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속으로의 속력이란 개념
세 가지 접근을 비교해 보기로 합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비교하기 위해 고유시간을 $t_0$라 표기합니다.
(1) 최근의 물리학 교과서 (표준적인 서술)
4차원 '위치': $$ X(t_0) = (t(t_0), x(t_0), y(t_0), z(t_0))$$
4차원 '속도': $$U (t_0) = (\frac{d t(t_0)}{dt_0} , \frac{d x(t_0)}{dt_0}, \frac{d y(t_0)}{dt_0}, \frac{d z(t_0)}{dt_0}) = (\gamma c , \gamma v_x , \gamma v_y , \gamma v_z)$$
4차원 '속력'의 제곱: $$ U^2 = (\gamma c)^2 - (\gamma V)^2 = c^2 \gamma^2 (1- V^2 / c^2 ) = c^2$$
약간의 발견법적인 논리를 이용하면
$$c^2 d t_0 ^2 =c^2 dt^2 - d{\vec x}^2 $$ 로부터
$$ c^2 = c^2 \left(\frac{d t}{dt_0}\right)^2 - \left(\frac{d\vec x}{dt_0}\right)^2$$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t, x)$가 모두 $t_0$의 함수라는 것입니다.
이 식의 등호 오른쪽에서 첫 번째 항은 시간 좌표를 고유시간으로 미분한 성분이고, 두 번째 항은 공간 좌표를 고유시간으로 미분한 성분입니다. 이 두 성분의 제곱의 차가 광속과 같은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민코프스키 시공간의 거리함수텐서 개념을 도입해야 해서 조금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그 약간의 복잡함을 그냥 넘어가기로 하면, 매우 중요한 관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각각 하나의 실체로 받아들이는 대신 이 둘을 합한 시공간이 실체임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운동을 서술할 때 도입하는 속도나 가속도도 세 개의 공간 좌표가 아니라 네 개의 시공간 좌표로 표현해야 합니다. 이것이 물리량이 '벡터'라는 말의 참된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네 개의 시공간 좌표가 각자 알아서 독립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되어 소위 '상대성 원리(principle of relativity)'가 '상대주의(relativism)'로 변질되기가 아주 쉬워집니다. 상대성이론에 대해 오랜 오해가 "무엇이든 절대는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라는 잘못된 관념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민코프스키는 4차원 시공간 개념을 도입하면서 동시에 "세계 절대의 원리"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시공간의 네 좌표는 어느 좌표계에서 보는가에 따라 값이 달라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좌표는 일정한 관계를 언제나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공간 좌표의 경우에는 $$ s^2 = x^2 + y^2 + z^2 - c^2 t^2 = x'^2 + y'^2 + z'^2 - c^2 t'^2$$과 같이 공간적 거리의 제곱에서 광속과 시간을 곱한 값의 제곱을 뺀 것은 어느 좌표계에서 보더라도 같아야 합니다. 또 이 4차원 불변 간격은 고유시간과 직접 연결됩니다. $$ s^2 = - c^2 t_0 ^2 $$ 그래서 4차원 불변 간격을 말하는 대신 고유시간을 말해도 됩니다. 고유시간이란 개념이 그냥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상대성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4차원 속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마침 그 값은 광속과 같아야 합니다. $$ c^2 = c^2 \left(\frac{d t}{dt_0}\right)^2 - \left(\frac{d\vec x}{dt_0}\right)^2 = c^2 \left(\frac{d t'}{dt_0}\right)^2 - \left(\frac{d\vec x'}{dt_0}\right)^2 $$
에너지-운동량도 이렇게 연결됩니다. 운동량의 시간성분이 에너지이므로 어느 좌표계에서 보는가에 따라 에너지의 값, 운동량의 값은 달라집니다. 그러나 4차원 불변량은 어느 좌표계에서 보더라도 똑같아야 합니다. $$ E^2 - (\vec p c)^2 = E'^2 - (\vec p' c)^2 = (m c^2)^2$$
길이의 단위를 광초나 광년으로 선택하면 광속은 언제나 $c=1$이라서 위의 식은 $$E^2 - \vec p^2 = E'^2 - \vec p'^2 = m^2$$으로 더 간단하게 쓸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질량은 4차원 불변량이 됩니다. 어느 좌표계에서 보더라도 질량은 똑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수학 용어로는 '스칼라'라고 부릅니다.
