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3/4 자연철학세미나 - 토론 정리
작성자
neomay3
작성일
2021-03-05 01:17
조회
2796
이 자료는 녹색아카데미에서 격주로 진행하는 ‘자연철학 세미나’(온라인) 녹취록입니다.
질문과 장회익선생님 말씀 위주로 녹취했습니다. 세미나 중에 기록한 내용이라 요약, 생략이 많습니다. 감안해서 읽어주시고, 정확한 내용은 며칠 후에 업로드될 녹음자료를 참고해주세요.
(첨부파일은 이 글 본문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 세미나 일시 : 2021년 3월 4일
- 장소 : 온라인 (Zoom)
- 발표 : 서*석
Q : 질문
- 장회익선생님 설명
Q : 아인슈타인의 상대론과 양자역학의 시간관, 공간론은 서로 달라서 합쳐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문제를 책과 세미나에서는 어떻게 다루었나?
-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시공간이 서로 다르지 않다. 기존의 양자역학은 3+1차원으로 보았지만, 나는 양자역학 바탕 자체를 4차원이라고 보았다.
Q : 데카르트의 철학, 뉴턴 역학은 지금와서는 문제가 많다고 여겨진다. 그러면 이 둘은 온전한 앎에 들어가는가? 아니면 책의 전개상 들어왔지만, 밟고 지나가는 한 단계일 뿐 인가?
- 온전한 앎과는 좀 다른 얘기다. 동역학적 체계는 온전한 앎의 바탕에 기본이 돼서 온전한 앎의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 데카르트, 뉴턴 역학은 나중에 나온 더 온전한 앎의 틀에 자리를 찾아 들어가면서, 온전한 앎의 틀에 흡수된다.
- 고전역학은 근사적으로는 맞기 때문에 지금도 유용하다. 확장이 안됐기 때문에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는 성립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온전한 앎에 속할 수 있다. 고전 역학을 모르고는 현재의 앎의 틀에, 온전한 앎에 이를 수가 없다.
- 예전 것을, 일부 낡았다 틀렸다는 이유로 버리려고 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근본적인 이해도 안하고, 그 사고방식 때문에 앞으로 못 나간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Q : 지금의 수학은 이원론으로 좁고 높게 쌓아 올린 탑이다. 더 넓고, 다채로운 수학이 필요하다. (탑이 여럿 일 수 있고, 서로 연결할 수도 있겠다) 이런 수학이 아닌, 더 넓고 다채로운 수학을 쓰면, 과학과 앎은 얼마나 변할까?
- 우리가 자연철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수학은 수리논리와 거의 관계없이 충분히 할 수 있다. 우리 공부와는 좀 별개의 문제다.
-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양자역학이 원래 특이하기 때문에 기존 수학으로는 안되고 새로운 수학, 새로운 논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었다(소위 양자논리). 그런데 다 사라졌다. 별로 성공을 못했다. 예로 디랙(Paul Dirac. 1902-1984)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과학은 앎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수학적인 문제로 보고 자꾸 수학만 파는 것은 옳지 않다.
- 현재 있는 수학만으로도 충분하다. 수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더 큰 틀의 이론적 성격, 앎의 구조에 대한 생각이 부족해서 그렇다. 그래서 그 얘기를 책 9장에서 좀 했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양자역학은 그 틀 자체를 제대로 놓지 않아서 그렇다.
- 그래도 이런 류의 책 중에는 내 책에 수학이 많이 나온다. 꼭 필요한 수학만 썼다.
Q : 제가 아직 온전한 앎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알았다. 온전한 앎이란 무엇인가?
- 내가 온전한 앎을 구상해간 생각의 단계는 이렇다. 과학철학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보편적인 앎과 그 토대이다. 우리에게 보편적인 앎이 있어서 그것으로 설명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맨 처음의 논리는 어디서 나오나. 그래서 20세기 초 당시 논리실증주의에서는 가설연역체계라고 해서 일단 논리적인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로 설명을 해보는데, 다 설명이 되면 그 설명이 그 가설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았다, 논리적으로는 몰라도. 그래서 그걸 가지고 설명을 했으면 그걸 인정해야한다,고 보았다. 하나하나 봐서 다 맞으면 받아들이겠다는 자세, 이것이 토대주의이다.
- 그러면 토대는 어떻게 만드나. 신의 말씀이다 하면 되는데, 과학은 그게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했다. 그 내용 중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까지도 들어간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만들게 됐나하는 것까지 들어간다. 물질세계만 가지고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 인간이 나오고, 인간이 사고하는 것까지도 나오고. 그래서 연결이 되는 것이다. 토대주의에서, 토대를 그냥 맞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토대에서 나온 결과가 그 토대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전체가 연결이 되고 이것이 뫼비우스 띠를 만든다.
- 그래서 토대에 해당하는 것은 토대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것이고, 불완전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계속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고 계속 정교하게 만들면서 더 풍성해지고 더 만들고, 뫼비우스 띠를 돌면서 더 풍성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인문 사회 등 문명 모든 것이 다 들어간다. 그런 지적활동이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 그 토대 안에 포섭된 앎을 온전한 앎이라고 부르자는 것이다. 내가 제안한 지금의 틀은 아주 개략적인 것이다. 그러나 더 넓히면 얼마든지 더 들어갈 자리가 있다. 모든 인문학, 사회 등 다 들어가도 문제가 없다고 보지만, 내가 한 가지 어떻게 연결될까 고민되는 것은 신비적인 현상, 예술 세계 그런 것들이 그 틀에 들어올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인간의 활동이니까 관계를 지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데 어떤 의미로 연결 지을지는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일단 구상은 그렇다.
