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덧셈과 기울기의 덧셈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1-01 13:36
조회
4682
뉴턴 이후 19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게 사람들의 '자연철학'을 지배했던 것은 시간과 공간의 독립성이었습니다.
단순히 물리학이나 자연철학만이 아니라 철학이든 예술이든 음악이든 인류학이든 모든 면에서 시간과 공간은 별개의 축으로 여겨졌습니다.
약간 과장하면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일반언어학강의에서 도입한 공시성(synchrony)과 통시성(diachrony)의 구별도 시간과 공간이 독립적이라는 믿음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물리학, 그 중에서도 운동학(kinematics)에 국한해서 볼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속도의 덧셈'입니다. 상대성이론을 다루는 수많은 초급 단계의 책들에서 이 문제가 부각되지 않은 것은 좀 이상할 정도입니다. 본격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상대성이론을 다루는 책들에서도 '속도의 덧셈'은 다소 지나가는 문제인 것처럼, 더 정확히 말하면 가령 로렌츠 변환의 결과인 것처럼 다루어집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어떤 면에서 매우 독보적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좋아하는 책을 하나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Lucas, J.R. & Hodgson, P.E. (1990) Spacetime and Electromagnetism. Clarendon Press.
루카스는 철학자이고 호지슨은 물리학자입니다. 이 두 사람이 "시공간과 전자기학"이란 제목으로 엮어낸 여러 편의 논문들이 주옥 같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제3장의 핵심 주장을 염두에 두고 Lucas-Hodgson (1990)을 참조하여, 속도의 덧셈과 관련된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속도의 덧셈은 흔히 상대속도라고 합니다. 가령 시속 80킬로미터로 움직이는 자동차에서 시속 120킬로미터로 야구공을 던지면, 밖에서 볼 때 야구공의 속도가 얼마일까? 하고 묻는 거죠. 조건은 자동차도 일정한 속도로 반듯하게 가고 있고 야구공도 그 방향으로 일정한 속도로 반듯하게 가야 합니다. (이것을 관성계라 부릅니다.) 자동차가 가속되거나 야구공이 가속되면 안 됩니다. 또 방향이 달라져서도 안 됩니다.
이 떄 직관적인 답은 시속 80킬로미터와 시속 120킬로미터를 더해서 시속 200킬로미터라는 답이 될 것입니다. 상대성이론은 이 직관적 관념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더하기'가 항상 그냥 덧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기울기를 더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죠. 사다리가 기울기가 1/6이 되도록 벽에 놓여 있고 또 다른 사다리가 기울기가 1/4이 되도록 벽에 놓여 있을 때 두 기울기를 더하면 어떻게 될까? 하고 묻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1+1)/(6+4)=2/10=1/5이라거나 1/6+1/4=5/12라고 대답하면 틀립니다.
Lucas-Hodgson은 이 더하기를 ⊕로 표시하고, 이 새로운 덧셈이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1) u ⊕ 0 = u, 0 ⊕ u = u
(2) 어떤 보편값 c가 있어서 u ⊕ c = c, c ⊕ u = c
(3) 결합규칙: u ⊕ (v ⊕ w) = (u ⊕ v) ⊕ w
(4) u ⊕ v가 연속이고 미분가능할 것
(5) u ⊕ v가 u와 v의 증가함수일 것
이 조건들로부터
u ⊕ v = ( u + v ) / (1 + u v / c^2 )
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라고 쓴 것은 윗첨자(어깨번호)를 나타내는 기호입니다. 그러니까 ^2은 제곱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수학적으로 따지고 들어가서 풀면
u = c tanh ϕ
라는 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tanh는 쌍곡 탄젠트 함수라는 것인데, 조금 더 알려진 탄젠트 함수와 유사한 함수입니다.
장-마르크 레비-르블롱과 장-피에르 프로보는 이 ϕ를 '상대론적 빠르기 rapidity'라 부르자고 제안했고, 지금은 표준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Jean‐Marc Lévy‐Leblond and Jean‐Pierre Provost (1979) "Additivity, rapidity, relativity"
American Journal of Physics 47, 1045 (1979); https://doi.org/10.1119/1.11972
아무래도 조금 복잡해 보이는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63-164쪽에는 훨씬 더 간단하고 명료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우선 속도라는 것은 거리/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로축이 시간이고 세로축이 거리인 그래프 안에서 보면, 속도는 곧 기울기입니다.
기울기를 가장 깔끔하게 나타내는 방법은 탄젠트 함수를 쓰는 것입니다. 탄젠트 함수는 (높이)/(밑변)으로 정의되니까요.
