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전효과와 빛의 세기
neomay3님의 질문에 짧게 답하다 보니 중요한 사항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소위 광전효과에서 나오는 "빛의 세기"라는 말의 의미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양자이론의 시작 또는 고전물리학의 몰락과 깊이 연관됩니다. (여기에서 양자이론은 1925년 이후의 양자역학은 아니고 소위 초기양자이론입니다.)
"광전효과는 빛이 금속 표면에서 흡수될 때 금속 내부에 있던 전자들이 그 에너지를 받아 표면 밖으로 방출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 현상에서 특이한 것은, 빛의 세기를 아무리 늘려도 그 빛의 진동수 $f$가 일정한 값 이상이 되지 않으면 금속 내부에서 전자가 방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속 내부에 있던 전자가 금속 표면 밖으로 방출되기 위해서는 일정량 $E_0$ 이상의 에너지가 요구되는데, 진동수 $f$의 빛이 전달할 수 있는 에너지가 $hf$라면 최소한 $hf \ge E_0$의 관계를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02쪽)
이 문장의 의미를 조금 더 상세하게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광전효과라는 것은 음극선관의 음극에 빛을 쪼여줄 때 전류가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1887년 독일의 하인리히 헤르츠가 이와 관련된 현상을 처음 보고했습니다.
Hertz, Heinrich (1887). "Ueber einen Einfluss des ultravioletten Lichtes auf die electrische Entladung". Annalen der Physik. 267 (8): 983–1000.
https://en.wikipedia.org/wiki/Photoelectric_effect
이 현상의 핵심은 음극선에 걸어주는 전압과 음극선에서 나오는 전류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림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hotoelectric_effect )
이 그래프에서 두 가지 사항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전압을 음극선의 두 극에 걸어줍니다. 그 전압차가 이 그래프의 수평축에 있는 양극전압($V_C$)입니다. 양극전압이 $-V_0$이 되기까지는 광전류가 생기지 않다가 그 문턱값에 이르면 광전류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값에 이르면 포화전류가 되어 더 이상 광전류가 증가하지 않습니다.
일단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전류가 생긴다는 것은 음극선관의 음극을 이루는 금속에서 전자가 나온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금속에 빛을 쪼여주면 전자가 튀어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값이 소위 '저지 전압(stopping voltage)이라 부르는 $V_0$의 값입니다. 양극(anode)-음극(cathode)이란 표현은 상투적인 것인데, 양극 C(collector)에 걸어주는 전압이 음수라는 이야기는 전자를 방출하는 전극(음극) E(emitting electrode)의 전압보다 $V_0$ 만큼 낮다는 뜻이라서 양극-음극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이 저지전압은, 전자가 튀어나가려고 하는데 반대 방향으로 전압이 걸려 있어서 양극 C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값을 점점 줄여주면 어느 문턱값에서 갑자기 전류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즉 음극선관에 붙여 놓은 전류계의 눈금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광전효과를 깊이 연구하여 1905년에 노벨물리학상까지 받은 사람이 독일의 물리학자 필립 레나르트(Philipp Lenard)입니다.
Lenard, P. (1902). "Ueber die lichtelektrische Wirkung". Annalen der Physik. 313 (5): 149–198. https://doi.org/10.1002/andp.19023130510
안타깝게도 독일에서 히틀러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하고 그가 중심이 된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SDAP) 즉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한 뒤로 소위 '독일 물리학'을 내세우며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유대인과 외국인 물리학자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2)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빛의 세기입니다. 고전역학과 고전전자기학에 바탕을 두고 생각하면 빛의 세기는 단위 시간당 에너지의 전달이라서 일률이라 부르는 것에 해당합니다. 빛의 본질이 전자기파라는 파동이라면, 파동의 세기를 생각해야 합니다. 파동의 세기는 그 파동이 단위시간당 단위넓이에 전달해 주는 에너지로 정의합니다. 그렇게 하면 파동의 세기는 그 파동의 진폭을 제곱한 것에 비례하며, 또한 진동수의 제곱에도 비례함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빛의 세기를 높여준다는 것은 빛을 만들어내는 광원의 에너지를 높이는 것에 해당할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으로 빛의 세기를 높여줄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여기에서는 개념적인 것만 짧게 정리해 보려 합니다.
