) 대중과학의 관점이 나뉜다는 점인 듯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 기사는 아래 논문을 해설하는 (정확히 말하면 그런 글을 별 생각없이 번역한 듯한) 글입니다.
ACME Collaboration. Improved limit on the electric dipole moment of the electron. Nature 562, 355–360 (2018). https://doi.org/10.1038/s41586-018-0599-8 (첨부파일 참조)
이 논문에는 전자가 "둥글다"는 표현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전하가 구대칭으로 분포되어 있으면 전기쌍극모멘트가 0입니다. 그런데 전하들이 약간 길쭉하게 분포되어 있으면 전기쌍극모멘트가 0이 아닙니다. 표준모형으로 계산하면 전자의 전기쌍극모멘트는 $10^{-38} e\ \rm{cm}$보다 작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너무 작아서 현재의 실험 기술로는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대신 초대칭(supersymmetry, SUSY)이라 부르는 별도의 이론이 있어서, 만일 그 이론이 맞고, 거기에 등장하는 초대칭 짝(superpartner)의 질량이 $1-100\ \mathrm{TeV} \ c^{-2}$이라면, 표준모형의 예측과 달리 전자의 전기쌍극모멘트가 $10^{-27}- 10^{-30}\ e\ \rm{cm}$이 됩니다. 실험결과 얻은 전자의 전기쌍극모멘트의 값은 $4.3\pm 3.1 \pm 2.6\times 10^{-30}\ e\ \rm{cm}$으로서, 여러 오차를 감안하면 이 실험결과로부터 전기쌍극모멘트가 0인 것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논문은 그런 초대칭 이론은 현재의 실험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표준모형이 아직 반증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논문 어디에도 '구형(spherical)'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애초의 이 실험의 목표도 전자의 모양이 구형인가 여부가 아니라, 초대칭 이론에 따른 영향이 있는가 여부였습니다. 이런 것이 물리학자의 표현과 관점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일반독자에게는 아무 느낌도 없을 테니 (3) 대중과학의 관점에서는 이것을 "전자가 완전히 구형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Electrons Are Perfectly Spherical, New Measurements Confirm"와 같이 씁니다. 게다가 사이언스타임즈의 그 기자가 어떤 텍스트를 번역한 것인지 몰라도 "실제로 둥글다"라는 말은 하기 힘듭니다. 과연 그 실험이 '실제로' 그 극소의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의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위에 올린 글에서 강조한 것은 비판적 시각입니다. 주류 물리학자들이 퍼뜨리고 있는 그 '상식'이 새 자연철학 또는 자연철학 일반의 관점에서 여전히 받아들일만한 것인가 면밀하게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지금 쟁점이 되는 것은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 쿼크나 기본입자 같은 것인 정말 존재하는가 여부가 아닙니다. 그 기본요소를 일상에서 익숙한 곡식알갱이 같은 '입자(粒子)'로 보는 비유가 적절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익숙한 '상식'을 만들어낸 물리학 이론에서는 대상의 여러 상태를 그냥 편리하게 '입자(particle)'라고 부르지만, 실제 현장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물리학자라면 이것을 정말 곧이곧대로 '곡식알갱이'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입자'라고 말을 하는 동안에도 머리속에서는 "푸앵카레 대칭군의 기약표현"이든 양자마당이론의 상태함수를 나타내는 양자수(quantum number)나 온 우주에 퍼져 있는 양자마당의 기본 들뜸(elementary excitation)을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 표현은 실상 모두 동등합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새 자연철학에서 수식이 포함된 더 정확하고 엄밀한 서술이 과연 새 자연철학의 이해에서 필수적인가 하는 문제는 이야기를 더 나눌 의미 있는 주제입니다만, 여하간 대중과학의 관념들이 자연철학의 관점에서 과연 적절한지 여부를 독자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으려면, 이러한 수학적 형식체계에 대한 이해가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첨부파일 : ACME2018electric_dipole_electron.pdf
전자현미경이 정말 원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지는 여러 모로 매우 중요한 쟁점입니다. 시간이 허용할 때 이 점에 대해서도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 제가 학회에서 2006년에 발표한 짧은 논문이 있는데, 그 내용을 조금 소개할까 싶습니다.
거품상자에서 대전입자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흔적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일까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여기에서 거품상자는 전형적인 '변별체'입니다.
감사한다는 답글을 매번 달지 못했지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올려주신 글들을 검색하며 읽고 있습니다. 질문을 더 하고 싶어도 늘 자세하게 정성을 들여 답글을 써주시기에 시간을 많이 빼앗는 것 같아 질문을 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한가지 올리겠습니다.
물리학에서 어떤 대상이 ‘실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어 ‘원자가 실재한다’는 결론을 내리려면 어떤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할까요? 관찰(관측) 가능하다, 측정 가능하다, 실험에서 조작할 수 있다, 다른 대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나열할 수 있나요?
