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질문] 앎의 가능성
자연철학강의 p.464:
그 어떤 것도 앎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 그러나 앎의 주체와 원천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어떤 것은 앎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또 그것으로 인한 어떠한 결과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후에 만날 수 있는 어떠한 세계도 상상의 대상은 될 수 있겠으나 앎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직녀성의 구성 물질은 앎의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별이 보내는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이러한 빛을 내는 물질이 어떤 것인지를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앎의 주체가 앎의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관찰 또는 실험을 통하여 앎의 대상에 대한 데이타를 얻는다는 뜻인가요? 웜홀, 멀티버스, 초끈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앎의 대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 앎의 주체와 대상의 문제는 단순히 과학자나 철학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철학에서는 이러한 앎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모아서 <인식론(Epistemology)> 또는 <지식 이론(Theory of Knoweldge)>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논의해 오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물론이거니와 중세 이슬람의 자연철학과 동아시아의 사유, 특히 11세기 성리학 이후의 자연철학에서도 이 '앎'의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웜홀, 멀티버스, 초끈이론을 예로 드신 것으로 보아 이론적인 존재자들이 앎의 주체와 일정한 관계를 맺어서 앎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라 여겨집니다. 과학철학에서는 이 문제를 "과학실재론 논쟁"이란 이름으로 줄기차게 이야기해 왔습니다. 특히 20세기 초에 발흥한 논리실증주의의 틀에서는 '관찰용어'와 '이론용어'를 구별하고 관찰할 수 없는 이론용어가 정말 실재하는지 여부를 놓고 "소박실재론", "과학실재론", "구조실재론", "구성적 경험주의", "도구주의", "인식론적 무정부주의", "사회구성주의" 등 다양한 입장이 제시되고 서로 논쟁을 지속해 왔습니다.
소박실재론, 특히 MIT의 맥스 테그마크가 주장하는 수학적 실재론의 관점에서는 수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이 실재이며, 앎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 것이 실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여하간 앎의 대상으로까지는 인정해 준다고 말하는 게 좋겠습니다.
결국 앎의 주체와 앎의 대상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관찰이나 실험만이 아니라 계산과 논변과 사유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2. 과학에서의 앎의 가능성은 관찰/실험의 가능성에 의해 제한되나요?
(과학사에서 데이타 혹은 증거를 얻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계속하는 경우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 과학에서 앎의 한계가 관찰/실험의 한계와 연관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수학이나 철학이나 논리학과 달리 자연과학에서는 칸트가 종합판단이라 부른 것이 작동합니다. 이론적으로 또는 계산상으로 아무리 훌륭해도 실험이나 관찰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단지 가설이나 이론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자연과학 안에서도 매우 다양하게 관찰할 수 없는 개념들이 근본적으로 내재합니다. 물리학에서는 아주 흔할 정도이지만, 가령 생물학에서 '유전자' 개념도 실상은 관찰할 수 없는 용어입니다. 일상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전자'나 '분자'나 '빅뱅'이나 '블랙홀'도 근본적으로 관찰할 수 없으므로, 모두 이론적 대상에 불과합니다. 특히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6장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진 "우주와 물질"에 관한 논의 중 매우 많은 것이 모두 이론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빅뱅은 물론이고 급팽창(인플레이션 우주)의 인플라톤 마당이나 여러 개념들이 모두 이론적인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매우 강한 경험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한 이런 식의 이론적 대상은 항상 권장됩니다. 그런 면에서 관찰과 실험의 한계를 곧 인식의 한계라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3. 기독교인이면서 과학자인 사람에게 ‘신’은 앎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 '신(神, God)'이 앎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신학(theology)'이라 부르는 학문영역과 깊이 연결될 것입니다. 종교와 신학은 근본적으로 접근방법과 입장이 다릅니다. 종교에서는 경전이나 사제가 말하는 것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는 반면, 신학에서는 치열한 논쟁과 합리적 추론과 풍부한 가설과 설명이 있습니다. 각 종교마다 나름대로 신학이 있지만, 제가 익숙한 기독교 신학에서는 전공분야 중에 '신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신'을 앎의 대상으로 삼아 학문적 논의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학과 과학적 상상>이란 책을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Amos Funkenstein (2019) Theology and the Scientific Imagination: From the Middle Ages to the Seventeenth Century, Second Edi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https://amzn.to/3s2PLyy)
저자인 아모스 풍켄슈타인은 독일 태생의 이스라엘 역사학자입니다.
Amos Funkenstein (1937-1995)
풍켄슈타인은 독일어, 헤브라이어, 프랑스어, 영어 모두에 능통했고, 여러 언어로 책을 저술했습니다. <신학과 과학적 상상: 중세부터 17세기까지>는 1986년에 1판이 간행되었는데, 1984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초청강연을 확장하여 단행본으로 만든 것입니다. 풍켄슈타인의 주장 중 하나는 17세기 근대과학의 뿌리 중 하나가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고 매우 설득력 있는 논변과 사료를 통해 주장을 펼칩니다. 이 책은 읽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유럽의 과학사, 철학사, 신학사를 꿰뚫고 있어야 하고, 인용하는 사료들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영어를 망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풍켄슈타인의 그 책을 보면 신학이 얼마나 깊이 과학과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앎’과 ‘믿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 4. 앎과 믿음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저는 포퍼-쿤 논쟁이 생각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칼 포퍼와 미국의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의 논쟁은 대체로 이치에 맞는 앎과 독단적 공동체주의 사이의 논쟁으로 이야기됩니다. 이 논쟁을 비교적 간명하게 다룬 것은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입니다.
종교 또는신학과 연관된 것이라면,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0)의 네 권짜리 저작집 제목이 하필 <믿음과 이해 Glauben und Verstehen>라는 점을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Glauben und Verstehen (abgekürzt: GuV). 4 Bde. UTB 1760–1763. (alle Bände 1993 in 9./6./4./5. Au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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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흥미롭고 심오한 질문이어서 섣불리 의견을 달기가 주저됩니다만, 지난 목요일 세미나에서 말씀드린 내용을 간략하게 적어보았습니다.
실재론에 관심을 가지다가는 실재론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하셨는데 결국 실재론으로 돌아가게 되는군요. 김진우 선생님께서 ‘도덕적 실재’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물리학의 실재 개념은 측정 가능한 대상 외에 어떤 법칙의 개념까지 포괄하는지 궁금하다고 채팅방에서 질문을 하셨는데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저도 도덕적 실재와 과학적 실재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자세한 답글에 일일이 링크도 걸어주시고,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풍켄슈타인의 책도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실재론은 매우 매력적이고 신기하고 흥미가 넘치는 주제입니다. 평생을 공부해도 또 이야기가 나오는 화수분 같습니다. 철학 일반에서 이야기하는 실재론은 제 관점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해서 정말 어렵고 복잡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철학(더 정확하게는 물리학) 영역에 국한된 실재론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장회익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겠습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이 이것과 직접 연관된 주제에 주어져서 다시 또 실재론 공부하늕 철학자들은 신나 있습니다. 저희 자연철학 모임에서 기회가 되면 올해 노벨물리학상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늘 예리하고 좋은 질문을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