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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더 나은 앎으로 푸른 미래를 가꾸는 사람들의 공부모임

새 자연철학 세미나

물리적 개념과 인간의 경험 기반

자료
고전역학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3-01-10 20:39
조회
6442

양자역학 세미나에서 물리적 개념과 인간의 경험 기반에 대한 질문이 나오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에서도 더 상세하게 논의되고 있고, 앞으로 더 깊이 다루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는 소위 고전역학에서 말하는 물리적 개념이 결코 직관적이지도 않고 경험에 기반을 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짧게 지적하고자 합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근대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며, 특히 고전역학의 주요 개념들을 처음 제시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런데 갈릴레오는 몇 가지 대화체의 대중적인 저서와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 결과를 소개하는 저서 등 십여 권의 저작에서 체계적으로 고전역학을 전개하지 않았습니다. 흔히 자유낙하의 법칙이나 관성의 법칙을 갈릴레오가 발견했다고 서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령 1638년 출간된 Discorsi e dimostrazioni matematiche intorno a due nuove scienze [ Discourses and Mathematical Demonstrations Relating to Two New Sciences; 새로운 두 과학에 관계된 논의와 수학적 증명]에 서술된 것을 보면 운동에 대한 새로운 서술이 직관적이지 않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실상 세 사람(심플리치오, 사그레도, 살비아티)이 5일 동안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정의, 공리, 예비명제, 정리, 따름정리, 주석 등으로 매우 수학적인 방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일반 독자가 따라가기 힘든 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한 증명이 계속 나옵니다. 아래에 있는 것이 빗면과 관련된 서술이 있는 페이지입니다.

약간의 과장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 심플리치오(Simplicio), 사그레도(Sagredo), 살비아티(Salviati)는 모두 갈릴레오를 대변하는데, 심플리치오는 갈릴레오의 초기를, 살비아티는 무르익은 갈릴레오의 사유를 대변합니다. 심플리치오는 <두 주된 세계체계 사이의 대화>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을 맹신하며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나왔지만, <새로운 두 과학>에서는 직관적이면서도 나름대로의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갈릴레오 자신이 운동에 대해 처음 가졌던 생각을 대변합니다. 자연스럽게 직관적인 아이디어를 상세하게 설명하곤 합니다. 그러면 사그레도가 그 직관적인 생각이 지니는 난점이나 이상한 점을 지적하고, 살비아티가 이를 수학을 이용하여 해결하는 식으로 서술이 이루어집니다.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에 나오는 소위 '고전역학'이 결코 직관적이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직관적으로 보면 물체에 어떤 충격을 주거나 해서 힘을 가할 때 거기에 비례하여 물체의 속도가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고전역학은 그 직관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힘에 비례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속도의 변화, 즉 가속도라는 겁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외부에서 충격을 주면 운동의 양이 변하며, 운동의 양은 물체가 무거울수록 또는 빠르게 움직일수록 크다는 새로운 관념을 도입해야만 합니다.

고전역학이 전제하는 시간과 공간의 분리도 결코 직관적이지 않습니다. 실상 고전역학에서 논의되는 물리량으로서 위치, 속도, 운동량, 에너지, 각운동량 등은 모두 갈릴레오변환 대칭성에서 유도됩니다. 직관적인 것이 아니라 수학적이며 논리적이며, 이러저러한 가정과 전제를 깔아놓고 유도하는 것이죠.

이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뇌터의 정리입니다. 다비트 힐버트의 제자로서 탁월한 업적을 많이 남긴 수학자 에미 뇌터가 고전역학에 대해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정리를 증명했습니다. 동역학 이론이 바탕에 깔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대칭성, 즉 변환에 대한 불변성이 있으면 언제나 그에 대응하는 보존량이 존재한다는 내용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Noether's_theorem

조금 더 쉽게 풀어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역학은 그 바탕에 시간과 공간과 물질에 대한 기본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물질이 공간 속을 움직여 나간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시간의 기준,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구별하는 기준은 임의적입니다. 2023년 1월 1일을  $t=0$으로 삼아도 되고, 오늘 자정을 $t=0$으로 삼아도 됩니다. 시간의 기준을 바꿈에 따라 동역학 서술이 달라지면 안 됩니다. 이것이 시간의 대칭성입니다. 뇌터의 정리는 이렇게 시간의 기준을 바꾸어도 동역학 서술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면, 항상 에너지라는 물리량이 보존됨을 증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에너지란 곧 시간대칭성의 산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위치의 기준을 여기와 저기 중 어디로 선택하더라도 물리적 서술이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이를 공간 평행이동의 대칭성이라 부릅니다. 그런 경우 항상 운동량이라는 물리량이 보존됩니다. 즉 운동량은 공간 평행이동 대칭성의 산물입니다. 또 공간축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선택하더라도 물리적 서술이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이를 공간 회전대칭성이라 부릅니다. 그런 경우 항상 각운동량이라는 물리량이 보존됩니다.

