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와 대중화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3-08 18:16
조회
4976

뉴턴이 1687년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발표했을 때 그 책을 읽고 상세한 부분까지 따라가면서 뉴턴이 새롭게 주장한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를 모두 통틀어 보아도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당시의 저술 관행에 따라 이미 바티칸 외에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라틴어로 썼으니, 라틴어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언감생심이었을 뿐 아니라, 그 안의 수학적 내용을 읽어나갈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말 그대로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기록에 따르면,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거죠. 아무나 읽고 제멋대로 논평하는 것이 몹시 거슬렸기 때문이랍니다.
("to avoid being baited by little Smatterers in Mathematicks . . . he designedly made his Principia abstruse; but yet so as to be understood by able Mathematicians.")
게다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초판은 겨우 250부밖에 인쇄하지 않았습니다. (400부 인쇄했다고 말하는 사료도 있습니다.)
1957년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남아 있는 초판이 189부였다고 합니다. 이걸 조사한 사람은 이렇게 많은 수의 초판본이 남아 있게 된 것은 이 책을 소장한 사람이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잘 보관해 두기만 했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면 아주 이상한 상황이 됩니다. 뭔가 대단한 책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저 난해할 뿐이 책이 문화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난해한 뉴턴의 저서가 심지어 이후 프랑스의 계몽사조의 기본이 되었다는 둥,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민지가 독립하여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 때 기초적인 정신이 되었다는 둥, 지금까지도 인류 역사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성취로 영광을 누리는 둥의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18세기 내내 뉴턴의 자연철학을 더 쉽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다시 쓰고 해설하고 확장하고 응용한 대중화 작업 덕분이었습니다.
Snobelen, S. D. (1998). On reading Isaac Newton’s Principia in the 18th century. Endeavour, 22(4), 159–163. doi:10.1016/s0160-9327(98)01148-x
아래 목록은 18세기에 출판된 뉴턴 자연철학 관련 책들입니다.
William Whiston (1716). Sir Isaac Newton’s mathematick philosophy more easily demonstrated.
Willem ‘sGravesande (1723). Philosophiae Newtonianae institutiones in usus academicos.
John Theophilus Desaguliers (1728) The Newtonian system of the world, the best model of government.
Francesco Algarotti (1737) Il Newtonianismo Per le Dame ovvero Dialoghi Sopra la Luce e i Colori
Voltaire (1738). Elemens de la philosophie de Neuton.
Benjamin Martin (1743). A course of lectures in natural and experimental philosophy, . . . explain ‘d on the principles of the Newtonian philosophy.
Colin Maclaurin (1748). An account of Sir Isaac Newton’s philosophical discoveries, in four books.
James Ferguson (1756). Astronomy explained upon Sir Isaac Newton’s Principles, and made easy to those who have not studied mathematics.
Tom Telescope (1761). The Newtonian system of philosophy adapted to the capabilities of young gentlemen and ladies, . . . six lectures read to the Lilliputian Society by Tom Telescope,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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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뉴버리의 책은 아주 인기가 좋았습니다. 1838년에 나온 판본에는 강의하는 사람과 이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수강자들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도 중요해 보입니다.
책 표지 두 개를 첨부했습니다. 위의 것은 저자가 콜린 머클로린입니다. 예, 맞습니다. 테일러-머클로린 급수에서 나왔던 바로 그 머클로린입니다.
맨 밑에 있는 책의 저자는 톰 텔레스코프(Tom Telescope, A.M.)인데, 짐작하시겠지만 필명입니다. 본명은 존 뉴버리(John Newbery 1713-1767)입니다. 이름 뒤에 있는 A.M. 또는 그림에 있는 대로 하면 M.A.는 Artium Magister 또는 Magister Artium의 약자입니다. 영어로 하면 Master of Arts입니다. 한국어로는 '문학석사'로 번역합니다.
존 뉴버리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작은 출판사에 숙련공으로 들어가서 결국 그 출판사를 물려받았는데, 원래 어린이 문학에 속하는 책들을 썼습니다. 그런 뉴버리가 "젊은 신사와 숙녀의 능력에 맞춘 뉴턴의 철학 체계"라는 제목의 책을 쓴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대담 영상 두 번째 에피소드를 보다가 문득 이 글에 보충적인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학십도>는 퇴계 이황이 1568년에 선조에게 올린 글입니다. 열 개의 그림으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1687년에 출판되었고, <성학십도> 못지 않게 신성하고 접근 불가능한 책으로 여겨졌습니다. 위의 글에서 다룬 대중화 작업이 없었다면, 뉴턴의 이름이 그토록 추앙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동아시아의 특이한 학문 전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17세기 유럽과 달리 16세기 조선에서 성학십도에 대한 대중적 해설이나 설명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이런저런 주석을 덧붙이는 정도인데, 제 짧은 지식으로는 가령 성학십도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설서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거의 없습니다. 2018년에 나온 한형조의 <성학십도, 자기 구원의 가이드맵> 정도가 본격적이 해설서라고 평가된다고 합니다. 그 동안 여러 번역본이 나오긴 했지만, 그 내용을 곱씹고 다듬어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평가하고 수정하고 단순화시키는 작업은 별로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사랑님의 글들을 잘 두었다가 나중에 보겠다고 미루어두었더니 이런 글이 있었는지도 까먹고 있었네요. 반성… ㅠㅠ 이 글을 보니 훌륭한 이론의 창안자 이후에 그 지식을 쉽게 만들어 널리 알리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되네요. 특히 톰 텔레스코프는 인상적입니다. 제목도 정말 인상적이네요. "젊은 신사 숙녀가 볼 수 있도록 재미있고 흥미롭게, 친숙한 사물들을 가지고 설명한 뉴턴 자연철학" 이 정도로 옮겨보아도 될 것 같은데요, 저도 그런 작업을 할 수 있겠는지 고민을 많이 해봐야겠습니다.
언젠가는 시인처럼님이 "젊은 신사 숙녀가 볼 수 있도록 재미있고 흥미롭게, 친숙한 사물들을 가지고 설명한 장회익 자연철학"을 내시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뉴턴 자신은 과학자도 아니었고 물리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용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영어로 scientist라는 단어가 처음 쓰인 것이 1830년대이고, 18세기에 프랑스에서 physicien이란 말이 지금의 물리학자와 대략 비슷한 면이 있는 단어로 사용되었지만, 뉴턴 당시에는 그런 말조차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