- 처음에는 자연세계, 물질 밖에 없었는데 인간의 신체적인 것까지는 나왔다. 자체촉매적 국소질서에 의해서 굉장히 정교한 것이 나와서 생명과학의 세계가 나왔다. 신체적인 부분까지는 물질이다. 그런데 의식은 다르다. 의식의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것이 앎이고, 그 앎이 다 만들어 낸 것이다. 자연의 기본원리는 저 밖에 있다고 인정은 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그것이 자연과 맞아들어가는 것이 뫼비우스의 띠 모양의 온전한 앎의 개략적인 내용이다.
- 온전한앎을 그렇게 연결짓는 구상이 한 10여 년 됐다. 『물질, 생명, 인간-그 통합적 이해의 가능성』(2009, 돌베개)이라는 책이다. 그 책을 쓸 무렵, 이것이 연결 되겠구나하는 것을 책에는 처음 썼다. 그때 출발해서 한 10년 동안 고민해서 만든 작업이다.
Q : 결과로서의 앎과 앎을 구상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앞뒤로 왔다갔다 한다는 말씀인가?
- 우주와 인간이 돌고 도는 것이다.우주를 이해하는 어떤 존재가 형성되는 것, 우주의 자기 이해이다. 우주가 어떻게 자기를 이해하는가, 그것이 대단한 것이다. 우주에서 나온 인간이 다시 우주를 이해하는 것. 내가 그것을 모형으로 뫼비우스의 띠로 한 것이고, 그 모형에 모든 앎이 자리를 잡을 때 온전한 앎이라고 한 것이다.
- 그러한 구조적인 것... 양자역학이 거기에 걸리는 이유가 이 부분이다. 양자역학 법칙이 이렇게 나와있는데, 이것이 우리의 앎의 틀과 어떻게 물리는지 몰랐던 것이다. 사람들은 양자역학으로 양자역학의 구조가 설명이 돼야한다고 보았는데, 그게 아니다. 앎의 틀을 빼놓고는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이론을 만들고, 만들어진 이론에 다시 연결하는... 마지막 고리에 양자역학이 딱 걸려 있다. 사실은 뫼비우스 띠가 연결이 돼야 양자역학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 수학 자체에 시간이나 공간은 없지만, 수학을 이용해서 시공간을 나타내는 데 이용할 수 있다. 허수를 만든 사람은 수학적으로 만든 것이다. 허수는 수학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물리학에서 그 허수를 시간축으로 이용했다.
끝.
녹취 : 황승미 (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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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녹취주의자가 돼버렸는데요. 녹취 작업은 녹색아카데미 웹진 관리자로서 하면 좋겠다 싶은 일을 찾다가 시작하게 됐지만, 저한테도 공부 많이 되고 있습니다. 도움된다고 말씀들 해주셔서 보람도 느낍니다.
세미나 하면서 제일 신기한 것은 질문하는 분들과(저는 질문이 별로 없어서..-,-;), 어떤 질문을 해도 도움되는 답을 해주시는 장회익선생님입니다. 그리고 어떤 얘기가 나와도 김*영님께서 미리 준비한 듯 설명을 좍~ 해주셔서 매번 놀라기도 하구요.(어제 카프라, 초프라 얘기가 생각나네요. ^^)
여러 분들의 다양한 질문과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면, 저도 뭔가 새로 질문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공부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뭐 궁금한 거 없나 찾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녹취는 황선생님이 아니였다면 다른 누군가가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수학 공식도 어느정도(?본인이아니면모르겠지만) 따라가며 대화의 대명사들을 모두 적합한 단어들로 대체하는 것은 기본적 토대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녹취록 덕분에 토대가 전혀 없는 저도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또 유튜브로 잘 보이지 않는 액정화면의 글씨를 맞추어 볼 수도 있었구요.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 가치있는 일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고 보람을 느낍니다. ^^; 저야말로 세미나 덕분에 녹취하면서 공부 엄청 된 것 같습니다. 책을 다시 볼 때 그런 걸 느껴요. ㅎㅎㅎ;;; 쑥쓰...
녹색아카데미 웹사이트를 새로 정비할 때부터 장회익샘 아카이브를 꾸릴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번 대담과 세미나 녹취가 그 작업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20년 가까이 장회익샘과 모임을 해왔지만, 선생님 말씀을 제대로 기록한 적이 없어서 늘 아쉬웠거든요. 이번에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동지를 만나 기쁩니다~ ^^
장회익선생님 책 중에 1990년에 나온 <과학과 메타과학>이 있습니다. 2012년에 현암사에서 다시 나왔는데 지금 보니 이 책도 절판됐네요. 초판이 좀 더 얇기도 하고 맨 처음에 샘께서 어떻게 쓰셨는지 궁금해서 조금씩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읽었을 때보다 좀 더 잘 읽히는 것 같습니다.
또 재밌는 사실 한 가지는 낯설지 않다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이 드네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이론이나 사상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인용하고 설명하는 학자나 대상(예: 뉴턴, 프린키피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초기 저작(예: 장회익, <과학과 메타과학>)을 열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요정도 경험으로 함부로 해보았습니다.
장회익선생님은 선생님의 이론을 어떻게 전개시켰는지, 샘의 예전의 책에서 단초를 찾고 변형되어 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이론이 발전해가는 모습을 짚어보면, 가장 완성도 높은 최근의 이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샘의 현재 이론도 이해하고, <...강의>에서 중요한 핵심이기도 한 '앎의 틀'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도 배우고, 더 욕심을 내보면 샘의 '앎의 틀'을 발전시키거나 더더 욕심을 내보면 나도 나만의 '앎의 틀'을 샘의 프로세스를 따라가면서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해보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