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적 앎의 중요성과 주역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1-11-11 14:23
조회
2356
장회익 선생님의 심학십도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제1도는 장현광의 우주설 답동문을 인용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예측적 앎의 중요성과 의미가 부각됩니다.
장현광(1631): "이렇게 얻은 이치를 통해 지난 일들을 추구해 보면 오늘의 일로써 지난 만고의 일들을 가히 알 수 있으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추구해 보면 다가올 만세의 일들도 오늘의 일을 통해 가히 알아낼 수 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53-54쪽)
이 텍스트의 마지막 구절이 매우 의심심장합니다. 그런데 장회익 선생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이 텍스트는 18세기말-19세기초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시몽 드 라플라스의 텍스트와 매우 유사합니다.
라플라스(1812): "우주안의 가장 큰 물체들부터 가장 가벼운 원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의 운동을 한 개의 수학적 공식에 의해 기술할 수 있다. 여기에는 불확실한 아무것도 있을 수 없으며, 과거는 물론 미래도 직접적으로 이 존재의 관측 아래 놓인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28쪽)
1814년에 나온 이 텍스트가 실상 <확률의 해석이론>의 서문에 등장한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지만, 텍스트만으로 본다면 1631년에 나온 장현광의 텍스트와 거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이 신기합니다. 그래서 장현광이 라플라스보다 거의 두 세기 앞서서 이와 같은 중요한 통찰을 보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뉴턴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세계 전체에서는 모든 것이 수학적으로 즉 오류없이 진행함을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사물의 내부에 대해 충분히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아가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이를 계산에 넣을 수 있을 만큼 기억과 지성이 뛰어나다면, 그는 예언자(선지자)가 될 수 있고 현재 속에서 미래를 거울 안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연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현광과 라플라스의 시간 간격은 180년 가까이 되지만, 장현광과 라이프니츠는 동시대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공간 간격을 보면 유럽 끝 독일에 살던 라이프니츠와 아시아 동쪽 끝 조선에 살던 장현광이 교류를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두 사람이 놀라울 만큼 유사한 생각을 하고 또 기록하게 된 것일까요?
저의 가설 하나는 주역(역경 易經)이라는 텍스트입니다. 장현광이 깊이 탐독하던 텍스트들이 신유학 즉 성리학 또는 주자학인데 이 중에서도 특히 주역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라이프니츠는 당대에 유럽에 전파된 주역의 라틴어 번역본을 깊이 탐독한 것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장현광과 라이프니츠는 왜 예측적 앎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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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窮理 곧 이치를 캔다는 것은 마음과 뜻을 터무니없고 허무한 일들에 뛰놀게 두는 것이 아니다. 형形 없는 형과 상象 없는 상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궁리다. <대학(大學)>에서는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에 있다고 말한다. 사물을 좇아 뚫어보는 일 없이 어떻게 참된 앎에 이를 수 있겠는가. ... 우리의 눈이 미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 이치를 철저히 궁구할 것이며 눈이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 수 있는 귀가 있으니 들어서 알게 된 것을 근거로 사물을 궁구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얻은 이치를 통해 지난 일들을 추구해 보면 오늘의 일로써 지난 만고의 일들을 가히 알 수 있으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추구해 보면 다가올 만세의 일들도 오늘의 일을 통해 가히 알아낼 수 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53-54쪽)
凡所謂窮理者 不是遊心馳意於曠蕩虛無之域 認取無形之形 無象之象 而謂之窮理也 大學曰致知在格物 若不從有物而格之 其何因而知可致乎 ... 莫不因吾目力之所及而窮盡其理 其於目所未及者 則有耳無所不聞 故卽可因其所聞而事無不可窮者矣 以此而推諸旣往則前萬古可以今而知之 以此而推諸將來則後萬世亦以今而知之
[장현광 우주설(宇宙說 1631) 答童問]
"우주의 현재 상태는 이전의 상태로부터 도출된 결과이며 앞으로 닥쳐올 상태에 대한 원인이라 보아야 한다. 우리가 어떤 초인적 지능을 가상하여 어떤 주어진 순간에 자연계를 지배하는 모든 힘과 자연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물들의 위치를 알 수 있고 또 이 모든 정보들을 분석할 능력이 있다고 하면, 우주 안의 가장 큰 물체들부터 가장 가벼운 원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의 운동을 한 개의 수학적 공식에 의해 기술할 수 있다. 여기에는 불확실한 아무것도 있을 수 없으며, 과거는 물론 미래도 직접적으로 이 존재의 관측 아래 놓인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128쪽)
"어떤 지성이 있어서, 주어진 특정 순간에, 자연을 움직이는 모든 힘과 자연을 이루는 존재들의 각각의 상황을 다 알고 있으며, 이 모든 정보를 다 분석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나다면, 이 지성은 우주의 거대한 천체들로부터 가장 작은 원자에 이르기까지 그 운동을 같은 공식으로 포괄할 수 있을 것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그 어떤 것도 불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확률의 해석이론] (1814)
"Une intelligence qui pour un instant donné, connaîtrait toutes les forces dont la nature est animée, et la situation respective des êtres qui la composent, si d'ailleurs elle était assez vaste pour soumettre ces connées à l'anylyse, embrasserait dans la même formule, les mouvements des plus grands corps de l'univers et ceux du plus léger atome: rien ne serait incertain pour elle, et l'avenir comme le passé, serait présent à ses yeux.''
