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조화진동 문제 풀이
<양자역학을 이해할까?>198-209쪽에는 양자역학의 형식체계를 적용하는 전형적인 문제 중 하나로 조화진자(harmonic oscillator)의 풀이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이 조화진동의 풀이를 처음 제시한 것이 바로 양자역학을 처음 만든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1925년 막스 보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파스쿠알 요르단 이 세 명이 쓴 논문, 즉 소위 '삼인작(Driemännerarbeit)에서도 새로운 이론으로 조화진동 문제를 풀어서 예제로 보여주었고, 1926년 에르빈 슈뢰딩거가 발표한 "고유값문제로서의 양자화"에서도 맨 처음 풀어낸 예제가 바로 이 조화진동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과학사에서 주목하는 저작은 1924년에 출간된 리하르트 쿠랑과 다비트 힐버트의 책 <수학적 물리학의 방법>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Methoden_der_mathematischen_Physik
Richard Courant, David Hilbert (1924). Methoden der mathematischen Physik. Springer.
이 책은 archive.org에서 직접 구경할 수 있습니다.
[ Courant & Hilbert (1924). Methoden der mathematischen Physik의 표지]
아래 그림은 1926년에 출판된 슈뢰딩거의 논문 첫 페이지입니다. 논문의 제목은 "고유값문제로서의 양자화"입니다.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 연속논문으로서 아래 그림에 있는 것은 그 중 제2부입니다. 그 전까지 에너지값을 비롯하여 여러 물리량이 띄엄띄엄 떨어진 값만 갖는다는 것이 새로운 이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것이 '양자화'(독일어로 Quantisierung 영어로 quantization)입니다. 슈뢰딩거는 1924년에 출간된 수리물리학 책을 참조하여 미분방정식의 고유값문제가 다름 아니라 물리량의 양자화에 대한 설명임을 주장한 것입니다.
E. Schrödinger (1926) Quantisierung als Eigenwertproblem. Annalen der Physik. 384(6): 489-527. https://doi.org/10.1002/andp.19263840602
[슈뢰딩거의 1926년 연속논문 중 두 번째(제2부) 표지]
이 논문 중 3절이 적용사례입니다. 제목이 조화진동이 아니라 '플랑크 진자'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적용사례는 아닙니다. 제1부에서 케플러 문제 즉 위치에너지가 반지름에 반비례하는 경우를 풀어냈습니다. 실상 수소문제를 풀어내는 게 당시 가장 큰 관심사였고, 실험 데이터도 수소의 분광선이 정밀하게 측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얻은 수소 분광선과 에너지 값들의 계산결과가 실험데이터와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보인 것이 제1부의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제2부에서는 그것 말고 다른 문제들도 풀어내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 문제가 바로 '플랑크 진자'였습니다.
자신이 제안한 새로운 방정식 (18)식에 조화진동의 경우를 적용하면 (22)식이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198쪽의 (6-10)식에 해당합니다. 그리고는 적당히 계수를 재정의함으로써 (22)식 대신 아래의 (22')식을 얻습니다. 이 식을 잘 변형하면 (22")식이 되는데, 그 바로 아래에 "이 방정식의 고유값과 고유함수는 잘 알려져 있다."라는 구절이 있고, 거기에 각주가 달려 있습니다. 그 각주에 바로 리하르트 쿠랑과 다비트 힐버트가 정리하여 1924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그 <수학적 물리학의 방법>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단지 책만 인용된 것이 아니라 책의 해당 페이지까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교과서'에 따르면, 이 방정식의 풀이는 에르미트 다항식으로 주어지면 에너지 고유값도 구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200쪽에 있는 (6-19)식과 (6-20)식입니다.
수학적으로는 고유값과 고유함수가 (25)식과 (26)식으로 주어지지만, 이를 다시 재조정하여 새로 쓰면 (25')식과 (26')식이 됩니다.
(25')식 $$E_n = \frac{2n+1}{2} h\nu_0 \ ; \quad n=0, 1, 2, \cdots$$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200쪽의 (6-19)식 $$E_n = (n+\frac{1}{2}) \hbar\omega \ ; \quad n=0, 1, 2, \cdots$$과 정확히 같습니다. 또 (26')식도 계수나 몇 가지 인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200쪽의 (6-20)식과 일치합니다.
에너지값이 $h\nu_0$ 또는 $\hbar\omega$의 정수배만 허용된다는 것이 1900년 막스 플랑크가 흑체복사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가설이었고, 이것이 190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빛양자 가설의 내용이었습니다. 1913년 닐스 보어의 초기 원자모형도 이것을 가정 또는 전제로 하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맥락은 다르지만 1925년에 발표된 보른-하이젠베르크-요르단의 새로운 양자역학 이론에서도 플랑크의 가설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슈뢰딩거가 제안한 파동역학은 그 플랑크의 가설을 미분방정식의 고유값 문제로서 유도하고 있는 것이어서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또 이 때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200쪽 맨 위에 있는 식(번호가 따로 달려있지 않습니다)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해석이 무엇이든 간에 상태함수 $\psi (x)$가 발산하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말해 무한히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식의 분자 $2n+1-\varepsilon$가 0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는 199쪽 (6-16)식 이후 부분에 상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수학적 계산의 결과에서 무한대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에너지 고유값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정수만이 허용된다는 것을 유도한 것이라서 의미가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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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올려 놓은 슈뢰딩거의 1926년 논문(제2부)의 516쪽에는 매우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위의 식에서 $n=0$일 때의 에너지는 $E_0 = h\nu_0 /2 = \hbar \omega / 2$가 되어서 0이 아닙니다. 이것을 영점에너지(Nullpunktsenergie, zeo-point energy)라 부릅니다. 고전역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막스 플랑크는 널리 알려진 1900년 논문이 아니라 1911년 논문에서 흑체복사에 영점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주장했습니다. 그 뒤에 이 주장을 철회하기도 하고 비판을 받기도 했고, 아인슈타인이 슈테른과 함께 쓴 논문에서 이 영점에너지를 입증했다가 다시 나중에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1913년 닐스 보어가 원자모형을 제안한 논문에서도 이 영점에너지에 대한 논의가 나옵니다.
매우 흥미롭게도 1925년 11월에 투고되고 1926년에 출간된 보른-하이젠베르크-요르단의 논문에서 바로 이 영점에너지를 유도해 냈고, 슈뢰딩거도 1926년 2월에 투고된 바로 이 논문에서 영점에너지를 똑같이 유도해 냈습니다. 또 중간쯤에 보면 그 유도결과가 1911년 플랑크의 논문에서의 결과와 일치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 상세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한데, 나중에 시간이 되는 대로 요약해서 올려 보려고 합니다. 아래 논문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Kragh, H. (2012). Preludes to dark energy: zero-point energy and vacuum speculations. Arch. Hist. Exact Sci. 66, 199–240. https://doi.org/10.1007/s00407-011-0092-3" target="_blank" rel="noopener">https://doi.org/10.1007/s00407-011-0092-3
첨부파일 : kragh2012_zero-point-energy-and-vacuum-speculations.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