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에서 물리적 측정값과 복소수
이 자리는 장회익 선생님의 자연철학 사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지만, 결국 장회익 선생님의 자연철학 사상이 또 하나의 도그마가 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철학에 속하는 어떤 주제들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자연철학 온라인 세미나에서 나온 문제를 조금 더 발전시킨 이야기를 짧게 적어보려 합니다. 이것은 물리적 측정값이 복소수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장회익 선생님은 자연철학의 모범 또는 전형을 물리학에 두신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연을 수치로 이해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근본적으로 '물리적인 양' 또는 줄여서 '물리량'입니다. 여러 개념들을 창안하고 다듬고 분류하지만, 결국 마지막 대목에서는 항상 물리량과 맞닥뜨립니다. 그래서 초급 물리학 교과서의 맨 앞에는 바로 이렇게 물리량을 어떻게 분류하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상세하게 다룹니다.
아이작 뉴턴이 근대물리학의 세계를 열었다거나 르네 데카르트가 철학의 근간에 물리학을 두었다고 말할 때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면은 물리량의 값을 정량적으로 예측하거나 설명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물리량을 측정한다는 관념이 중요해집니다. 물리량의 측정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과정의 종합입니다. 하나는 준비과정이고 하나는 기록과정입니다. 준비과정은 대상의 상태를 마련하는 것이고, 기록과정은 관측결과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리량 또는 물리적 성질을 두 가지 성격을 '계산가능'과 '검출가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산가능량(calculable)이라는 것은 “이러저러한 계산을 통해 측정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며, 검출가능량(detectable)은 “이러저러한 장치를 써서 그 값을 알아내고 검출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이후 양자역학에서 관측가능량(observable)이란 용어가 중심이 되어 왔는데, 실상 '관측'이란 표현은 계산가능량과 검출가능량을 모두 함축하고 있어서 혼동을 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관측가능량’이라는 표현은 부적합하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계산가능량의 측면은 물리학적 고찰의 대상에 대해 수식을 동원하여 무엇을 예상하고 예측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심학제2도에서 뉴턴의 자연철학을 이야기할 때에도 상세하게 이야기된 요소입니다. 이를 흔히 '상태(狀態 state)'라 부릅니다.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로 있는 것도 흔히 '상태'라 부르기 때문에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데, 후자의 상태는 '물질의 상태'로서 그냥 '상'(相 phase)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측적 앎과 관련된 '상태'는 말 그대로 '계산가능량'으로서의 물리량의 요약입니다. 지금 상태는 과거 상태의 결과이며, 동시에 미래 상태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매 순간의 상태를 알아내고, 그로부터 과거나 미래의 상태를 찾는 것이 핵심이 됩니다.
지금은 상태보다는 물리량 자체에 더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물리계의 수학적 형식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물리계의 수학적 형식이론은 $\langle S, O, p \rangle$로 나타낼 수 있다.
a) 물리계에 할당할 수 있는 상태들에 대한 수학적 표현의 집합 $S$ ($?\in ?$ )
b) 물리량에 대한 수학적 표현의 집합 $O$
c) 상태 $s$에 있는 계에서 물리량 A의 값이 특정 범위 안에 있을 확률을 결정하는 확률함수 $p(A=a, s)$
이 틀에 따르면, 고전역학의 형식체계는
1. 상태는 수학적으로 ‘(위치, 운동량)’으로 나타내고, 상태들의 집합을 위상 공간(phase space)이라 부르며,
2. 물리량은 그 위상 공간의 각 점에서 정의된 실수값 함수로 나타내며,
3. 주어진 상태에서 물리량의 측정 결과는 언제나 확정적으로 즉 확률 1로 주어지는 체계
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양자역학의 형식체계는
1. 상태는 수학적으로 ‘벡터(상태함수)’로 나타내고, 상태들의 집합은 힐버트 공간을 이루며,
2. 물리량은 그 벡터들에 작용하는 ‘자기수반 연산자’로 나타내며,
3. 주어진 상태에서 물리량의 측정 결과에 대한 확률분포는 ‘보른의 규칙’에 따르는 것으로 주어지는 체계
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양자역학은 고전역학과 상당히 다른 선택을 합니다. 실수만을 다루기로 하는 고전역학과 달리 양자역학은 맨 처음부터 복소수를 기반으로 삼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깊은 의미가 깃들여 있는 또 다른 스토리입니다만, 여하간 현재 인류가 가지고 있는 양자역학, 즉 1925년에 처음 제안되어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해 온 양자역학은 복소수에 바탕을 둔 물리학 이론입니다.
계산가능량으로서의 물리량은 여하튼 계산이기 때문에 실수를 쓰든 복소수를 쓰든 유리수만 쓰든 모두 자유로운 선택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검출가능량으로서의 물리량은 여하간 실수값으로 국한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은 물리량의 값이 반드시 실수가 나오도록 하는 장치를 여러 군데 집어넣었습니다.
힐버트 공간이라는 추상적이고 다소 복잡한 이론을 가져오는 대신, 장회익 선생님의 제안처럼 푸리에 변환을 가져오더라도 복소수를 써야 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하간에 최종계산결과에서 검출가능량은 꼭 실수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근본적인 개념이 바로 복소수의 크기 또는 복소수의 제곱입니다. 복소수의 독특한 성질 중 하나는 모든 복소수 $z=x+ iy$에 대해 켤레복소수라는 '짝'이 대응된다는 점입니다. 일본어로는 共役(きょうやく)라고 하고 한자를 共軛으로 쓰기도 합니다. 이 한자를 한국어로는 共軶(공액)이라 쓰는데 여기에서 '액 軶'은 '멍에'라는 뜻입니다. 소 두 마리에 나란히 멍에를 걸어서 함께 다니게 하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신발이나 양말 장갑 같은 것에서 '짝'이 되어 있는 것을 셀 때 '켤레'를 쓰니까 이 말이 확장되어서 '짝'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쓰게 되어, 수학에서는 '공액' 대신 '켤레'를 씁니다. 영어로는 conjugate입니다.
