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바로가기
메뉴
  • 환경
    • 환경 뉴스
    • 환경 칼럼
  • 에너지전환
    • 에너지전환 뉴스
    • 에너지전환 칼럼
  • 과학·학술
    • 과학·학술 뉴스
    • 과학·학술 칼럼
    • 지속가능성 개념어 사전
  • 장회익의 자연철학
    • 자연철학 이야기 대담
    • 책
    • 논문
    • 칼럼, 강의, 강연
  • 공부모임
    • 녹색문명공부모임
    • 새 자연철학 세미나
  • 게시판
    • 새 자연철학세미나 게시판
    • 녹색문명공부모임 게시판
    • 녹색 책/영화클럽 게시판
    • 뉴스레터
  • 일정
  • Log In
    • Register
  • 검색
  • 환경
    • 환경 뉴스
    • 환경 칼럼
  • 에너지전환
    • 에너지전환 뉴스
    • 에너지전환 칼럼
  • 과학·학술
    • 과학·학술 뉴스
    • 과학·학술 칼럼
    • 지속가능성 개념어 사전
  • 장회익의 자연철학
    • 자연철학 이야기 대담
    • 책
    • 논문
    • 칼럼, 강의, 강연
  • 공부모임
    • 녹색문명공부모임
    • 새 자연철학 세미나
  • 게시판
    • 새 자연철학세미나 게시판
    • 녹색문명공부모임 게시판
    • 녹색 책/영화클럽 게시판
    • 뉴스레터
  • 일정
  • Log In
    • Register

녹색아카데미

더 나은 앎으로 푸른 미래를 가꾸는 사람들의 공부모임

새 자연철학 세미나

20210204 정합적 틀. 우주와 나의 정체성. 소위에 타서 소를.

작성자
오지영
작성일
2021-02-04 21:56
조회
2342

14 여기서 중점을 둔 것은 앎의 지평을 넓혀간 열 가지 주제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맞물리고 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특히 이들 사이의 관계에서 중시한 것은 역사적 연계성보다는 오히려 논리적 관련성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전체 내용을 합리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정합적 틀 안에서 이해해보도록 했다.

:왜 하나의 정합적 틀 안에서 이해하려고 하는가? 틀이 있다는 전제를 갖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틀이 뭔지는 모르지만 틀이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어떻게 그 틀을 갖게 됐는가?

만약에 틀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시 없다 해도,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해도, 아니 알 수 없는 것과 별개로 선생님은 틀을 창조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가?

 

23 그러다가 퇴계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사물의 근원에 마주친 것이다. 어쩌면 “나는 어떠한 세상에 살고 있는 어떠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자세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근원적 물음이 자기도 모르게 떠올랐을 것이고, 여기에 대한 심오한 해답으로 (아마도 장재의 글에서 보았을) ‘태허(太虛)’ 라는 개념에 이끌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간의 긴 방황을 뒤로 하고 이제 막 대지를 박차고 일어서는 한 고독한 탐구자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인간이 세상과 자기 존재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과 나는 관계가 있는가? 내 삶의 방식이 세상이 어떠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을 개인이 감당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세상을 움직이는 정합적 원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선생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정합적 원리를 추구하는 그 삶 외에 일상의 변화가 있다면 알려 달라. 나의 경우엔 세상을 알고자 했으나 안 바가 없다. 그리고 알았다한들 알고자했던 그 시간들 말고 그 앎 자체가 내 삶에 어떤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인가? 모르겠다. 혹시 내가 왜 모르는지 아신다면 말씀 부탁한다.

 

31 무릇 제불(諸佛)의 참된 근원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으나, 미혹으로 인해 삼계(三界)에 빠져들기도 하고, 깨달음으로 인해 사생(四生)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부처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중생으로 머물기도 한다. 이를 옛 성현들이 가엽게 여겨 다양한 방편들을 널리 펼치셨다. 치우침과 원만함에서 이치를 알게 했고, 즉각적 깨우침과 점차적 깨우침을 함께 가르쳤다. 거친 것에서 섬세한 것에 이르게 했고, 얕은 곳에서 깊은 곳에 다다르게 했다.

