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 고전적 확률, 양자역학
장회익 선생님의 새 자연철학에서 양자역학적 자연철학은 매우 중요한 기둥을 이룹니다. 거칠게 과장하여 표현하면, 철학적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 심리철학적 주제 등이 모두 양자역학에 대한 사유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현대의 상식적 심리이론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심신이원론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영향도 크겠지만, 실상 고전역학적 자연철학이 바탕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일종의 기계로 보고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으로 대상을 충분히 이해한 것으로 보는 셈입니다. 마음조차 그렇게 봅니다.
이와 달리 양자역학적 자연철학을 바탕에 두게 되면, 마음과 몸을 별개로 보지 않아야 함을 알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은 논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자연철학적 사유에서의 흐름이고 매 순간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심신 일원이측면론은 양자역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연관됩니다. 또 생명을 이해하는 새로운 틀거리(패러다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자기촉매적 국소질서와 양자역학의 새로운 접근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상세하게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앞으로의 연구과제이기도 합니다. 여하간 장회익 선생님의 양자역학론을 이해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어제 보조세미나에서 양자역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수용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1970년대 대항문화 속에서 가장 인기있던 주제가 바로 신과학(뉴에이지 과학)이란 이름 아래 퍼져나간 양자역학과 동아시아 사상(특히 고대 인도 사상)의 연결이었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21세기 들어서 점점 더 다양하게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특히 국내에서도 몇몇 팟캐스트가 이런 주제를 들고 나왔고 관련된 베스트셀러도 나오고 그 저자가 TV에도 나오고 하면서 양자역학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튜브 채널이 새로운 직업으로까지 발전하고 수익까지 얻을 수 있게 되니까 그 와중에 양자역학이나 물리학을 소재로 한 채널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자연철학적 사유를 살피는 것은 사실 무슨 종교 교리 같은 교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성되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자연철학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연철학적 사유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겠습니다.
항간에 퍼져 있는 양자역학에 대한 오해를 지금 제가 소개하려는 책에서 몇 가지 나열합니다.
"빛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다."
"고양이는 뚜껑을 열기 전까지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니다."
"위치 아니면 운동량에 관해 물어볼 수 있지만, 둘 다 물을 수는 없다."
"한 입자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입자와 원격작용을 해서 그 입자의 스핀을 바로 알아낼 수 있다." 등등
그런데 이런 오해의 핵심은 모두 양자역학 이전의 관념, 특히 고전역학의 관념으로 새로운 것을 이해하려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내용이 나오는 책의 제목은 Quantum Computing since Democritus이고 저자는 MIT의 컴퓨터 공학자인 스캇 아론슨(Scott Aaronson)입니다. 이 책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양자역학은 다른 물리학 이론들이 응용 소프트웨어로 작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운영체제(O/S)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보통의 의미의 물리학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서 물질이나 에너지나 파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양자역학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 내가 보기에, 양자역학은 정보와 확률과 관측가능량,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문장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느 프린터 제조사에서 광고를 만들면서 무단 표절을 해서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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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heinspirationroom.com/daily/2007/ricoh-intelligent-models-talk-quantum-physics/
"하지만 양자역학이 보통의 의미의 물리학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서 물질이나 에너지나 파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그럼 뭐에 관한 거지?"
"양자역학은 정보와 확률과 관측가능량(물리량),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한 얘기야."
“But if quantum mechanics isn’t physics in the usual sense, if it’s not about matter or energy or waves, then what is it about?”
“Well, from my perspective, it’s about information, probability and observables and how they relate to each other”.
패션쇼에서 '똑똑한 모델(Intelligent Model)'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입니다.
아론슨은 물리학자가 아니라 양자물리학을 이용하여 계산을 하는 이론가입니다. 그래서인지 물리학자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아주 명료하게 말합니다. 세계를 서술하는 방식에 세 가지가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1) 결정론 (2) 고전적 확률 (3) 양자역학입니다.
(1) 결정론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정교하게 계산되고 준비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 효시는 흔히 뉴턴과 고전역학으로 얘기됩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에서는 일견 장현광 선생이 이미 그러한 믿음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으로 가더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조금 더 정교해지고 조금 더 정밀해졌지만, 여전히 결정론의 틀거리를 전혀 벗어나지 않습니다.
