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불완전성과 1935년 동아일보 보도
1935년 5월 15일에 미국물리학회지 [피지컬 리뷰 Physical Review]에 특이한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의 서술은 완전하다고 볼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이 논문을 쓴 사람은 알버트 아인슈타인, 보리스 포돌스키(Boris Podolsky 1896-1966), 네이썬 로젠(Nathan Rosen 1909-1995)이었습니다. 이 논문에서 다루어진 주제는 이후 양자이론과 관련된 인식론적 및 존재론적 논의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역설, 줄여서 EPR 역설 또는 '아포로 역설'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그것이 역설이 아니라 의미 있는 논변임이 밝혀지고 난 뒤에는 'EPR 논변' 또는 'EPR 사고실험'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1964년에 아일랜드의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John Stewart Bell 1928-1990)이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의 역설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면서, EPR 사고실험은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벨의 논문은 양자이론이 물리적 세계에 대한 최종적인 이론이 아니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장회익 선생님도 이 문제를 여러 곳에서 상세하게 다루셨고, 또 가령 [과학과 메타과학](1990) 129-134쪽이나 [과학과 메타과학](2012) 149-153쪽에서도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1994년에 이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시기도 했습니다.
장회익 (1994). "양자역학과 실재성의 문제: 벨의 부등식 해석을 통한 고찰" 계간 과학사상. 여름호 93-112쪽.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사고실험과 벨 논변은 장회익 선생님의 자연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번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는 이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좀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 짚고 갈 점이 있습니다. 1935년 일제 식민지 상태의 조선에서도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의 논문과 관련된 이야기가 알려졌다는 사실입니다. 1935년 10월 4일 동아일보 석간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해외 학예뉴-스) 양자론에 관한 논쟁동아일보 1935년 10월 4일 석간 3면 8단
양자론은 이십세기에 잇어서 혁명적인 물리학이론으로서 일대경이(一大驚異)에 値하는 것이어니와 저번에 아인쉬타인 교수는 미국의 학술잡지에 양자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엿든바 코펜하겐 대학의 보아 교수는 곧 아 교수의 의견을 반박하엿다. 보아 교수는 양자론에 대한 위대한 공헌자로서 유명한지라 지금 이 二大 물리학자의 논쟁은 학계 主視의 적(的)이 되어 잇다.
아 교수의 의견으로는 물리적 실재는 이론과는 무관계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오인(吾人)은 이를 적의(適宜)하게 서술할 이론을 안출(案出)하지 안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양자론에서는 전자와 같은 실재를 단지 한개이 방정식으로서 보일뿐이오. 그 구체적인 양자(樣姿)는 이른바 불확정성원리로 호도(糊塗)해버리고 만다. 이것은 마치 화가가 풍경을 선이나 색으로 그리지 아니하고 까닭모를 기호로 제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과율 같은 것도 문제가 되므로 이는 이론이 불완전한 탓이 아닐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아 교수의 의견을 요약하면 물리적 실재를 언제나 선이나 색으로 그릴수잇는 풍경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오 吾人이 이를 관측하기 위하야 당연히 인정하지 안흐면 안되는 제약 때문에 아모래도 복잡한 기호를 쓰지안흐면 표시할 수 없게 되는것이라고 한다.
이 논쟁은 아마 아 교수가 말하는 '완전'한 이론이 실제로 나오지 아니하면 결말이 나지 안흐리라. 아 교수는 따로 그 이론을 시험하는 중에 잇지마는 현재로는 그 성공은 전연 미지수에 속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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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된 주제는 1935년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의 논문에 직접 연관됩니다. 흥미롭게도 그 해 10월에 이와 관련된 기사가 동아일보에 실렸습니다. 일제강점기였지만 국제 학술에 이렇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