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축/공간축으로의 이동 vs 시공간 개념
세미나 구성원 중 한 분이 쓰신 글에 오해할 만한 서술이 있어서 거기에 대해 몇 가지 덧붙이고자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면, 시간축으로의 운동속도를 무시할 수 없다."
"내 좌표계 입장에서 볼 때, 시간축으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축으로도 이동하고 있다. 즉, 속도의 일부가 공간축으로 분산된 셈이며, 이에 따라 시간축으로의 B의 이동속도는 줄어든다."
"시간축으로만 이동하지 않고 공간축 이동에 의한 비스듬한 움직으로 인해 시간축 이동속도가 감소하는 것이다."
"내 좌표계에 대해 정지해 있는 물체는 시간축으로 c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으며, 물체가 공간축으로 움직인다면 시간축의 속도가 일부분 공간축으로 할당되어 시간축 이동속도는 느려지고 시간팽창(시간지연)이 나타나게 된다."
(출처: https://greenacademy.re.kr/archives/11283 또는 https://bit.ly/3jOa6nM)
이 서술은 상대성이론이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또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 상대성이론에 대한 혼동스러운 접근 대신 4차원 시공간이라는 바탕관념의 변화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접근과도 다릅니다.
상대성이론은 지난 10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책들과 주장을 낳은 당혹스런 이론이라서, 그만큼 오해와 잘못된 관념을 가질 위험이 큽니다. 또 아주 어릴 적부터 가져온 시간과 공간에 대한 바탕관념을 버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생각과 사고도 그 안에서 하기 쉽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인슈타인 자신조차 상대성이론의 혁명적이고 전혀 새로운 관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08년 쾰른에서 헤르만 민코프스키가 발표한 논문에서는 "로렌츠도 아인슈타인도 공간의 성질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라고 비판하면서, "시간과 공간이란 관념은 사라질 것이며, 4차원 시공간 연속체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체가 시간축에서나 공간축에서 '이동'하거나 '운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동'이나 '운동'이란 개념 자체가 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한 공간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축으로 이동한다는 표현은 옳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공간축으로 이동한다는 말도 의미가 없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시간축의 속도가 공간축에 할당된다거나 시간이 늘어난다거나 하는 말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런 표현이 나온 것은 우리가 무의식 중에 항상 공간의 어느 방향으로 위치를 바꾸는 것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묶어서 시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3+1)차원이 아니라 4차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훨씬 더 근본적인 개념의 혁명을 요청합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4차원을 이룬다는 말 속에는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지는 평면 곧 $x-\tau$ 평면상의 모든 방향이 대등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기서 대등하다는 것은 이 평면상의 어느 방향을 기준 축으로 설정해 관측을 하더라도 자연법칙이 동일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x-\tau$ 평면상에서 서로 다른 기준 축을 택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속도를 지닌 관측 계를 택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4차원 시공간을 이룬다는 말 속에는 이미 "모든 자연법칙은 관측자의 속도에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171-172쪽)
이 서술은 민코스프키의 논문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자연스럽습니다.
[민코프스키의 논문의 영어번역본을 첨부해 둡니다. 여러 번역들이 있지만, 2011년에 새로운 번역이 나왔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s://en.wikisource.org/wiki/Space_and_Time 참조. 독일어 원문은 위키미디어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https://de.wikisource.org/wiki/Raum_und_Zeit_(Minkowski) ]
민코프스키 이전에는 물체의 운동이라는 것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여겨졌습니다. 민코프스키는 시간과 공간을 합하여 시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이 4차원 시공간에서 물체의 운동은 '세계선'이라는 곡선으로 표현됨을 보여주었습니다. 세계선을 정확히 들여다 보면 물체가 그 선을 따라 움직이거나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선이 곧 그 자체로 물체의 운동입니다. 세계선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4차원 시공간과 세계선으로 표현된 세상은 아무런 변화도 없는 세상입니다. 내가 손을 뻗쳐 컵을 들고 컵 안의 물을 마시는 '운동'은 4차원 시공간에서 고정된 세계선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과 직관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공간적인 변화가 있는 것이죠. 아무런 변화도 없는 이 파르메니데스의 세상에서 움직임과 변화와 운동을 말하려면 시간의 그림자 공간의 그림자를 어느 부분 또는 어느 방향으로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제 이 주어진 세계선이 있는 시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을 골라낸다는 것은 좌표축(시간축과 공간축)의 방향을 선택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를 전문용어로는 '나누어 꿰매기(foliation)'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나누어 꿰매기는 선택지가 무수히 많습니다. 이 선택지들을 가르는 어떤 파라미터 같은 게 있을 텐데, 그것이 바로 좌표계들 사이의 상대속력이라 부르는 $V$입니다. 혼동하면 안 되는 것은 이 '상대속력'은 물체들의 속력 같은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좌표계와 저 좌표계를 나누는 파라미터에 불과합니다. 물리적 의미를 살펴보면, 서술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간과 공간(흔히 좌표계라 부르는 것)이 기차 플랫폼인가 기차 안인가, 그 기차는 속력이 얼마인가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스케일을 키우면, 지구인가, 우주선인가, 우주선의 속력이 얼마인가라고 말해도 됩니다.
