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5-3의 보충 2: '성향'이란 말의 의미
상태를 '사건야기 성향'이라고 부르는 것은 장회익 선생님의 매우 독창적인 주장입니다. 바로 그 점이 "장회익의 자연철학"을 독보적이며 매우 중요한 사유로 만드는 대목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향'이란 말은 고민의 여지가 많은 개념입니다. 이 말을 거의 처음 사용했고 또 널리 사용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칼 포퍼입니다.
Karl R. Popper (1959). "The Propensity Interpretation of Probability". The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Vol. 10, No. 37, pp. 25-42
https://www.jstor.org/stable/685773
'성향'을 영어로는 propensity라 합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disposition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tendency라고도 합니다. 세 용어가 미묘하게 다르기도 합니다. disposition은 '기질'로, tendency는 '경향' 또는 '경향성'으로 번역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무엇보다도 확률에 대한 해석 중 하나로 도입되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ropensity_probability
칼 포퍼가 이 개념을 도입한 것은 확률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거의 처음"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이 용어를 도입한 사람이 찰스 퍼스이기 때문입니다. 퍼스는 이 용어를 도입하고 사용했긴 하지만, 제대로 체계화된 이론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장회익 선생님께서 '성향'이란 개념을 도입하실 때 포퍼의 주장을 염두에 두신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뵐 때 따로 질문을 드리려 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어의 일상적 용법에서는 주로 '정치적 성향'이라거나 '소비 성향'이라거나 '성격' 또는 '성적 지향' 같은 데에서 '성향'을 씁니다. 사전에서 '성향'을 찾으면 "性向: tendency, inclination, disposition, propensity"이라고 나옵니다. '사건 야기 성향'을 영어로 하면 아마 'event-causing propensity' 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확률과 양자역학의 이해에서 포퍼가 도입한 '성향' 개념의 핵심은 "결정론보다 약한 인과성의 정도"입니다.
"Propensity is the tendency or disposition of a certain physical situation to produce a particular outcome. It refers to a degree of causality that is weaker than determinism." [L. E. Ballentine (2016). "Propensity, Probability, and Quantum Theory". Foundation of Physics. DOI 10.1007/s10701-016-9991-0. ]
포퍼의 개념을 발전시켜 밸런타인이 주장하는 '성향'은 대상에 대한 단순한 지식의 표가 아니라 대상에 내재해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어떤 인과적 힘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단지 대상에 박혀 있는 어떤 객체적인 성질도 아닙니다.
흔히 드는 예로 유리는 깨지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유리가 반드시 깨지는 것도 아니고 언제 깨질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누가 건드리지 않는다면 영영 (적어도 아주 오랫동안은) 안 깨질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리가 깨지는 성향이 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이 성향 개념을 발전시켜서 양자역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논문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장회익 선생님의 "사건 야기 성향"과 포퍼의 "확률의 성향 해석'을 상세하게 비교하고 검토함으로써 뭔가 새롭고도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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