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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더 나은 앎으로 푸른 미래를 가꾸는 사람들의 공부모임

새 자연철학 세미나

겹실틈 실험의 해석

자료
양자역학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7-05 12:46
조회
8014

지난 7월 2일 세미나에서 세겹실틈(삼중슬릿)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겹실틈 실험을 상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리처드 파인만은 겹실틈(이중슬릿) 실험만 제대로 이해하면 양자역학을 다 알 수 있다고까지 이야기했고, 유명한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제3권 양자역학은 맨 처음에 이 겹실틈 실험으로 시작합니다.

실상 방파제가 있고 그 사이에 두 개의 구멍이 있을 때 파도가 어떻게 퍼져나가는가 하는 문제는 조금 복잡해 보이긴 해도 조금 배우면 모두 계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아래 링크에 겹실틈 에돌이(이중슬릿 회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 target="_blank" rel="noopener">겹실틈 실험 애니메이션

물리학과 학생이라면 이 실험에 나오는 상황을 모두 수식으로 풀어내는 법을 배웁니다. 제대로 배우는 것은 2학년이나 3학년쯤 가야 하긴 하지만, 여하튼 이미 모두 해결된 문제입니다. 18세기말에 중요한 것은 다 알아냈고 19세기 동안 그것을 풀어내는 여러 방법이 널리 탐구되었기 때문입니다.

1802년 토머스 영의 실험은 빛이 깨알 같은 입자(粒子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곡식의 씨앗")가 아니라 파동(波動 즉 "물결의 움직임")에 더 가깝다는 증명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 전에 이미 입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파동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대략 다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Young, Thomas (1804). "Bakerian Lecture: Experiments and calculations relative to physical optics".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94: 1–2. doi:10.1098/rstl.1804.0001)

빛이 입자라면 일직선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간섭무늬가 나올 수 없습니다. 두 개의 가느다란 틈새를 지나간 빛의 그림자가 알록달록한 패턴(즉 간섭무늬)이 된다는 것은 빛이 입자일 수 없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파동의 경우, 특히 빛 파동(광파)의 경우에 꽤 정확하게 겹실틈 실험의 결과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http://hyperphysics.phy-astr.gsu.edu/hbase/phyopt/mulslid.html )


파동의 경우 이런 간섭무늬가 나오는 까닭은 그리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파동은 공간 속을 퍼져나가면서 위아래로 진동하는 것인데, 파동이 나아가는 방향이 슬릿(틈새) 면과 이루는 각에 따라 위아래 진동의 위상이 달라집니다. 위상이라는 개념은 처음 들을 때에는 상당히 낯설지만, 그냥 삼각함수의 '각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진동은 값이 양의 값과 음의 값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실상 거의 모든 경우에 삼각함수로 표현됩니다. 삼각비 자체는 각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지만, 이제 그것을 '함수'로 끌어올린 이상 그 '각'에 해당하는 부분, 즉 삼각함수의 독립변수는 무엇이든 허용됩니다. 그것을 '위상'이라 부릅니다.

파동의 간섭무늬 또는 회절은 바로 두 틈새를 지난 두 개의 파동의 '위상'들의 차이가 스크린의 위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생깁니다.

스크린에 나오는 밝기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 I (\theta) = I_0 \left( \frac{\sin \beta}{\beta}\right)^2 \cos^2 \alpha \]

와 같이 곡선 모양의 식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 \alpha = \frac{\pi a \sin\theta}{\lambda}, \quad \beta = \frac{\pi b \sin \theta}{\lambda} \]

입니다. 이때 $a$는 실틈 사이의 간격이고, $b$는 실틈의 두께입니다. 이 식은 파동의 파장이 $b$보다 작을 때에 근사적으로 유도되는 것입니다. 

대략 말하면 $\alpha$가 있는 부분은 겹실틈 간섭(이중슬릿 간섭)에 해당하고 $\beta$가 있는 부분은 홑실틈 에돌이(단일슬릿 회절)에 해당합니다. 겹실틈 에돌이(이중슬릿 회절)는 이 두 인수를 곱한 것으로 나옵니다.