요컨대 에너지, 운동량, 각운동량은 시간과 공간의 대칭성에서 엄밀하게 유도되는 물리량입니다. 직관이나 경험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역학에서 다루는 물리량은 질량, 길이, 시간, 각도, 넓이, 부피, 힘, 에너지, 압력, 운동량, 각운동량, 돌릴힘(토크), 광도, 온도, 전하량 등등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더 기본적인 물리량이 있고 그 기본물리량으로부터 유도되는 물리량이 있습니다. 넓이나 부피는 실상 길이로부터 유도됩니다. 속도나 가속도는 길이와 시간으로부터 유도됩니다. 운동량이란 것은 질량과 길이와 시간으로부터 유도됩니다.

국제 도량형 단위계가 이런 관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기본단위 일곱 가지, 즉 시간, 길이, 질량, 전류, 온도, 물질의 양, 광도는 다른 유도단위의 기초가 되는 단위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System_of_Units

이것은 실상 물리학의 근본적인 가정과 직접 연관됩니다. 이른바 자연단위계(natural unit system)는 국제 표준단위계의 변형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Natural_units

예를 들어 상대성이론을 가져오면 시간과 공간을 같은 단위로 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c=1$이라 나타냅니다. 양자역학으로 가면 질량과 길이가 직접 연결되어 같은 단위로 잴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hbar=1$이라 나타냅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길이를 $\frac{\hbar}{m c}$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드브로이 파장입니다. 만일 $c=1$, $\hbar=1$이라 하면, 즉 길이와 시간과 질량의 단위를 그렇게 선택하면 길이는 질량의 역수 $1/m$과 같아집니다. 이에 대한 간단한 논의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의 제5장 앞부분에 있습니다.

요컨대, 양자역학 또는 양자이론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관념과 개념들이 직관적이지 않은 반면, 고전역학은 직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습니다. 물리학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직관적이지 않은 개념과 관념과 언어를 선택하여 세계를 서술하려는 시도라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전체 2

  • 시지프스 시지프스
    2023-01-15 09:12

    일부러 강조해서 쓰신 부분에 특히 공감합니다. "고전역학에서 말하는 물리적 개념이 결코 직관적이지도 않고 경험에 기반을 둔 것도 아니라는 점" , "매우 수학적인 방식으로" , "결코 직관적이지 않음" , "물리학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직관적이지 않은 개념과 관념과 언어를 선택하여 세계를 서술하려는 시도"
    //
    어릴 적에 신정(양력 1월1일)에도 세배하고, 구정(음력 1월1일, 설날)에도 세배를 했는데, 세배돈이 달랐습니다 ! 시간 기준이 달라졌더니, 같은 동역학적 행위 (큰절하기) 의 결과가 달랐졌어요 !! 게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세배돈이 달라지다가, 사라졌습니다 !!! 뇌터와 힐베르트는 독일 사람이라서 몰랐던 걸 까요? (^^)