우선 물리학에서 '세기(强度 intensity)'라는 용어가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Intensity_(physics)
https://en.wikipedia.org/wiki/Intensity
파동의 세기, 열전달의 세기, 복사의 세기, 소리의 세기, 전류의 세기, 전기장의 세기, 휘도(輝度 radiance), 광도(光度 luminosity), 조도(照度 irradiance) 등을 모두 '세기'라고 부르기 때문에 각각 단위도 다르고 의미도 다르고 정의도 다릅니다.
복사휘도만 해도 여러 복잡한 정의가 연루됩니다. 아래 위키백과 링크에 있는 표가 그런 정의들을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Radiant_intensity
빛의 세기는 여하간 대략 단위넓이당 또는 단위입체각당 일률 쯤으로 보면 됩니다.
(3) 광전효과에서는 광원에 주는 에너지(대개 전압)를 높여서 빛의 세기를 높여주더라도 저지전압이 달라지지 않고 단지 포화 전류의 값만 커질 뿐입니다. 또 고전물리학으로 생각하면 이 효과에서 빛의 파장 또는 진동수를 바꾼다고 해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없다고 추론할 수 있지만, 실험에서는 일정한 문턱진동수보다 낮은 빛은 아무리 오래 또는 강하게 쪼여주어도 광전류를 만들지 못합니다.
현대물리학 교과서에 있는 그림이 이러한 실험결과를 잘 요약해 줍니다.
(출처: Stephen T Thornton, Andrew F Rex (2013). Modern Physics for Scientists and Engineers. 4ed. p. 104)
이 때 빛의 세기라는 것은 음극선관의 음극에 쪼여주는 빛의 세기이며, 위에서 말한 복사휘도일 수도 있고 여하간 빛의 일률(시간당 에너지)에 비례합니다.
광전효과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또 있습니다. 고전적인 경우라면 음극선관에 쪼여주는 빛의 파장(진동수)에 따라 저지 전압이 달라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레나르트 등의 실험 결과는 이 저지 전압의 값이 빛의 진동수(파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Stephen T Thornton, Andrew F Rex (2013). Modern Physics for Scientists and Engineers. 4ed. p. 104)
위의 실험결과를 보면 음극에 쪼여주는 빛의 진동수가 클수록 저지 전압의 값이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02쪽에 서술된 내용입니다. 음극선관의 음극을 이루는 물질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지지만, 여하간 빛의 진동수가 특정한 값(아래 그림에서는 $f_0$)보다 작을 때에는 광전류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 특정한 진동수의 값을 문턱 진동수라 흔히 부릅니다. 문턱진동수 이상이라면, 저지전압의 값이 쪼여주는 빛의 진동수에 비례합니다.
(출처: Stephen T Thornton, Andrew F Rex (2013). Modern Physics for Scientists and Engineers. 4ed. p. 105)
(4) 이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설명해 낸 것이 바로 1905년 6월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논문 "빛의 생성과 변환에 관한 발견법적 논의"입니다. 이 논문에서 '빛 양자(Lichtquanten)'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인슈타인의 노벨물리학상 업적은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이론물리학 전반에 대한 공로, 특히 광전효과의 설명"입니다.
레나르트를 비롯하여 1902-1095년 무렵 물리학자들은 물질에 전자가 붙잡혀 있으리라는 단순한 원자모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러더퍼드와 보어의 태양계를 닮은 원자모형이 제안 된 것은 1913년 무렵입니다.) 전자를 붙잡고 있는 에너지를 $E_0$(위의 그림에서는 $\phi$)라 부르면, 음극의 금속에 쪼인 빛이 주는 에너지 $\varepsilon$가 이 값보다 커야 비로소 전자가 붙잡혀 있던 것을 박차고 밖으로 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레나르트 등의 실험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1900년 막스 플랑크가 흑체복사 공식을 유도하기 위해 마지 못해 도입한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만일 흑체라 부르는 물체 안에서 빛이 모든 에너지 값을 가질 수 있다고 허용하면 흑체 안의 복사에너지 전체를 합한 것은 빛의 진동수의 세제곱에 비례함을 유도할 수 있고, 그러면 진동수가 커질수록 복사에너지가 무한히 커져서 발산해 버립니다. 플랑크는 당시 독일 베를린에 있던 물리-기술 제국연구소의 실험결과에 맞추기 위해 빛의 에너지가 $\varepsilon=hf$와 같이 진동수에 비례하는 기본량의 자연수배만 허용된다고 가정했습니다.
