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량개념의 의미와 간단한 역사
지난 번 자연철학 세미나에서 질량 개념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질량(質量)이란 용어는 18세기 일본의 란가쿠샤(蘭学者) 미우라 바이엔(三浦梅園 1723-1789)이 만든 말입니다. 미우라는 네덜란드어로 kwaliteit (영어로 quality)라 하는 것을 性(せい, 세이)로, hoeveelheid (영어 quantity)를 量(りょ, 료)로, substantie (영어 substance)를 質(しつ, 시츠)로 옮겼습니다. 이런 한자어로 번역을 한 것은 미우라와 같은 란가쿠샤가 대체로 성리학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미우라는 이 글자들을 결합하여 다른 번역용어를 도입했습니다. 가령 materie (영어 matter)는 두 개의 한자를 사용하여 物質(ぶっしつ, 붓시츠)로, massa (영어 mass)는 質量(しつりょ, 시츠료)로, lichaam (영어 body)는 物体(ぶったい, 붓타이)로 옮길 것을 제안했습니다. (참고: 뉴턴 물리학의 동아시아 전파 )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질량(質量)'이라는 용어는 '물질(物質)의 양(量)'을 줄인 말입니다. 일본에서는 오랜 시기에 걸쳐 유럽의 언어로 되어 있는 자연철학의 용어들을 동아시아의 공통어라 할 수 있었던 한자어로 옮기는 고된 작업을 했습니다. 이와 달리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조선을 거치면서 한국어에서는 일본어로 된 한자용어를 그대로 한국어 식으로 읽은 용어로 너무나 손쉽게 새로운 용어를 '창안'했습니다.
세미나에서는 "물질의 양"이란 개념을 '질량'이라는 숫자로 바꾸어 이야기한 아이작 뉴턴이 근대자연철학(근대물리학)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위 '도량형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고대 중국과 메소포타미아와 헬레니즘 시기에 발명된 놀라운 기계를 떠올렸습니다. 바로 저울과 천칭입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9106) 전세계에서 이 무게를 측량하는 방법과 장치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결국 저울과 천칭은 "물질의 양"을 '무게'라는 숫자로 바꾸어 비교하는 장치이고, 경제와 교역과 일상생활을 위해 이 장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저울과 천칭의 작동방식을 더 일반화하고 수학(주로 정수와 유리수 이론)을 써서 소위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또는 "천칭의 원리"라 부르는 것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기도 했습니다. 금관의 무게를 부력으로 재는 데 성공하여 "유레카(헤우레카)"를 외쳤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지금은 초등교육과정에서조차 '무게'와 '질량'을 구별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가령 중력이 지구의 1/6인 달에서는 '무게'가 지구에서보다 1/6이 되는 반면, '질량'은 똑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물질의 양'이란 의미로 사용되어 온 '무게' 즉 "무거움의 정도"라는 용어의 개념이 갑자기 "중력의 크기"라는 개념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영어에서 weight와 mass를 구별하게 된 것은 바로 뉴턴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뉴턴과 동시대에 살았던 영국 왕립협회의 실험 간사 로버트 후크가 용수철과 탄성의 원리를 해명하기 전까지 '저울'이라는 것은 '천칭'과 동의어에 가까웠습니다. 영어에서는 scale과 balance를 구별하여 scale은 weight를 측정하고 balance는 mass를 측정한다고 말합니다. 과학 이야기가 나오는 책은 예외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최초의 용수철 저울이 1770년대에야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전의 모든 저울은 천칭과 같은 말이었고, 둘 다 물질의 양을 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물질의 양'이라고 추상적인 표현을 쓰지만, 실제로는 경제활동을 위해 소금이나 금이나 화폐나 곡식의 양을 비교하여 교환하는 과정에서 저울 또는 천칭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하간 경제적 교역을 위해서이든 부의 축적을 위해서든 '물질의 양'이란 개념은 이미 대부분의 사회에서 익숙한 개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화폐' 즉 돈의 액수라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굳이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요컨대 '물질의 양'을 숫자로 말하는 것의 역사는 도량형의 역사와 사실상 같습니다. 그래서 뉴턴이 (실상은 후술하듯이 케플러가) 물질의 양을 숫자로 바꿔치기함으로써 뭔가 평등한 세상이 왔다고 말하는 것이 주저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물질의 양'이란 개념을 자연철학에서 처음 정교하게 논의한 사람은 뉴턴이 아니라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였습니다. 