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얽힘과 측정의 문제 (양자정보)
지난 번 세미나에서 양자얽힘의 개념이 양자역학의 측정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또 제임스 글릭의 <인포메이션>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양자정보와 큐비트가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블로흐 구에 대한 것도 거론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간단한 입문적인 내용을 정리해 두려고 합니다. (아래 내용은 다른 곳에 발표했던 내용 중 해당 부분만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1) 양자얽힘과 측정의 문제
1935년에 발표된 슈뢰딩거의 논문 “양자역학의 현재 상황”은 소위 ‘슈뢰딩거의 고양이’ 논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개 이 논문은 거시적인 대상에는 양자역학을 적용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거나, 미시적 대상에서의 양자역학적 중첩이 증폭되어 거시적 대상에서 발현하는 상황을 말해 준다거나, 일종의 역설로서 양자역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세 번에 걸쳐 발표된 이 논문은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를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상세하게 음미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인식-구조적 관점에 있는 ‘서울 해석’과 연결시킬 수 있는 관점이 있어서 여러 가지로 유의미하다.
슈뢰딩거의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 모형의 물리학
§2. 양자역학에서 모형변수의 통계
§3. 확률예측의 예
§4. 이론의 기초를 이상적인 앙상블에 둘 수 있는가?
§5. 변수들이 정말로 흐려지는가?
§6. 인식론적 관점의 의식적 교체
§7. 기댓값의 목록으로서의 ψ함수
§8. 측정의 이론 1부
§9. 상태의 서술로서의 ψ함수
§10. 측정의 이론 2부
§11. 얽힘의 풀림. 실험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
§12. 예
§13. 예의 계속: 모든 가능한 측정은 명백하게 얽혀 있다
§14. 얽힘의 시간에 따른 변화. 시간의 특별한 역할에 대한 고찰
§15. 자연원리인가, 계산도구인가?
슈뢰딩거는 고전물리학에서 상태(Zustand)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관찰을 통해 자연의 대상에 대한 표상을 만드는 것은 기하학에서 부분을 통해 전체를 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렇게 대상에 대한 표상을 결정하는 부분(Bestimmungsstücke)이 바로 상태이다. 고전통계역학에서는 상태의 개념이 입자들의 위치와 운동량으로 표현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하이젠베르크 미결정성 관계(Ungenauigkeitsbeziehung) 때문에 이러한 상태 규정이 어려워진다. 즉 깁즈 앙상블 개념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고전적인 상태 규정이 아니라고 해도 적절한 수학적 장치가 있어서 이로부터 임의의 시간에 모든 변수에 대해 통계적 분포를 결정할 수 있다면 상태 규정으로서의 역할은 다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 확률분포만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해서 대상이 이것 또는 저것으로 명확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흐려져서 어중간한 구름이나 안개처럼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슈뢰딩거의 주장이다. 미결정성 관계의 의미에 대한 해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고양이의 사고실험이다. 고양이에게 ‘반생반사’의 상태를 부여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것처럼, 원자나 전자의 경우에도 상태의 서술은 존재론적인 서술이 아니다. 즉 양자역학에서의 확률예측을 실재의 상(Abbild der Wirklichkeit)에 대한 ‘흐려진 모형’(verwaschenes Modelle)으로 보면 안 된다. 확률예측은 대상에 대한 지식의 부족을 의미하며 인식론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ψ함수는 측정결과의 확률분포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이다. 기대값의 목록으로서 ψ함수의 변화는 인과적이며 연속적이지만, 이것은 측정이 일어나기 전까지에만 해당한다. 측정을 할 때마다 일종의 갑자기 변화하는 ψ함수를 할당해야 하며, 이는 측정 결과에 따라 달라지므로 예측할 수 없다.
이렇게 실재론을 거부하게 되면, 변수가 일반적으로 측정하기 전에는 어떤 특정한 값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측정은 변수가 가지고 있던 값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적 귀결을 얻게 된다. 슈뢰딩거는 측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두 개의 계(측정대상과 측정장치)의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상호작용이 뒤의 계(측정장치)에 대한 직접 감지할 수 있는 속성(눈금위치)이 바로 반복되는 과정에 대해 특정의 오차범위 내에서 재생될 수 있을 때, [이 상호작용을] 앞의 계(측정대상)에 대한 측정이라 부른다.”