1905년의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불쑥 플랑크의 그 개념을 가져와 버립니다. 외부에서 쪼여준 빛은 $\varepsilon=hf$ 만큼의 에너지를 금속판에 붙잡혀 있던 전자 하나에 전해 줍니다. 이렇게 얻은 에너지는 즉 전자의 운동에너지의 변화량과 위치에너지의 변화량의 합과 같습니다. 전자가 금속판을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의 위치에너지를 0으로 잡으면 금속판이 전자를 붙잡고 있을 때의 에너지는 0보다 작은 값 $-E_0$이 됩니다. 위의 그림에서는 $-\phi$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를 흔히 '일 함수'라 부릅니다.
따라서 전자가 얻을 수 있는 최대 운동에너지를 $K_{max}$라 부르면, $$(K_{max} - 0 ) + (0 - (-E_0)) = \varepsilon = hf$$가 됩니다. 이를 정리하면 $$K_{max} + E_0 = hf$$입니다. 전자의 음극선관의 저지 전압 $V_0$에 전자의 전하를 곱하면 전자가 얻을 수 있는 최대 운동에너지와 같습니다. 따라서 $$K_{\max} = e V_0 = hf - E_0$$를 얻습니다. 이 식에서 $E_0 = h f_0$라 하면 $$e V_0 = h (f - f_0)$$가 되는데, 이 식은 위의 그림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역사적으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위의 세 그림 중 마지막 것은 아인슈타인이 빛양자이론을 제시할 때에는 정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1914년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밀리컨이 이 실험을 정교하게 수행했습니다.
Millikan, R. (1914). "A Direct Determination of "h."". Physical Review. 4 (1): 73–75. https://doi.org/10.1103/PhysRev.4.73.2
레나르트가 1905년 광전효과의 실험적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아인슈타인은 1921년에 광전효과에 대한 이론적 설명의 공로 등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는데, 1923년에는 밀리컨이 광전효과에 대한 실험 연구의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만, 아인슈타인은 빛알(光子)로 번역되는 photon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 용어를 처음 도입한 것은 공유결합과 전자쌍 개념을 정립한 미국의 화학자 길버트 루이스(Gilbert N. Lewis)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추상적으로 빛이 일정한 양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로 그냥 '빛 양자'라고 했고, 여기에서는 실상 '빛 입자'라는 의미는 보기 어렵습니다. 1926년 12월 <네이처>에 출판된 독자 편지에서 루이스가 이 이론을 소개하면서, 빛 또는 복사가 일종의 원자처럼 거동한다고 말하고 '양자 수'와 혼동하지 않도록 새 이름을 지을 필요가 있으니 이를 photon이라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Lewis, G. The Conservation of Photons. Nature 118, 874–875 (1926). https://doi.org/10.1038/118874a0 (첨부파일 참조)
https://arxiv.org/abs/1401.0293
그 뒤로 photon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光子'라고 번역했습니다. 1990년대에 한국물리학회에서 순화된 한국어 용어로 '빛알'을 제안했습니다. 아직 이 용어가 많이 퍼지지는 않았지만, 저는 '광자'보다 '빛알'이 훨씬 좋은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이 용어법은 다른 것에도 적용됩니다. 가령 격자진동을 나타내는 phonon을 한자어로는 '음향자'라고 하지만 순화된 용어로는 '소리알'이라고 합니다. 물결이 모양을 흐트려뜨리지 않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움직여 가는 것을 양자이론으로 바꾼 것이 soliton인데 이는 고립자(孤立子)보다는 '홀로알'이라 부르는 것이 더 이해가 쉬운 것 같습니다. 비슷하게 exciton이란 개념이 있는데 이것을 '여기자(勵起子)'라고 하면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지만 '들뜸알'이라고 하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4) 그런데 역사상의 아이러니는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 설명이 불완전하거나 아주 운이 좋은 근사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에너지가 막스 플랑크의 흑체복사공식에서 도입된 것처럼 진동수에 비례하는 기본에너지의 자연수배만 가능하다고 가정하고, 이것이 마치 입자처럼 다닌다고 보아서 광전효과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빛 또는 빛을 입자처럼 간주하는 이론은 양자역학에 없습니다. 양자역학은 철저하게 전자에 대한 이론입니다. 여기에서 초기양자론(old quantum theory)과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과 양자이론(quantum theory)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1925년 이전까지의 초기양자론에서는 제대로 된 이론적 형식체계 없이 임시방편적이고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가설 수준으로 에너지나 각운동량과 같은 물리량의 값이 정수배만 가능하다고 전제함으로써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빛양자 이론도 그러합니다. 심지어 보어의 원자모형도 제대로 된 이론적 형식체계가 없습니다.