:앞서 말씀드린 제 상태를 가엽게 여겨 하나의 방편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33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 물속의 거품을 모두 태워버렸네. 우습다, 소를 탄 사람이여 소의 등에 타고서 다시 소를 찾는구나.

... 이것이 진정한 조롱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경지에 이르도록 끝없이 추구해보라는 강력한 경구일 수 있다.

:어쩌면 계속 소를 찾는(소를 탔으나 진정 타지 못하고 계속 소를 찾는) 삶을 조롱한 것은 아닐까요? 가슴아파하며 조롱한 것은 아닐까요? 소를 찾기 위한 과정만 있었을 뿐이지 소를 찾아서는 소를 보지 못하는 소를 타지 못하는 그렇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삶의 무한 반복에 대한 경종은 아닐까요?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알고자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경계는 아닐까요? 종교적 금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알고자하는 그 발심이 왜 자신에게 시작 되었는가를 본인이 알고 있는가? 예를 들어 A가 문제였는데 A가 아닌 앎의 문제에 빠져든 것은 아닐까요? 외로워서 사랑에 빠지듯이 외로워서 앎의 문제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알기위해 알려고 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할지라도 그건 재미가 없을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연으로 알고자 하는 건가요? 알고자 해서 알고자 하는 것 외에 무슨 까닭에 앎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외로워서 자전거를 타고, 테니스를 치고, 알고자 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소의 등에 타도 계속 소를 찾을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계속 외롭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인 앎에 이른다 해도 왜 외로운 걸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우주의 본질이 나의 실존적 정체성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알아가는 과정은 나의 실존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소의 등에 탄 그 결과는 나를 멈추게 할 뿐입니다. 앎 자체는 없고 계속 알게 하려는 앎의 의도만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왜 알고자 하는가를 살피고 그런 나를 이해해줘야 합니다. 계속 알고자 한다 해도 그 길이 계속 된다 해도 중요한 것은 내 밖의 앎이 아닌 내 안의 앎도 아닌 나의 상황입니다. 나는 어쩌다 알고자 했는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선생님 글의 역사지평처럼 개인의 역사지평을 보아야 합니다. 저는 어려서도 생각이 많았다고 합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학문을 하고자 했습니다. 왜 이런 마음이 제게 들어왔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궁극의 것이란 것을 이것만큼 파워가 강한 것은 없다는 자각을 한 거 같습니다. 가장 수준이 높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리고 일상의 외로움이 뭔가에 몰입하게 했고 그것이 이것이 된 것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알고자 하는 그 순수한 상태는 없는 것인가? 만약 있다면 그 것은 놀이라고 생각됩니다. 무게를 낮추면 좋습니다. 수준 높은 놀이를 하는 겁니다. 순수하고 수준 높은 놀이를 하는 것이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럼 실체는 없는가? 있습니다. 그러나 술래잡기는 다시 시작됩니다. 궁극의 진리놀이는 그렇게 계속됩니다. 그렇다면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닌가? 술래가 바뀝니다. 날이 어두워집니다. 엄마가 들어오라고 합니다. 술래가 바뀝니다. 날이 어두워집니다. 들어오라고 하는 사람은 나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저도 잘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앎 놀이를 합니다. 우리는 궁극의 순수 앎 놀이를. 다른 이들은 안 궁극의 안 순수의 앎 놀이를 합니다. 어느 날 그들과 우리가 만납니다. 집에서 만납니다. 밥을 먹습니다. 나는 궁극의 놀이 중이라 사유하는 기운이 풍깁니다. 너는 안 궁극 놀이 중이라 얕은 기운이 풍깁니다. 그러나 둘 다 밥을 먹습니다. 안 궁극과 궁극이 만나서 앎을 추구할 수도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게임은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주전(4주전) 수업에 등장했던 산에서 도를 닦다가 내려온 양자역학에 대해 한 소리 한 그 분이 바로 새로운 캐릭터였습니다.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도 개 걸 윷 모 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도 도(道)였지만. 암튼 궁극 놀이 팀은 새 캐릭터를 보내고 선을 그었습니다. 선이 진할수록 궁극팀은 외롭습니다. 그래서 더 알고자 합니다. 외로움은 그런 힘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웃으며 노는 방법을. 어지럽긴 합니다. 지저분하죠.