어떤 변수에 대해 측정을 하고, 바로 뒤이어 그 변수를 다시 측정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첫 번째 측정이 일어나기 전에 임의의 양자이론 예측이 가능하다면, 그 첫 번째 측정에서는 그 예측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측정의 정의로부터 두 번째 측정에서는 앞에서의 예측과는 달리, 이미 나온 측정 결과가 반복되리라는 예측을 하게 된다. 따라서 ψ함수를 기대값의 목록으로 본다면, 측정의 과정에서 ψ함수가 불연속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따라서 슈뢰딩거가
“측정은 ψ함수의 연속적인 시간적 변화를 지배하는 법칙을 따르지 않고, 아무 법칙의 지배도 받지 않으며 측정결과에 의해 서술되는 전혀 다른 변화를 겪는다.”
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변화는 물리적 변화일까? 슈뢰딩거는 측정의 이론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
1. 측정에 따른 기대값 목록의 불연속 변화는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측정이 의미를 가지려면 여하튼 측정값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2. 이 불연속 변화는 인과적 법칙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측정된 값에 따라 달라지며, 측정된 값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3. 이 변화에는 일종의 지식의 손실이 생기지만,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상이 변화해야 하며, 이는 예측할 수 없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슈뢰딩거로서는 측정이 비록 인과적이고 연속적인 법칙으로 서술될 수는 없더라도 측정대상과 측정장치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측정 이전의 ψ함수가 말해 주는 기대값 목록과 측정 이후의 기대값 목록이 다르기 때문에, 서술자의 지식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 대상은 그대로인 채 서술자의 지식만 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대상 자체가 달라지는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슈뢰딩거가 후자의 선택을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슈뢰딩거에 따르면,
“어떤 전체 계의 최대 지식이 반드시 그 부분들의 최대 지식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며, 부분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서로 전혀 영향을 줄 수 없을 때에도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가 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부분계들 사이의 관계이다.
슈뢰딩거가 측정에서 일종의 지식의 손실이 일어나지만, 실제로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상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측정과정은 단순히 측정대상과 측정장치 사이의 상호작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측정과정은 그러한 물리적 상호작용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서술할 수 있는 물리적 법칙이 없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에게 측정과정을 이해할 수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얽힘(Verschränking, entanglement)이다.
“상태(representative)를 알고 있는 두 계가 일시적으로 물리적 상호작용을 할 때, 상호 영향의 시간이 지난 뒤 두 계가 떨어져 있게 되면, 이전과 같이 각각 기술되지 않고 그 계들 자체의 상태를 부여받게 된다. 나는 이것을 양자역학의 여러 특징들 중 하나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본다. 바로 이것이 양자역학을 고전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상호작용을 통해 두 상태(또는 ψ함수)는 얽히게 된다(entangled).”
얽힘은 두 부분계에 대하여 전체 계의 상태벡터를 $$\Psi (S_1 + S_2) = \sum_j c_j \xi_j (S_1 ) \otimes \eta_j (S_2)$$의 꼴로 쓸 수 있을 때, 오른쪽의 항이 둘 이상인 경우로 정의할 수 있다. 얽힘은 최근에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두 계 사이에서 실험적으로 확인되면서, 양자역학의 새로운 주제로 주목받고 있다. 얽힘이 양자역학의 기초에 관한 논의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
얽힘은 두 부분계가 각각 측정대상과 측정장치일 때뿐 아니라, EPR 상태의 경우(즉 스핀 홀짝 상태)처럼 두 입자계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가령 |$\Psi\rangle = \frac{1}{\sqrt{2}} |\uparrow\rangle \otimes |\downarrow\rangle + \frac{1}{\sqrt{2}} |\downarrow\rangle \otimes |\uparrow\rangle$은 전형적인 얽힌 상태이다. 두 계에 대하여 첫 번째 계에 대한 스핀의 측정 결과가 up으로 나오면 두 번째 계에 대한 측정의 확률 분포는 (up: 0%, down: 100%)와 같이 주어질 것이며, 첫 번째 계에 대한 스핀의 측정 결과가 down으로 나오면 두 번째 계에 대한 측정의 확률 분포는 (up: 100%, down: 0%)와 같이 주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계가 얽힌 상태에 있을 때, 첫 번째 계에 대한 측정의 결과가 이러이러하게 주어진다면 그에 따라 두 번째 계에 대한 측정의 기대값 분포 또는 확률 분포가 정해진다.
두 계가 얽힌 상태에 있다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첫 번째 계의 측정 결과에 따라 두 번째 계의 확률분포가 정해진다. 슈뢰딩거의 표현을 빌면, “이런 식으로 두 번째 계에 대한 임의의 측정과정이나 그에 상응하는 임의의 변수는 첫 번째 계의 임의의 변수에 따라 달라지며, 당연히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에 전체 목록에서 조건부 명제가 성립한다면, 전체 목록은 단일계에 대하여 최대가 될 수 없다.”