(2) 고전적 확률은 다름 아니라 심학6도 즉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6장에서 다루어지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흔히 통계역학이라 부르지만, 기본적으로 다양한 확률이론입니다. 심지어 라플라스의 악마가 등장하는 바로 그 인용문이 다름 아니라 <확률의 해석적 이론>이란 책의 서문에 있습니다. 19세기는 이미 확률의 시대였습니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은 다름 아니라 종이 만들어지고 분화하는 과정을 확률이론을 통해 이해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9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여러 사회과학 특히 사회학과 경제학도 상당 부분에서 확률 개념을 가져오는 면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3) 양자역학에 이르면 이제 고전적 확률과는 다른 종류의 접근이 됩니다. 흔히 이를 '양자확률(quantum probability)'이라 부르는데, 아론슨은 아예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상한 표현을 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상태함수"와 "사건야기성향"과 "변별체"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양자역학을 설명하시는 것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아론슨의 접근을 단순화시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전적 확률은 곧 $(p_1 , p_2 , \cdots , p_n )$과 같은 확률분포로 주어지는데, 이 확률들은 \[ \sum_{i=1}^n p_i = p_1 + p_2 + \cdots + p_n = 1\]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여기에서 다소 전문적인 수학용어를 들고 옵니다. 고전적 확률은 "1-노음"이고 양자역학은 "2-노음"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p$-노음이 \[ \lVert x \rVert_p = \left( (x_1)^p + (x_2)^p + \cdots (x_n)^p \right)^{1/p}\]으로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은 이 조건 대신 \[ \sum_{i=1}^n |c_i|^2 = |c_1|^2 +|c_2|^2 + \cdots + |c_n |^2= 1\]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하고, '확률'이 음수도 되고 복소수도 되게 허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확률'이라고 따옴표 안에 넣어 말한 것은 흔히 말하는 확률이 아닙니다. 흔히 '확률진폭'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진폭 amplitude'이란 것은 역사적으로 '파동'이란 모델과 비유 덕분에 생긴 이름입니다. 여러 개의 파동이 겹쳐 있을 때, 그 특정 부분파의 진동의 크기를 가리키는 말이 진폭이고, 확률은 그 진폭의 절대값 제곱이라는 겁니다.
진폭이라는 용어 대신 그냥 상태함수라고 부르는 것이 혼동을 피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제 결정론과 양자역학을 대비시켜 보면, 결정론에서는 대상의 상태를 $(x, p)$ 즉 위치와 운동량으로 규정합니다. 물리학에서는 이것이 실제적인 위치와 그 순간 질량과 속도를 곱한 운동량이 되지만, 이 개념은 물체의 운동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19세기 말 경제학에서의 한계혁명도 물리학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삼고 경제현상을 그와 같은 법칙의 테두리 안에 놓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계열(time series)이라 부르는 것은 모두 고전역학과 같은 방식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주식시세든, 환율동향이든, 지구평균온도이든, 노화의 진행이든, 인구의 변화이든, 전염병의 확산이든 사실상 모든 것을 $(x, p)$ 즉 위치와 운동량으로 규정할 수만 있으면 빈틈없이 예측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최근 COVID-19 관련하여 몇 주 뒤에는 확진자 수가 몇 명이 될 수 있다고 예측하여 발표하는 것도 이러한 수학적 모형을 가지고 컴퓨터를 돌리고 여러 파라미터를 넣은 결과입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대상의 상태를 $(x, p)$ 즉 위치와 운동량으로 규정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소위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라는 것의 핵심 주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그 대신 상태함수 $\Psi$라는 것으로 대상의 상태를 규정하기로 함으로써 새로운 인식론과 존재론을 열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매끄러운 것은 아닙니다. 아래 모아 놓은 책 표지는 '양자'라는 말이 들어가는 새로운 주장들입니다. 이 중 어떤 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가는 출발점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양자사기(Quantum Hype)의 일종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에 있는 사진은 Quantum Resonance Magnetic Analyzer (양자 공명 자기 분석기)라고 쓰여 있는데, 한의원에 있는 장치입니다. 중국에서 만들었다는데 어떤 기계인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맥박을 보고 진단하는 대신 이 기계를 쓴다고 들었습니다.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는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양자역학의 핵심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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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사기(Quantum Hype)라는 게 좀 무섭기도 합니다. '양자 온열 치료'라고 하는 대신 그냥 '온열 치료'라고 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주목을 덜 할 듯 합니다.
양자경제학, 양자심리학, 양자재정학, 양자예술, 양자마음, 양자사회과학, 양자인지, 양자결정, 양자의식 이런 식의 이름붙이기가 유행할 만큼 '양자'에 대한 관심을 점점 더 커져가기만 하지만, 정작 양자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만큼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 같아 걱정되기도 합니다.
양자 학습법, 양자 공부법. 이러면 분명히 양자 사기 같은데요. 정작 우리 세미나에는 절실히 필요하지요? ㅠ ㅠ
양자 온열 치료라는 게 있다네요. 양자(퀀텀 에너지) + 원적외선 + 음이온
http://www.xn--4k0b59hfusspat47ci2a.com/02/sub02_01.php
"체온이 1도 떨어지면 면역력은 30배 약해지고,
반대로 체온 1도가 올라가면 면역력은 5~6배로 강해진다"는 논문도 쓰셨다는데,
여름에 운동하고 에어콘이나 선풍기를 쐬면, 면역력이 엄청나게 떨어지겠네요.
그럼 이런 생활을 반복하는, 각 종목의 국가대표는 모두 면역력이 0 일까요??
초결정론과 자유의지
Superdeterminism and free will
Does Superdeterminism save Quantum Mechanics? Or Does It Kill Free Will and Destroy Science?
양자역학과 자유의지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does-quantum-mechanics-rule-out-free-will/" target="_blank" rel="noopener"> Does Quantum Mechanics Rule Out Free W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