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주의 vs 영원주의, 3차원주의 vs 4차원주의
앞에서 언급한 블록 우주 이야기를 조금만 적어 보려고 합니다. 1908년 민코프스키가 시간과 공간을 합한 시공간 개념을 처음 제기한 이후 그와 관련된 여러 다양한 자연철학적 주제들이 널리 다루어졌습니다.
그 중 하나는 사물의 지속성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1986년 저명한 미국의 분석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가 "사물이 지속한다(persist)는 것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사물이 연장지속(perdure)한다는 것은 사물이 시간적 부분들을 가지면서 시간 전체에 대해 지속한다는 것이며, 이와 달리 사물이 이동지속(endure)한다는 것은 사물이 매 시간 순간적으로 전체가 지속하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움직여 간다는 말이다."라고 말하며서 지속성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조금 쉽게 말하자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산이 어제 있던 그 산인지, 그리고 내일도 그 산으로 있을지 근거를 찾아보자는 이야기가 지속성(persistence)의 문제입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지, 오늘의 태양이 어제의 태양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따져묻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철학자들이나 하는 사변적인 물음 같지만, 실상 자연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제이기도 합니다. 윤리학적 맥락에서도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나와 내일의 나가 동일한 것인지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법정에서도 맨 처음 하는 일은 지금 재판을 받거나 증언을 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과 동일한가 여부를 확정하는 일입니다. 아인슈타인을 예로 들면 1879년 독일 울름에서 태어난 아기 아인슈타인, 1890년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을 다니는 대학생 아인슈타인, 1905년 스위스 울름의 특허청 3등 심사관 아인슈타인, 1915년 베를린 대학 교수 아인슈타인, 1935년 미국 고등연구원 교수 아인슈타인이 동일한 사람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물의 지속성에 대해 연장지속론자(perdurantist)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정한 연장(延長 extension)을 지닌 물체가 있다고 해 보죠. 여기에서 연장이란 표현은 공간 속에서 어느 정도의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데카르트가 '연장적 실체 res extensa'를 '사유하는 실체 res cogitans'와 대비시켰을 때의 그 '연장'입니다. 쉽게 말해서 지리산은 하동, 함양, 산청, 구례, 남원 이렇게 다섯 지역에 걸쳐 있습니다. 하동쪽 지리산과 남원쪽 지리산은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들은 전체가 아닙니다. 하동쪽 지리산부터 남원쪽 지리산까지 모두 합해야 비로소 전체 지리산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간상으로도 물체가 지속한다는 것은 매 시점마다 시간적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보자는 겁니다. 1890년의 취리히의 대학생 아인슈타인, 1905년 베른의 특허국 직원 아인슈타인, 1935년 미국 고등연구원의 교수 아인슈타인이 다 각각 시간 전체에 걸친 아인슈타인의 시간적 부분이라고 보는 겁니다. 연장지속론은 관속론(貫續論)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이동지속론자(endurantist)는 물체가 매 시간 전체로서 존재함을 주장합니다. 1890년의 아인슈타인은 그 자체로 완결된 전체로서의 아인슈타인이고, 1905년의 아인슈타인도 그러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매 단계를 하나하나 통과하는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동지속론은 내속론(內續論)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동지속론은 우리의 일상적 직관과 아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어제의 태양은 어제 완결된 전체로서의 태양이고, 오늘의 태양이나 내일의 태양도 그러하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장지속론(관속론)이나 이동지속론(내속론)이란 이름이 확 다가오지 않는다면, 21세기 들어와서 더 많이 사용되는 이름을 써도 됩니다. 연장지속론의 다른 이름은 4차원주의(four-dimensionalism)이고 이동지속론의 다른 이름은 3차원주의(three-dimensionalism)입니다. 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곧 분명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직관에 잘 맞는 것처럼 보이던 이동지속론의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다음 아니라 민코프스키의 '시공간' 개념 때문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대등한 것으로 본다면, 공간에 대해 이곳과 저곳에서 물체(대상)의 전체가 다 있는 것이 아니로 물체의 각 부분만 놓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대해 이때와 저때에 물체의 전체가 다 있지 않고 부분만 놓인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4차원 시공간에서 세계선을 그리게 되면 연장지속론 또는 4차원주의가 더 설득력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세계선으로 표현된 곡선 전체가 물체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시공간 벌레(space-time worm)'라느니 '시공간 관(space-time tube)'이라느니 하면서,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세계선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물체의 시간적 부분들을 다 나타내줍니다.
(그림출처: H. Minkowski 1908 Raum und Zeit )
위의 그림에서 오른쪽 그림을 보면 시간축 방향으로 연장된 길쭉한 사각형 둘이 있습니다. 이런 길쭉한 사각형이 바로 시공간 벌레 또는 시공간 관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또 여러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여하간 상대성이론 특히 민코프스키의 시공간 해석에서는 이동지속론보다는 연장지속론을 옹호하는 것이 비교적 분명해 보입니다.