말로 설명하면 아무래도 불명확하거나 부정확해지는 면이 있으니까, 약간의 수식을 동원하여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늘 그렇듯,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공간을 한 차원만 표기하면 시공간은 2차원 평면이 됩니다.
(그림 출처: https://greenacademy.re.kr/archives/11283 또는 https://bit.ly/3jOa6nM)
잘 알려진 것처럼, 좌표축의 방향을 $\theta$(테타)만큼 회전시키면, 두 좌표축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식이 성립합니다.
$$ x' = x \cos \theta - y \sin\theta $$ $$y'= x \sin\theta + y \cos\theta $$
이 익숙한 식을 약간 변형해 보기로 합니다. 삼각함수의 성질 $\sin^2 \theta + \cos^2 \theta = 1$과 $\tan\theta = \frac{\sin\theta}{\cos\theta}$를 이용하면
$$ x'= x \cos \theta - y \sin\theta = \frac{x \cos \theta - y \sin\theta}{\sqrt{\sin^2 \theta + \cos^2 \theta }} = \frac{\cos\theta (x - y \tan\theta)}{\cos\theta \sqrt{1+\tan^2 \theta}} = \frac{x -y \tan\theta}{\sqrt{1+\tan^2 \theta}} $$
를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 y' = \frac{y + x \tan\theta}{\sqrt{1+\tan^2 \theta}}$$
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시공간 개념을 가져오기 위해
$$ y \rightarrow ict $$
로 바꿉니다.
$x-y$ 평면에서는 $\tan \theta = \frac{\Delta x}{\Delta y}$라는 기울기가 되는데, 이렇게 $y=ict$를 대신 쓰면
$$\tan\theta = \frac{\Delta x}{\Delta y} = \frac{\Delta x}{\Delta (ict)} = \frac{1}{ic}\frac{\Delta x}{\Delta t} = -i \frac{V}{c} $$
가 됩니다. 따라서
$$ x' = \frac{x - V t}{\sqrt{1-(V/c)^2}} $$ $$ t' = \frac{t- V x / c^2 }{\sqrt{1- (V/c)^2}}$$
를 얻게 됩니다. 로렌츠 변환식이죠.
여기에서 $V$는 물리적으로는 두 좌표계들 사이의 상대속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냥 앞에서 도입한 $\theta$라는 추상적 회전각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theta$의 값이 달라짐에 따라 축의 방향이 360도 회전하는 것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제가 그림을 따로 그리려면 시간이 많이 드는데, 위키피디어에 관련된 그림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다만 아래 그림은 시간축을 허수로 잡지 않은 것이라서 두 좌표축(시간축과 공간축)이 직각을 이루면서 회전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추가설명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pacetime_diagram )
$c$라는 것의 의미는 굳이 광속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y=ict$에서 $y$와 $t$의 단위 변환 비율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합니다. 즉 $y$를 '미터'로 재고 $t$를 '초'로 재기로 선택하면, $c=299,792$가 됩니다. 하지만 $y$를 '광초(light second)'로 재고 $t$를 '초(second)'로 재기로 선택하면, $c=1$입니다. 마찬가지로 $y$를 '광년(light year)'으로 재고 $t$를 '년(year)'으로 재기로 선택하면, $c=1$입니다.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동시의 상대성에 있습니다. 시공간 평면에 있는 한 점을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즉 (언제, 어디)가 사건입니다. 두 사건이 '동시' 즉 '언제?"가 같은 경우를 골라야 하는데, 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으면 동시가 되는 사건도 단 한 가지로 고정되어 버립니다. 만일 시간과 공간을 별개로 보지 않고 시공간으로 이해하면, 시간축 방향과 공간축 방향을 어떻게 선택하는가에 따라 동시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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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3-벡터와 4-벡터의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벡터라는 말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3-벡터는 3차원 공간에 대하여 좌표축 세 개의 방향을 어느 것으로 선택하더라도 명확한 방식으로 변환되는 수학적 양입니다. 4-벡터는 4차원 시공간에 대하여 네 좌표축 방향을 어느 것으로 선택하더라도 명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변환되는 수학적 양입니다. 상세한 것은 https://bit.ly/3BZeqHh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이 글에서 1908년 민코프스키의 강연(발표)을 언급했는데, 그와 관련된 더 상세한 이야기가 https://bit.ly/3tfOcgq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