슈뢰딩거는 여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측정의 이론을 전개한다. 측정과정을 얽힘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얽힌 상태의 두 부분계 중 하나를 측정되는 대상으로 하고 다른 하나를 측정장치로 하면 된다.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차단하기 위해 측정장치를 자동장치로 만들고 눈금을 읽는 것은 최대한 뒤로 미룬다. 이렇게 자동으로 데이터를 얻는다면 전체 계에 대한 최대 기대값 목록을 얻게 된다. 이 측정결과는 조건부 명제로 되어 있다. 장치에 있는 펜이 1번 줄에 표식을 남긴다면 대상은 이러저러한 상태이고, 2번 줄에 표식을 남긴다면 또 이러저러한 상태에 있다는 식이다. 측정되는 대상의 함수에도 도약이 없으며 그렇다고 파동방정식으로 표현되는 자연법칙에 따라 변한 것도 아니다. 대상의 기대값 목록은 부분들의 기대값 목록들의 조건부 논리합이다. 즉 여러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이다. 만일 사람이 측정결과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손실되는 지식은 없다.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살아 있는 주체이다.
“측정대상과 측정장치의 결합에서 대상이 분리되는 것은 오직 살아 있는 주체가 측정 결과를 실제로 인지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얽힌 상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결정하는 들여다봄이 있기 전까지는 아무런 불연속도 생기지 않는다. 슈뢰딩거는 이를 정신 작용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대상과 측정장치 사이의 물리적인 상호작용은 이미 과거에 일어났고, 그 뒤에는 대상이 아무런 물리적 영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관찰자와 무관하게 편미분방정식에 따라 변화하는 대상의 함수가 이제 와서 일종의 정신 작용을 통해 불연속적으로 변화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상의 함수는 이제 사라져 버리고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없는 것이 변화할 수는 없다. 대상의 함수는 인식행위(Wahrnehmungsakt)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 다시 구성되고 이전에 가지고 있던 꼬여[얽혀] 있는 지식으로부터 분리된다. 그 인식행위는 사실상 측정대상에 대한 물리적 효과가 아니다. 이전에 알고 있던 함수의 형태로부터 다시 나타난 새로운 형태로 가는 길은 연속적이지 않다. 그 길은 실상 소멸을 통해 나아간다. 이 두 형태를 대조시키면 상황은 도약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슈뢰딩거가 보기에, 측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과 측정 장치 사이의 얽힘이지만, 이를 통해 여러 가능한 선택지들 중 하나로 가게 되는 것은 물리적 효과가 아니다. 새로운 상태 함수는 이전의 상태 함수로부터 연속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신 작용을 통해 대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슈뢰딩거가 측정 과정이 단지 물리적 상호작용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구성적 이론(constructive theory)과 원리적 이론(principle theory)을 구별하면서, 원리적 이론에서는 임의적인 요소들이 최대한 배제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가령 상대성이론에서조차 시계나 막대와 같은 요소들을 통해서만 측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라고 보았다. 양자역학이 원리적 이론이라면 측정과정도 양자역학으로 서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원리적 이론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슈뢰딩거가 세 번에 걸쳐 나누어 발표한 이 논문, “양자역학의 현재 상황”에서 굳이 두 절을 할애하여 ‘측정의 이론’(Theorie des Messens)를 논의한 것은 측정과정을 양자역학의 형식이론, 즉 자신의 이름이 붙은 상태변화의 방정식만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측정과정도 두 부분계 사이의 얽힘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지만, 결국 측정장치로부터 대상계의 상태를 읽어내는 것은 살아 있는 주체임을 강조함으로써, 측정의 이론을 형식적 양자역학으로 환원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셈이 되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사항 |
<자연철학 강의 공부모임> 계획
시인처럼
|
2024.09.12
|
추천 0
|