그 논리적 연결고리의 중간에 있는 것이 영원주의와 현재주의의 논쟁입니다. 영원주의(Eternalism)는 대략 결정론을 염두에 두고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모든 사건들이 하나의 블록(벽돌)처럼 모두 존재한다는 믿음입니다. 이와 달리 현재주의(Presentism)는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분석형이상학이라 부르는 영역에서의 이런 논쟁은 다소 사변적이고 상아탑 속의 논쟁처럼 보이긴 하지만, 의미심장한 부분도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을 자연철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원주의-현재주의 논쟁과 연장지속론-이동지속론 논쟁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상대성이론을 민코프스키 시공간 해석으로 받아들인다면, 상대성이론이 현재주의보다는 영원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에서는 동시 개념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현재주의를 더 밀고 가면 극심한 유아론(唯我論solipsism)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와 달리 시공간 이해는 영원주의를 아주 매끄럽게 옹호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를 더 확장하면, 이동지속론(3차원주의)이 아니라 연장지속론(4차원주의)가 옳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말하면 연장지속론이 영원주의와 맞물리고, 이동지속론이 현재주의와 맞물린다는 점을 짚고 가야겠습니다. 영원주의는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모든 것이 이미 다 확정되어 마치 벽돌처럼 굳어 있다는 관념과 연결됩니다. 이를 흔히 블록 우주라 부릅니다. 여기에는 결정론이 근본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면 이런 결정론적 우주에서 변화라는 것은 겉보기일 뿐 진짜 변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민코프스키가 4차원 시공간을 도입하고 세계션이라는 개념을 만들 때에도 마찬가지의 사유를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세계선은 어떤 종류의 운동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운동 전체를 한꺼번에 서술합니다. 그런 점에서 세계선에는 운동이 없다는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물론 언제나 고전의 해석은 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민코프스키가 불과 48살에 충수돌기염 수술을 받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가 남긴 저작이 많지 않습니다. 활달한 성격이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과 편지를 많이 주고받은 것도 아니다 보니 민코프스키의 발표된 논문만으로는 민코프스키의 생각을 온전히 추적할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민코프스키의 논문들에서도 백퍼센트 연장지속론과 영원주의를 가정했다고 말할 수 없는 구절들이 보입니다. 이와 같은 과학사적 접근이 아니라 그냥 민코프스키 시공간과 세계선 개념을 놓고 초역사적으로 생각을 펼쳐 보더라도 조금 더 상황이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령 하스랑거와 같은 물리철학자는 연장지속(perdurance)과 이동지속(endurance)과 조금 다른 단계지속(exdurance)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Haslanger, S., (2003). Persistence through time. In: Loux, M.J., Zimmerman, D. (Eds.), The Oxford Handbook of Metaphysics.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pp. 315–354.
Balashov, Y. (2000). Enduring and Perduring Objects in Minkowski Space-Time. Philosophical Studies 99, 129–166. https://doi.org/10.1023/A:1018684803885
단계지속론은 거칠게 말하면, 연장지속론과 이동지속론의 장점만 가져다가 짜깁기를 한 느낌도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모든 것이 한꺼번에 주어지지만 각 시간에는 부분만 있다는 연장지속론과 달리 매시간 온전한 대상의 존재를 허용합니다. 그러나 이동지속론과 달리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계를 인정합니다. 아래 그림이 이 세 입장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림 출처: Yuri Balashov (2010) Persistence and Spacetime. Oxford University Press.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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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흥미로운 글입니다. 이렇게 각자 입장의 배경이 되는 철학, ~주의 를 명확히 해주시니까 훨씬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정말로 상대성이론 설명하는 어디에서도 못 본 배경 설명입니다 ! )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실상 시간-공간의 철학은 아주 오래되고 또 깊이 논쟁이 지속되어 온 영역입니다. 라이프니츠-클라크 논쟁에서 공간이 실체인가 관계인가 하는 문제가 불거졌고, 에른스트 마흐에 이르면 고전역학의 존재론적 기반으로서 시공간 문제가 다시 상세하게 논의됩니다. 아인슈타인도 마흐와 푸앵카레 등을 통해 이런 논쟁의 역사와 기본 문제들을 이해했습니다. 상대성이론도 그런 문제의식과 직접 맞닿아 있습니다. 이제는 상대성이론이 정립됨에 따라 다시 시공간 철학에서 새로운 논의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는 1960년대 이래 지난 70여년 동안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정말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설명 덕분에 세계선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영원한 시간이 우주에 중첩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신비롭습니다. ‘Max Tagmark’라는 물리학자가 블록 우주를 DVD에 비유하던데 그런 비유는 ‘결정주의’ 이군요. DVD가 제작되면 그 내용은 수정이 불가능하듯이 시간여행도 불가능한 것일까요? 우주 전체가 한편의 거대한 DVD일까요 아니면 무수한 DVD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 DVD는 영원히 미완성인채 제작진행중일까요? 누가 만들고 있는지…? 저의 직관에는 ‘현재주의’와 ‘이동지속론’이 더 와 닿습니다. 늘 어디서도 읽기 힘든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하게 쓴 글이라 글이 좀 난삽한데 흥미롭게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맥스 테그마크는 다소 극단적인 수학적 실재론자로 분류됩니다.
상대성이론을 잘 이해하고 있는 물리학자들 중 다수가 결정론, 영원주의, 연장지속론을 따라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주의와 이동지속론이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닙니다. 특히 물리학자의 다수가 여전히 상대성이론과는 그리 가깝지 않은 분야(예: 반도체, 전자기파, 열역학 등)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면) 상대성이론을 강의할 때 외에는 상대성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성이론의 자연철학적 함의를 심정적으로는 수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물며 상대성이론과는 거의 관련되지 않는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이나 인문학자들이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상대성이론이 의미하는 자연철학적 함의가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글은 그보다 조금 더 나가 있습니다. 상대성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기존의 현재주의나 이동지속론을 버리고 영원주의나 연장지속론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이러한 선택이 이미 물리학이나 자연과학의 영역과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미나 시간에 계속 과연 이런 자연철학적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판결한 권리 또는 권력이 물리학자에게 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