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정의와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
현대물리학에서는 '힘'이란 개념을 조작적으로 정의합니다. 이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물리철학자 퍼시 브리지먼(Percy W. Bridgman)의 '조작주의(operationalism)'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물리학의 여러 난해하고 존재론적으로 복잡한 개념들에 얽매이지 말고 어떤 장치를 써서 어떻게 잴 수 있는지 제시함으로써 그런 존재론적 부담을 더는 게 좋다는 믿음입니다.
'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형이상학적으로 따지는 것보다는 어떤 장치(저울)을 써서 어떤 식으로 되면 어떤 값을 할당할지 말해 주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입니다. 특히 '힘'이라는 물리량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적당한 물리량입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는 '힘'이란 개념을 '상호작용(interaction)'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상 물리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탐구하는 입자물리학 분야에서는 '힘'이라는 용어가 아예 등장하지 않고 대신 모두 '상호작용'이라 부릅니다.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이라고 하는 대신 '전자기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이라 부릅니다.
또 이 분야의 핵심 언어인 양자마당이론의 개념을 써서, 이와 같은 상호작용을 '매개입자'의 교환으로 바꿔치기합니다. 가령 전자기 상호작용은 가상의 빛알을 주고받는 것이고, 약한 상호작용은 W+, W-, Z0라는 세 가지 벡터보손을 주고받는 것이며, 강한 상호작용은 8가지의 글루온(gluon, 풀알)을 주고받는 것으로 서술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20세기 초까지도 '힘'이라는 개념은 근본적이며 존재론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강력한 함축을 지닌 개념이었습니다. 또 조작주의적인 접근이나 현대물리학의 접근과 달리, 이 힘이란 개념이 물리학적 자연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전에 쓴 글의 일부를 최근의 어느 발표에서 사용했는데, 지금 이야기하는 힘의 정의와 관련이 깊어서 그대로 가져와 인용합니다.)
1687년에 출판된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여덟 개의 정의로 시작하는데, 그 중 세 번째 정의가 물질의 내재적 힘(vis insita materiae; inherent force)입니다. 이 개념을 따지고 들면 실상은 '물질의 양' 즉 '질량'이라고 부르게 되는데, 이를 '내재적 힘'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Definito III. Materiae vis insita est potentia resistendi, qua corpus unumquodque, quantum is se est, perseverat in statu suo vel quiescendi vel movendi unformiter in directum.
(Definition 3. Inherent force of matter is the power of resisting by which every body, so far as it is able, perseveres in its state either of resting or of moving uniformly straight forward.)
물질의 내재적 힘은 물체가 정지해 있거나 반듯하게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게 만드는 힘으로 정의합니다. 요즘의 용어로는 ‘관성(慣性)’이다. 영어의 inertia와 같다. 타성에 젖어서 원래 하던 식으로 그저 현상 유지에 급급한 것을 관성이라고 흔히 부르는데, 내용상 같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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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책을 읽을 때 처음 만나는 난관이 바로 이 “물질의 내재적 힘” 또는 ‘관성’이다. 현대의 물리학에는 이 개념과 딱 들어맞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저항력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공기저항 같은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물체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체 속에 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뉴턴이 이런 이상한 용어와 개념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계속 사용한 것은 당시의 자연철학에서 ‘임페투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더 상세한 것은 https://en.wikipedia.org/wiki/Theory_of_impetus 참조.
임페투스라는 용어 자체는 14세기에 장 뷔리당(Jean Buridan c1295-c1358)이 만든 것이지만, 그 뿌리를 찾아보면 6세기 고대 헬레니즘 시기 그리스의 필로포누스까지 거슬러 갈 수 있고, 이 그리스 자연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방대한 번역 사업을 펼치고 그 번역된 책을 가지고 더 깊이 탐구하여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 이슬람 자연철학이 있다. 11세기의 이븐시나(아비케나)는 필로포누스의 이론을 더 확장했고, 12세기의 이슬람 자연철학자 누르 앗딘 알 비트루지(알페트라기우스)의 손을 거쳐 장 뷔리당이 이를 정리했다.
활을 떠난 화살이 운동할 수 있는 것은 손에서 전달된 임페투스가 화살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인데, 공기저항 같은 게 없다면 그 임페투스 때문에 화살이 그대로 반듯하게 일정한 빠르기로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공기저항 같은 것 때문에 화살에 전달된 임페투스는 주변에 흩어져 버린다. 임페투스가 다 떨어지면 화살은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1630년쯤에 탈고한 <세계와 빛에 대한 논고 (Traité du monde et de la lumière)>와 1644년에 발표한 <철학의 원리 (Principia Philosophiae)>에서 충돌의 일반 원리를 다루면서, 임페투스와 유사한 운동의 양(quantitas motus)의 보존을 주장했다. 임페투스처럼 운동량은 물질의 양이 많을수록 그리고 물체가 빨리 움직일수록 더 크다고 보았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물체의 운동방향은 고려하지 않았다. 게다가 데카르트는 실험을 직접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 책에 등장하는 충돌의 사례들의 서술은 모두 옳지 않다.