 

나는 수역인 홍명복군에게, “자네, 도(道)를 아는가?” 라고 물으니 홍군은 두 손을 마주 잡고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기에 나는, “도란 알기 어려운 게 아닐세. 바로 저기 강 언덕에 있네.” 라고 했다. 홍군은, “이른바 『시경』에,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라는 말을 이르는 것입니까?” 하고 묻는다. 나는,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닐세. 압록강은 바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가 되는 곳이야. 그 경계란 언덕이 아니면 강물이네. 무릇 천하 인민의 떳떳한 윤리와 사물의 법칙은 마치 강물이 언덕과 만나는 피차의 중간과 같은 걸세. 도라고 하는 것은 다른 데가 아니라 바로 강물과 언덕의 중간 경계에 있네.” 라고 일러주었다. 홍군은, “무슨 말씀이신지 감히 묻습니다.” 하기에 내가, “『서경』에 ‘인심(人心)은 오직 위태롭게 되고 도심(道心)은 오직 희미해진다’고 했네. 서양사람들은 기하학에서 하나의 획을 분별하여 하나의 선으로 깨우치기는 했으나, 그 미약한 부분까지 논변하고 증명할 수는 없어서 ‘빛이 있고 없는 그 사이라고 말했고, 불교에서는 그 즈음(사이)에 임하는 것을,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네. 그러므로 그 경계에 잘 처신함은 오직 도를 아는 사람만이 능히 할 수 있으니, 정나라 자산이란 사람이⸳⸳⸳⸳⸳⸳.”

『열하일기/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돌베게/46~47』

 

 

71쪽

처음 상태(나)

------------------->(변화의 원리)

나중 상태(나)

 

나는 왜 세상에 안 떨어지나? 나는 왜 순수한가?

 

210204

궁극은

우주는

백슬라이드의 원리를 모르고

네트를 넘기려는

라인을 넘기지 않으려는

욕망을 부르고

다가 온 볼을 맞이하지 않고

떠나가는 볼에 마법을 거는 것은 아닐까요?

나의 정체성은 우주를 아는 데 있지 않고

오늘 하루 내가 겪은 일을 펼쳐 놓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던가를 살피는데 있지는 않을까요? 소를 탄 것을 알려면.

 

525쪽

오직 한 가지 가능한 대안은 근원적 물음 즉 “나는 어떠한 세계에 사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진지하게 되묻고 그 해답의 실마리를 ‘온전한 앎’ 속에서 추구하는 데 있다.

 

526쪽

온생명이 곧 내 몸이며 우주가 곧 내 집임을 투철한 앎의 눈을 통해 파악한 인간이 이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점은 그 자체로서 또 하나의 우주적 사건이 될 만하다.

: 이 앎의 눈은 차라리 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감당이 안 되니까. 감당이 된다면 어떻게 되나? 어떻게 저 앎이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는 것인가?

전체 1

  • j j
    2021-03-20 15:55

    제가 댓글을 다는 것이 별 도움은 안될듯하지만(다른 분들은 학문을 하시는 분들이라 할만하고 저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라) 저는 "왜 이 모임에서 알고자 할까? "를 생각해보면...