전자회절 실험은 조금 어렵습니다. 히다치의 토모나가 연구진의 유명한 사진도 그렇고 실제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전자는 한번에 거의 하나 정도가 발사됩니다. 파동이 아닙니다.

파동이라면 위상차 때문에 겹실틈 실험에서 간섭무늬가 나옵니다. 그러나 간섭무늬가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꼭 파동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상태함수를 그냥 파동함수로 간주합니다. 그 파동함수의 제곱이 확률이 되지만, 드브로이의 계보를 따라 전자도 그냥 파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가 어렵지만 그냥 원래 그런 거라고 믿기 시작하면 오래지 않아 익숙해집니다.

광파나 파도의 경우처럼, 전자의 물질파도 똑같다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파동함수를 써서 말하면

$$ P_{AB} = | \psi_A + \psi_B |^2 = |\psi_A |^2 + |\psi_B |^2 + \psi_A ^* \psi_B + \psi_B ^* \psi_A = P_A + P_B + I_{AB} $$

이므로, 틈새 중 A를 지난 것과 B를 지난 것 외에도 소위 '간섭항' $I_{AB}$가 있고, 이것은 두 전자가 마치 파동처럼 간섭을 일으킨 것이 됩니다. 문제는 실험에서 전자는 한번에 하나 정도밖에 발사되지 않는데, 어떻게 혼자서 간섭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파동이라면 두 실틈을 동시에 지나갈 수 있고 또 같은 위치에 겹치는 것(중첩)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런데 전자회절 실험에서는 한번에 하나 정도밖에 쏘지 않기 때문에, 전자가 스스로 중첩되어 간섭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이것을 그냥 파동이라고 봅니다. 물리학과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설명입니다. 

전자를 단순히 파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그 다음 실험 탓입니다. 실틈 앞에 작은 장치를 하나 추가하여 어느 실틈으로 지나갔는지 확인하는 경우 소위 '간섭항'의 효과가 사라져 버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물리학과 강의실에서는 흔히 어느 실틈으로 지나갔는지 확인하는 것을 "본다" 또는 "관측"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서 "관측하면 입자가 되고,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그냥 그것이 양자역학의 신비라고 말해 버립니다. 게다가 "입자-파동 이중성"이란 용어까지 갖다 붙입니다. 

이런 신비주의를 그냥 받아들인다면 할 수 없지만,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것을 납득하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철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셈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공리 4]입니다. 맨 처음 실틈이 하나 있는 곳을 지날 때 상태가 전환됩니다. 벽에 막힌 부분은 지나가지 못하고 실틈 하나만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Psi_0$라 부르면 그 다음 두 개의 실틈이 있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전자의 상태는 여전히 $\Psi_0$입니다. 이제 두 개의 실틈이 있는 곳을 지나면, 새로운 상태 $\Psi_2$로 전환됩니다. 그 상태함수를 제곱하면 스크린에 도달할 때의 확률을 깨끗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실험을 해 보면 그 계산과 일치합니다. 아무 문제가 없죠. 여기에 파동이 등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두 실틈 중 어느 실틈으로 지나갔는지 살짝 확인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 "어느 경로" 정보를 안다는 것이 곧 변별체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고, 그러면 [공리 4]에 따라 상태가 전환됩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아도 상태는 전환됩니다. "어느 경로"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다르기 때문에 상태함수가 $\Psi_2$가 될 수 없습니다. 대신 두 실틈 중 하나로 지나간 것을 가리키는 $\Psi_A$ 또는 $\Psi_B$가 됩니다. 그 상태함수에 대해 스크린에 찍히는 모양은 무엇이 될까요? 이 또한 비교적 쉽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짐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곳에 쏠려서 부딪치는 상황이 가장 많습니다.