기울기의 더하기(즉 상대적 기울기)가 단순한 덧셈이 아닌 것은 위에서 언급했는데, 164쪽의 그림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상대적 기울기는 각을 빼서 그 탄젠트 값을 구하면 되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tan (α - β)가 바로 상대적 기울기입니다.
그 다음은 할 수 없이 수학 공식을 이용해야 합니다. 수학 공식이란 일종의 목공도구 같은 것이어서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쓰고 다시 원래 장소에 잘 놓아두면 유용합니다.
아래 그림을 이용하면 tan (α - β)의 공식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눈사람님(황승미님)이 그려주셨습니다.
이제 164쪽의 (3-1)식과 (3-2)식이 분명해졌고, 이 기울기를 속도로 대치하면 (3-3)식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대문자로 쓴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속도가 아니라 속도비입니다. 시간을 공간과 같은 단위로 쓰기 위해서 tau=k t와 같이 k 인수를 곱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보편적 속도 c를 k=ic 가 되도록 도입하면, 바로 상대론적 속도 덧셈 공식이 됩니다. 이것이 (3-6)식입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복소수를 이용하여 4차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기울기(탄젠트)와 속도가 바로 연결되고, k=ic가 필요합니다.
Lucas-Hodgson을 비롯한 표준적인 접근에서는 복소수를 도입하지 않고 대신 탄젠트 함수가 아니라 쌍곡 탄젠트 함수를 써서 전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 경우에는 처음부터 c가 들어갑니다.
어느 접근이 더 알아듣기 쉽거나 받아들이기 쉬운지 하는 것은 더 이야기 나눌만한 주제일 것 같습니다.
단순히 물리학이나 자연철학만이 아니라 철학이든 예술이든 음악이든 인류학이든 모든 면에서 시간과 공간은 별개의 축으로 여겨졌습니다.
약간 과장하면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일반언어학강의에서 도입한 공시성(synchrony)과 통시성(diachrony)의 구별도 시간과 공간이 독립적이라는 믿음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물리학, 그 중에서도 운동학(kinematics)에 국한해서 볼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속도의 덧셈'입니다. 상대성이론을 다루는 수많은 초급 단계의 책들에서 이 문제가 부각되지 않은 것은 좀 이상할 정도입니다. 본격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상대성이론을 다루는 책들에서도 '속도의 덧셈'은 다소 지나가는 문제인 것처럼, 더 정확히 말하면 가령 로렌츠 변환의 결과인 것처럼 다루어집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어떤 면에서 매우 독보적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좋아하는 책을 하나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Lucas, J.R. & Hodgson, P.E. (1990) Spacetime and Electromagnetism. Clarendon Press.
루카스는 철학자이고 호지슨은 물리학자입니다. 이 두 사람이 "시공간과 전자기학"이란 제목으로 엮어낸 여러 편의 논문들이 주옥 같습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제3장의 핵심 주장을 염두에 두고 Lucas-Hodgson (1990)을 참조하여, 속도의 덧셈과 관련된 내용을 짧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속도의 덧셈은 흔히 상대속도라고 합니다. 가령 시속 80킬로미터로 움직이는 자동차에서 시속 120킬로미터로 야구공을 던지면, 밖에서 볼 때 야구공의 속도가 얼마일까? 하고 묻는 거죠. 조건은 자동차도 일정한 속도로 반듯하게 가고 있고 야구공도 그 방향으로 일정한 속도로 반듯하게 가야 합니다. (이것을 관성계라 부릅니다.) 자동차가 가속되거나 야구공이 가속되면 안 됩니다. 또 방향이 달라져서도 안 됩니다.
이 떄 직관적인 답은 시속 80킬로미터와 시속 120킬로미터를 더해서 시속 200킬로미터라는 답이 될 것입니다. 상대성이론은 이 직관적 관념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더하기'가 항상 그냥 덧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기울기를 더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죠. 사다리가 기울기가 1/6이 되도록 벽에 놓여 있고 또 다른 사다리가 기울기가 1/4이 되도록 벽에 놓여 있을 때 두 기울기를 더하면 어떻게 될까? 하고 묻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1+1)/(6+4)=2/10=1/5이라거나 1/6+1/4=5/12라고 대답하면 틀립니다.
Lucas-Hodgson은 이 더하기를 ⊕로 표시하고, 이 새로운 덧셈이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1) u ⊕ 0 = u, 0 ⊕ u = u
(2) 어떤 보편값 c가 있어서 u ⊕ c = c, c ⊕ u = c
(3) 결합규칙: u ⊕ (v ⊕ w) = (u ⊕ v) ⊕ w
(4) u ⊕ v가 연속이고 미분가능할 것
(5) u ⊕ v가 u와 v의 증가함수일 것
이 조건들로부터
u ⊕ v = ( u + v ) / (1 + u v / c^2 )
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라고 쓴 것은 윗첨자(어깨번호)를 나타내는 기호입니다. 그러니까 ^2은 제곱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수학적으로 따지고 들어가서 풀면
u = c tanh ϕ
라는 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tanh는 쌍곡 탄젠트 함수라는 것인데, 조금 더 알려진 탄젠트 함수와 유사한 함수입니다.