1668년 영국 런던 왕립협회는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문경연대회를 열었다. 그 해 11월에 존 월리스(John Wallis)의 논문이 투고되었고, 12월에는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의 논문이 투고되었다. 이듬해 1월에는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의 논문도 투고되었다. 지금의 관점과 가장 가까운 것은 하위헌스의 논문이었다. 하위헌스는 운동량을 질량과 빠르기의 곱으로 볼 때 운동의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1686년 <악타 에루디토룸>이란 학술지에 낸 짧은 논문 “신이 운동의 양을 항상 보존한다는 자연법칙에 관한 데카르트의 주목할만한 오류의 간단한 증명”에서 데카르트가 ‘운동의 양(quantitas motus)’이라 부른 것이 보존되는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 Gottfried Wilhelm Leibniz, "Brevis demonstratio erroris memorabilis Cartesii et aliorum circa legem naturalem, secundum quam volunt a Deo eandem semper quantitatem motus conservari; qua et in re mechanica abutuntur," Acta Eruditorum, 1686, pp. 161-163.
즉 갈릴레오의 낙하실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질량과 빠르기의 곱($m |\vec v|$)이 아니라 질량에 빠르기 제곱을 곱한 양($m v^2$)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가 이 새로운 양에 비스 비바(vis viva) 즉 ‘살아 있는 힘 (living force)’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 까닭은 평형 상태에 있을 때의 힘 ‘비스 모르투아(vis mortua)’ 즉 ‘죽어 있는 힘 (dead force)’과 다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질량에 빠르기 제곱을 곱한 양의 중요성을 처음 지적한 것은 하위헌스였다. 지금 알려져 있는 형태는 아니지만, 충돌과 흔들이(진자) 시계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것을 다루었다. 비스 비바 논쟁은 여러 면에서 곱씹어볼 만한 흥미로운 논쟁이다. Carolyn Iltis (1971). "Leibniz and the Vis Viva Controversy". Isis, Vol. 62, pp. 21-35; George E. Smith (2006). "The vis viva dispute: A controversy at the dawn of dynamics". Physics Today 59, 10, 31-36.
토머스 영은 라이프니츠의 ‘비스 비바’라는 용어가 운동의 서술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보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란 의미로 그리스어의 일을 뜻하는 ergon으로부터 energy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1829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귀스타브 코리올리(Gustave Coriolis)는 계산상의 편리를 위해 $m v^2$ 대신 $\frac{1}{2} m v^2$를 에너지 개념의 표준으로 제안했다.
프로이센의 의사 율리우스 로베르트 폰마이어(Julius Robert von Mayer 1814-1878)는 1842년에 발표한 저서 <무생물 자연의 힘에 관한 고찰 (Bemerkungen über die Kräfte der unbelebten Natur)>에서 역학적 일과 열 사이의 관계를 처음 밝혔다. 마이어는 화학적 ‘힘’, 생명의 ‘힘’, 역학적 ‘힘’ 등의 여러 가지 형태의 ‘힘’이 서로 변환될 수 있으나 총합은 일정하다고 주장했다.
1843년 제임스 프리스콧 줄(James Prescott Joule 1818-1889)은 열과 역학적 에너지가 동등함을 밝혔다. 추가 떨어지면서 젓개를 회전시키면 물의 온도가 올라간다는 점에 주목하여 ‘열’이란 일종의 운동임을 주장했다. 1847년 헤르만 헬름홀츠(Hermann Helmholtz 1822-1888)는 “힘의 보존에 관하여”(Über die Erhaltung der Kraft)에서 ‘힘’(즉 에너지)의 보존법칙을 확립했다.
에너지 보존법칙은 과학사에서 대표적인 ‘동시 발견’으로 여겨질 만큼 19세기 초중반에 여러 사람들이 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내용을 채웠다. 여기에서 문득 의문이 들게 되는 것은 마이어와 헬름홀츠가 사용한 ‘힘 (Kraft)’이라는 용어이다. 현대의 물리학에서라면 ‘에너지’라고 말할 개념을 ‘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힘’과 ‘에너지’는 단위가 다르며, 서로 연관은 있지만, 물리학을 처음 배울 때부터 혼동하지 말라고 주의를 듣기 마련인 개념쌍 중 하나다. 그런데 토머스 영의 작명을 통해 ‘에너지’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라이프니츠는 이를 ‘힘 vis’의 일종으로 부르고 있었다.