(2) 복소수를 도입한 서술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공간은 한 차원만 표시하기로 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습니다.
2차원 시공간의 '위치': $$ X (t_0) = x(t_0)+ ict (t_0)$$
2차원 '속도': $$ U(t_0) = \frac{d x}{dt_0} + ic \frac{dt}{dt_0}$$
2차원 '속력'의 제곱: $$ U^2 = c^2$$
위의 식에서 $ \tau = ict$, $\tau_0 = ict_0$와 같이 좌표시간 및 고유시간에 광속을 곱하고 허수단위를 곱한 값을 새로 정의하면
$$ c^2 = c^2 \left(\frac{d t}{dt_0}\right)^2 - \left(\frac{d\vec x}{dt_0}\right)^2$$가
$$ 1 = \left(\frac{d \tau}{d\tau_0}\right)^2 + \left(\frac{d\vec x}{d\tau_0}\right)^2$$로 바뀝니다.
(3) 브라이언 그린의 접근
고유시간과 좌표시간의 관계 $$c^2 dt_0 ^2 =c^2 dt^2 - d{\vec x}^2 $$로부터 $$ c^2 d t_0 ^2 + d\vec x ^2 = c^2 dt^2$$이 되므로 $$ c^2 = c^2 \frac{dt_0 ^2}{dt^2} + \frac{d\vec x^2}{dt^2} = c^2 \left(\frac{dt_0}{dt}\right)^2 + \left(\frac{d\vec x}{dt}\right)^2$$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식에서 등호의 왼쪽 편과 오른쪽 편에서 항들을 옮기는 것은 수학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해석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 식의 오른쪽 변에서 첫째 항이 “시간 방향으로의 속력(speed through time)”이고 둘째 항이 “공간 방향으로의 속력(speed through space)”이라는 게 그린의 설명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부적절한 이유는 4차원 시공간의 '위치'를 나타내는 네 개의 좌표는 모두 고유시간의 함수이며, 이 네 좌표를 고유시간으로 미분하여 4차원 속도를 얻는 것은 그 자체로 수학적으로 올바르게 정의되지만, 상대성이론에서는 공간좌표를 시간좌표로 미분하는 것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성이론을 다룬 흔한 물리학 교과서들뿐 아니라 전반적인 구조와 구도를 고려한 물리철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운동을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나아가 이 둘을 결합한 시공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좌표계들 사이의 관계는 시공간의 확장된 '회전'으로 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다른 좌표계에서 시간이 늘어나거나 길이가 줄어드는 것을 시공간 회전의 기하학적 표현에서 쉽게 이해하고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린이 "시간 속으로의 속력"과 "공간 속으로의 속력" 개념을 도입해서 대중과학 책에서 얻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그린의 독특한 접근은 4차원 속력이 빛이든 빛이 아니든 모든 경우에 항상 $c$ 즉 광속이 된다는 주장에서 시작합니다. 빛은 광속으로 움직이지만 빛 이외의 물체는 광속보다 작은 속력으로 움직인다고 말하는 것이 직관적인 상식입니다. 그린의 생각은 다릅니다. 4차원 시공간에서 생각하면 모든 물체가 광속으로 움직인다고 말해야 한다는 겁니다.
$$ c^2 = c^2 \left(\frac{dt_0}{dt}\right)^2 + \left(\frac{d\vec x}{dt}\right)^2$$라는 식에서 속력에는 두 성분이 있지만, 4차원 시공간에서는 그 두 성분의 제곱의 합이 언제나 $c^2$으로 일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두 성분은 '상보적'이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등식의 오른쪽 편에서 두 번째 항이 흔히 생각하는 공간 속의 속력인데 4차원 시공간에서는 속력이 언제나 광속으로 일정해야 하므로 빛이 아닌 물체라면 시간 속의 속력(위의 식에서 등식의 오른편의 첫 번째 항)이 0이 아니고 빛이라면 시간 속의 속력이 0이라는 발상입니다.
