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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더 나은 앎으로 푸른 미래를 가꾸는 사람들의 공부모임

새 자연철학 세미나

두 번째 모임을 위한 질문: 자연철학이 정확히 어떤 것일까요?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1-09-26 15:55
조회
1949

2021년 9월의 마지막 날에 예정되어 있는 두 번째 자연철학 세미나를 위한 질문을 올립니다.

제 질문은 간단합니다. 자연철학이 정확히 무엇일까요?

저는 물리학을 오랫동안 공부해왔지만 동시에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함께 공부해 오고 있습니다. 표준적인 과학사에서는 19세기까지는 현대적 의미의 '과학 science'가 없었고 그 대신 '자연철학 natural philosophy'과 '자연사(박물학) natural history'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전에는 16세기-17세기에 유럽에서 전개된 소위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을 통해 근대과학이 만들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과학혁명이란 것은 애초에 없었다."라는 식의 주장도 많이 들립니다. 무엇보다도 기술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사회와 문화를 바꾸는 거대한 힘이 된 전문적인 과학은 19세기에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1830년대에야 비로소 '과학자 scientist'라는 말이 처음 만들어진 것도 그 무렵에야 과학의 전문분야들이 여럿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생물학(biology)이란 용어도 1802년에 처음 등장했고, 18세기까지 광물 연구도 포함했던 물리학(physics)이 하나의 전문분야로 정립되어 '물리학자 physicist'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19세기의 일입니다. 과학자를 의미하는 scientist는 1833년에 처음 등장했고,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1834년이 최초이므로, 대략 1800년 무렵 전까지는 science를 전문으로 하는 집단이 따로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과학(科學)이란 용어를 처음 쓴 것은 1870년대 일본의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로 공인되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Nishi_Amane) 한국어 '과학'은 큰 고민 없이 일본어의 '가가쿠'의 한자 표기를 그대로 음차한 것입니다. 니시는 Philosophie를 希哲(키테츠) 또는 哲学(테츠가쿠)로 번역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科学(가가쿠)는 영어 science 또는 네덜란드어 Wetenschap의 번역어로 니시가 만들어낸 단어입니다.

영어의 science는 14세기에 처음 나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단어 자체는 ‘지식’ 또는 ‘앎’ 일반에 대해 사용된 용어라서, 지금처럼 자연에 속한 것을 탐구하고 논쟁하는 지식체계라는 의미로는 natural philosophy (자연철학)라는 용어가 훨씬 더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독일어로 Naturphilosophie가 자연철학인데, 영어에서 Naturphilosohie는 이탤릭체로 쓰고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관념론을 주로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는 반면, 독일어권에서는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철학부터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과 이슬람 자연철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19세기 이전에는 "철학을 잊은 과학"이나 "과학을 잊은 철학"이 따로 없었고, 오히려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인 자연철학은 면면히 맥을 이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사 분야에서 자연철학의 시초는 흔히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자연철학자들로 봅니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서, 아낙시메네스 등의 초보적인 원질(아르케) 논쟁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 대 존재"의 논쟁으로 이어졌고, 이를 집대성하여 체계화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주장들을 차치하고 자연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광범위한 논의는 이슬람 자연철학으로 이어집니다. 9세기 무렵의 야쿠프 이샤크 알킨디(Yaʻqūb ibn ʼIsḥāq al-Kindī)나 11세기의 알하산 이븐 알하이쌈(al-Ḥasan ibn al-Haytham)은 세상이 어떻게 생겨나서 어떤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생명이 무엇인지, 우리가 본다는 것이나 안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가능한 것인지 등에 대해 상세한 주장들을 남겼습니다.

200년 넘도록 활발하게 탐구되던 이슬람 자연철학은 12세기 기독교권 유럽에 홍수 같은 폭발적 번역으로 라틴어 번역본들이 되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에 생겨난 대학(우니베르시타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에 속하는 라틴어 번역본들을 교과과정의 교과서로 삼으면서 중세 라틴어권 유럽에서 자연철학은 더 깊이 탐구되었습니다.