영이 이러한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니라 독일어권에서 18세기말부터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Naturphilosophie)’의 영향이었다. 1790년대 이래 자연을 역동적이며 총체적인 유기체로 바라보고 탐구해야 한다는 철학적 주장이 독일어권에서 힘을 갖게 되었다. 킬마이어(Karl Friedrich Kielmeyer 1765-1844), 셸링(F.W.J. von Schelling 1775-1854), 헤겔(G.W.F. Hegel 1770-1831)의 사유가 주된 기반이 되었지만, 같은 시기에 다름 아니라 괴테도 이 독특한 자연철학에 기여했다.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은 자연의 총체성을 강하게 믿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천체 시스템과 유기체의 연결이나 자기조직적인(스스로 짜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역동성을 중시 여겼다. 특히 당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자기, 전기, 화학, 빛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생명현상의 본질을 새롭게 탐구하려는 강력한 연구 프로그램이었다. 트레비라누스트레비라누스(Gottfried Reinhold Treviranus 1776-1837)가 1802년부터 Biologie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 있는 자연에 대한 탐구를 본격적으로 제안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낭만주의 자연철학의 흐름에 속해 있었다. Gottfried Reinhold Treviranus. Biologie; oder die Philosophie der lebenden Natur für Naturforscher und Aerzte (1802-1822)
덴마크의 한스 크리스티앙 외르스테드(Hans Christian Ørsted 1777-1851)가 전기와 자기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 까닭은 그가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에 심취해 있어서 자연에 존재하는 힘들의 통일성을 강력하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820년에 출간된 Experimenta circa effectum conflictus electrici in acum magneticam에서 전류와 자석의 상호작용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가설을 써서 전자기 현상은 자기적 끌림이나 밀침과는 다른 현상임을 설명하려 했다.
1. ‘전기충돌(conflictus electrici)’은 자극에 작용한다.
2. ‘전기충돌’은 도체에 갇혀 있지 않고 도체가 없는 곳에서도 작용한다.
3. ‘전기충돌’은 전선 주변에서 소용돌이를 이룬다.\
물리학 교과서에는 외르스테드가 강의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전선 주변의 나침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전기와 자기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서술이 나오기도 하지만, 실상 외르스테드는 낭만주의 자연철학에 대한 강한 신념을 기반으로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의 통일성을 밝히기 위해 오랜 시간 끈질기게 연구를 계속했다.
의사였던 율리우스 마이어가 <무생물 자연의 힘에 관한 고찰>에서 여러 가지 ‘힘’의 상호변환과 그 속에서의 불변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니라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의 계보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머스 영은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을 탐독하면서 영국의 낭만주의 문학가들과도 교류하기 시작했다. 영이 라이프니츠의 ‘비스 비바’를 ‘에너지’라는 신조어로 바꾸게 된 것은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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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19세기까지 물리학적 자연철학에서는 '힘'이라는 개념이 근본적이며 존재론적이었으며,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었습니다. 현대물리학에서 너무나 흔히 사용되는 '에너지'란 개념도 19세기까지는 '힘'으로 불렸습니다. 이 '힘'은 모든 변화와 운동의 근본원인이지만, 그 총량은 결코 변하지 않는 일종의 신적/종교적 관념으로 상정되었습니다. 기독교권 유럽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결국 이 '힘'은 기독교적 신의 신성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근본주의 기독교에 속했던 윌리엄 톰슨(나중에 작위를 받아서 켈빈 경으로 더 유명함)은 열역학을 구성하고 전자기이론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자신이 부분적으로 만든 에너지 보존법칙이나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같은 것은 신적인 신성함으로 표현하거나 알리기도 했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나투어필로조피)에서는 기독교적 색채는 훨씬 사라져 있지만, 여전히 이 자연 속에 내재한 근원적 힘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요즘 네 가지 상호작용을 하나로 묶어서 통일장이론이니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만드는 것이 이론물리학자의 최대의 과제라고 말하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호작용(즉 '힘')을 통일하여 하나의 근본원리로 설명하려는 연구프로그램은 철학적 맥락에서는 18세기말-19세기초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의 영향이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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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요약을 해 본다면,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는 자연을 역동적이며 총체적인 유기체로 바라보고 탐구해야 한다는 철학적 주장 ...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은 자연의 총체성을 강하게 믿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천체 시스템과 유기체의 연결이나 자기조직적인(스스로 짜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역동성을 중시 여겼다...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나투어필로조피)에서는 기독교적 색채는 훨씬 사라져 있지만, 여전히 이 자연 속에 내재한 근원적 힘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상호작용(즉 '힘')을 통일하여 하나의 근본원리로 설명하려는 연구프로그램은 철학적 맥락에서는 18세기말-19세기초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의 영향이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을 역동적이며 총체적인 유기체로 바라본다면, 그래서 진화론이 나왔다면 저는 금새 수긍이 될텐데, 에너지 보존법칙이 나왔고, 힘을 하나로 통일해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나왔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됩니다. 보존법칙이나 힘의 통일은 전체가 꽉 짜여진 채로 고정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변화로 보이는 것도 그 한계안에서 뱅뱅 도는 것이라는 느낌을 (저만 ㅠㅠ) 받고 있거든요. 독일 낭만주의 자연철학은 출발과 결말의 맥락이 잘 안 어울리는 듯 (제게만) 느껴집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