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역학을 통한 세계의 이해
시인처럼님이 "고전역학으로 이해할 수 있던 존재물과 그렇지 못했던 존재물은 무엇이었나?"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 주셨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답을 짧게 적어보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대략 살펴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발표한 것이 1687년이고, 열역학이 하나의 체계로 자리잡은 것은 1840-1860년대입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수학자/물리학자 윌리엄 톰슨(켈빈)과 피터 거쓰리 타이트가 <자연철학론 I (Treatise on Natural Philosophy I>을 발표한 것이 1867년입니다. 책 제목은 '자연철학'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고전역학이라 부를 수 있는 표준적인 물리학이었습니다.
뉴턴은 가령 운동량의 보존 법칙 같은 것을 따로 말하지 않았고, 에너지 보존과 같은 개념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동시대의 라이프니츠가 질량과 속도제곱의 곱을 '비스 비바(vis viva, 활력)'이라 부르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지만, 뉴턴은 여기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1810년대에 가서야 영국의 물리학자 토머스 영이 이 라틴어로부터 '에너지(energy)'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 냈고, 19세기 내내 이 에너지 개념이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물리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전문분야가 정립되었습니다.
톰슨과 타이트의 <자연철학론 I>은 작은 입자와 입자 여러 개의 운동뿐 아니라 진동(oscillation)과 파동(undulation)에 대한 것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전기, 자기, 열, 빛 같은 것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1873년에 같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출신의 수리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전기자기론 Treatise on Electricity and Magnetism>을 발표했습니다. 톰슨과 타이트는 이 책을 대단히 높이 평가했습니다. 애초의 계획으로는 <자연철학론 II>에서 소위 '고전역학'의 방법을 써서 전기와 자기와 열과 빛에 대한 것을 다 다루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맥스웰의 책이 나오면서 그런 책을 또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뉴턴의 자연철학은 당장 전통적인 케플러 문제와 세계 체계에 대한 설명을 주긴 했지만, 그 이외의 문제까지 다룬 것은 아니었습니다. 흔히 뉴턴의 자연철학이 18세기 계몽사조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지만, 물리학적 지식 특히 고전역학적 사유가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이성의 빛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과 이와 연관된 방대한 지식의 축적이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는 뉴턴의 자연철학에 대한 탐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완결된 것으로 여긴 탓도 있지만, 영국에서는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프랑스어권(스위스 포함)에서는 뉴턴이 만든 체계를 이리저리 곱씹고 뜯어고치고 새로 구성해서 다른 이야기를 만들려 애를 썼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야코프 베르누이, 다니엘 베르누이, 레오나르트 오일러, 알렉시 클레로, 장 르롱 달랑베르 같은 이들입니다. 이를 집대성한 것이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 1736-1813)입니다.
1788년과 1789년에 두 권으로 출간된 라그랑주의 <해석 역학(Mécanique analytique)>은 개별적인 입자나 입자들뿐 아니라 유체까지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죠.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피에르 드 시몽 라플라스는 나폴레옹이 새로 설립한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교편을 잡고 뉴턴주의 물리학 프로그램을 광범위하게 진행합니다. 즉 뉴턴의 자연철학의 방법을 될수록 더 많은 대상으로 확장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무렵 엉제니외(Ingénieur, engineer, 엔니지어)라 불리는 집단이 생겨납니다. 현대의 공학자의 전신이죠. 수학으로 탄탄하게 교육받고 실용적인 문제, 즉 건설, 도로, 광산 등의 문제에 뛰어든 사람들입니다. 고전역학은 바로 이 시기에 크게 발전합니다. 지진파의 물성을 정확히 이해하여 이와 관련된 이론을 세우거나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는 푸코의 추가 프랑스 파리 팡테옹에 세워진 것도 이 무렵입니다. 유체뿐 아니라 탄성체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시험되어서 이를 통해 다리나 도로를 건설할 때의 문제점들을 직접 해결해 나가는 건설공학 또는 도시공학이 점점 더 힘을 갖게 됩니다.
19세기 이전에는 뉴턴의 이름과 연결되는 물리학 또는 더 넓게 말해 자연철학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하는 난해하고 낯선 사상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 19세기 프랑스에서 조금씩 조금씩 생겨나 확장되어 가던 엉제니외 집단을 보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바로 이 고전역학 또는 뉴턴주의 자연철학이라는 점이 더 명확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영국에서도 1830년대에 비로소 이와 비슷한 성격의 사회적 집단에 대해 '과학자(scientists)'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1870년대에 유럽의 막강한 힘을 가까이에서 느끼게 된 일본은 이 '과학' 즉 고전역학 또는 뉴턴주의 자연철학을 수입하여 퍼뜨리는 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다시 살펴보면, 고전과학이 세상에 대해 뭔가 제대로 말해 주기 시작한 것이 19세기 초중반부터라는 함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고전역학은 몇 개의 입자나 유체뿐 아니라 탄성체와 지구와 온갖 진동과 파동까지 다 다루게 된 것이고, 더 나아가 전기와 자기와 빛과 열까지 모두 다루고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899년 윌리엄 톰슨은 볼티모어에서 열린 물리학자 모임에서 "우리 물리학자의 하늘은 무척 맑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작동하는 모든 원리를 다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하늘은 투명합니다. 단지 흑체복사 문제와 마이클슨 실험 결과가 좀 삐걱거리는데, 이 두 조각의 구름을 제외하면 물리학자의 하늘은 아주 맑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처럼님의 다음 질문, "어떤 앎, 또는 특정 지식, 이론은 개인에게서 유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류 내지는 온생명 전체의 소산이라 보아야 할까?"에 대한 저의 대답도 자연스럽게 따라나옵니다. 저는 인류의 지식, 온생명의 지식이란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한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지식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난 몇 천 년 동안의 여러 생각과 앎과 삶이 문자로 책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기록되었고, 그것을 가지고 후대 사람들이 토론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온 것이고, 지식의 발전은 여하간 그런 종류의 변화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느 한 개인의 천재성을 신화적으로 추앙할 필요도 없고 그를 맹신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작업이 다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과거의 지식과 지혜를 제대로 이어나가고 또 단순히 그것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더 깊이 더 넓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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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과 관련하여 제가 작년 3월쯤에 쓴 글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와 대중화
18세기 내내 뉴턴의 자연철학을 더 쉽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다시 쓰고 해설하고 확장하고 응용한 대중화 작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맥락은 많이 다르지만, 저희 자연철학 세미나도 18세기의 이런 작업을 계승하는 흐름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변변치 않은 제 박사학위논문이 그렇게 모든 동역학을 다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차가 10장까지 가는 이상한 구조가 되었죠. 그런 작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꽤 많습니다.
아하~. 역시 자연사랑님 논문 읽기를 언젠가는 시도해봐야겠네요.
그럴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다만 이론물리학 영역이라서 전문적인 물리학 훈련을 받지 않은 분들이 읽어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기회가 되면 제가 직접 설명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우와~ 제 질문에 답을 얻으려면 공부 정말 많이 해야 하는 거였군요. 여하튼 19세기말까지 오게 되면 정말로 고전역학으로 거의 모든 현상을 다루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나 보네요. 전자기 현상도 심학 2도에 포괄되나 보군요. 여러 설명 대상마다 심학 2도로 나타낼 수 있는지 정리를 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