이상한 점은 상대성이론을 말하고 있으면서도 공간 속의 속도를 $d\vec x /dt$로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좌표시간은 관찰자가 속한 좌표계의 시간이 아닙니다. 이 좌표시간은 관찰자와 무관하게 밖에서 그냥 설정해 놓은 광역적인 좌표계의 시간입니다. 움직이거나 정지해 있는 좌표계에 고유한 시간은 위에서 잘 정의한 고유시간입니다. 이 좌표계와 저 좌표계에서 운동을 비교하고 시간 간격의 크기와 길이를 비교하려면 결국 고유시간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린의 접근처럼 시간 개념을 좌표계와 독립된 광역적인 개념으로 삼게 되면 관찰자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사실상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런 이유로 상대성이론에서는 $d\vec x / dt$가 아니라 $d\vec x / dt_0$를 속도의 공간성분이라고 놓습니다. 마찬가지로 속도의 시간성분은 $dt/dt_0$입니다.
당혹스러운 부분은 이런 내용은 현대물리학이나 고급 상대성이론에서뿐 아니라 대학 1학년에서 배우는 일반물리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강조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1학년 물리학 수업에서 이런 것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시험문제로도 자주 출제되고 있고, 이것은 해석의 문제나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단순하게 상대성이론과 관련된 물리학의 형식체계를 올바로 이해했는가 하는 사안입니다.
브라이언 그린이 물리학 교과서에서라면 쓰지 않을 무리한 해석을 도입한 이유를 짐작해 보면, (1)에서처럼 표준적 서술을 하게 되면 민코프스키 시공간과 거리함수 텐서 개념을 추가로 도입해야 해서 서술이 복잡해지고 대중과학 책에서는 그런 접근이 상당히 까다로워질 것이고, 그렇다고 피타고라스 정리가 성립하도록 만들려면 (2)에서처럼 허수시간을 도입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도 추가 설명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린의 이 서술에 대해서는 따로 더 깊이 다루어서 시공간을 다루는 논문의 일부로 포함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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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속의 운동이 아니라 시공간 속의 운동으로 개념을 확장하는 것은 자연철학의 사유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상세하게 논의한 좋은 저서로 2010년에 출간된 배리 데인턴(Barry Dainton)의 Time and Space (https://amzn.to/3hRhi0Y)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들을 잘 정리해 놓은 일종의 교과서입니다. 이전에 “시공간 철학”이라는 수업을 하면서 이 책을 교재로 선택해서 빼곡하게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중 12장이 “Motion in spacetime”으로서 시간+공간을 시공간으로 합했을 때 운동을 어떻게 이해하는 게 좋은지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어서 일독을 권합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잘 요약하여 정리해 둔 블로그가 있어서 링크를 걸어 둡니다.
https://blog.daum.net/hgkang1982/155" target="_blank" rel="noopener">https://blog.daum.net/hgkang1982/155
브라이언 그린의 "시공간 속으로의 속력"이란 개념을 이전에 눈여겨 본 적이 없었는데, 이미 이와 관련된 논쟁과 질의응답이 많이 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https://bit.ly/3CnaOPi 이 링크가 그런 예입니다. https://stackexchange.com" target="_blank" rel="noopener">https://stackexchange.com이라는 사이트는 여러 분야에서 여러 가지 테크니컬한 문제를 질문하면 누군가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서 답을 달아주는 꽤 거대한 인터넷 공간입니다.
위의 링크에서는 맨 위에 올라와 있는 대답이 저와 생각이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대답을 읽고 좋은 대답이라고 평가하면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글이 맨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어서, 여하간 다수가 선호하는 의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This idea seems to be something that the popularizer Brian Greene has perpetrated on the world. Objects don't move through spacetime. Objects move through space. If you depict an object in spacetime, you have a world-line. The world-line doesn't move through spacetime, it simply extends across spacetime."
이 답글을 올린 사람은 심지어 브라이언 그린이 세상을 기만했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네요. 답글 대부분은 "시공간 속으로의 운동"이나 "시공간 속으로의 속력"이란 개념이 옳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중에는 그린처럼 새로 정의를 하더라도 꼭 틀린 것은 아니고, 정의는 유용성으로 판단해야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쓴 사람도 있습니다.
'시간 속으로의 속력' 내지 '시간 속으로의 운동'이라는 오해하기 쉬운 아이디어는 그린의 독창적인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루이스 캐럴 엡스타인의 1984년 책 Relativity Visualized에 그 관념이 처음 도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그림은 그 책 84쪽에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