1925년에서야 비로소 보른-하이젠베르크-요르단이 양자역학(행렬역학)을 처음 만들어냈고, 이듬해에 슈뢰딩거가 파동역학을 만들었습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디랙이 변환이론이라 부르는 양자역학의 한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이 이론들은 모두 일종의 역학(mechanics)입니다. 이것은 원론적으로 힘(또는 퍼텐설 에너지)을 받는 물체(질량)의 운동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하는 체계입니다. 이 이론에는 빛이 처음부터 송두리째 빠져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빛은 서술대상이 아니라 전자와 같은 입자에 힘을 미치는 외부적인 요인에 불과하며 고전물리학의 언어로 서술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반고전 접근(semi-classical approach)이라 부릅니다.
지금은 광전효과를 설명할 때 대부분 이 반고전 접근을 사용합니다.
양자이론(quantum theory)이라고 통칭하는 것은 이러한 양자역학 외에 양자마당이론(양자장이론)을 포괄합니다. 빛알(光子, photon)과 전자와 양전자, 이렇게 세 입자(존재자)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양자전기역학(QED, quantum electrodynamics)은 양자역학이 아니라 양자마당이론입니다. 광전효과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빛과 전자를 모두 양자이론으로 서술하는 양자전기역학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광전효과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운이 좋습니다.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정확하게 양자전기역학으로 광전효과와 관련된 계산을 하고 나면, 아인슈타인의 간단한 모형과 사실상 같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어의 원자모형이 결국은 틀린 것이지만, 탁월한 직관과 과감한 가정을 써서 실험결과를 비교적 정확하게 끼워맞출 수 있었던 것과 유사합니다.
(5) 물리학에서 광전효과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양자광학(quantum optics)이라 부르는 새로운 이론체계를 동원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도 빛을 제대로 양자이론으로 서술하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에 빛은 고전역학적으로 내버려 두고 빛이 입사되는 금속에 있는 원자들과 전자만 양자역학으로 서술합니다.
그래서 태양전지(photovoltaic cell)의 기본원리는 흔히 말하는 광전효과와 거리가 있습니다. 즉 태양빛을 받은 금속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간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초보적인 이론으로는 태양전지를 전혀 만들 수 없습니다. 유용한 광전류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를 이용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p-n 접합 반도체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전자 띠 이론에 기반을 둔 조금 복잡한 설명이 필요합니다만, 핵심은 양자역학입니다. (전자 띠 이론은 장회익 선생님의 전공분야기이도 합니다. 자연철학 세미나에 오시는 여러 기라성 같은 물리학자들도 장회익 선생님과의 인연 때문인지 모두 그와 관련된 전공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Electronic_band_structure
https://en.wikipedia.org/wiki/Theory_of_solar_cells
(6)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게 전개된 것 같습니다만, 결국 양자역학에 대한 자연철학적 논의에서 "계산이나 하라"라는 말은 생각보다 더 심오합니다. 히틀러와 나치당이 독일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양자역학에서 뛰어난 물리학자들이 대거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자연철학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논쟁을 하던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보어, 하이젠베르크, 보른 등과는 양자역학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양자역학을 가장 잘 아는 물리학자들은 자연철학이 아니라 아주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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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레나르트가 실험으로 확립하고 아인슈타인이 이론으로 설명한 광전효과는 CCD (Charge Coupled Device)라는 촬상장치와 디지털 이미징의 기본원리가 되는데, 2009년 노벨물리학상이 바로 CCD를 만든 분들에게 돌아갔습니다.
https://bit.ly/3uErAai
이 원리는 디지털 카메라와 태양광전지에도 사용됩니다. 그 기본원리를 알지 못했다면 이를 기술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 디지털 카메라가 그냥 나온 게 아니군요! 대략 100년의 과학과 기술이 모여서 만들어낸 결과물인 거네요.
