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데카르트의 <인간론>(<정념론>)과 일원이측면론
데카르트의 자연철학 중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주장을 정말 실체이원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407-409쪽에는 데카르트가 1649년에 낸 <영혼의 정념들>에서 몸과 마음(더 정확하게는 영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살펴보고, 410쪽에서
"데카르트의 이러한 입장을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몸과 마음은 각각 독립된 실체를 이룬다고 하는 실체이원론 substance dualism에 해당한다. 그가 보기에 몸은 분명히 공간을 차지하는, 즉 연장 extension을 지닌 물리적 실체인 물질로 구성되어 있지만, 느낌이나 사유 등 마음의 작용들은 그 자체로 물질이라 보기 어렵고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기에, 이는 물질과는 분명히 다른 또 하나의 독자적 실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가 쓴 <영혼의 정념들 Les Passions de l’âme>(흔히 <정념론>으로 표기, 1649) 34절에는 그 유명한 '작은 샘(腺) la petite glande'이 등장하는데, 몸과 영혼이 연결되는 것은 '동물의 정기 les esprits animaux'을 통해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동물의 정기'는 고대 로마의 페르가몬 출신의 의사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의 이론에 바탕을 둔 개념입니다.
갈레노스는 정맥, 동맥, 신경에서 흐르는 세 가지를 말했는데, 그것은 각각 natural spirit (pneuma), vital spirit (pneuma zootikon), psychic spirit (pneuma psychikon)입니다. (https://bit.ly/3Aka27C) 정맥을 따라 흐르는 검붉은 피는 프네우마 퓌시스(스피리투스 나투랄리스)를 나르는 것이라면, 동맥을 따라 흐르는 선홍빛의 피는 프네우마 조오티콘(스피리투스 비탈리스)를 나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신경을 따라 흐르는 것이 프네우마 프쉬키콘입니다.

'프네우마 프쉬키콘'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스피리투스 아니말리스 spiritus animalis' 즉 '동물의 정기'입니다.
Julius Rocca (2003) Galen on the Brain: Anatomical Knowledge and Physiological Speculation in the Second Century AD (Studies in Ancient Medicine, Volume: 26) Brill.
https://brill.com/view/title/7636
갈레노스의 의학이론에서 '프네우마'는 엠페도클레스-아리스토텔레스의 네 원소, 즉 흙, 물, 숨, 불 중에서 숨(aer, ἀήρ, "air")과 거의 동의어입니다.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의 의학 전통에서는 종종 숨과 불이 합해진 것이 프네우마인 것으로 서술되기도 했습니다. 갈레노스의 관점에서는 프네우마가 당연히 질료이고 물질적인 것이므로, 실체상으로는 일원론이라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븐 시나(Ibn Sina) 또는 아비케나(Avicenna )가 저술한 <의학정전 (알카눈 피 알티브) القانون في الطب al-Qānūn fī al-Ṭibb>은 갈레노스의 이론에 기반을 둔 그리스-로마 의학뿐 아니라 페르시아 의학과 인도 의학과 동아시아 의학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The_Canon_of_Medicine
갈레노스의 논의를 계승하여, 정맥, 동맥, 신경을 따라 각각 자연의 정기, 생동하는 정기, 동물의 정기가 흐른다는 이븐시나의 이론에서 '신경'이라는 용어를 현대 해부학에서 말하는 신경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갈레노스가 주장한 세 가지 프네우마(스피리투스)의 이론에서 세 번째 정기, 즉 프네우마 프쉬키콘(스피리투스 아니말리스)은 '신경'을 따라 흐릅니다. 여기에서 '신경'은 현대 인체생리학에서 말하듯 나트륨 펌프가 작동하여 전위차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관으로 여겨진 개념입니다. 영어로 nerve, 독일어로 Nerv, 에스파냐어로 nervios, 러시아어로 нерв, 프랑스어로 nerf는 모두 라틴어 nervus에서 왔고, 이 말은 그리스어 네우론(νεῦρον)에서 왔는데, 원래의 의미는 '힘줄'에 더 가깝습니다. 12세기 경의 유대인 자연철학자 모세스 마이모니데스가 해부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곧잘 인대, 힘줄, 척수, 신경을 혼동한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이 네 가지는 해부학상으로는 비슷합니다. 네르부스는 마치 식물의 물관이나 체관과 비슷한 것으로 개념화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를 신경(神經)이라 부릅니다. 글자 그대로 따지면 '神'이 오고가는 길(經)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신神'은 아마 동아시아 성리학적 자연철학에서 말하던 귀鬼, 신神, 혼魂, 백魄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385-322 BCE)는 감각이나 운동은 심장이 좌우한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그보다 조금 뒤에 헤로필로스(Ἡρόφιλος 335–280 BCE)가 인체를 해부하여 시신경과 대뇌와 소뇌의 존재를 처음 보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시신경을 통해 '프네우마'가 지나다닌다는 신비주의적인 설명까지 덧붙여졌습니다. 여하간 헤로필로스의 해부는 현재 남아 있는 최초의 기록인 듯 합니다.
