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덤의 질문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자연철학
지난 번 자연철학 세미나에서 제가 짧게 조지프 니덤의 질문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 문제는 대표질의를 해 주신 이재일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제 의견이기도 하지만, 다음 모임에서 이야기나눌 주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간단하게나마 여기에 그 내용을 정리해 두려 합니다.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 1900-1995)은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중국학자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Joseph_Needham
생화학자로서 발생학 분야에서 의미 있는 기여를 했고, 특히 <질서와 생명>(Order and Life)이라는 제목의 강연과 이를 모아 낸 책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니덤의 정말 중요한 업적은 1954년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발간한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입니다. 지금까지 25권이 발간되었고 아직 한 권의 편집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Science_and_Civilisation_in_China
중국의 과학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니덤은 영국의 과학자로서 동아시아(동양)와 유럽(서양)의 차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탐구했습니다. 1969년에 출간된 <위대한 적정>(The Grand Titration: Science and Society in East and West)에서 이 문제를 깊이 성찰했습니다.
Needham, Joseph. The Grand Titration: Science and Society in East and West. London: Allen & Unwin, 1969.
이 저서에서 니덤은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근대과학, 자연에 대한 가설의 수학화, 그에 대한 진보한 기술의 함의가 갈릴레오 시대에 오직 서구에서만 발생했을까? 왜 그전 세기까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실제적인 인간의 요구에 적용하는 일에 서양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었던 중국 문명에서 근대과학이 발전하지 않았을까?"
"Why did modern science, the mathematization of hypotheses about Nature, with all its implications for advanced technology, take its meteoric rise only in the West at the time of Galileo? Why modern science had not developed in Chinese civilization which in the previous centuries was much more efficient than occidental in applying human natural knowledge to practical human needs?"
니덤이 던진 문제는 처음부터 심각한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니덤의 문제를 처음 배울 때 "왜 니덤의 문제가 잘못된 질문인가?"라는 주요 모티브를 중심으로 토론하고 그 내용을 상세하게 배웠습니다.
과학사에서 17세기 유럽에서 전개된 독특한 과학이론과 태도와 방법의 발전은 '과학 혁명'이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상세하게 연구되었습니다. 요즘은 '과학 혁명'이란 개념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던지는 학자들도 있긴 하지만, 여하간 지난 70여년 동안 '과학 혁명'은 '르네상스'나 '종교개혁'처럼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정립되어 있는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왜 조선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중국에서는 왜 종교개혁이 없었는가 하고 묻는 것은 이상한 질문이 됩니다.
니덤의 질문이 부적절한 첫 번째 이유는 과학의 전개가 어떤 일종의 필연적 경로를 따라간다는 선입견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니덤 자신은 동아시아 과학사를 깊이 연구한 역사학자이기도 하지만 생애의 많은 부분을 발생학과 생화학 연구에 바친 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으로 연원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은연 중에 과학의 발전을 인간 사회의 역사와 분리시키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굳이 따지면 왜 하필 17세기에 왜 하필 서유럽에서 왜 하필 몇몇 독특한 자연철학자들이 중세유럽에서부터 전해져 온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관념과 방법과 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는가 물어야 합니다. 왜 중국에서 근대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는가(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묻기에 앞서 왜 17세기 유럽에서 그런 독특한 일이 생겨난 것일까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갈릴레오는 자주 아르키메데스를 인용했습니다. 