[P.S. Laplace, Théorie analytique des probabilités (Courcier, Paris, 1814) p. 2.]
"모든 것이 예정된 운명에 따라 일어난다는 것은 3 곱하기 3이 9라는 것만큼이나 확실하다. 모든 것은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일어나는 일은 틀림없이 일어난다는 것이 운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원인에는 그 원인이 전부라면 그것이 만들어내는 특정의 결과가 있다. 전부가 아니라면 명료하고 분명한 결과가 힘의 척도에 따라 동시발생으로 생겨난다. 이는 개체가 두 개이거나 열 개이거나 천 개이거나 심지어 무수히 많을 때에도 함께 작동한다. 이는 세계에서 실제로 작동한다. 수학은 그런 것을 매우 깔끔하게 다룰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힘의 수와 척도와 무게에 따라 주어지기 대문이다. 가령 공 하나가 다른 공과 허공에서 충돌한다고 하자. 충돌 전에 그 공들의 크기와 궤적과 방향을 알고 있다면 그 공들이 충돌 뒤에 어떻게 튕겨나가 어떤 경로를 따라 움직일지 예측하고 계산할 수 있다. 공이 몇 개가 되든지 또는 공이 아닌 다른 물체이든지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매우 간단한 법칙을 얻을 수 있다. 이로부터 세계 전체에서는 모든 것이 수학적으로 즉 오류없이 진행함을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사물의 내부에 대해 충분히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아가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이를 계산에 넣을 수 있을 만큼 기억과 지성이 뛰어나다면, 그는 예언자(선지자)가 될 수 있고 현재 속에서 미래를 거울 안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을 것이다."
"Dass alles durch ein festgestelltes Verhängnis herfürgebracht werde ist ebenso gewiss, als dass drei mal drei neun ist. Denn das Verhängnis besteht darin, dass alles aneinander hänget wie eine Kette, und eben so ohnfehlbar geschehen wird, ehe es geschehen, als ohnfehlbar es geschehen ist, wenn es geschehen. [...] Nemlichen jede Ursache hat ihre gewisse Würkung, die von ihr zuwege bracht würde, wenn sie allein wäre; weilen sie aber nicht allein, so entstehet aus der Zusammenwirkung ein gewisser ohnfehlbarer Effekt oder Auswurf nach dem Mass der Kräfte, und das ist wahr, wenn nicht nur zwei oder 10 oder 1000, sondern gar unendlich viel Dinge zusammen wirken, wie dann wahrhaftig in der Welt geschieht. Die Mathematik oder Messkunst kann solche Dinge gar schön erläutern, denn alles ist in der Natur mit Zahl, Mass und Gewicht oder Kraft gleichsam abgezirkelt. Wenn zum Exempel eine Kugel auf eine andere Kugel in freier Luft trifft, und man weiss ihre Grösse und ihre Lini und Lauf vor dem Zusammentreffen, so kann man Vorhersagen und ausrechnen, wie sie voneinander prallen, und was sie vor einen Eauf nach dem Anstoss nehmen werden. Welches gar schöne Regeln hat; so auch zutreffen, man nehme gleich der Kugeln so viel man wolle, oder man nehme gleich andere Figuren als Kugeln. Hieraus sieht man nun, dass alles mathematisch, das ist, ohnfehlbar zugehe in der ganzen weiten Welt, so gar, dass wenn einer eine genügsame Insicht in die inneren Teile der Dinge haben könnte, und dabei Gedächtnis und Verstand genug hätte, umb alle Umstände vorzunehmen und in Rechnung zu bringen, würde er ein Prophet sein, und in dem Gegenwärtigen das Zukünftige sehen, gleichsam als in einem Spiegel."
[Leibniz, “Von dem Verhängnisse,” Hauptschriften zur Grundlegung der Philosophie, ed. E. Cassirer & A. Buchenau (Leipzig, 1924) Bd. 2, S.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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