이 모임에 들어올 때 과학의 철학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많이 토론할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거의 5개월 동안 물리학에 치중된 공부를 하면서 무척 어려웠습니다. 선생님께서 ‘입자란 무엇일까요? 블랙홀은 실재하는 것일까요?’ 라는 질문을 하셨는데 과학적 실재론과 관련하여 모임에서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오히려 질문에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2019년 가을에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를 기반으로 한 자연철학 세미나가 시작했는데, 두 달도 채 못 되어 COVID-19 때문에 세미나가 멈추게 되어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자연철학 게시판에 글을 하나 둘 올렸습니다. 하지만 독백 모드는 지속하기가 꽤 어렵습니다. 현실에서 월급 받는 일에 더 시간을 들여야 하고 학회든 다른 세미나든 강의든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따로 짬을 내기가 쉽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질문을 해 주시고 제가 무슨 정확한 정답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제 의견을 정리하여 대답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하고 믿고 있는 것,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정돈하고 제시할 기회가 되기 때문에, 저로서는 질문을 해 주시는 것이 큰 힘이 되고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자연철학 세미나 1기때만 해도 실재론이나 과학철학의 주제들이 자주 이야기되었는데, 지금 진행되는 2기에는 물리학자가 대거 참여하면서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물리학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강했다고 생각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철학자이기에 앞서 물리학자이기 때문에 자연철학이 물리학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도 기존의 다른 저서들과 달리 물리학의 구체적인 내용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주 강조되듯이, 이 자연철학 세미나가 물리학 개론이나 대중적인 물리학 과정과는 거리가 멀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더욱 많은 질문이 나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세미나의 구성에서 자연스럽게 장회익 선생님이 구심점을 이루지만, 힘들의 벡터 합처럼 여러 다양한 질문들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무게 중심도 옮겨갈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목소리가 더 크고 주도를 하시는 물리학자들이 있지만, 그래도 여하간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분명히 무게 중심도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저희 자연철학 세미나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주제 중 하나가 다름 아니라 과학의 철학적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연철학(philosophy of nature)과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는 깊이 연관되면서도 지향과 기준과 개념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좁은 의미의 '과학철학'은 과학이라는 것을 대상으로 삼아서 철학적 측면을 고민하고 토론하는 연구분야입니다. 그러다 보니 표준적인 과학철학은 오히려 과학에서 멀어져 있기도 합니다.
자연철학 또는 과학철학이 자연과학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무척 어려운 과제입니다.
여하간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과학실재론 관련 토론도 진행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만, "물리학에서 어떤 대상이 ‘실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라고 질문하신다면, 퍼시 브리지먼(Percy W. Bridgman 1882-1961)의 사유를 참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브리지먼은 노벨물리학상도 받은 저명한 물리학자이면서 자신의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바로 지난 달(4월)에 정병훈 선생님의 번역으로 퍼시 브리지먼의 대표적인 저서 <현대물리학의 논리>의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습니다. (http://aladin.kr/p/cfCv9) [정병훈 선생님이 자연철학 세미나에 합류하시게 되었으니, 직접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저서를 비롯하여 여러 다른 저서와 논문에서 브리지먼은 물리적 개념, 나아가 과학 개념을 조작적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관념을 진지하게 제시합니다. 이 관념은 생각보다 훨씬 심오하지만, 여하간 '조작주의(operationalism)'라 부르는 이 주장은 20세기 과학철학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작주의의 핵심은 무엇인가가 정말로 존재하는가 여부를 가령 "관찰(관측) 가능하다, 측정 가능하다, 실험에서 조작할 수 있다, 다른 대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등으로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브리지먼 자신의 말을 인용하면 “we mean by any concept nothing more than a set of operations; the concept is synonymous with the corresponding set of operations” (Bridgman 1927, 5)입니다. 과학, 특히 물리학에서의 개념은 일련의 조작들의 집합이라는 겁니다.
브리지먼이 이런 독특한 관점을 전개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니라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동시라는 개념을 어떻게 분석하는가 하는 데 있었습니다. 어쩌다가 하버드 대학에서 예기치 않게 상대성이론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개념을 정리하려고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동시'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이작 뉴턴이 그랬듯이 그냥 선언해 버리는 게 아니라, 동시 개념을 살필 수 있는 일련의 조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은 자동차에서 저 자동차로 빛을 보내고 반사된 빛을 확인하고, 그래서 어떤 경우에 동시인가 아닌가를 따져 묻는 것입니다. 이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63-169쪽에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브리지먼의 조작주의를 더 확장한 버전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만일 전자를 조작해서 원하는 곳으로 흩뿌릴 수 있다면, 전자는 실재하는 것이다."(So far as I'm concerned, if you can spray them then they are real.)
이 말은 캐나다의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Ian Hacking)이 Representing and Intervening에서 절 제목 중 하나로 내세운 것인데, 확장된 의미의 조작주의를 잘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20년에 [표상하기와 개입하기 - 자연과학철학의 입문적 주제들]이란 제목으로 이상원 선생님이 번역하여 출간했습니다.
책 추천 감사합니다.
앗! 바로 답글을 다셨네요. 브리지먼의 <현대물리학의 논리>는 새로 자연철학 세미나에 합류하신 정병훈 선생님의 역자 '직강'을 들으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시인처럼님, 다음에 한번 기회를 만들어 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와~ 저 멀리서 떠도는 말로만 들었던 '조작주의'의 브리지먼 책을 곧 뵐 정병훈 선생님이 번역하셨다니 신기한 느낌입니다. 정말 기회를 마련해봐야겠네요. 한 차례 정도로 될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