케플러는 1611년에 주위 사람들에게 읽힌 <꿈 (Somnium)>이란 제목의 글에서 탄환을 타고 달에 간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이것이 책으로 간행된 것은 케플러가 세상을 떠난 뒤인 1634년이었습니다. 칼 세이건은 이 책을 최초의 과학소설(SF)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책에 물질들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관념과 그 정도가 물질의 양(quantitas materiae)에 비례한다는 주장이 들어 있습니다. 요즘 용어로 말하면 '중력질량(gravitational mass)'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이보다 앞서 1609년에 출간된 <새로운 천문학 또는 천상의 물리학 (Astronomia Nova seu physica coelestis)>에도 이와 관련된 생각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Astronomia_nova)
여기에서 질량은 밀도(densitate)와 부피(mole)가 함께 만드는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케플러의 아이디어는 뉴턴이 큰 여과 없이 그대로 수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1687년에 출간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의 서술체계는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원본>과 유사하게 정의를 먼저 제시하고 공리를 열거한 뒤 이로부터 여러 정리와 명제를 제시하고 이를 증명하는 식입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맨 앞에 나오는 정의는 '물질의 양'에 대한 것입니다.
정의 1과 정의 2를 비교해서 보면 "물질의 양"과 "운동의 양"이 정확히 댓구를 이룸을 알 수 있습니다.정의 1: "물질의 양은 밀도와 부피(크기)가 함께 만드는 것으로부터 잴 수 있다. (Quantitas Materiae est mensura ejusdem orta ex illius Densitate et Magnitudine conjuntum.)"
정의 2: "운동의 양은 빠르기와 물질의 양이 함께 만드는 것으로부터 잴 수 있다. (Quantitas Motus est mensura ejusdem orta ex Velocitate et Quantitate Materiae conjuntum.)"
그런데 여기에서 '물질의 양'은 '밀도'와 '부피'가 함께 만든다고 정의되어 있습니다(Densitate et Magnitudine conjuntum).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밀도와 부피의 곱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내용은 조금 더 들어갑니다. '크기'라고도 볼 수 있는 '마그니투디네(Magnitudine)'는 이전에 '덩어리 moles'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영어로 bulk로 흔히 번역됩니다. 그래서 현대어로는 '부피'에 대응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것은 소금이든 금이든 곡물이든 동전이든 어떤 것의 무게와 비슷합니다. '덴시타테(Densitate)'가 함께 들어가서 비슷한 덩어리라도 더 빽빽하게 뭉쳐져 있는 것은 '물질의 양'이 더 많다는 것을 반영했습니다.
이런 식의 정의가 순환적이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뉴턴의 책이 출간된 직후부터 이 정의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현대 물리학에 익숙하다면, 이것이 곧 현대적인 '질량'과 같다고 쉽게 생각하겠지만, 1687년에 출간된 텍스트에서 당시의 독자들은 그런 의미로 이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따져 보면 에기디우스 로마누스(Aegidius Romanus c1243-1316)[https://en.wikipedia.org/wiki/Giles_of_Rome]의 생각을 떠올렸을지 모릅니다. 에기디우스는 신플라톤주의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크게 반대했습니다. 중세 유럽의 자연철학을 염두에 두면, 에기디우스가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물질의 양'이 어떤 상황에서도 그 총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에기디우스는 신학자로서 매주 교회에서 일어나는 성체성사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성체에 대한 정리들 Theoremata de corpore Christi>(1276)이라는 책을 냅니다. 성체성사에서는 빵을 먹으면서 이것이 우리를 위해 죽은 예수의 살이라고 하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이것이 우리를 위해 죽은 예수의 피라고 말합니다. 최후의 만찬을 기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제가 이 빵과 포도주에 축사를 했기 때문에 빵과 포도주가 입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미 성자(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뀝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에기디우스는 '물질의 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생각을 펼쳤습니다.