1543년에 출간된 베살리우스의 <인체구조론>이나 코페르니쿠스의 <천체회전론>처럼 16세기 중엽부터 새로운 조류가 나타나긴 했지만, 17세기의 아이작 뉴턴도 자신의 저서 제목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고 불렀고, 이런 논의를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자연철학을 탐구한다고 믿었습니다.

장현광의 탐구도 비록 유라시아 대륙 반대쪽에서 있었지만 분명히 자연철학적 탐구였습니다. 실상 11세기 이후 성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신유학, 즉 공자-맹자의 유학과 노자-장자의 도교 및 주역의 전통과 불교의 형이상학 및 존재론이 융합된 새로운 탐구야말로 자연철학의 근간이었고, 장현광은 이 계보에 속한 학자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실상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근본과 구성원리와 생명과 우주와 사람과 인식과 지식을 탐구하는 일은 인류의 역사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난 2천여년 동안 줄기차게 계속된 가장 근원적인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철학의 개념을 최대로 넓혀 놓고 보면 모든 지적 탐구가 다 자연철학이라는 우산 아래 모이기 때문에 문득 '자연철학'이란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또 21세기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여러 종교들(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불교)이 뭔가 '종교(宗敎)' 즉 "최고의 가르침"으로 되어 있는 것도 실상 자연철학에서 탐구되는 여러 의문과 질문들에 어떤 식으로든 답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학과 철학의 분리는 그 자체로 상당한 분량의 논문 또는 단행본 이상의 대답이 필요한 매우 복잡하고 어렵고 또 그만큼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철학사의 맥락에서는 20세기 이전까지는 과학에 속한 주제들과 겹치는 문제를 많이 다루었고, 예를 들어 칸트가 철학을 엄밀한 과학(Wissenschaft)의 기반 위에 놓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흔히 이 때의 Wissenschaft가 ‘과학’과는 다르다고 여겨서 그냥 ‘엄밀한 학’ 또는 ‘엄밀한 학문’으로 번역하지만, 칸트 자신에게는 자연에 대한 탐구와 정신에 대한 탐구가 전혀 분리된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1882년에 낸 책 Die fröhliche Wissenschaft도 영어로 The Gay Science로 번역되었습니다. (처음에는 Joyful Wisdom이라 번역되었습니다.) 빌헬름 딜타이가 1880년대에 자연과학(Naturwissenschaften)과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en)을 구별하면서 ‘과학’은 자연과학을 대체로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정신과학’이란 독일어 용어를 가령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철학’과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논리실증주의와 영미 분석철학이 힘을 갖게 되면서, 철학에서 다루는 세부 주제들은 사실상 모두 각각의 개별과학으로 모두 분산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철학에서 형이상학(존재론), 인식론, 윤리학이 가장 핵심적인 영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가장 추상적이며 가장 보편적인 주제는 개별과학에서는 도무지 다룰 수 없는 거대한 영역이 되어 있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개별과학과 연결되어 있어서, 철학과 과학의 대화가 절실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생각해 볼 점은 19세기 중엽 이후의 과학은 사실상 기술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브뤼노 라투르 같은 프랑스의 사상가는 이러한 과학을 흔히 말하는 과학(science)과 구별하기 위해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제안했습니다. 이 테크노사이언스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자연에 대한 탐구나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현실적 필요와 자본주의적 이윤(소위 '가치')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입니다. 물론 '테크노사이언스'를 이렇게 협소하게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테크노사이언스'는 "철학을 잊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철학과 만난 적조차 없을지 모르고, 나아가 처음부터 경제와 가장 절친한 사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탐구하는 철학에서 개별적/전문적인 주제를 탐구하는 다양한 과학이 분과학문으로 생겨나고 점점 더 세분화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고 거스리기 힘든 대세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제 철학자들은 세부적인 주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나 인식 자체에 