    디자이너나 예술쪽에서 읽어야한다는 추천자료들을 읽다가 의문이 든 것 같아요. 그 중 풀리지 않았던 것 하나가 양자역학의 해석문제였구요. 양자역학의 대학교양강의를 집필한 책을 추천받아 읽었는데도 딱히 답도 나오지도 않고 궁금해서 언젠가 녹아 모임에서 "물리학적인 이해를 인문학으로 바꾸었을 때 오해의 소지가 많아진다는 것은 알지만 일반인들이 인문학적으로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나올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드린 적이 있는데요. 장회익 교수님의 답변은 내가 오래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게 이번에 철학강의 책인 것 같아요.
    저에게 이 책의 의의는 수 많은 양자역학의 미신적 해석의 여지, 관측의 여부 문제를 기존의 해석과 다르게 설명하시는 것이 (이 책을 읽고 수학을 모른 채로는 정답인지는 알 수 없으나) 또 따른 합리적인 이해로서 다가오는 것 아닐까해요. 양자역학의 미신적 해석이라 표기해놓으니 무슨 동양종교 도 닦는 것 같지만, 양자역학의 1920년쯤의 코펜하겐 해석 이후로 관측의 여부가 확대해석되어 여러 단체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들이 있습니다. 쉽게 상위에 검색되는 것들이 있고, 또 제 친구 중에는 이것이다! 라고 해서 그런 정신적 연결을 기반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구요. 소설 뿐만이 아니라 많은 웹툰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도 있구요.
    100년쯤 흘러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해석이 궁금했고, 양자역학의 서울해석이라는 내용을 공부하는 세미나 동안은 이 책의 수학 기호에 압도되어 소화불량에 걸린듯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따라가려고 했던 것은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참석하지 않았던 회차인듯하여 잘 알 수는 없지만, 이 모임이 도 닦은 사람에게 배타적이라 느껴지며 불편하셨던 건 아닐까...라고 짐작하고 짧은 저의 생각을 적어보자면, 이 책은 양자역학 관측의 문제에서 기존과 다른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책에는 안나와있고 세미나 때 이중 슬릿 다음으로 삼중슬릿에 대한 논문을 보여주셨는데요. 이것은 대부분의 양자역학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관점- 관측을 하기 전까지 상태가 정해지지 않는 것, 그리고 정신적인 연결-으로 이해하는 입장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대하고 수학적으로,물리학적으로 증명되었길 기대했던 분들께는 실망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중슬릿의 실험에 대해 제가 더 쓸만큼 이해가 깊지 않네요^^;;;
    각자의 삶은 달라서 지금 오지영님의 사유들이 어떻게든 자신의 삶에 녹아들 것이라 생각이 들어요. 어떤 다른 길을 갈지, 어떤 선택을 하며 무엇이 쌓여갈지는 지영님만이 하실 수 있고 기대를 가져봅니다. 아, 저번에 녹아 모임 일찍 나가실 때 화성이주를 보는 관점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그 주제들도 제 질문과도 관련되어 있어요. 다음 세미나 때 함께 이야기 나누어요^^