실상 갈릴레오의 수학적 방법은 미적분학이나 대수학이나 함수론 같은 것이 아니라 1세기 무렵 아르키메데스가 사용했던 그 유클리드 기하학이었습니다. 낙하법칙과 관성법칙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갈릴레오가 전혀 새로운 방법을 창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니덤의 질문을 확장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아르키메데스와 그 이후 헬레니즘 시기의 자연철학들과 이를 번역하고 계승하고 탐구한 중세 이슬람 자연철학자들과 12세기 이후 유럽에 만들어진 대학에서 깊이 토론되고 탐구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에서 근대과학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Gennady Gorelik (2017). A Galilean Answer to the Needham Question. Philosophia Scientiae. 21-1. pp. 93-110. https://doi.org/10.4000/philosophiascientiae.1244
이 논문에서 과학사학자 제나디 고렐릭은 흥미로운 문제를 던집니다. 흔히 갈릴레오는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이 더 빨리 떨어진다"는 과거의 잘못된 관념을 비판하면서 정량적 방법을 도입하여 실증적으로 자신의 새로운 주장을 내세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습니다. 갈릴레오는 대수학이나 미적분학을 거의 몰랐거나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물리학과 관련된 체계적인 논문이나 저서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과 달을 관측하여 기록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는 일기 형식 비슷하게 관측 결과를 늘어놓은 책이었습니다. 갈릴레오의 기여로 평가되는 주장들은 논리적이거나 연역적인 방식으로 증명되거나 설명된 것이 아닙니다. <천문대화 (세계의 두 주된 체계 사이의 대화)>나 <새로운 두 과학> 모두 살비아티, 사그레도, 심플리치오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대화 속에서 나름의 논리를 펼치긴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 즉 대학에서 가르쳐지던 자연철학의 내용을 신봉하는 심플리치오가 어떤 주장을 펼치면 살비아티가 이를 반박하거나 그 주장의 모순이나 문제를 지적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20세기까지도 결코 확인할 수 없었던 놀라운 가정을 꺼냅니다. '진공'이라는 관념입니다. 갈릴레오 이후의 파스칼 쯤 와서야 비로소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의 주장이 비판을 받기 시작하는데, 갈릴레오는 어떠한 경험적 근거도 없이 사변적으로 '진공'이라는 개념을 갑자기 꺼냅니다.
실제로 갈릴레오가 인용하고 있는 실험에서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의 맥락에서 14세기에 장 뷔리당이나 니콜 오렘 등이 논쟁을 벌이던 자연철학적 탐구에서 물체의 속력과 저항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있었습니다. 갈릴레오가 새로 주목한 것은 그 14세기 파리 대학의 논의와 달리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아주 빨리 떨어지지 않고 예상보다 그 차이가 아주 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갈릴레오가 무슨 근본적으로 새로운 주장을 새로운 방법을 동원하여 했다고 보는 것보다는 자연철학자로서 과거의 주장이나 접근과 다른 참신한 아이디어를 사변적으로 제시했고 이를 체계적인 저서가 아니라 대중 독자를 위한 개론서에 얼기설기 늘어놓았다는 점입니다.
다른 맥락에서는 니덤의 질문은 흔히 신유학이라고도 하고 주자학이라고도 하는 성리학의 자연철학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됩니다. 조금 이상한 일입니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제목으로 25권에 이르는 방대한 연구서를 낸 니덤이 성리학의 자연철학을 오히려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니덤의 그 유명한 저작의 대부분은 중국(한반도와 일본도 포함되기 때문에 동아시아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겠습니다)의 과학기술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9세기말 동아시아에서 흔히 이야기되던 '동도서기'도 아닌데, 니덤의 주된 관심은 사상적인 측면이 아니었습니다.
니덤의 저서가 출간되기 시작한 때가 중국과학사 또는 동아시아 기술사가 서구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연구가 거의 없던 1950년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현광은 16세기에서 17세기까지 살았던 조선의 성리학자로서 성리학을 깊이 탐구한 학자였습니다. 성리학은 12세기 송대에 주희(朱熹)가 주돈이(周敦頤)·장재(張載)·정호(程顥)·정이(程頤)·소옹(邵雍)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이고, 단지 공자와 맹자의 유가 사상뿐 아니라 도가와 불교의 존재론까지 포괄하는 체계적인 자연철학이자 윤리학이자 형이상학이었습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9308\
