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고전역학이라는 용어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의 제2장은 '고전역학'입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한 중간 디딤돌로 고전역학이 왜 필요한가를 이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고전역학(classical mechanics)'이라는 용어는 19세기말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입니다. 과학사학자 리처드 스테일리는 현대물리학(modern physics)이 고전물리학(classical physics)과 동시에 생겨났다는 흥미롭고 중요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R. Staley. “On the Co-Creation of Classical and Modern Physics”. Isis, 96(4), 530-558. (2005); Richard Staley. Einstein's Generation: The Origins of the Relativity Revolu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8).
스테일리는 1900년 전후 40여년간의 문헌들을 상세하게 검토하면서 ‘고전적’이란 표현이 가지는 다의성과 다양성에 주목했습니다. ‘고전역학’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7년에 출간된 루트비히 볼츠만의 저서 Vorlesungen über die Principe der Mechanik (역학의 원리 강의)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서문에 있는 “오래된 고전주의적 역학(alte classische Mechanik)”이라는 모호한 표현은 그냥 자신의 저서에 담겨 있는 내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용어를 상세하게 해명한 것은 1899년 볼츠만이 뮌헨 자연과학자 학술대회에서 한 강연에서였습니다.
L. Boltzmann. “Über die Entwicklung der Methoden der theoretischen Physik in neuerer Zeit”. Münchener Naturfoscherversammlung. 22. Sept. (1899). Miller A.I. (1984) “On the Origins, Methods, and Legacy of Ludwig Boltzmann’s Mechanics”. In: Imagery in Scientific Thought Creating 20th-Century Physics. Birkhäuser.
볼츠만은 문학, 음악, 미술에서의 고전주의처럼 과학 특히 물리학에도 고전주의(das Alte, Klassische)가 있으며, 자신은 그러한 참된 고전주의적 과학(echte klassische Wissenschaft) 특히 고전주의적 이론 물리학(klassische theoretische Physik)을 믿고 그에 따라 연구를 수행하는 고전주의자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고전주의는 19세기 말 특히 빈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던 문학, 건축, 미술, 음악에서의 새로운 접근방식과 사조에 대비하여 대략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의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널리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고, 볼츠만은 이러한 건축, 미술, 음악에서의 고전주의를 명시적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볼츠만은 뉴턴의 역학을 더 발전시켜 새로운 방식으로 정식화한 해밀턴 역학을 고전주의적 역학, 즉 고전역학(alte klassische Mechanik)이라 하면서, 맥스웰 이후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전자기이론 또는 전기역학과 구별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볼츠만은 당시 최신의 물리학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세 가지 새로운 방법론을 비교했습니다. 첫째는 오스트발트를 주축으로 한 에너지학(Energetik)으로서 에너지 개념을 과학의 원초적 개념으로 삼으려는 프로젝트입니다. 둘째는 수학적 현상론으로서 현상 뒤의 실재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고 현상에 대한 서술로 만족하려는 입장입니다. 셋째는 볼츠만 자신이 추구하는 기체분자운동론입니다. 볼츠만은 과학 특히 물리학에서 세계 자체를 해명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그림(Bild)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키르히호프나 헤르츠의 접근을 빈 분리주의 건축이나 인상주의처럼 새로운 종류의 물리학으로 여기고, 자신은 전통적이면서 고전주의적인 역학을 수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1902년에 출간된 앙리 푸앵카레의 저서 <과학과 가설 (La science et l'hypothèse)>의 6장 제목은 La mécanique classique 즉 ‘고전적인 역학’입니다. 이 장에는 “수리물리학의 오래된 이론들 (Les anciennes théories de la physique mathématique)”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1905년에 출간된 영어번역판에서 이 ‘오래된 이론’이 classical theories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푸앵카레가 말한 고전적인 역학 또는 고전적인 이론은 사실상 뉴턴의 역학, 즉 운동의 세 법칙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역학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천체역학의 방법을 제시하고 삼체문제의 풀이를 위한 새로운 체계를 정립한 푸앵카레에게는 더 정교하고 엄밀한 해밀턴 역학이나 라그랑주 역학은 ‘고전적인 역학’이 아니라 새로운 역학에 더 가까웠습니다.
볼츠만에게 클라우지우스의 열역학은 ‘고전열역학’이지만 에너지 개념을 근본개념으로 삼는 에너지학(Energetik)은 뉴턴역학에서처럼 분자와 기본입자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분리주의(Secession)이며 새로운 조류였습니다. 이와 같이 ‘고전주의적’ 물리학이나 ‘고전주의적’ 역학은 지금 확립되어 있는 ‘고전물리학’이나 ‘고전역학’과는 내포적 의미가 다릅니다.
스테일리는 1911년 1차 솔베이 회의를 주된 분기점으로 삼아 ‘고전물리학’이란 개념과 ‘현대물리학(modern physics)’이란 개념이 사실상 함께 등장했음을 주장합니다. 새로운 물리학, 새로운 과학, 새로운 이론을 내세우던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과 구별되는 이전의 주장을 ‘고전적인’ 것으로 재구성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전물리학’이라 부르는 어떤 실체적인 것이 있다기보다는 ‘현대물리학’을 말하기 위해 기존의 접근을 ‘고전적’ 또는 ‘고전주의적’이라고 구성적으로 또는 상대적으로 불렀다는 주장인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초의 논의에서 상대성이론은 고전역학 또는 고전물리학과 대비되거나 구별되는 새로운 역학으로 자주 이야기되었고 반대로 양자물리학 또는 양자역학을 고전물리학과 구분하려는 노력에 반대하는 주장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테일리의 논의는 방대한 사료를 상세하게 검토함으로써 흔히 ‘고전물리학’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너무 쉽게 믿는 사람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었으며 이런 개념이 성립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하고 중요한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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