조회 3540
|
시인처럼 | 2024.09.12 | 0 | 3540 |
공지사항 |
3기 새 자연철학 세미나 상세 계획
시인처럼
|
2024.09.12
|
추천 0
|
조회 3592
|
시인처럼 | 2024.09.12 | 0 | 3592 |
공지사항 |
[자료] 유튜브 대담영상 "자연철학이야기" 녹취록 & 카툰 링크 모음 (5)
neomay33
|
2023.04.20
|
추천 3
|
조회 13063
|
neomay33 | 2023.04.20 | 3 | 13063 |
공지사항 |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오표 (10)
시인처럼
|
2022.12.22
|
추천 3
|
조회 15848
|
시인처럼 | 2022.12.22 | 3 | 15848 |
공지사항 |
[공지] 게시판 카테고리 설정에 대해서 (4)
시인처럼
|
2022.03.07
|
추천 0
|
조회 12701
|
시인처럼 | 2022.03.07 | 0 | 12701 |
682 |
[질문] 엔트로피 법칙이 무엇인가요? (1)
자연사랑
|
2025.03.13
|
추천 0
|
조회 62
|
자연사랑 | 2025.03.13 | 0 | 62 |
681 |
[자료] 물리법칙과 '나'라는 문제
자연사랑
|
2025.03.12
|
추천 1
|
조회 80
|
자연사랑 | 2025.03.12 | 1 | 80 |
680 |
[자료] 자유에너지 경관과 준안정상태의 변화
자연사랑
|
2025.02.22
|
추천 1
|
조회 105
|
자연사랑 | 2025.02.22 | 1 | 105 |
679 |
[자료] 우주의 역사와 운명 (1)
자연사랑
|
2025.01.28
|
추천 1
|
조회 228
|
자연사랑 | 2025.01.28 | 1 | 228 |
678 |
[자료] 우주와 물질 - 개요 (4)
자연사랑
|
2025.01.27
|
추천 1
|
조회 239
|
자연사랑 | 2025.01.27 | 1 | 239 |
677 |
[자료] 고립계, 닫힌 계, 열린 계
자연사랑
|
2025.01.20
|
추천 1
|
조회 245
|
자연사랑 | 2025.01.20 | 1 | 245 |
676 |
[자료] 열역학 영째 법칙과 온도의 정의 (2)
자연사랑
|
2025.01.19
|
추천 0
|
조회 241
|
자연사랑 | 2025.01.19 | 0 | 241 |
675 |
상호작용 없는 측정(엘리추르-바이드만)과 겹실틈 실험
자연사랑
|
2024.12.25
|
추천 0
|
조회 220
|
자연사랑 | 2024.12.25 | 0 | 220 |
674 |
[자료] 푸리에 변환과 힐버트 공간
자연사랑
|
2024.12.10
|
추천 0
|
조회 301
|
자연사랑 | 2024.12.10 | 0 | 301 |
673 |
양자역학이 답하고 있는 문제: 상태를 어떻게 서술할까?
자연사랑
|
2024.12.09
|
추천 0
|
조회 257
|
자연사랑 | 2024.12.09 | 0 | 257 |
1. 불확정성 원리라는 말보다는 ‘미결정성의 관계’라는 표현이 훨씬 더 명확한 의미를 전달해주는 것 같아서 좋네요.
2. “이렇게 실재론을 거부하게 되면, 변수가 일반적으로 측정하기 전에는 어떤 특정한 값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측정은 변수가 가지고 있던 값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적 귀결을 얻게 된다.”
본문의 이 부분에서 ‘변수가 가지고 있던 값’을 장회익 선생님의 용어로 치면 ‘특성’으로 바꾸어서 이해해도 될까요?
내용이 긴 만큼 질문도 많아서 질문을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변수가 가지고 있던 값'은 장회익 선생님의 '특성'이 아닙니다. 양자역학의 형식체계에서 말하는 물리량(physical quantity), 더 흔한 표현으로는 관측가능량(observable)입니다. 속성(property이라고도 합니다. '특성(characteristic)'은 단순히 물리량이 아니라 대상을 규정하고 정의하기 위한 것입니다. 질량, 전하량, 힘 이렇게 세 가지가 특성의 대부분입니다.
언급하신 슈뢰딩거의 측정의 이론 3가지에서…
1번은 측정행위 자체가 불연속성을 내포한다는 의미의 동어 반복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그리고 3번을 읽으면 측정행위가 마치 아날로그 파형에서 디지털 샘플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측정을 통해 상태함수가 붕괴된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론적 차원의 해석일 뿐이고, 사실 측정 행위는 우리가 일종의 체(sieve)나 바가지- 혹은 장회익 선생님의 표현에 따른 변별체 -를 가지고 그 상태함수의 흔적을 해석하는 행위인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슈뢰딩거의 논의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7. 기댓값의 목록으로서의 ψ함수"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측정 전의 기댓값의 목록과 측정 후의 기대값의 목록은 다릅니다. 그래야 '측정'이 이루어진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의미의 동어 반복은 아닙니다.
디지털 샘플링 이야기가 솔깃합니다. 더 생각해 보고 찾아보고 제 의견을 달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