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풀기 모임에서 왜 k = ic 인가?
질문 및 토론
상대성이론
작성자
시지프스
작성일
2022-01-27 22:53
조회
4079
몸풀기 모임에서 제기된 갑자기 왜 k = ic 인가의 대하여.
자연철학 책
p.166 마지막 줄 끝부터 p.167 를 이어 보시면,
"공간과 시간이 k 라는 비율로 합해 4차원임을 가정했지만, 아직 그 k 가 어떤 값인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이것은 오직 우리가 실제 경험하는 세계가 어떤 k 값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결합시키느냐를 찾아내어 결정할 문제다."
즉, k 값은 실험으로 결정해야 한다로 읽힙니다.
다음 문단에서
" ... 시간이 만일 복소수의 허수축에 해당한다면 k 는 i 에 비례할 것이고, 그 비례상수(k)는 기왕에 설정된 공간단위(미터)와 시간단위(초)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즉, 기존 단위에 잘 맞게 수치를 조정해야 한다로 읽을 수 있습니다.
(괄호는 제가 추가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k 값을 다음과 같이 놓자. 즉 k = ic
(이렇게 되면) 여기서 c 는 시간 공간을 연결하는 보편상수(가 된)다."
(여기 괄호도 제가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비록 k 값은 실험에 의해 ic 가 된다고는 책에 적혀 있지는 않지만, 그런 의미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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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지적입니다. 미묘하지만 "시간이 만일 복소수의 허수축에 해당한다면 k 는 i 에 비례할 것이고, 그 비례상수(k)는 기왕에 설정된 공간단위(미터)와 시간단위(초)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라는 문장은 "시간이 만일 복소수의 허수축에 해당한다면 k 는 i 에 비례할 것이고, 그 비례상수(c)는 기왕에 설정된 공간단위(미터)와 시간단위(초)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로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tau = k t$로 정의한 어떤 보편상수 $k$는 여하간 시간과 공간의 구조를 연결해 줍니다. 여기에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수학적/개념적 설정입니다. 시간을 허수축에 두기로 한다면, 이 보편상수 $k$를 구성하는 인수 중에 허수 단위 $i$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요소는 이제까지 사용되어 온 시간의 단위와 공간의 단위입니다. 시간의 단위를 초(second)로 하고, 공간의 단위를 광초(light-second)로 한다면, 그 둘째 인수는 $c=1$입니다. 그와 달리 시간의 단위를 초(second)로 하고, 공간의 단위를 미터로 한다면, $c=299,792,458$입니다. 공간의 단위를 마일로 한다면 $c=86,400$입니다. 이 둘째 요소(인수)를 '실험'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단위에 대한 사회적 선택 내지 규약 내지 관습에 대한 것이므로 '실험'이 아니라 오히려 규정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지프스님! ^^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요. 학교 다닐 때 수학보다 물리학이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게 바로 이런 이유였던 것 같아요. 혹시 자연은 논리적이지 않아서일까요? ^^;
이미 아는 것을 설명하는 식으로 교과서나 책이 되어 있지요. 설명 방식에 따라서 잘 받아 들여지기도 하고, 뚝뚝 끊긴다고 느껴지기도 하구요. 어쨋든 우리는 설명이 논리적이길 기대합니다 ( 관심법이나 신의 계시, 이런 건 설명으로 치지 않지요) 만, 꼭 자연이 논리적이거나, 수학적이거나, 언어로 묘사가 잘 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아직 못 찾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리고 저는 우리가 아는 논리와 수학과 언어가 많이 불완전하고, 매우 부족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자연이 논리적이다" 또는 "자연이 논리적이지 않다"라는 문장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과가 논리적이다"라거나 "소나무가 논리적이지 않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논리(論理, logic)라는 것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사고와 문장과 개념을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나 논리나 수학적 언어가 소위 '자연'을 잘 묘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시지프스님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그러면서도 논리나 수학과 별개로 실재하는 어떤 '자연'이란 것을 상정해야 하는지 의심합니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도덕경의 첫 문장을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름이 아니다."쯤으로 번역하여 "논리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고 논리로 묘사하지 말아라" 쯤으로 해석한다면, 세상에는 뭔가 말이나 논리를 넘어서는 것이 있다는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 같습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에 있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는 문장에서도 그런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아론이나 관념론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자연(自然)'이란 관념 내지 개념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부적절한 개념설정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 문제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9장과 10장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온전한 앎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밀접할 것입니다. 결국 자연철학을 함께 공부하여 얻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온전한 앎을 향한 실마리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