성리학이 탐구한 자연철학이 비록 현대과학의 관점에서는 어설프거나 부적합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엄밀하게 살펴보면 16-17세기 유럽의 근대과학이라는 것도 사실상 마찬가지였습니다.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집필함으로써 기존의 자연철학과 단절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 뉴턴이 이와 관련된 탐구를 한 것은 2년 남짓 되는 짧은 기간이었을 뿐 아니라 중력과 세계의 체계에 대한 탐구 자체가 신학과 연금술의 오랜 연구 프로젝트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뉴턴의 <광학>은 분명히 12세기 로저 베이컨 이후 중세 유럽 대학에서 맥을 이으며 탐구되어 온 빛의 존재론과 자연철학의 계보에 있습니다. 뉴턴이 빛을 일곱 개의 단색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 이유는 연금술에서 일곱 개의 금속과 일곱 개의 행성과 일곱 개의 음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뉴턴의 자연철학은 소위 르네상스 신비주의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고, 장미십자회(로지크루시안)나 신플라톤주의에 심취해 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하간 갈릴레오나 뉴턴이 독특하게도 정량적인 접근과 수학적 탐구를 내세운 점은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가령 장현광과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갈릴레오나 뉴턴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접근이 그 뒤 300년 동안 더 심화되고 더 깊이 탐구되어서 현대과학으로 계승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승의 측면에서는 장현광의 사유가 김석문과 홍대용과 최한기로 이어진 것도 나름의 중요한 연결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동아시아 과학사를 파고들어가다 보면 동아시아의 자연철학적 사유도 단순히 '대생지식'에 함몰된 것이 아니라 분명히 '대물지식'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탐구한 사람들이 면면히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홍대용이 양반 신분이면서도 혼천의를 제작하고 방정식 이론을 학습하여 주해수용과 같은 저서를 남긴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갈릴레오가 <천문대화>와 <새로운 두 과학>에서 살비아티, 사그레도, 심플리치오 세 명의 화자들의 대화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간 것처럼,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실옹과 허자의 대화로 무한우주론과 지구설, 지전설, 지동설을 말하고 우주론적 상상을 이어간 것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공지사항 |
<자연철학 강의 공부모임> 계획
시인처럼
|
2024.09.12
|
추천 0
|
조회 3811
|
시인처럼 | 2024.09.12 | 0 | 3811 |
공지사항 |
3기 새 자연철학 세미나 상세 계획
시인처럼
|
2024.09.12
|
추천 0
|
조회 3875
|
시인처럼 | 2024.09.12 | 0 | 3875 |
공지사항 |
[자료] 유튜브 대담영상 "자연철학이야기" 녹취록 & 카툰 링크 모음 (5)
neomay33
|
2023.04.20
|
추천 3
|
조회 13432
|
neomay33 | 2023.04.20 | 3 | 13432 |
공지사항 |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오표 (10)
시인처럼
|
2022.12.22
|
추천 3
|
조회 16229
|
시인처럼 | 2022.12.22 | 3 | 16229 |
공지사항 |
[공지] 게시판 카테고리 설정에 대해서 (4)
시인처럼
|
2022.03.07
|
추천 0
|
조회 12969
|
시인처럼 | 2022.03.07 | 0 | 12969 |
687 |
New [질문/토론] 온도가 크게 올라가면, U≦TS가 되어 F<0이 되는 경우가 있나요?
자연사랑
|
2025.04.18
|
추천 1
|
조회 18
|
자연사랑 | 2025.04.18 | 1 | 18 |
686 |
[나의 질문] 최우석 - '선택의 여지' 그리고 '앎과 실재' (2)
시인처럼
|
2025.04.14
|
추천 0
|
조회 45
|
시인처럼 | 2025.04.14 | 0 | 45 |
685 |
[질문/토론] 대상 물체의 현재 온도가 낮을수록 △S의 값이 크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자연사랑
|
2025.04.14
|
추천 1
|
조회 48
|
자연사랑 | 2025.04.14 | 1 | 48 |
684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범심론 (9)
유동나무
|
2025.03.30
|
추천 2
|
조회 168
|
유동나무 | 2025.03.30 | 2 | 168 |
683 |
[질문] 앎의 세 모드(역학 모드, 서술 모드, 의식 모드)와 포퍼의 세 세계
자연사랑
|
2025.03.24
|
추천 0
|
조회 151
|
자연사랑 | 2025.03.24 | 0 | 151 |
682 |
[질문] 엔트로피 법칙이 무엇인가요? (1)
자연사랑
|
2025.03.13
|
추천 0
|
조회 207
|
자연사랑 | 2025.03.13 | 0 | 207 |
681 |
[자료] 물리법칙과 '나'라는 문제
자연사랑
|
2025.03.12
|
추천 1
|
조회 216
|
자연사랑 | 2025.03.12 | 1 | 216 |
680 |
[자료] 자유에너지 경관과 준안정상태의 변화
자연사랑
|
2025.02.22
|
추천 1
|
조회 205
|
자연사랑 | 2025.02.22 | 1 | 205 |
679 |
[자료] 우주의 역사와 운명 (1)
자연사랑
|
2025.01.28
|
추천 1
|
조회 325
|
자연사랑 | 2025.01.28 | 1 | 325 |
678 |
[자료] 우주와 물질 - 개요 (4)
자연사랑
|
2025.01.27
|
추천 1
|
조회 337
|
자연사랑 | 2025.01.27 | 1 | 337 |
