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켈슨-몰리 실험표를 본 감상
- 당연히 마이켈슨-몰리 실험을 설명한 글이 있겠지 하면서 잠시 검색을 해 봐도, 막상 다룬 글이 없네요 ! 그래서 제가 설명할 능력은 안되지만, 감상문이라도 올려 봅니다. -
마이켈슨-몰리 실험을 자연철학 강의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요?
정말 중요한 실험이라는데, 이 실험으로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이 밝혀 졌고, 에테르가 없다는 게 확정되었다거나, 가장 유명한 실패한 실험이라거나, 등등 이리저리 들어본 것과, 막상 찾아보면 꽤나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 그래서 놀라게 됩니다.
나무위키만 봐도 그저 그렇구나 싶지만, 위키를 보시면 (영어 위키가 좋지만, 너무 내용이 많아서 ㅠㅠ, 다행히 한글 위키만 봐도 느낌은 오실 겁니다), 에테르에 대한 지구의 이동속도를 검출하기 위한 당시 가장 정교한 실험이었고, 당대 최고의 실험물리학자가 수십년을 실험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알아야 할 것들이 듬뿍 등장하고, 실험원리도 알아야 하고 ... ㅠㅠ 하지만, 대충 넘어간다면, 이 실험 결과가 당시에 실험하는 분들께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그래서 그 해석이라 할 로렌츠 수축이니 광속일정을 기반을 둔 특수상대론을 못 받아 들이게 되고, 그래서 그 후에도 얼마나 여럿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실험을 이어 갔는지, 그리고 지금도 저 실험 원리가 얼마나 많이 쓰이는지 보면서 놀라실 겁니다.
흔히 책에는 빛의 속도 차이가 전혀 없었다, 에테르의 바람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결과를 정리하거나, 예상한 것보다 아주 적은 실험결과를 얻었고, 그건 실험오차 이내 였다, 이렇게 나옵니다만,
위키의 표를 보시면, 그렇게 않다는 걸 보게 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Michelson%E2%80%93Morley_experiment#Recent_experiments
(여기 바로 위에 실험들의 표가 나옵니다.)
1881년부터 실험이 시작됩니다. 기대보다 작은 값이 나왔습니다.
장비의 정밀도가 낮은가 싶어서 개선을 합니다. 더 작은 값이 나옵니다.
그래서 계속 정교하게 개선을 해 가지만, 여전히 기대하는 결과는 안 나오지만, 적지만 계속 나옵니다 !!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설험을 개선하면서 계속 이어갑니다. 심지어 지표면 이라서 알지 못하는 방해요소가 있나 싶어서, 1740m 높이인 윌슨산 천문대 (예, 허블이 관측하던 곳이죠.) 까지 올라가서 실험을 합니다. (위키의 표에 의하면, 1921, 25-26, 26, 29년의 실험들이죠.) 이미 1905년의 특수상대성이론이, 그리고 1915년애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왔고, 1919년에 에딩턴에 의해서 일식에서 빛의 휨이 관측되었고, 그 결과가 뉴스로 대서특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험가들은 쉽게 납득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작지만 계속 에테르의 바람이 관측되기 때문일 겁니다. 이론에 의하면 전혀 없어야 하지만, 실험으로는 기대값보다는 작지만 계속 나오니까요 !! 마이켈슨도 상대론을 믿지 (이해하지가 아니라 !) 않는다고 했다지요.
현대는 저런 수십년의 실험의 관측결과는 죄다 실험오차 이내이고, 한 두개의 특출난 값을 너무 중요하게 본 것이고, 통계적 분석이 잘못되었고, 그래서 실험을 잘못한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저 마이켈슨 간섭계를 그대로 키운 것이 무시무시한 정밀도의 중력파 검출기 입니다. 이미 결론은 자명합니다만, 실험과 이론의 차이, 실험을 개선하려는 노력, 이해할 수 없는 (우리와 같은 심정이지요? ㅠㅠ) 괴상한 이론에 순응하지 않고 수식과 이론을 통하지 않고 보다 직접 자연을 관측하려는 불굴의 의지, 이미 시대의 흐름은 바뀐지 오래지만, 그래서 더욱 이 실험결과가 중요할 수 있다는, 내가 이 실험으로 온 세상에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약간은 삐뚜러진 치기, 등등이 있지 않았을까요?