장-마르크 레비-르블롱과 장-피에르 프로보는 이 ϕ를 '상대론적 빠르기 rapidity'라 부르자고 제안했고, 지금은 표준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Jean‐Marc Lévy‐Leblond and Jean‐Pierre Provost (1979) "Additivity, rapidity, relativity"
American Journal of Physics 47, 1045 (1979); https://doi.org/10.1119/1.11972
아무래도 조금 복잡해 보이는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63-164쪽에는 훨씬 더 간단하고 명료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우선 속도라는 것은 거리/시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로축이 시간이고 세로축이 거리인 그래프 안에서 보면, 속도는 곧 기울기입니다.
기울기를 가장 깔끔하게 나타내는 방법은 탄젠트 함수를 쓰는 것입니다. 탄젠트 함수는 (높이)/(밑변)으로 정의되니까요.
기울기의 더하기(즉 상대적 기울기)가 단순한 덧셈이 아닌 것은 위에서 언급했는데, 164쪽의 그림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상대적 기울기는 각을 빼서 그 탄젠트 값을 구하면 되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tan (α - β)가 바로 상대적 기울기입니다.
그 다음은 할 수 없이 수학 공식을 이용해야 합니다. 수학 공식이란 일종의 목공도구 같은 것이어서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쓰고 다시 원래 장소에 잘 놓아두면 유용합니다.
아래 그림을 이용하면 tan (α - β)의 공식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눈사람님(황승미님)이 그려주셨습니다.
이제 164쪽의 (3-1)식과 (3-2)식이 분명해졌고, 이 기울기를 속도로 대치하면 (3-3)식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대문자로 쓴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속도가 아니라 속도비입니다. 시간을 공간과 같은 단위로 쓰기 위해서 tau=k t와 같이 k 인수를 곱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보편적 속도 c를 k=ic 가 되도록 도입하면, 바로 상대론적 속도 덧셈 공식이 됩니다. 이것이 (3-6)식입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복소수를 이용하여 4차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기울기(탄젠트)와 속도가 바로 연결되고, k=ic가 필요합니다.
Lucas-Hodgson을 비롯한 표준적인 접근에서는 복소수를 도입하지 않고 대신 탄젠트 함수가 아니라 쌍곡 탄젠트 함수를 써서 전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 경우에는 처음부터 c가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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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점점 못알아듣고 있습니다. ㅠ.ㅠ 예습도 복습도 막 쌓여가네요.. ^^;
앗! 죄송합니다. 제딴에는 좀 쉽게 풀어보려고, 도움이 되려고 쓴 글인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ㅠ 중간에 Lucas-Hodgson 인용한 부분은 일단 넘기고 중간에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63-164쪽 언급한 부분부터 읽으시면 오히려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Lucas-Hodgson의 접근은 더 일반적인 것인데, 장회익 선생님은 훨씬 더 직관적인 방식을 택하시고 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도움주시는 글들은 매우 많이 도움이 되고 있고 엄청나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내용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어서 따라가기가 버거워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ㅠ.ㅠ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쓰는 글은 일종의 보충 내지 비평인 셈인데, 많은 경우 원전에 대한 보충/비평은 원전을 대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다시 읽어볼수록 장회익 선생님의 글이 아주 친절하고 명료해서 다른 것을 볼 필요 없이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제 보충/비평은 말 그대로 제 자신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쓴 것입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텍스트를 다시 읽을수록 제 자신에게서도 이 생각 저 생각 자꾸 여러 생각이 떠올라서 게시판에 이것저것 쓰다 보니 보충이 아니라 제 글을 쓰고 있는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곱씹어 보면 결국 학문이란 것이 다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책과 글을 읽고 내 생각을 발전시키고 다시 내 생각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이 책과 글을 읽고 그러면서 점점 더 앎의 지평이 넓어져가는 것이죠. 제가 지금 그런 지평의 확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위에 쓴 내용 중 잘못된 것이 있어 정정합니다. 상대론적 빠르기(rapidity)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북아일랜드의 물리학자 알프레드 롭(Alfred Arthur Robb)입니다. 1911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보다 1년 앞서 1910년에 크로아티아의 수학자 블라드미르 바리착과 영국의 수학자 에드먼드 테일러 휘태커가 쌍곡 탄젠트 함수를 이용하여 속도를 나타낼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Rapid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