« 1월 21일 자연철학세미나 발제 자료
2월 4일 자연철학세미나 음성 자료 »
목록보기 답글쓰기
글수정 글삭제
전체 709
  • 전체
  • 자료
  • 질문 및 토론
  • 모임 정리
  • 공지사항
  • 세미나 운영
  • 전체
  • 앎의 바탕 구도
  • 고전역학
  • 상대성이론
  • 양자역학
  • 통계역학
  • 우주와 물질
  • 생명
  • 주체와 객체
  • 앎
  • 온전한 앎
  • 자연철학 일반
  • 전자기학
  • 기타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심학십도 그림 자료
녹색아카데미 | 2025.04.28 | 추천 1 | 조회 1043
녹색아카데미 2025.04.28 1 1043
공지사항
2025 <양자역학 이해 강독모임> 계획
녹색아카데미 | 2025.04.23 | 추천 0 | 조회 1174
녹색아카데미 2025.04.23 0 1174
공지사항
3기 새 자연철학 세미나 상세 계획
시인처럼 | 2024.09.12 | 추천 0 | 조회 4156
시인처럼 2024.09.12 0 4156
공지사항
[자료] 유튜브 대담영상 "자연철학이야기" 녹취록 & 카툰 링크 모음 (5)
neomay33 | 2023.04.20 | 추천 3 | 조회 13799
neomay33 2023.04.20 3 13799
공지사항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정오표 (10)
시인처럼 | 2022.12.22 | 추천 3 | 조회 16625
시인처럼 2022.12.22 3 16625
공지사항
[공지] 게시판 카테고리 설정에 대해서 (4)
시인처럼 | 2022.03.07 | 추천 0 | 조회 13227
시인처럼 2022.03.07 0 13227
693
New [자료] 빛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
자연사랑 | 2025.05.16 | 추천 0 | 조회 18
자연사랑 2025.05.16 0 18
692
[자료] 빛 입자 또는 빛에 대한 물리학적 논의
자연사랑 | 2025.05.15 | 추천 0 | 조회 46
자연사랑 2025.05.15 0 46
691
빛 입자에 대한 의문.. (5)
PSY | 2025.05.12 | 추천 0 | 조회 91
PSY 2025.05.12 0 91
690
겹실틈 실험, 양자역학 해석의 검증과 실험의 확인 (3)
시지프스 | 2025.05.12 | 추천 2 | 조회 100
시지프스 2025.05.12 2 100
689
[자료]『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책과 세미나(2023년) 정리 노트 (1)
neomay33 | 2025.05.10 | 추천 0 | 조회 159
neomay33 2025.05.10 0 159
688
[질문/토론] 온도가 크게 올라가면, U≦TS가 되어 F<0이 되는 경우가 있나요?
자연사랑 | 2025.04.18 | 추천 1 | 조회 769
자연사랑 2025.04.18 1 769
687
[나의 질문] 최우석 - '선택의 여지' 그리고 '앎과 실재' (5)
시인처럼 | 2025.04.14 | 추천 0 | 조회 626
시인처럼 2025.04.14 0 626
686
[질문/토론] 대상 물체의 현재 온도가 낮을수록 △S의 값이 크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자연사랑 | 2025.04.14 | 추천 1 | 조회 499
자연사랑 2025.04.14 1 499
685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범심론 (9)
유동나무 | 2025.03.30 | 추천 2 | 조회 472
유동나무 2025.03.30 2 472
684
[질문] 앎의 세 모드(역학 모드, 서술 모드, 의식 모드)와 포퍼의 세 세계
자연사랑 | 2025.03.24 | 추천 0 | 조회 392
자연사랑 2025.03.24 0 392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
  • 마지막
글쓰기
Powered by KBoard

게시판 글

최신글 내가 쓴 글
N [자료] 빛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
2025.05.16
[자료] 빛 입자 또는 빛에 대한 물리학적 논의
2025.05.15
빛 입자에 대한 의문.. (5)
2025.05.12
겹실틈 실험, 양자역학 해석의 검증과 실험의 확인 (3)
2025.05.12
[자료]『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책과 세미나(2023년) 정리 노트 (1)
2025.05.10
로그인 해주세요.