마이켈슨 의 경우만 봐도, 맨 처음 1881년의 실험, 유명해진 1887년 실험, 그리고 1929년에 윌슨 산에서의 실험까지 오랜 기간동안 여러 동료와 함께 다양한 실험을 합니다.
마이켈슨과 함께 실험한 몰리는 1887년의 실험 결과에 굴복하지 않고, 다른 이와 함께 실험을 이어 갑니다. 그 동료(Miller)가 결국에는 윌슨산까지 올라가서 실험을 하고, 그 결과가 여전히 기대보다는 작은 값이지만, 제법 의미가 있다고 본 과학자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결코 한 방에 빛의 속도가 일정함 ! 끝 ! 이 아닙니다 !!
(위키를 읽으며, 특히 정리해 둔 표를 살펴본 감상입니다)
비슷하게 빛의 속도를 측정하기 위한 실험값을 봐도, 더 오랜 기간동안 많은 노력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Speed_of_light#History
지금은 빛의 속도는 아예 약속으로 확정했지요.
저런 실험가의 분투, 노력에 비하면 이쪽은 좀 쉽게 타협한 것처럼도 보입니다만, ... 나중에라도 현재 빛의 속도 기준과 처음 미터법 기준의 차이가 구체적으로 얼마인지도 나오겠지요. (어쩌면 세대가 바뀌면서, 이건 너무 기본적이라서 여기부터는 받아들이고 시작하자, 이런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철학 책에서는 너무 이론 위주로, 정합성 위주로만 서술되어서,
과연 과학을 이렇게만 봐야 할까 싶은 생각이 가끔 듭니다.
어릴 적에 과학은 자연을 관측하고, 실험하고, 그래서 가설을 세우고, 다시 관측, 실험하고, 수정하고, 그래서 그걸로 자연을 설명한다고 들은 얘기가 여전히 귀에 남아 있습니다.
실험에는 많은 제약이 있고, 오차는 피할 수 없지요.
그래서 딱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학교에서 물의 끓는 점을 온도계로 재던 실험을 기억하시죠? 100도에 딱 맞게 끓던가요?? )
그렇다고 관측, 실험이 너무 숨으면 ....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이중 슬릿 실험도 실제 실험이 아닙니다. 사고 실험이지요...)
( 몇 년 전에 위키에서 마이켈슨-몰리 실험을 찾아 낑낑 거리며 대충 읽으면서 저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 감정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는데 한나절이나 걸렸네요. 대체 자연사람님은 어찌 그 많은 글을... 혹시 쌍둥이 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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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주제를 다룬 감상문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짧게 코멘트를 남깁니다.
(1) 먼저 과학(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의 실험에서 오차 0인 실험은 존재하지 않음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인용하신 위키피디어 표의 맨 오른쪽에 있는 항목은 "null result"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광속이 지구의 운동에 영향을 받는다면 마이컬슨 간섭계로부터 아주 작지만 얼룩무늬(프린지)의 이동이 검출되어야 하는데, 그 표에는 예상되는 얼룩무늬 이동과 측정된 얼룩무늬 이동이 나와 있습니다. 그에 따라 광속이 지구의 운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null result"입니다. 잘 보면, 데이턴 밀러의 실험 외에는 모든 실험이 "null result"에 "yes"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표의 오른쪽에서 두 번째 컬럼은 "실험 해상도"입니다. 장치의 정밀도에 따라 이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화면이나 그림의 해상도라는 말이 익숙하실 텐데, 자를 예로 든다면 자에 있는 눈금의 단위가 해상도입니다. 최소로 잴 수 있는 단위가 0.1 밀리미터인 자로는 0.01 미만으로는 길이를 잴 수 없습니다.