그런데 데카르트의 자연철학에 국한하여 보더라도 송과선과 연관된 이야기는 1649년에 출간된 <정념론>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데카르트는 이미 1630년과 1633년 사이에 <우주론 Le Monde>에 덧붙여 <인간론 L'Homme>을 저술했습니다. 이 두 책이야말로 데카르트가 처음 체계적으로 자신의 자연철학을 상세하게 다룬 저서였습니다. 데카르트는 이 두 책을 1633년 출간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633년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두 주된 우주 체계 사이의 대화>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는 저서로 결정된 뒤 출판된 책을 모두 불태우고 갈릴레오는 평생 가택연금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1633년 11월에 메르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데카르트는 교회가 승인하지 않은 것이라면 단 한 문장도 출간하지 않고 원고를 감추어 놓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데카르트가 1650년에 세상을 떠난 뒤 12년이 지난 1662년에야 이 원고의 라틴어 번역본이 출간되었고, 1664년에 프랑스어본도 출간되었습니다.
<인간론>과 <정념론>에서 펼친 송과선 이야기는 세련되게 다듬은 갈레노스의 이론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갈레노스의 관점은 일원론적이라 할 수 있고 더 비판적으로 보더라도 상호작용주의로 평가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흔히 이야기되듯이 데카르트를 과연 이원론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상 1662/1664년 데카르트의 사후에 출간되긴 했지만, 1630년 무렵부터 저술된 <인간론>의 내용을 보면 <정념론>에서보다 일원이측면론의 모습이 더 잘 보이는 듯 합니다.
데카르트가 실체이원론을 주장했다고 보는 것은 <인간론>과 <정념론>이 아니라 <철학의 원리>와 <방법 서설>에 담긴 논의 때문입니다. 이 후자의 저서에서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실체(res cogitans)'와 '공간을 차지하는 실체(res extensa)'의 이분법을 일관되게 유지합니다. 또 다른 곳에서 동물을 일종의 자동기계(automata)로 보는 관점을 상세하게 논의했습니다. <정념론>에서도 처음에 다루는 것은 '영혼'이었고, <인간론>은 데카르트 생전에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도 데카르트가 실체이원론을 주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굳건하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20세기 영어권에서 영향력 있는 심리철학자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이 1949년에 낸 [마음이라는 개념 The Concept of Mind]에서 데카르트를 이원론의 주창자로 서술하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이원론을 관 속에 넣고 마지막 못을 박는" 작업을 하면서, 몸-마음 문제에서 데카르트는 실체이원론의 대표자로 확립되어 버렸습니다. 라일은 "데카르트의 신화"라는 제목의 장에서 데카르트의 실체이원론을 "기계 속의 유령(Ghost in the Machine) 도그마"로 지칭하면서, 이것을 깨버려야 비로소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식으로 논의를 펼쳤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Ghost_in_the_machine
최근 20년 동안 정말 데카르트가 실체이원론을 주장한 것인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사전에서 "데카르트와 송과선" 항목을 집필한 헤르트-얀 록코르스트(Gert-Jan Lokhorst)는 데카르트의 심신이론을 적어도 12가지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https://plato.stanford.edu/entries/pineal-gland
특히 <인간론>의 서술들은 이원론보다는 일원이측면론에 더 잘 부합한다는 논문도 있습니다.