매번 구체적인 자료를 많이 제공해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게다가 이번 자료는, 저번 시간에 떠올랐지만 말은 못했던 이야기와 궤가 같아서 귀중하게 느껴지네요 ㅎㅎ “왜 중국에서 근대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는가(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묻기에 앞서 왜 17세기 유럽에서 그런 독특한 일이 생겨난 것일까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많이 남았습니다. 갈릴레이와 장현광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된 ‘시간’, ‘공간’이라는 말을 똑같이 쓰더라도, 그 말에 담긴 뜻과 맥락은 조선과 이탈리아의 거리만큼 멀다고 생각하기에 단순한 비교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정말 비교란 걸 먼저 하고 싶으면, “희랍인들은 많은 점에서 여전히 두드러지게 이국 민족이요, 따라서 그들의 속마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진정한 노력이 요구된다.”던 W.K.C 거스리의 말처럼, 그들이 어떤 전제와 맥락위에서 사유를 했던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먼저 필요한 것 같고요. ‘그들은 어떤 전제와 맥락 위에서 어떤 생각을 했고, 왜 그런 생각을 했고, 그게 그들의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있었고, 이게 뒤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가 지금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왜 근대화가, 근대학문이, 근대과학이 우리나라엔 없었는가’라는 질문은 한국사학계에서도 해방 이후에 참 많이 던져졌던 질문으로 기억합니다. 식민사관 때문이었죠. 그리고 식민사관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맹아론, 내재적 발전론 등의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90년대 이후에 이런 민족주의적인 시도들은 실제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어 지금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애초에 자본주의, 발전사관, 근대화 자체가 서양에서 온 단어인데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를 사람들의 삶을,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았던 동양인의 삶에서 그런 개념을 끌어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성시 교수의 『만들어진 고대』나, 이영훈 교수의 「한국사에 있어서 근대로의 이행과 특질」등이 그런 민족주의적 사관을 비판한 책과 논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식민지 근대화론 등 첨예하게 갈등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과거의 맥락을 최대한 이해해 옛 모습의 결을 최대한 살려내는 걸 목표로 많은 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대화에 사로잡히지 않고, ‘장기지속’의 관점에서 역사를 읽어내려는 작업도 많고요. 물론 이런 작업은 ‘왜 자생적인 근대화가 우리나라엔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내포된 다양한 전제와 가치판단이 많이 드러나고 반박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죠. 최근에 논의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2~4년 전에는 노관범 교수의 「근대 초기 실학의 존재론」 등 실학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논문도 여럿 나왔던 것으로도 기억합니다.
급하게 쓴 글이어서 어쭙잖은 데가 많은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니덤의 질문을 근대성 내지 모더니제이션과 연관시키는 논의도 있긴 하지만, 근대성(모더니티) 개념은 너무나 크고 다양하고 다의적이어서 대체로 생산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근대성(모더니티)을 자연철학이 ‘과학’이 되는 것, 법칙과 원리에 따라 세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도 ‘근대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깊이 하는 것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논의를 확장하면 장현광과 같은 독특한 성리학자가 조선에서 모더니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단칠정이나 일상사의 다소 무의미한 논의들과 달리 우주론의 문제, 자연철학의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합리적 사유, 즉 ‘리’와 ‘형’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유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뉴턴의 자연철학과 관련하여 PBS Nova에서 “Newton’s Dark Secret”이란 제목으로 방영한 다큐멘터리가 여러 면에서 유익합니다. https://www.youtube.com/embed/s2YZN2L700Q" width="560" height="315" frameborder="0" webkit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 allowfullscreen>" target="_blank" rel="noopener">
어쩌면 첨부파일에 있는 논문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송석모․이광규․이상룡 (2013) "니덤을 다시 생각한다 : 중국의학과 근대성" 동의생리병리학회지 27(5): 520-529.
첨부파일 : 니덤-중국의학과근대성.pdf
세미나 때 잘 못 알아 들었는데,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쭙잖은 글에 고맙다고 해 주시니 무척 고맙습니다. 온라인 모임 때에는 아무래도 될수록 많은 분들이 말씀을 하시는 게 좋을 터라 제 이야기를 되도록 짧게 하려 애쓰고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