윌러드 보일(Willard Boyle)과 조지 스미스(George Smith)가 처음 CCD (촬상소자)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함께 메모를 남겨둔 것이 1969년이었습니다. (첨부사진)
https://www.nobelprize.org/prizes/physics/2009/illustrated-information/" target="_blank" rel="noopener">https://www.nobelprize.org/prizes/physics/2009/illustrated-information/
어찌 보면 간단한 아이디어였는데, 1970년에 처음으로 이 아이디어가 실험으로 구현되었고, 1971년에는 특허도 신청되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harge-coupled_device" target="_blank" rel="noopener">Charg-Coupled Device
1975년에 코닥이 상용화한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가 100 × 100 CCD를 사용했다고 하니까, 대략 1만 픽셀이었던 셈입니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의 카메라 픽셀 수가 2천만 개쯤 된다고 하니까 2천배 정도로 커진 것인데, 더 대단한 건 ppi 즉 인치당 픽셀 수로 따지면 아주 작은 영역에서 엄청나게 많은 픽셀을 이용하여 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겠습니다.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막 던진 질문에 이렇게 긴 역사가 연결돼 있는지 몰랐어요. 역사 속 과학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자연사랑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19세기에 자연과학이 멈췄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지만요. ^^;
좋은 질문을 해 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광전효과를 말할 때 필립 레나르트의 악행을 말하는 것이 꼭 필요한지는 의문이 있긴 합니다. 1930년대에 왜 레나르트가 아인슈타인과 유대인 혈통의 물리학자들을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었는지 생각해 볼 거리가 많습니다. 레나르트가 어떤 동기로 무엇을 위해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을 연구했을까요? 저는 레나르트가 광전효과와 관련된 중요한 연구를 했음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감사하거나 그를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출세해서 유명해지고 권력을 쥐고 싶어했던 그의 연구가 역사 속에 남아 있는 것이 못마땅합니다. 역사를 공부할수록 유명한 사람들이 남긴 나쁜 모습을 되새겨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사실은 나도 똑같아”라고 되뇌이게 됩니다.
참, 과학사를 공부해오고 있는 입장에서 19세기에 자연과학이 멈췄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말씀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희는 자연철학을 열 개의 심학십도로 살피고 있기 때문에 그 열 개의 그림 중 하나인 고전역학이 명료해 보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뉴턴 당시의 자연철학도 몹시 복잡하고 난해합니다. 요즘 저는 18세기말-19세기초의 요한 볼프강 괴테의 자연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정말 종잡을 수가 없어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초까지의 자연철학이 자연의 숭고함을 잊지 않으면서 자연을 알고자 겸손하게 성찰을 했다면, 19세기 말의 자연과학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과 오만과 지배와 장악으로 점철되었던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으로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만들어갔던 사람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침략하고 자연과학만이 옳은 길이라고 강요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그 자연과학의 오만함이 하나하나 무너진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레나르트는 빼고, 자연과학의 발달은 계속 하는 것으로 바꾸겠습니다. ^^;
(드라마 '지니어스-아인슈타인편'에서 레나르트 봤습니다. 굉장히 닮은 배우가 연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
꽤 전에 "아인슈타인을 괴롭힌 사람: 나치 과학자 필립 레나르트는 어떻게 역사의 경로를 바꾸었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습니다.
The Man Who Stalked Einstein: How Nazi Scientist Philipp Lenard Changed the Course of History (https://amzn.to/3ttiIFe)
이 책은 그리 잘 쓴 책은 아닌 느낌이었지만, 레나르트와 아인슈타인의 관계를 잘 말해 주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일 겁니다. 좀 과장하자면, 매우 꼼꼼하고 완벽주의자였던 레나르트는 음극선관을 이용한 여러 실험을 정교하게 해 냈는데, 1905년에 낯선 20대 청년이 자신이 설명하지 못한 광전효과를 아주 깔끔하게 설명해서 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레나르트가 주고받은 편지가 남아 있는데, 서로 상당히 존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20년쯤부터 두 사람 사이는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레나르트의 제자 야코프 요한 라우프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레나르트가 아직도 엉터리 에테르 이론에 빠져서 헛수고를 하고 있다면서 그런 일에 시간을 들여야 하는 라우프를 위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레나르트도 건방지고 오만한 아인슈타인을 공개적으로 험담하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1919년 아서 에딩턴의 일식 관측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관측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도버 해협 양편과 대서양 양편에서 엄청나게 유명해져 버렸습니다. 똑똑하고 영민한 젊은 학자가 자신의 정교한 실험을 설명할 때만 해도 호감을 가지고 존중하며 대했는데, 자기보다 한급 낮다고 생각한 사람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을 시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인슈타인도 겸손함이라는 것과는 담을 쌓은 성품이었고, 나이나 경력을 모두 무시하고 사람들을 대하곤 했기 때문에 주변에 아인슈타인보다 나이나 경력이 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아인슈타인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지니어스-아인슈타인편을 언젠가 한번 보긴 봐야할 것 같습니다.
광전효과를 더 알기 쉽게 동영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https://www.youtube.com/embed/BejOga-L4kw"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target="_blank" rel="noopener"> angle-resolved photoemission ARPES and met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