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질문] 새 자연철학의 사회적 요소 - 통합학문의 가능성에 대한 의문
장회익 선생님의 [과학과 메타과학]에 있는 "자연과학의 연구방법"과 "지식 진화와 학문의 전개양식"은 자연과학뿐 아니라 학문 전반의 근원적 성격의 고찰과 제언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또 이 글들은 장회익 선생님께서 [장회익의 자연철학의 강의]에서 상세하게 논의하고 다시 "현대 과학의 철학적 수용은 어떻게 가능한가?"에서 더 발전시킨 '새 자연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이 글들을 1990년에 처음 읽었고 2012년에 다시 개정판으로 읽었다가 이번에 다시 꼼꼼하게 읽으면서 지난 20여년 동안 제가 공부한 다른 분야(과학기술학)에서 이야기되는 관점을 덧붙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새 자연철학에서 사회적 요소는 어디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
과학 특히 자연과학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성찰은 대개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된 논리실증주의와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논리경험주의를 그 시초로 여기는 면이 있습니다. 논리실증주의/논리경험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과학과 관련된 논의에서 사회적 요소를 처음부터 철저하게 배격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1960년대에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들의 구조]라는 책으로 기존의 과학철학적 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면서 새로운 접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러니는 그 책이 애초에 "과학의 통일성에 대한 기초(Foundations of the Unity of Science)"라는 제목으로 논리실증주의/논리경험주의의 통합과학 프로그램의 맥락에서 기획되었다는 점입니다. 토머스 쿤이 '패러다임'과 '정상과학(규범과학)'이라는 낯선 개념을 가지고 오면서, 과학의 통일성 즉 통합학문에 대한 반세기의 노력은 사실상 폐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장회익 선생님은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방법론"의 가능성을 버리시지 않지만, 쿤의 주장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학자들은 자연과학에 내재된 근본적인 폐쇄성과 개방성에 주목했습니다. 폐쇄성은 과학, 특히 자연과학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지닌 교조적 태도를 말하고, 개방성은 관점과 입장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비논리적이거나 사회적인 방식의 타협을 말합니다.
토머스 쿤과 대비되곤 하는 칼 포퍼는 비판적 합리주의의 이름으로 과학과 사유가 진화론적으로 추측과 논박을 통해 발전할 수 있으며 언제나 독단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이와 달리 쿤의 논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과학자 공동체의 교조적 태도와 제도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쿤이 말했던 패러다임과 정상과학(규범과학)의 핵심은 새롭고 혁명적이고 열린 사고가 기존 과학자 공동체에서 배척되고 파기되면서 전체적인 흐름이 교조화되는 경향이기도 합니다. 패러다임 안에 갇혀 있으면서 정상과학(규범과학)을 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은 나올 수 없습니다.
'쿤 이후 학자'(post-Kuhnian)라 부르는 일군의 학자들은 패러다임들 사이의 불가공약성 즉 서로 비교할 수 있는 표준적인 척도의 부재에 주목했습니다. 쿤이 게슈탈트 심리학이나 종교 개종에까지 비교했던 패러다임의 변화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패러다임 변화의 논리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개인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로 확장하고 다시 사회적 이해관계와 집단간의 규범적 충돌과 합의를 중심으로 다시 살펴보면, 실상 패러다임의 변화는 다름 아니라 사회적 요소에 따른 변화로 불 수 있게 됩니다. 흔히 과학기술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라 부르는 복합적 학문분야가 이런 문제를 다룹니다. 이 중에서는 사회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처럼 조금 더 과격하게 느껴지는 접근도 있지만, 여하간 과학기술의 문제를 이해할 때 사회적 요소가 핵심적임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과학과 기술이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된 테크노사이언스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면에서 사회적 요소가 실질적 내용까지를 좌지우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패러다임의 변화는 다름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합의와 의견조율 속에서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학 또는 테크노사이언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회적 요소를 깊이 탐구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사회적 요소가 많은 경우 공존과 협동보다는 갈등과 대립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있습니다. 정치학이나 경제학과 같은 사회과학 못지 않게 철학적 탐구에서도 서로 함께 있을 수 없는 대립되는 입장과 주장이 충돌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생태위기와 환경문제라든가 최근의 팬데믹 상황의 의학과 보건을 보면 자연과학에서도 이러한 대립과 충돌이 선명합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고려한다면, 가령 3차원주의자와 4차원주의자 사이 또는 고전역학적 자연철학과 양자역학적 자연철학의 대립과 충돌도 결국 합의와 공존이 아니라 한쪽이 폐기되고 다른쪽이 이를 장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심학제2도(고전역학적 자연철학)와 심학제3도(상대론적 자연철학)는 심학제4도(양자역학적 자연철학)와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심학제4도로 대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의 질문은 '새 자연철학'에서 사회적 요소의 문제가 어떻게 포함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지식 진화와 학문의 전개 양식" 5절 통합학문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에서 조금 다루어지긴 했지만, 세분화되는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들과 철학적 사유의 만남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새 자연철학에서 과연 사회적 가치와 입장의 차이에 따른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듭니다.
저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이윤 내지 잉여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현대의 테크노사이언스는 새 자연철학의 프로젝트와 비전을 수용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토머스 헉슬리가 19세기 중엽에 점점 더 확대되어 가고 있던 '과학자(scientist)' 집단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자연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금전적-세속적 이익과 사회적 영예만을 추구한다면서, 자연에 대한 올바른 탐구는 자연철학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김용준 선생님의 저서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의 부제가 "과학인 김용준의 연구 노트"인 것도 세속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인'으로서 사셨던 김용준 선생님의 삶의 자세를 잘 보여줍니다.
새 자연철학에서 이윤과 금전적 이익과 사회적 영예의 추구를 최고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과연 새 자연철학에서 자연에 대한 탐구 전체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까요? 또는 그렇게 꼭 수용해야만 할까요? 오히려 배척할 것은 배척하는 게 더 적합한 태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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