요약하면, 만일 "어느 경로" 정보를 확인하지 않으면, 앞에서 말한 $\Psi_2$가 상태함수가 되므로 위의 곡선처럼 올록볼록한 모양이 됩니다. 거기에 따라 찍히는 점의 수도 들쑥날쑥합니다. 만일 "어느 경로" 정보를 확인하여 A나 B 중 어느 하나의 실틈을 지나간 것을 확인했다면 (즉 변별체에 흔적을 남겼다면) 상태함수가 바뀌어 들쑥날쑥한 모양이 되지 않고 한 쪽에 쏠리는 모양이 됩니다.

여전히 파동을 운운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관찰자가 보는지 안 보는지 하는 문제가 전혀 개입하지 않습니다. 전자와 변별체만 있을 뿐입니다. 변별체가 곧 관찰자 아닌가 하는 반대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변별체는 다른 사진건판이나 CCD나 수증기나 가이거 계수기나 뭐 그런 물체일 뿐입니다. 관찰한다거나 측정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 4

  • 자연사랑 자연사랑
    2020-07-07 00:41

    아래 링크에 겹실틈 실험을 아주 잘 보여주는 비교적 최근의 논문이 있습니다.

    Bach, R. et al. (2013) Controlled double-slit electron diffraction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1367-2630/15/3/033018


  • neomay3 neomay3
    2020-07-07 08:02

    고맙습니다~ 다 연구들을 해놓으셨네요! ^^


    • 자연사랑 자연사랑
      2020-07-07 13:40

      그러게나 말입니다. 학자들은 참 부지런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념적으로는 꽤 되었어도 세실틈 실험으로 실제로 다루고 있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Siddiqui & Qureshi (2015)은 이론적인 논문이고, Sinha et al. (2010)은 실험 결과까지 있습니다.

      Sinha, A., H. Vijay, A. & Sinha, U. On the superposition principle in interference experiments. Sci Rep 5, 10304 (2015). https://doi.org/10.1038/srep10304