이 대목에서 비잔틴 시대의 자연철학자/문헌학자 필로포누스(요아네스 필로포노스 c490-c570)[https://en.wikipedia.org/wiki/John_Philoponus]가 연결됩니다. 필로포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을 비판하면서, 운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맨 처음 운동을 일으킨 것이 물체에 무엇인가를 전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임페투스(impetus)'입니다. 필로포누스의 아이디어는 에기디우스의 신학적 교리와 연결되어 14세기 프랑스 파리 대학의 자연철학자 장 뷔리당(Jean Buridan c1301-c1359/62)[https://en.wikipedia.org/wiki/Jean_Buridan]으로 이어집니다. 뷔리당은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우화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뷔리당은 운동을 유지하는 원천으로 '임페투스'의 개념을 제시했는데, 임페투스는 물질의 양이 많을수록 그리고 운동하는 물체가 빠를수록 더 큰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질량과 속력(또는 속도)의 곱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흔히 운동량 보존 법칙에서 말하는 운동량(모멘텀)의 원형으로 여겨집니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임페투스는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인 반면, 운동량(모멘텀)은 운동의 결과입니다. 임페투스는 충격량(impulse)이란 용어에 흔적이 남아 있고, 독일어에서는 운동량을 '임풀스(Impuls)'라 부릅니다.
이렇게 질량(물질의 양) 개념과 운동량(운동의 양) 개념의 역사는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꼬여 있습니다. 복잡한 개념사에서 배울 수 있는 점 중 하나는 갑자기 어떤 천재가 영웅처럼 이런 새로운 개념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이미 몇 백년 동안 전해져 오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주장들 중에서 더 직접적이고 유관한 것을 선택하고 끄집어 내어 이를 더 심화시킨 결과로 우리가 지금 자연철학 또는 물리학 또는 자연과학으로 보고 있는, 세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량 개념의 역사에 대해 다음 참고문헌들이 유용합니다.
Max Jammer (1961). Concepts of Mass in Classical and Modern Physics. Harvard University Press.
Eugene Hecht (2006). "There Is No Really Good Definition of Mass". The Physics Teacher. 44, 40-44. doi: https://doi.org/10.1119/1.2150758
Eugene Hecht (2017). "Kepler and the origins of pre-Newtonian mass". American Journal of Physics 85, 115-123 (2017); doi: https://doi.org/10.1119/1.4972044
K. M. Browne (2018). "The pre-Newtonian meaning of the word “weight”". American Journal of Physics 86, 471-474. https://doi.org/10.1119/1.5027490
지난 몇 백년 동안의 역사적 전개의 결과를 보면, 케플러가 물질의 양이라는 개념을 선대 자연철학자들로부터 추려내어 이를 하나의 추상화된 숫자로 바꾸려 했던 것이 물질들을 근본적으로 평등하게 보게 된 계기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상 케플러도, 이를 더 세련되게 발전시킨 뉴턴도, 그 이후의 동역학 연구자들(베르누이, 오일러, 라그랑주, 해밀턴)도 그런 동기를 갖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미 15세기-17세기 유럽의 자연철학자들은 현실의 문제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물질의 양을 하나의 숫자로 바꾸고 이로부터 중력현상과 동역학적 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교육이나 저서를 통해 대물림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과학교육에서는 '질량'과 '무게'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이 두 개념을 구별하지 못하면 뭔가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지만, 실상 이 두 개념은 대부분의 경우 쉽사리 구분되지 않는 상호연관된 개념이고, 지금도 여전히 '무거움'의 근원에 대해 인류가 알고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 뉴턴에서 시작되었다고 흔히 이야기되지만, 질량(물질의 양)의 개념을 처음 제안하고 이를 발전시킨 것은 케플러였으며, 뉴턴은 그 케플러의 연구프로그램을 