Smith, C.U.M., 1998, Descartes’ pineal neuropsychology, Brain and Cognition, 36: 57–72. https://doi.org/10.1006/brcg.1997.0954
또 데카르트의 <정념론>을 심리학과 생리학의 관점에서 면밀하게 분석하여 데카르트의 논의를 실체이원론으로 보는 것이 과장된 것이며 오히려 현대적인 신경생리학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도 있습니다.
Gary Hatfield (2007). The Passions of the soul and Descartes’s machine psychology,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Part A, 38(1): 1-35, https://doi.org/10.1016/j.shpsa.2006.12.015.

위의 그림은 판 후트쇼벤(Van Gutschoven)이 데카르트의 <인간론>의 삽화로 그린 것인데, 뇌 한 가운데의 뇌실 중앙에 송과선(H)이 매달려 있습니다. 여하간 이 '송과선'은 뇌 안에서 발견되는 뇌기관 중 하나입니다. 심신이원론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착한 유령 캐스퍼>에서 제기되는 것인데, 캐스퍼가 벽은 맘대로 통과하는데 어떻게 물건을 들 수 있는 것일까요? 심신이원론을 일관되게 주장한다면 송과선이라는 뇌기관이 영혼과 물질을 연결하는 통로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데카르트는 몸-마음 관계에만 국한해서 말한다면, 이원론자가 아니라 일원이측면론자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데카르트의 <인간론>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담긴 논문집이 2016년에 나왔습니다.
Delphine Antoine-Mahut, Stephen Gaukroger (eds.) (2016). Descartes' Treatise on Man and its Reception. Spr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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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th (1998)과 Hatfield (2007) 논문 두 편을 이 글에 첨부해 두었습니다. Smith (1998)은 <인간론>의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Hatfield (2007)은 <정념론>의 분석을 통해 데카르트의 심신이론을 실체이원론으로 보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꽤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몸-마음 문제의 이중측면론을 잘 요약해 놓은 논문이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Roger E. Bissell (1974) "A Dual-Aspect Approach to the Mind-Body Problem". Reason Papers No. 1: 18-39.
아래 논문은 데카르트의 신체화된 심리학을 상세하게 다루면서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데카르트 해석이나 스피노자 해석이 과도하거나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Geir Kirkebøen, “Descartes’ Embodied Psychology: Descartes’ or Damasio’s Error?” Journal of the History of the Neurosciences, 10.2 (2001): 173–91
10.1076/jhin.10.2.173.7255
첨부파일 : kirkeben2001_Descartes_embodied_psychology.pdf
참고: 스피노자의 강한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부재
“마음에는 절대적인 또는 자유로운 의지가 없다. 마음은 이런저런 것으로부터 결정된다.”(<에티카> II, 명제 48)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지를 가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까닭은 의지를 결정하는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는 까닭은 자신의 행동은 의식하지만 그 행동을 일으킨(결정하는) 원인은 모르기 때문이다. .. 정신의 결정은 충동(appetitus)에 지나지 않으며, 몸의 다양한 기질에 따라 달라진다.”(<에티카> III, 명제 2의 주석)
비교적 최근에 유튜브에 올라온 하랄트 아트만슈파허(Harald Atmanspacher)와 고데하르트 브륀트룹(Godehard Brüntrup)의 대담이 흥미롭습니다.
제목은 "마음-몸 이중 측면 이론: 스피노자로부터 양자얽힘까지(Mind-Body Dual-Aspect Theory from Spinoza to Quantum-Entanglement)"이고 미국 아리조나의 투손에서 열린 TSC 2022 (The Science of Consciousness conference)에서의 대담입니다.
아트만슈파허는 독일 출신의 물리학자로서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명예교수입니다. 그는 양자얽힘 개념을 비유로 사용하여 몸-마음 문제를 제3의 중립적 영역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과 연관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어 보입니다.
올해 5월에 나온 딘 리클즈와의 공저 [이중측면 일원론과 의미의 심층적 구조 Dual-Aspect Monism and the Deep Structure of Meaning]의 내용을 10분 정도의 짧은 대담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9월 1일 세미나에서 틈이 난다면 여기에 올린 제 질문도 함께 다루어 주시길 바랍니다. 질문의 핵심은 데카르트의 자연철학을 <철학의 원리>나 <방법서설>에 따라 보는 대신 <인간론>이나 <영혼의 정념론>에 입각하여 본다면 사실상 일원이측면론으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철학의 역사지평이라는 측면에서 본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