1881년 마이컬슨의 실험에서는 이 해상도 값이 0.02입니다. 만일 에테르 끌림이 있다면 얼룩무늬 이동의 예상값이 0.04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이 해상도 안에서는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측정값을 0이라고 하지 않고 0.02보다 작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 뒤의 실험들에서도 해상도보다 더 큰 값을 전혀 얻지 못했다는 뜻이고, 이것은 곧 해상도를 고려하면 측정값을 0이라고 말해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의미입니다.
실험오차는 말 그대로 측정 과정에서 미묘하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반영한 개념입니다. 이를 줄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아주 많이 측정하여 그 평균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여러 번 측정한 값들의 편차가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실험오차입니다. 이것은 사회과학이나 통계학에서도 흔히 나타납니다. 오차범위라든가 여러 표현을 쓰지만 여론조사 같은 경우에도 오차범위 안에 있으면 실질적으로 차이가 무의미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요즘 선거 관련해서 여론조사가 자주 나오는데,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런 것을 감추고 평균값을 보도해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측정상의 오차 문제는 수학자와 자연과학자의 차이와 연결될 수도 있겠습니다.
(2) 여기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데이턴 밀러(Dayton Clarence Miller 1866-1941)의 실험입니다. 다른 모든 실험에서 결과가 "없음"으로 나왔는데, 유독 데이턴 밀러의 결과만 불명확하다고 적힌 것이 주목할만합니다.
1955년에 데이턴 밀러의 실험결과를 통계적으로 다시 분석했는데, 밀러의 데이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분석의 결과는 밀러의 데이터도 모두 실험 오차범위 안에서 ‘null result’ 즉 에테르 끌림이 없음을 지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밀러가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잘못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Shankland, R.; McCuskey, S.; Leone, F.; Kuerti, G. (1955). New Analysis of the Interferometer Observations of Dayton C. Miller. , 27(2), 167–178.
https://doi.org/10.1103/RevModPhys.27.167
이 사례는 과학사에서 아주 흥미로운데, 비교적 최근에 나온 논문 한 편을 소개합니다.
Roberto Lalli (2018) "Hunting for the Luminiferous Ether: The American Revival of the Michelson–Morley Experiment in the 1920s" . In: Jaume Navarro ed. (2018). Ether and Modernity: The Recalcitrance of an Epistemic Object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Oxford University Press. pp. 155-178
https://amzn.to/3AKv7GE
이 논문의 저자 로베르토 랄리는 제가 잠시 머물렀던 독일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의 제가 속해 있던 분과에 소속된 물리사학자입니다. 이 논문의 핵심 주장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흔히 20세기 초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타나 그 전까지 퍼져 있던 에테르라는 개념이 폐기되었고 1887년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이 토머스 쿤의 의미로 맥스웰 전자기이론의 위기와 비정상이 되어서 결국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둘 다 잘못된 생각이라는 겁니다.
특히 이론물리학이 유럽에 비해 뒤쳐져 있던 미국에서는 독일이나 영국과 달리 1940년대까지도 에테르 개념이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게다가 1907년에 마이컬슨이 미국인으로서는 처음 노벨물리학상을 받고, 1919년 에딩턴의 유명한 일식관측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이름이 미국에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화학자였던 에드워드 몰리와 절친한 사이였던 데이턴 밀러는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을 더 정교하게 하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당시 미국 물리학게에서 조금씩 인기를 끌게 된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 자신도 1920년 네덜란드에서 한 강연에서 에테르 개념을 완전히 버릴 필요가 없다면서 기존의 생각을 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쓴 아래의 글에 그와 관련된 내용이 나옵니다.
에테르와 상대성이론
(3) 마이컬슨 실험은 과학사에서도 아주 인기가 있는 중요한 실험입니다. 아주 오래된 책이지만 여전히 인용되는 연구서가 1972년에 나왔습니다.