게시판 댓글

최신댓글 내가 쓴 댓글
N "파동은 무언가의 시공간적 궤적을 말하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해 짧은 대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특정 시간(시각)에 특정 위치에 놓이며, 그럼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따라 보면 모종의 '궤적'을 이루는 것은 언제나 질점(point mass) 내지 입자입니다. 파동은 언제나 시간과 공간에 퍼져 있습니다. 파동을 직관적으로 보기 쉽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파동은 근본적으로 '모여 있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파동을 교묘하게 여러 개 모아서 만든 파동다발(波束, wave packet)이 마치 입자처럼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면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퍼져나간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파동다발을 입자와 같은 것으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그런데 파동은 결국 진동수와 파장으로 서술되는 것이라서 진동수와 파장의 추상화된 공간(흔히 운동량 공간이라 부릅니다)을 시간-공간에 대응시킬 수 있습니다. 즉 $(t, x)$ 대신 $(\omega, k)$를 쓰면, 이번에는 특정의 파동 하나가 $(\omega, k)$의 '공간'에서 한 점을 차지합니다. 즉 모여 있습니다. 여러 개의 파동이 있다면 이 '운동량 공간'에서 여러 개의 점으로 나타납니다. 대신 '운동량 공간'의 한 점을 우리에게 친숙한 보통의 시간-공간에서 보면 퍼져 있습니다. 그러면 '운동량 공간'에서 퍼져 있는 것은 보통의 시간-공간에서 특정 점에 모여 있는 것으로 나타날까요? 맞습니다. 그렇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앙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151-165쪽에 있는 내용의 핵심입니다. [추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에서는 위치와 운동량의 이중공간뿐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의 이중공간도 함께 고려합니다. 시간과 위치가 4차원을 이루는 것처럼, 에너지와 운동량의 이중공간도 4차원을 이룹니다.]
15:25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19쪽에 언급된 "추가적 관측을 겹실틈 바로 뒤에서가 아니라 식별 스크린 바로 앞에서 수행하는 실험"을 더 정교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제 의견에는 이미 기존의 겹실틈 실험 특히 위에 인용한 Bach et al. (2013)에서 어느 정도는 이미 한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험의 에너지 규모를 조절하여 방출되는 전자가 하나씩 나올 수 있도록 한 것이라서, 스크린 바로 앞에서 전자의 위치를 관측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아이디어를 적용한다면, 실제로 스크린 바로 앞에서 아주 약하게 전자의 위치를 관측하는 실험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첨부한 그림은 Bach et al. (2013) 실험의 보충자료에 있는 실험세팅입니다.
2025.05.15
"겹실틈 실험의 실제 실험과 올바른 해석"(https://bit.ly/3ZeRBNv)에 인용한 Bach et al. (2013)의 실험은 겹실틈을 만든 뒤 가림막을 만들어 이동시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실틈에 대해 (1) 둘 다 닫힌 경우 (2) 첫 번째 실틈만 열린 경우 (3) 두 실틈 모두 열린 경우 (4) 두 번째 실틈만 열린 경우 (5) 다시 두 실틈 모두 닫힌 경우에 차례로 스크린에 찍히는 점들의 분포를 보여줍니다. Bach, R. et al. (2013) Controlled double-slit electron diffraction.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1367-2630/15/3/033018 "In 1965, Richard Feynman presented a thought experiment to show these features. Here we demonstrate the full realization of his famous thought experiment. By placing a movable mask in front of a double-slit to control the transmission through the individual slits, probability distributions for single- and double-slit arrangements were observed. Also, by recording single electron detection events diffracting through a double-slit, a diffraction pattern was built up from individual events." 리처드 파인만이 1965년에 이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그냥 사고실험이었지만, 이제는 직접 실험해서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위에 인용한 실험도 발표된 지 벌써 12년이 지났습니다.
2025.05.15
불편을 드려서 죄송해요. 최근 정비에 들어가서 짬짬이 홈페이지에 불필요한 파일들을 덜어내고 있어요. 여유를 좀 확보해서 편하게 이용하시도록 해볼께요. 참, 당분간 게시판 글에 첨부되었던 파일과 사진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용량 확보 작업을 하면서 일부 파일들을 옮겨두어서 그런 건데요, 소실된 것 아니고 잠시 옮겨두어서 그런 거니 당분간의 의도된 에러라는 점 양해해주세요~.
2025.05.13
^^;; 꼭 필요한 문서는 첨부하셔야지요. 책 원문 파일은 용량이 커서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링크를 달면 좋은데 그게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러네요. 양해 부탁드려요. ㅎㅎ;;;
2025.05.12
로그인 해주세요.

Upcoming Events

5월 19
6:00 오전 - 7:00 오전 KST

책새벽 – 월. 시즌6 : 『침묵의 봄』 4회

5월 20
6:00 오전 - 7:00 오전 KST

책새벽 – 화/금 : 『세계철학사 4 – 탈근대 사유의 지평들』 12회

5월 20
9:00 오후 - 10:00 오후 KST

책밤-화-과학 : 칼 포퍼 『추측과 논박 1』 – 15회

5월 20
10:30 오후 - 11:30 오후 KST

책밤-화-문학-시즌6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 게르망트 쪽 1』 (22회)

5월 21
6:00 오전 - 7:00 오전 KST

책새벽 – 수 : 칼 세이건 『Cosmos』 – 19회

달력보기

카테고리

녹색아카데미 페이스북 공개그룹

녹색아카데미 페이스북 공개그룹

Copyright © 2025 녹색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

Codilight 테마 제작자 FameThe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