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뉴턴 역학이 발표되고, 기존 학계의 저항은 없었나요?
뉴턴 역학이 발표 되고서, 기존 학계의 저항은 없었나요?
다들 Principia 최고 ! 이러면서 그냥 받아들였을까요?
기계론, 소용돌이론의 데카르트 파에선 반대와 비판을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설명에 만족하던 기존 학자들이 순순히 수긍하지는 않았을텐데요?
천동설, 지동설의 다툼은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는 일화 덕분에 어느 정도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적인 설명에서 뉴턴 역학의 체계로의 전환에서 기존 학자들과의 갈등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네요.
버클리 주교가 미적분의 토대의 극한 개념, 무한소 개념을 비판하는 정도 밖에는 들어본 것이 없네요.
설마 순순히 수긍을 했을까요?
지동설에 대해선 성서와 어긋난다던 카톨릭 계에선, 뉴턴 역학은 이것이 자연법칙, 신의 섭리이다 면서 긍정을 했을까요?
데카르트가 활동하던 네덜란드나 뉴턴의 영국이나, 신교 영향권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신교에선 자연철학이 없었나요? 개신교는 처음부터 지동설에 긍정하고, 뉴턴 역학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나요? 아니면 그냥 입장이 없었나요??
이곳에 과학사에 정통하신 분들이 많으셔서, 궁금증을 여쭈어 봅니다.
(책의 내용을 따라가야 하는 zoom 세미나에서 다루기는 힘든 얘기죠. 일단 장회익 선생님이 과학사로 세세히 따지는 걸 싫어하시는 것 같아요 ㅠㅠ)
자연사랑님의 "고전역학을 통한 세계의 이해" 라는 밑의 계시글를 통해서, 뉴턴 역학이 제대로 퍼지는 것은 프랑스의 에콜 폴리테크닉과 거기에서 배출된 엔지니어 집단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럼 그 전에는 별로 영향력이 없어서, 굳이 반대파(?) 에서 뭐라고 안 했을까요??
과학책에선 흔히 뉴턴의 역학이 등장해서 다들 놀라움 속에서 받아들일 것처럼, 또는 기존의 고루한 철학적 사변을 일시에 청소해 버린 지배자 처럼 묘사합니다. 그냥 순순히 당했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싶어서, 이러저러한 비판과 저항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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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 질문에 대해 아직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은 탓에, 장회익 선생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역사적으로 17세기에 나온 뉴턴의 자연철학은 ‘고전역학’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심학2도에서 정리해 놓으신 것은 ‘뉴턴의 자연철학’이 아니라 19세기 이후에 정립된 ‘고전역학’이라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사실 저는 오래 전부터 뉴턴의 자연철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왔는데, 공부할수록 뉴턴은 ‘고전역학’과는 매우 먼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뉴턴의 자연철학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에 있는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이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이 항목은 2021년 6월에 개정된 판본입니다.
Janiak, Andrew, "Newton’s Philosophy",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Fall 2021 Edition), Edward N. Zalta (ed.)
1687년에 간행된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매우 난해한 책이었기 때문에 비판이든 수용이든 이 책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유럽 전체에서도 극소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쉽게 다듬어서 사람들에게 알리려 애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관련된 이야기가 아주 많지만 제가 짧게 쓴 글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와 대중화도 다시 한번 읽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2017년에 나온 Reading Newton in Early Modern Europe는 17-18세기에 유럽 여기저기(이탈리아, 스페인(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 아일랜드 등)에서 나온 뉴턴 읽기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담은 논문집입니다. 마치 재작년말부터 저희가 모여서 장회익 선생님의 자연철학 강의를 읽고 이야기 나누면서 이해를 심화시키고 새로운 주제로 나아가려 하고 있듯이, 그렇게 유럽 전역에서 뉴턴의 자연철학을 이해해 보려는 움직임이 많았습니다.