Loyd S. Swenson (1972). The Ethereal Aether: A History of the Michelson-Morley-Miller Aether-drift Experiments, 1880-1930. University of Texas Press. https://amzn.to/3o7Sy7X
조금 맥락은 다르지만, 위의 로베르토 랄리의 논문이 실려 있는 논문집도 에테르라는 관념이 모더니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루는 매우 흥미로운 논문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Jaume Navarro ed. (2018). Ether and Modernity: The Recalcitrance of an Epistemic Object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Oxford University Press. https://amzn.to/3r8aPE6
전자의 겹실틈(이중슬릿) 실험이 일종의 사고실험이라는 생각이 꽤 널리 퍼져 있습니다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애초에 1920년대에 양자역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드브로이의 물질파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1927년에 이에 대한 실험적 확인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소위 '전자회절'이라 부르고 고체의 결정구조 등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실험기법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더 상세한 것은 "역사지평 보충 5 (드브로이의 물질파)"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겹실틈 실험을 사고실험으로 오해하게 된 계기는 아마 리처드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였을 겁니다. 1960년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2년짜리 물리학 강의를 만들어서 이미 탁월한 강사였던 파인만에게 강의를 맡긴 것이었습니다. 3권 맨 앞에 복잡한 전자회절 대신 이를 간단하게 두 개의 실틈에 대한 것으로 축소하여 만든 실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상 이 축소된 실험의 설명은 1961년에 발표된 클라우스 요왼손의 실험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 Jönsson, C. Elektroneninterferenzen an mehreren künstlich hergestellten Feinspalten. Z. Physik 161, 454–474 (1961). https://doi.org/10.1007/BF01342460
그 뒤로도 꾸준히 전자의 겹실틈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최근까지도 더 정밀한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 Merli P G, Missiroli G F and Pozzi G 1976 On the statistical aspect of electron interference phenomena. Am. J. Phys. 44 306–7
* Tonomura A, Endo J, Matsuda T, Kawasaki T and Ezawa H 1989 Demonstration of single-electron buildup of an interference pattern. Am. J. Phys. 57 117–20
* Frabboni S, Gazzai G C and Pozzi G 2007 Young's double-slit interference experiment with electrons. Am. J. Phys. 75 1053–5
* Frabboni S, Gazzai G C and Pozzi G 2008 Nanofabrication and the realization of Feynman's two-slit experiment. Appl. Phys. Lett. 93 073108
전자의 겹실틈 실험은 2002년 물리학자들의 투표로 "가장 아름다운 실험"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 Robert P Crease 2002 The most beautiful experiment. Phys. World 15 (9) 19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2058-7058/15/9/22
비교적 최근의 겹실틈 실험은 2013년에 나온 아래 논문입니다.
* R. Bach et al 2013 Controlled double-slit electron diffraction. New J. Phys. 15 033018. https://doi.org/10.1088/1367-2630/15/3/033018
1999년에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안톤 차일링거와 마르쿠스 아른트 팀이 풀러렌(C-60)을 이용하여 0.7 나노미터 떨어진 겹실틈(이중슬릿)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Arndt, M., Nairz, O., et al. (1999) Nature, 401, 680-682.
http://dx.doi.org/10.1038/44348
2011년에는 6 나노미터 (원자 430개 정도)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 Gerlich, S., Eibenberger, S., Tomandl, M. et al. Quantum interference of large organic molecules. Nat Commun 2, 263 (2011). https://doi.org/10.1038/ncomms1263
2019년에는 100-150 나노미터 실험이 성공했습니다.
* Magrini, L., Rosenzweig, P., Bach, C. et al. Real-time optimal quantum control of mechanical motion at room temperature. Nature 595, 373–377 (2021). https://doi.org/10.1038/s41586-021-03602-3
* Tebbenjohanns, F., Mattana, M.L., Rossi, M. et al. Quantum control of a nanoparticle optically levitated in cryogenic free space. Nature 595, 378–382 (2021). https://doi.org/10.1038/s41586-021-03617-w
이제 새 자연철학은 이러한 실험 결과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는 온전한 앎으로 끌어올릴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