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원자, 이온, 분자, 입자
19세기 내내 유럽의 자연철학 또는 자연과학에 속하는 사람들이 뜨겁게 논쟁했던 주제가 있습니다. 초급과학에서는 ‘입자’, ‘분자’, ‘원자’, ‘원소’, ‘이온’ 등의 개념이 명확한 것으로 가르치고 시험문제로도 내곤 합니다만, 실상 이런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논란거리였습니다.
발단 중 하나는 18세기말에 프랑스의 앙투완 라브와지에가 ‘원소(엘레망 élément)’라는 개념을 가지고 와서 화학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를 이어 영국의 존 돌턴이 난데없이 고대 그리스-로마의 ‘아토모스’ 개념을 들고와서는 소위 화학철학(chemical philosophy)에서 ‘화학적 원자론’이라 부르는 것을 주장했던 것이었습니다.
‘원소’나 ‘원자’라는 용어 자체가 낯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에서는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철학자들이 세상의 근본원리 또는 근본적인 구성요소를 ‘아르케’라는 이름 아래 상세하게 논의했습니다. 엠페도클레스가 그 전까지의 논쟁을 정리하면서 ‘흙 (γῆ gê 게)’, ‘물 (ὕδωρ hýdōr 휘도르)’, ‘숨 (ἀήρ aḗr 아에르)’, ‘불 (πῦρ pŷr 퓌르)’가 그 근본요소라고 주장하고 이를 “뿌리” (ῥιζώματα rhizōmata 리조마타)라 불렀습니다. 플라톤이 이를 ‘원소 (元素 element στοιχεῖον, stoicheîon)라 불렀습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집대성으로 자연철학에서 표준이론이 되어 18세기까지 살아남았습니다.
1830년대에는 전기분해와 관련된 작은 단위의 이름이 필요해서 윌리엄 휴월과 마이클 패러데이가 이온(ion)이란 용어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휴월은 ‘과학자(scientist)’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라브와지에의 새로운 ‘원소’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의 그 네 원소가 아니라 33가지의 화학물질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중에는 열과 빛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와중에 라브와지에가 ‘칼로릭(열소)’이라 부른 원소가 실상 에너지라는 주장이 1840년대부터 불거졌습니다. 이 ‘에너지’란 말을 만들어서 처음 제안한 사람이 다름 아니라 빛의 겹실틈 실험으로 유명한 그 토머스 영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으로 가면 영국의 제임스 클러크-맥스웰과 오스트리아의 루트비히 볼츠만이 나서서 열역학을 ‘몰리큘(molecule 분자)’ 또는 ‘아톰(Atom 원자)’로 설명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지금은 분자와 원자를 구분하지만, 당시에는 거의 구별되지 않는 용어였고, 오히려 프랑스어나 영어로는 몰레퀼 또는 몰리큘, 독일어로는 아톰이라 한 느낌이 더 많습니다. 이런 용어 대신 그냥 미립자(corpuscle)라는 다소 중립적인 용어를 선호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흔히 전자를 발견했다고 이야기되는 영국의 조제프 존 톰슨은 단지 음극선(cathode ray)이 미립자(corpuscle)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는 실험을 했을 뿐입니다. 나중에서야 그 미립자를 전자(electron)이라 이름붙이게 되었죠.
지금도 엄밀하게 따져들면 원소, 원자, 분자, 이온, 입자, 미립자 등등의 용어가 과연 무슨 의미인지,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것인지 의심해 보게 됩니다. 전자현미경으로 뭐든 볼 수 있는 시대라지만, 전자현미경이 보여주는 것이 정말로 ‘입자’일까요?
이와 관련하여 제가 즐겨 추천하는 영화 한 편 소개합니다.
" target="_blank" rel="noopener"> A Boy And His Atom: The World's Smallest Movie
" target="_blank" rel="noopener"> Moving Atoms: Making The World's Smallest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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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원소, 원자, 분자, 이온, 입자 등의 정확한 정의가 뭘까요? 원자와 분자가 정말 다르긴 다를까요? 원소와 원자는 다른 건가요?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동그라미와 사면체 모양의 원자나 분자는 정말 그런 모습일까요? 그렇게 믿고 그렇게 가르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