  • Stella Stella
    2023-02-21 09:40

    뇌터의 정리에 대한 설명도 잘 읽었고, 기본 물리량 얘기도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길이와 시간과 질량의 단위를 적절히 조절하면 길이가 질량의 역수와 같아진다는 얘기가 무척 흥미롭네요. 좁은 유리관을 채우는 차원만이 존재한다면 이런 관계가 성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리고 뇌터의 정리에서 대칭성과 보존되는 물리량 이야기를 읽으니 질량보다는 운동량을 더 근본적인 양으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장회익 선생님 책에 그래서 대부분의 수식이 운동량과 에너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기준과 어떤 단위로 대상을 측정하는가….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깊은 함의가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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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댓글 내가 쓴 댓글
우와! 자세한 자료, 설명들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025.06.09
1. 변별체의 존재 양상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공부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바로 위의 답글에 쓴 물의 온도를 재는 상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장회익 선생님의 '변별체' 개념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측정장치 개념에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하여 추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관적으로는 모종의 측정장치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매우 다양한 측정장치 또는 검출장치를 사용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세미나에서 인용하신 안개상자(cloud chamber)나 거품상자(bubble chamber)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사용하는 사진건판도 변별체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loud_chamber https://en.wikipedia.org/wiki/Bubble_chamber 하지만 변별체가 측정장치/검출장치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변별체는 물리적 작용을 통해 뭔가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하지만, 또 동시에 그것을 읽어내서 인식주체의 경험표상영역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변별체는 대상과 인식주체 사이에 놓인 가교 내지 창문의 역할을 합니다. (제가 장회익 선생님의 제안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거품상자에서 기본입자가 만들어내는 궤적을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2025.06.03
2.의 질문이 흥미롭습니다. '이해'라는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상과 변별체의 만남(조우)은 원래 인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채거나 기록하거나 기억하거나 그로부터 지식을 얻는 것과 전혀 무관하게 대상과 변별체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하기에 이 세계 속의 수많은 물질적 존재자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치고 멀어져갈 것입니다. 아주 먼 우주에서 행성과 혜성이 충돌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하간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흔적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적 존재자에 생긴 흔적을 인식 주체인 '나' 또는 서술세계가 받아들이면 이제 그 흔적이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집니다. 인식주체가 없었더라면 그냥 물질적 충돌에 불과했을 것이 이제 '사건'이 되어 버립니다. 미묘하지만, 변별체와 경험표상영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변별체에 남은 흔적과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진 정보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50쪽의 그림 1-1에서 물질세계와 서술세계를 구별하는 점선을 넘나듭니다. 두 개의 네모 사이의 위아래 양쪽방향 화살표의 양면성입니다.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서 흔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과 '빈-사건'이 일어납니다. 특정 변별체에 흔적이 남지 않는 것도 흔적이 남는 것 못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해'라는 말이 직접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인용한 폰노이만의 온도 측정의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재려면 온도계를 넣어 수은/알콜의 높이를 보아야 합니다. 이 때 비커의 물이 대상이고 온도계는 변별체가 됩니다. (2) 온도계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전등의 빛이 수은/알콜의 경계면에 닿았다가 눈의 망막으로 와야 합니다. 이 때 온도계의 높이는 대상이 되고 빛(빛알)이 변별체가 됩니다. (3) 빛이 망막에 입사되면 망막에 있는 시신경에 나트륨 원소가 모이거나 흩어져서 전류가 만들어집니다. 이 때 빛이 대상이라면 시신경의 전위차는 변별체가 됩니다. (4) 시신경의 전위차는 뇌의 피질에서 뉴런을 발화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대목에서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읽어냅니다. (5) 그 다음 단계가 어렵습니다. 온도계의 높이든, 망막에 생기는 흔적이든, 시신경의 전위차든, 뉴런의 발화든 여하간 어느 단계에서 흔적의 기록이 정보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32-33쪽에 서술된 것처럼 역학 모드와 서술 모드를 구별합니다. 하지만 서술 모드만으로는 '이해'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하간 세 번째 모드로서 '의식 모드'가 작동을 해야 비로소 '이해'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라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인츠 폰푀르스터의 <이해를 이해하기> 같은 저작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Heinz Foerster (2003) Understanding Understanding: Essays on Cybernetics and Cognition. Springer. https://doi.org/10.1007/b97451
2025.06.03
3. 3차원 vs. 2+1차원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고대그리스-이슬람-중세유럽으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의 전통에서 세상의 중심은 지구였습니다. 지구 주위에는 일곱 행성(七曜) 즉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천구가 있고, 그 바깥에는 항성 천구가 있습니다. 지구는 네 개의 권역(구 껍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의 천구 바로 아래에는 불의 권역이 있고, 그 아래로 차례로 숨/바람의 권역, 물의 권역, 흙의 권역이 있습니다. 뒤의 세 권역은 현대의 기권(氣圈, Atmosphere), 수권(水圈 Hydrosphere), 지권(地圈,Geosphere)에 대략 연결됩니다. 불의 권역은 현대의 열권(熱圈, Thermosphere)이나 전리층과 비슷합니다. 여하간, 세상(우주)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이며, 이 중심을 향하는 방향이나 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이 곧 수직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지표면의 동서남북은 어느 쪽으로도 대등합니다. 이것이 바로 (2+1)차원의 세계입니다. 세계(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수직 방향도 동서남북과 대등하지 않을까 하는 관념이 펼쳐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펼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공간의 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숫자 $(x, y, z)$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비단 눈 앞에 펼쳐지는 육면체 모양의 방 안에서의 위치만이 아니라 온 우주 전체에서의 위치에도 해당합니다. 그러면 수직 방향이나 동서 방향이나 남북 방향이 모두 대등합니다. 데카르트에게 우주는 (2+1)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었습니다. [그림출처: Peter Apian (1529) Cosmographiae introductio]
2025.06.03
중요한 지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또 몇 가지 글에 대한 링크도 있었구요. 따로 답글도 있었는데 사라졌더라구요. 저의 부족한 글도 여하간 토론과 대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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