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전기자기론>
아래 사진에 있는 텍스트에 대한 질문이 있어서 짧게 답을 올립니다.
클러크-맥스웰의 <전기자기론 (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을 읽고 계신다니 놀랍습니다. 이 책은 1873년에 출간된 책으로서 일종의 교과서가 아니라 당시의 전기와 자기에 관한 최신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매우 전문적인 연구서입니다. 특히 물리학 분야 중에서도 수리물리학(mathematical physics)이라 부르는 분야에 속하기 때문에 물리학보다 오히려 전문적인 수학에 더 가깝습니다.
1687년에 출간된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즉 <프린키피아>와 거의 쌍벽을 이루는 물리학사의 중요한 고전입니다. 그러나 프린키피아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전문적인 물리학자도 읽어내기가 매우 어려운 책입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는 아인슈타인이 대학시절 이 책을 읽으려고 했다가 너무 어려워서 거의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포기했다는 일화입니다. 지금 자연철학 세미나에 함께 하시는 출중하신 물리학자들도 이 책을 읽기가 어려운 이유는 현대의 기호법과 크게 다르고 개념도 19세기에 통용되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다루는 주제조차 현대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저는 물리학사를 공부해 오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물리학자들이 거의 열어보지도 않는 옛날 물리학 책이나 논문을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고 있습니다.
다만 사진으로 올려주신 부분의 내용은 단순한 편입니다. 어떤 양을 $\phi$(phi ‘프히’라고 읽습니다)가 음수일 때에는 $F_1$이고 $\phi$가 양수일 때에는 $F_2$로 쓰고 싶은데, 이 둘을 한꺼번에 쓸 수 없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그냥 그렇게 말해 버리면 됩니다. 즉$$F= F_1 \quad (\text{if} \ \phi < 0), $$ $$ \quad = F_2 \quad (\text{if} \ \phi >0) $$ 그러나 그렇게 하면 둘 중 하나가 되어 $\phi$의 값에 따라 불연속이 되어 버립니다. 그럴 때 이 사진에 있는 식 $$ F= \frac{F_1 + e^{n\phi} F_2}{1+e^{n\phi}}$$으로 쓰면 이 함수는 매끄러운 연속함수이면서도 이 두 경우를 한꺼번에 말해 줍니다. 그것은 $e^{n \phi}$ 인수 덕분입니다.
$\phi$가 양수일 때 $n$이 매우 크다면 분자에서 $F_1$이나 분모의 1은 $e^{n \phi}$에 비해 새발의 피로 매우 작기 때문에 0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놓으면 $$F = \frac{\cancel{F_1}+e^{n\phi} F_2}{\cancel{1}+e^{n\phi}}= \frac{\cancel{e^{n\phi}} F_2}{\cancel{e^{n\phi}}}=F_2$$가 됩니다.
이번에는 $\phi$가 음수일 때를 생각합니다. $n$이 매우 크다면 $e^{n \phi}$의 값은 거의 0이 되어 버립니다. 수학에서는 “0으로 수렴한다”라는 낯선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따라서 위의 식에서 그 인수가 있는 항은 0이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 F= \frac{F_1 + \cancel{e^{n\phi} F_2}}{1+\cancel{e^{n\phi}}}=F_1$$을 얻습니다.
아주 절묘하게도 연속함수로 두 경우($F_1$ 또는 $F_2$)를 한꺼번에 쓸 수 있습니다. 물리학이나 수학을 공부하신 분들이 바둑을 즐기는 경우가 흔한데, 아마 이런 절묘한 수들을 적용하여 이런저런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에 묘미를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양자역학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영국의 물리학자 폴 디랙도 바둑을 무척 즐겼다고 합니다. 물리학자들 중에 바둑 고수가 많은 것과 이런 수리물리학의 절묘한 기법들이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기법은 수학에서도 자주 사용되지만 전기-자기 같은 물리적 현상을 서술할 때에도 유용합니다. 가령 $\phi$가 전하량(전하의 양)이라고 하면, 전하량이 양수일 때(즉 양전기)와 음수일 때(즉 음전기)에 따라 어떤 물리량(가령 전위)이 다르게 표현될 텐데, 위의 기법을 쓰면 이 둘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두 경우를 모두 $F$로 나타내서 필요한 계산을 하고 마지막에 $n$을 무한대로 보내는 극한을 계산하면 쉽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기법은 수리물리학이라 부르는 분야에서 아주 다양하게 나옵니다. 물리학을 전공하면 2학년 때부터 <수리물리학>을 두 학기 수강하고 그 뒤로도 내내 기회가 될 때마다 수리물리학을 배웁니다. 이보다는 조금 약하지만 공대의 대부분 전공에서도 2-3학년 때 <공학수학>을 필수로 수강해야 합니다. 물리학 또는 공학에서 왜 이토록 수학 기법을 많이 써야 할까 하는 문제는 기회가 될 때 다시 더 이야기 나누면 좋은 주제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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