  • 자연사랑 자연사랑
    2020-07-07 16:28

    어제 글을 올릴 때에는 겹실틈(이중슬릿) 실험과 세겹실틈(삼중슬릿) 실험을 섞어 놓았는데, 글의 흐름이 이상해져서, 그 둘을 분리하여 별도의 글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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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자세한 자료, 설명들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025.06.09
1. 변별체의 존재 양상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공부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바로 위의 답글에 쓴 물의 온도를 재는 상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장회익 선생님의 '변별체' 개념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측정장치 개념에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하여 추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관적으로는 모종의 측정장치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매우 다양한 측정장치 또는 검출장치를 사용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세미나에서 인용하신 안개상자(cloud chamber)나 거품상자(bubble chamber)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사용하는 사진건판도 변별체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loud_chamber https://en.wikipedia.org/wiki/Bubble_chamber 하지만 변별체가 측정장치/검출장치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변별체는 물리적 작용을 통해 뭔가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하지만, 또 동시에 그것을 읽어내서 인식주체의 경험표상영역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변별체는 대상과 인식주체 사이에 놓인 가교 내지 창문의 역할을 합니다. (제가 장회익 선생님의 제안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거품상자에서 기본입자가 만들어내는 궤적을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2025.06.03
2.의 질문이 흥미롭습니다. '이해'라는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상과 변별체의 만남(조우)은 원래 인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채거나 기록하거나 기억하거나 그로부터 지식을 얻는 것과 전혀 무관하게 대상과 변별체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하기에 이 세계 속의 수많은 물질적 존재자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치고 멀어져갈 것입니다. 아주 먼 우주에서 행성과 혜성이 충돌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하간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흔적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적 존재자에 생긴 흔적을 인식 주체인 '나' 또는 서술세계가 받아들이면 이제 그 흔적이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집니다. 인식주체가 없었더라면 그냥 물질적 충돌에 불과했을 것이 이제 '사건'이 되어 버립니다. 미묘하지만, 변별체와 경험표상영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변별체에 남은 흔적과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진 정보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50쪽의 그림 1-1에서 물질세계와 서술세계를 구별하는 점선을 넘나듭니다. 두 개의 네모 사이의 위아래 양쪽방향 화살표의 양면성입니다.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서 흔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과 '빈-사건'이 일어납니다. 특정 변별체에 흔적이 남지 않는 것도 흔적이 남는 것 못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해'라는 말이 직접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인용한 폰노이만의 온도 측정의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재려면 온도계를 넣어 수은/알콜의 높이를 보아야 합니다. 이 때 비커의 물이 대상이고 온도계는 변별체가 됩니다. (2) 온도계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전등의 빛이 수은/알콜의 경계면에 닿았다가 눈의 망막으로 와야 합니다. 이 때 온도계의 높이는 대상이 되고 빛(빛알)이 변별체가 됩니다. (3) 빛이 망막에 입사되면 망막에 있는 시신경에 나트륨 원소가 모이거나 흩어져서 전류가 만들어집니다. 이 때 빛이 대상이라면 시신경의 전위차는 변별체가 됩니다. (4) 시신경의 전위차는 뇌의 피질에서 뉴런을 발화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대목에서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읽어냅니다. (5) 그 다음 단계가 어렵습니다. 온도계의 높이든, 망막에 생기는 흔적이든, 시신경의 전위차든, 뉴런의 발화든 여하간 어느 단계에서 흔적의 기록이 정보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32-33쪽에 서술된 것처럼 역학 모드와 서술 모드를 구별합니다. 하지만 서술 모드만으로는 '이해'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하간 세 번째 모드로서 '의식 모드'가 작동을 해야 비로소 '이해'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라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인츠 폰푀르스터의 <이해를 이해하기> 같은 저작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Heinz Foerster (2003) Understanding Understanding: Essays on Cybernetics and Cognition. Springer. https://doi.org/10.1007/b97451
2025.06.03
3. 3차원 vs. 2+1차원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고대그리스-이슬람-중세유럽으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의 전통에서 세상의 중심은 지구였습니다. 지구 주위에는 일곱 행성(七曜) 즉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천구가 있고, 그 바깥에는 항성 천구가 있습니다. 지구는 네 개의 권역(구 껍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의 천구 바로 아래에는 불의 권역이 있고, 그 아래로 차례로 숨/바람의 권역, 물의 권역, 흙의 권역이 있습니다. 뒤의 세 권역은 현대의 기권(氣圈, Atmosphere), 수권(水圈 Hydrosphere), 지권(地圈,Geosphere)에 대략 연결됩니다. 불의 권역은 현대의 열권(熱圈, Thermosphere)이나 전리층과 비슷합니다. 여하간, 세상(우주)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이며, 이 중심을 향하는 방향이나 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이 곧 수직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지표면의 동서남북은 어느 쪽으로도 대등합니다. 이것이 바로 (2+1)차원의 세계입니다. 세계(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수직 방향도 동서남북과 대등하지 않을까 하는 관념이 펼쳐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펼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공간의 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숫자 $(x, y, z)$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비단 눈 앞에 펼쳐지는 육면체 모양의 방 안에서의 위치만이 아니라 온 우주 전체에서의 위치에도 해당합니다. 그러면 수직 방향이나 동서 방향이나 남북 방향이 모두 대등합니다. 데카르트에게 우주는 (2+1)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었습니다. [그림출처: Peter Apian (1529) Cosmographiae introductio]
2025.06.03
중요한 지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또 몇 가지 글에 대한 링크도 있었구요. 따로 답글도 있었는데 사라졌더라구요. 저의 부족한 글도 여하간 토론과 대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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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새 자연철학 세미나 [양자역학 이해 강독모임] 6회

6월 17
9:00 오후 - 10:00 오후 KST

책밤-화-과학 : 칼 포퍼 『추측과 논박 1』 – 18회

6월 18
6:00 오전 - 7:00 오전 KST

책새벽 – 수 : 칼 세이건 『Cosmos』 – 23회

6월 19
6:00 오전 - 7:00 오전 KST

책새벽 – 목 :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2.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끄』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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