흔히 코페르니쿠스를 통해 지구중심설을 대치하는 태양중심설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는 이름으로 자주 이야기됩니다만, 정말 혁명적이었던 것은 천구모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꾼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아니었습니다. 타원궤적의 법칙을 도입하여 천구모형 자체를 완전히 깨 버린 요하네스 케플러야말로 가장 심각한 혁명가였습니다. 케플러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루터리안, 즉 프로테스탄트였습니다. 구교 즉 가톨릭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던 이탈리아에서는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회부했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던 케플러는 그런 소환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여담이지만, 실상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은 태양중심설-지구중심설 논쟁과 거의 무관할 만큼 정치적이고 종교적이었습니다. 과학사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수없이 이야기하고 책으로 쓰고 다큐멘터리에서 반복해도, 오래되고 잘못된 신화는 깨지지 않으니 신기한 일입니다. 2009년에 로널드 넘버즈가 편집하여 낸 책 Galileo Goes to Jail and Other Myths about Science and Religion이 그런 내용을 친절하게 담고 있습니다. 저도 이 곳에 뉴턴의 사과와 과학사 속의 신화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동아시아에 전해진 뉴턴주의 자연철학도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진 것이었습니다.
덧붙이자면, 뉴턴의 자연철학이 유럽에서 자리를 잡는 데에는 1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고, 프랑스 계몽사조에서 뉴턴의 사유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널리 읽히는 책은 Jonathan I. Israel (2006) Enlightenment Contested: Philosophy, Modernity, and the Emancipation of Man 1670-1752. Oxford University Press.(https://amzn.to/3pi454d)입니다. 한국어 번역판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뒤져 보니 이 책의 8장이 “ Newtonianism and Anti-Newtonianism in the Early Enlightenment: Science, Philosophy, and Religion”입니다. 뉴턴주의와 반뉴턴주의에 대해 개략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반뉴턴주의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가 있었으리라는 점입니다. ‘비스 비바 논쟁’을 비롯하여 ‘클라크-라이프니츠 논쟁’과 ‘미적분한 우선권 다툼’은 모두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반뉴턴주의와 연관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은 대체로 신학 논쟁과 항상 연결되었습니다. 새뮤얼 클라크와 라이프니츠가 주고받은 편지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신학과 도덕철학이었습니다. 자연철학은 그 논쟁에 살짝 곁들여져 있다는 느낌도 들 정도입니다. 물론 17-18세기 유럽의 논쟁에서 신학과 도덕철학과 자연철학의 경계는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어이작 뉴턴의 평전을 여럿 읽고 그의 생애와 자연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제가 뉴턴에 대해 가지게 된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왕정복고 시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열성적인 왕당파이자 신학에서도 전능하고 매우 강력한 일신사상(삼위일체는 의회정치를 연상시켜서 무능한 신의 모습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을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심하게 못견디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에 이견을 다는 사람들을 모두 악랄한 방법으로 제거했습니다. 뉴턴이 죽기 전 영국에 뉴턴주의자가 많아진 건 비판자를 모두 제거했기 때문이라고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논문집의 1부는 "뉴턴 소개하기(Introducting Newton)"이고 2부는 "뉴턴에 도전하기(Challenging Newton)", 3부는 "뉴턴을 재모형화하기(Remodelling Newton)"입니다. 2부에 있는 논문 중 하나의 시작이 흥미롭습니다.
"흔히 '뉴턴 역학'이란 말을 고전역학의 다른 이름인 양 쓸 때가 많다. 우리는 고전역학이 (적어도 1905년 이전까지는)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뉴턴 자신의 교조가 거침없는 진리로서 빠르고 쉽게 퍼져나갔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초기 계몽사조 시기의 많은 사람들에게 뉴턴의 동역학은 필연적인 것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특히 라이프니츠 이후의 독일에서는 뉴턴 역학의 기초가 발디딜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Marius Stan (2017). "Newton's concepts of force among the Leibnizians". E.A. Boran and M. Feingold eds. Reading Newton in Early Modern Europe. Brill. pp. 245-289.
감사합니다 "뉴턴의 자연철학이 유럽에서 자리를 잡는 데에는 1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고, 프랑스 계몽사조에서 뉴턴의 사유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정리해 주시니, 제 의문이 많이 풀렸습니다 !! ( 세상을 한번에 혁명으로 바꾸기 보다는, 살금살금, 긴 시간에 걸쳐서, 그리고 반대파들이 늙어 죽기를 기다려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좋구나 싶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