대한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탐구를 자신의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과학을 잊은 철학"이나 "철학을 잊은 과학"을 넘어서는 통합된 자연철학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고 필요한지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두서 없고 난삽한 질문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과학사나 과학철학과 같은 과학학 분야에서는 자연철학을 19세기 이전의 과학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고, 동아시아의 신유학 사유의 전통도 기실 자연철학이었으며, 테크노사이언스에 가까운 현대 자연과학은 처음부터 문화와 사상으로서의 과학과 구별되어 전개되었다고 보면, 기술과 경제에 붙박여 있는 현대 자연과학이 자연철학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은 아닐까요? 새 자연철학의 의미는 결국 19세기 이전의 정신과 자세로 돌아가자는 것일까요? 새 자연철학이 추구하는 '자연철학'은 정확히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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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눈사람님이 이 글에 대해 답글을 달아주셨던 것 같은데, 그 글에 저의 의견을 달려다 보니까 그 글이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2025.05.23
제 부족한 답변이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흔적'이란 표현을 확장하면 '변별체의 철학'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주되지 않은 음악이 존재하긴 할까, 하는 상상을 해 보는데, 어쩌면 연주되지 않았다고 해도 악보 속에, 작곡가의 머리 속에, 곡을 해석하는 지휘자의 마음 속에, 곡을 들으려는 청중의 열망 속에 이미 존재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2025.05.23
그 논문은 겹실틈 실험을 이용하여 확률분포의 시간의존성을 확인해 보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겹실틈을 지난 뒤 다음 스크린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계산하면, 다른 해석에 대하여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의 표준 형식체계 외에 드브로이-봄의 길잡피 파동 이론, 넬슨의 확률통계적 접근 등을 도입하여 비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실험 구상만은 아니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시뮬레이션 실험을 한 것입니다.
2025.05.23
유익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사진 덕분에 미소 짓고 갑니다! ^^ 책이 와서 책도 보고 올려주신 영상 자료도 보았습니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 '전자를 쏘았다' 라고 했을 때 쏜 그 행위 자체도 전자 입장에서는 관측되어 진 상황일텐데요. 전자 스스로가 날아간게 아니라 어떤 물리적 장치에 의해 날아갔으니까요.. 스크린에 남겨진 흔적은 전자의 어떤 흔적인가요? 전자가 만약 입자라면 부딛혀서 뭐가 남은건지(물리적 흔적이겠죠?), 흔적(표식)의 정체도 궁금하고요 슬릿이라는 조건이 전자 상태를 규정하는 중요한 틀 이라면 전자를 슬릿 없이 보낼 경우.. 그 양상(?)은 다르게 나타났을까요? 전자 자체가 알갱이가 아니라 관계성 그 자체라고 상상해보니 지금까지 알고 있던 원자, 전자 이런 용어들이 더욱 낯설게 느껴집니다! (음악도 음악 자체가 있는게 아니라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음악이 되기도 하고 소리, 소음이 되기도 하고.. 또 연주되지 않은 음악은 음악이라고 할 수 없겠죠? 음악도 가능성의 상태로 존재하다가 연주자가 연주함으로써 음악으로 드러나는 구조라고 생각되네요~ 즉 연주자가 관측자 역할을 할 때 의미 있게 되는 것 같다고 느껴졌어요) 제가 눈의 갯수를 언급했던 이유는요~ 사람의 눈이 두 개이기 때문에 인지할 수 있는 차원이나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에서 였어요. 언급하셨던 도마뱀과 같은 동물들은 인간과는 다른 시각체계를 갖고 있고 또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을 인지하니 말이에요. 새로운 존재구조나 개념을 상정해보려면 이미 알고 있는 개념 너머에 있는 가능성도 생각해보았어요
2025.05.22
맞습니다. 아주 적절하고 중요한 지적입니다.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긴 하지만, 파동이라는 개념을 쓰기는 것보다는 마당(field 場)이라는 개념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대개 "입자 vs 파동"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더 정확하고 의미 있는 대조는 "입자 vs 마당"입니다. 실상 '마당'이라는 것도 고전적 마당과 양자 마당이 구별됩니다. 파동이라 부르는 것은 위치와 시간의 함수로서 결국 일종의 마당입니다. 다만 마당이 언제나 파동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긴 해도 대부분의 마당은 어떤 식으로든 파동과 연결됩니다. 이와 달리 입자는 마당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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