복소수 $z=x+ iy$에 대해 켤레복소수는 $z^*=x- iy$로 정의합니다. (여기에서 $x, y$는 모두 실수입니다) 이 용어를 처음 쓴 것은 프랑스의 수학자 오귀스탱-루이 코시입니다. 프랑스어로 '콩쥐게 conjuguées'라는 이름을 처음 도입한 것이 1821년입니다.
"Augustin-Louis Cauchy (1789-1857) used conjuguées for a + bi and a - bi in Cours d'Analyse algébrique (1821, p. 180)" [https://jeff560.tripod.com/c.html]
켤레복소수를 알아먹기 쉽도록 오른쪽 어깨에 * 표시를 합니다. 즉 복소수 $z$의 켤레복소수는 $z^*$입니다. 중등과정 수학에서는 $\bar{z}$를 많이 쓰고, 수학 분야 책에서도 자주 $\bar{z}$를 쓰는데, 물리학 분야의 책들에는 대체로 $z^*$를 씁니다.
그러면 앞에서 간단하게 설명한 복소수의 크기는
$$ |z|^2 = z^* z = (x - i y )(x+i y) = x^2 + y^2 $$
가 됩니다. 즉
$$ |z| = \sqrt{z^* z} = \sqrt{(x - i y )(x+i y)} = \sqrt{x^2 + y^2 }$$
이 됩니다.
이 켤레복소수는 함수에 대해서도 정의됩니다. 왜냐하면, 함수의 값 자체가 실수가 아니라 복소수가 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양자역학을 처음 만든 사람들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확률이라든가 물리량의 값이 모두 실수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 \langle x \rangle = \int \Psi^* (x) x \Psi (x ) dx $$
와 같은 식이 등장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어깨번호로 붙인 *는 켤레복소수라는 뜻입니다. 이 켤레복소수를 잘 이용하면 계산가능량과 검출가능량의 최종값은 항상 실수가 되도록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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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처럼 | 2021.09.02 | 0 | 1754 |
이렇게 답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상 이 내용은 몇 년 전 아산에서 녹색아카데미가 천안온생명론 모임과 공동으로 온생명론 작은 토론회 하면서 카페(이름이 지금 생각나지 않네요)에 모여 양자역학 이야기할 때 발표한 슬라이드 서너 장의 내용을 문장으로 풀어쓴 것입니다. 저도 오프라인 세미나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아마 카페 이름이 '산새'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참고로 다시 강조하자면, 제가 위의 글에서 소개드린 내용은 장회익 선생님의 네 공리와는 구별되는 소위 표준적인 공리들입니다. 어제 세미나에서 시인처럼님이 '공리'에 대해 질문을 하셨는데, 저는 물리학에서의 '공리'와 수학에서의 '공리'는 상당히 다르다고 믿고 있습니다.
작년 2월에 쓴 글 중에 양자역학의 공리에 대해 보충설명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https://bit.ly/3zOpC8L)
상대성이론도 그렇고 심지어 열역학도 네 개의 공리에 기반을 둔 공리체계로 서술됩니다. 하지만 수학에서 다루는 공리와 달리 이렇게 '공리'라고 부르는 것은 실상 아주 엄밀하지는 않습니다. 물리학자들이 수학의 엄밀성을 따라가려고 무척 애를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more geometrico (기하학적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데카르트와 갈릴레오 시절부터 많이 이야기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스피노자가 <윤리학>을 "more geometrico (기하학적 방식)"으로 저술했습니다. 매 장에서 정의와 공리가 제시되고 주장하는 바가 수학적(기하학적) 정리의 형식으로 제시되고, 정리 또는 명제는 공리와 정의들로부터 증명됩니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엄밀한 증명인지 더 따져들 필요가 있습니다.
2008년 미국 피츠버그 대학 박사학위논문 하나가 근대 초기 기하학적 방식의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자연철학강의와 여러 면에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번 훑어볼만합니다.
The Unity of Science in Early-Modern Philosophy: Subalternation, Metaphysics and the Geometrical Manner in Scholasticism, Galileo and Descartes
^^ 고맙습니다. 게시판에 이렇게 답해주시고, 질문 주고 받는 거 정말 좋습니다. 카톡이 편하긴 한데, 지나고 나면 다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서 아쉽더라구요. 길게 쓰기도 어렵고.
저는 카카오톡을 꼭 필요하지 않는 한, 될수록 안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소셜미디어와 개인정보 문제를 살펴보니, 카카오톡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해악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공적인 성격의 연락조차 일반 문자가 아니라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아져서 좀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왜 특정 기업의 특정 미디어를 강요하는가 하는 비판의식도 있구요. 여하간 게시판에 비밀번호와 CAPTCHA까지 적는 게 좀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게시판에 쓰는 게 오래 남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어 더 좋은 듯 합니다.
우와~. 정말 명쾌한 설명인 것 같아요~. '계산가능량'과 '측정가능량' 개념을 도입한 뒤에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형식 체계'를 비교해주니 내용을 잘 몰라도 뭔가 핵심을 파악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우와~!!!
아... 오프라인 세미나로 서너 시간 하면 이런 얘기도 차분히 듣고 물어보고 할 텐데, 아쉬워요. 이렇게 글로 기록되는 건 좋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