발전시킨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올바른 과학사적 관점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다른 면에서, 사유하는 실체(레스 코기탄스 res cogitans)와 부피를 차지하는 실체(연장적 실체, 레스 엑스텐사 res extensa)를 구별함으로써 '앎'과 '삶'과 '함'을 분리시켜 버린 데카르트와 '물질(物質)'이라는 더 근원적이고 질적인 개념을 '질량(質量)'이라는 손쉽고 단순한 양적인 개념으로 대치해 버린 케플러, 그리고 나아가 뉴턴은 새로운 자연철학을 통해 삶의 가치 자체를 변경시켜 버렸다고 보는 관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상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물질의 '질적 측면'을 무시하고 단지 '양적 측면'만을 염두에 두는 것은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의 첫 장에서 상세하게 해명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전도와 직접 연결될 수 있습니다. 소금 2킬로그램은 소금 1킬로그램의 두 배이지만, 어떤 사람에게 그 소금이 삶 속에서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두 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을 정량화하고 양적인 것만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목표가 근원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1931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 과학사 학술대회에서 러시아(소련)의 보리스 헤센(Boris Hessen 1893-1936)[https://en.wikipedia.org/wiki/Boris_Hessen]이 발표한 논문은 여전히 의의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Boris Hessen (1933). "The Social and Economic Roots of Newton’s Principia" (Гессен Б. М. Социально-экономические корни механики Ньютона. М.-Л. 1933.)
헤센은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와 그의 자연철학의 사회-경제적 근원을 탐구하면서, 이 책과 뉴턴의 자연철학이 사회-경제와 무관한 사변적인 사유의 전개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경제적 문제와 깊이 연결된 것임을 주장했습니다. 여러 학자들이 헤센의 주장을 비판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이지만, 1960년대에 토머스 쿤과 같은 물리학 배경의 과학사학자나 과학철학자의 연구를 통해 자연과학의 여러 주장과 이론이 사회경제적 요소와 깊이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나갔습니다. 지금은 '과학기술학(STS)'이라 부르는 이 영역에서 과학지식은 사회경제적 요소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이 다양한 방식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Gideon Freudenthal and Peter McLaughlin, eds. (2009). The Social and Economic Roots of the Scientific Revolution: Texts by Boris Hessen and Henryk Grossmann. Springer.
헤센의 논제와 관련된 문제는 따로 더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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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안전을 위해 연산만 해오던 속칭 공돌이 공학전공자입니다. 하루에 한번이상은 질량이라는 용어를 입으로 말하면서 이글을 읽고 ♨ 질량이 철학적으로 보이는군요!
W=mg 연산만 생각하다가 ? ? ? 너무나 유익하게 잘읽었습니다. 공학전공하다 요약된 역학책보면 한줄로만 나오는데...?
질량이란 개념의 역사적 변천사를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물질의 질적 측면이 소외되고 양적 측면만이 부각된 것이 지니는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도 새삼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운동량이라는 개념의 역사적 변천 역시 흥미롭네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 결과를 기술하는 물리량으로 바뀐 부분에서는 telos(목적)를 중시하던 그리스적 세계관의 쇠퇴가 반영된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코스모스에서 케플러가 썼다는, SF의 효시격이라는 <꿈>이라는 소설에 대해 재밌게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중력질량’이라는 개념이 나왔었군요.
아울러 케플러가 태양과 행성 사이에 원격으로 작용하는 힘의 형태에 대해 고민하다가 자기력 비슷한 어떤 것일거라고 추정하던 대목이 기억이 나서 <코스모스>에서 한번 그 부분을 따왔습니다. 뉴턴이 케플러의 이런 아이디어에서도 영감을 얻었을텐데…프린키피아에는 케플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던 얘기도 생각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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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떨어져 있어도 작용하는 자기력 같은 힘이 태양과 행성 사이에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케플러는 행성 운동의 근본 원인이 자기력의 작용과 유사한 성격의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놀랍게도 중력 또는 만유인력의 개념을 예견했던 것이다.
- 출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3장
고맙습니다. 칼 세이건의 문장이 저로서는 좀 탐탁치 않습니다. '예견'이란 말 때문입니다. 뉴턴을 추앙하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으로서는 소위 '만유인력'이 자연에 실재하는 힘이라는 믿음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뉴턴이 그렇게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신비한 힘을 떠올리게 된 것은 다음 아니라 케플러와 후크와 하위헌스를 통해서였습니다.
요하네스 케플러가 <꿈 Somnium>이라는 소설을 쓴 것이 1608년입니다. 윌리엄 길버트가 <자석론 De Magnete, Magneticisque Corporibus, et de Magno Magnete Tellure>을 발표한 것이 1600년이었으니까, 그로부터 8년 뒤였습니다. 케플러는 길버트의 텍스트를 깊이 탐독했습니다. 우연히 자기력과 중력을 같은 것이라고 본 것이 아니라 길버트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자석이 당기는 힘과 같은 성격의 힘이 태양과 행성 사이에 작용하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Somnium_(novel)
https://en.wikipedia.org/wiki/De_Magnete
케플러의 자연철학은 헤르메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에 기반을 둔 신비주의였습니다. 튀코 브라헤의 관측데이터(더 정확하게 말하면 튀코 브라헤가 소유하고 있던 우라니보르그에 속한 수백명이 관측한 데이터)로부터 행성의 운동궤적이 타원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나니, 그 전까지 행성의 운동을 잘 붙잡고 있던 신성한 에테르 천구가 존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양과 행성 사이에 뭔가 힘이 작동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케플러가 1600년에 출간된 길버트의 <자석론>을 깊이 탐독한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뉴턴이 케플러의 생각을 참조했고 로버트 후크와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태양과 행성 사이에 작용하는 신비한 힘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점에서, 칼 세이건이 쓴 "놀랍게도"라는 구절은 역사적 흐름과는 맞지 않는 20세기 천문학자의 과도한 평가라 하겠습니다.
이 글의 성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서 덧붙입니다. 저의 질문과 논평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장회익 선생님과의 대담을 소화한 뒤에 더 이야기할 수 있는 심화된 주제입니다.
장회익 선생님과의 대담(장회익의 자연철학이야기 3-2. 고전역학의 질문과 개념들) 중 "4.1. 고전역학의 개념들 1 – 질량"에서 분명히 무게는 질량에 중력가속도를 곱한 중력의 크기를 나타낸다는 점이 대담 속에 나옵니다. 제가 올린 글의 내용은 질량과 무게(중량)의 개념 구별을 없애자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중량(무게)과 질량은 단위가 다른 물리량입니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질량의 단위가 '킬로그램(kg)'이라면 중량(무게)의 단위는 kg m / s^2이 됩니다. (여기에서 ^2라는 기호는 윗첨자(어깨번호)로 2를 나타내고 제곱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과학사의 연구를 살펴보면, 이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복잡합니다. 질량과 무게가 비례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약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도 여전히 '질량' 다시 말해 '물질의 양'이 무엇인지 그 근본적 의미를 모릅니다. 뉴턴의 1687년 저작에서 "정의 1"로 나오는 '물질의 양'이 단순하게 '밀도'와 '크기(부피)'를 함께 고려하여 잰다고 순환적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순환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밀도'가 무엇인가 다시 물을 때 가장 손쉬운 대답이 "단위 부피당 질량"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