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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연철학 세미나

[자료] 고전역학이라는 용어

자료
고전역학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5-06-08 14:34
조회
99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의 제2장은 '고전역학'입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한 중간 디딤돌로 고전역학이 왜 필요한가를 이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고전역학(classical mechanics)'이라는 용어는 19세기말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입니다. 과학사학자 리처드 스테일리는 현대물리학(modern physics)이 고전물리학(classical physics)과 동시에 생겨났다는 흥미롭고 중요한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R. Staley. “On the Co-Creation of Classical and Modern Physics”. Isis, 96(4), 530-558. (2005); Richard Staley. Einstein's Generation: The Origins of the Relativity Revolu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8).

스테일리는 1900년 전후 40여년간의 문헌들을 상세하게 검토하면서 ‘고전적’이란 표현이 가지는 다의성과 다양성에 주목했습니다. ‘고전역학’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7년에 출간된 루트비히 볼츠만의 저서 Vorlesungen über die Principe der Mechanik (역학의 원리 강의)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서문에 있는 “오래된 고전주의적 역학(alte classische Mechanik)”이라는 모호한 표현은 그냥 자신의 저서에 담겨 있는 내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용어를 상세하게 해명한 것은 1899년 볼츠만이 뮌헨 자연과학자 학술대회에서 한 강연에서였습니다.

L. Boltzmann. “Über die Entwicklung der Methoden der theoretischen Physik in neuerer Zeit”. Münchener Naturfoscherversammlung. 22. Sept. (1899). Miller A.I. (1984) “On the Origins, Methods, and Legacy of Ludwig Boltzmann’s Mechanics”. In: Imagery in Scientific Thought Creating 20th-Century Physics. Birkhäuser.

볼츠만은 문학, 음악, 미술에서의 고전주의처럼 과학 특히 물리학에도 고전주의(das Alte, Klassische)가 있으며, 자신은 그러한 참된 고전주의적 과학(echte klassische Wissenschaft) 특히 고전주의적 이론 물리학(klassische theoretische Physik)을 믿고 그에 따라 연구를 수행하는 고전주의자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고전주의는 19세기 말 특히 빈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던 문학, 건축, 미술, 음악에서의 새로운 접근방식과 사조에 대비하여 대략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의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널리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고, 볼츠만은 이러한 건축, 미술, 음악에서의 고전주의를 명시적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볼츠만은 뉴턴의 역학을 더 발전시켜 새로운 방식으로 정식화한 해밀턴 역학을 고전주의적 역학, 즉 고전역학(alte klassische Mechanik)이라 하면서, 맥스웰 이후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전자기이론 또는 전기역학과 구별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볼츠만은 당시 최신의 물리학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세 가지 새로운 방법론을 비교했습니다. 첫째는 오스트발트를 주축으로 한 에너지학(Energetik)으로서 에너지 개념을 과학의 원초적 개념으로 삼으려는 프로젝트입니다. 둘째는 수학적 현상론으로서 현상 뒤의 실재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고 현상에 대한 서술로 만족하려는 입장입니다. 셋째는 볼츠만 자신이 추구하는 기체분자운동론입니다. 볼츠만은 과학 특히 물리학에서 세계 자체를 해명하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그림(Bild)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키르히호프나 헤르츠의 접근을 빈 분리주의 건축이나 인상주의처럼 새로운 종류의 물리학으로 여기고, 자신은 전통적이면서 고전주의적인 역학을 수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1902년에 출간된 앙리 푸앵카레의 저서 <과학과 가설 (La science et l'hypothèse)>의 6장 제목은 La mécanique classique 즉 ‘고전적인 역학’입니다. 이 장에는 “수리물리학의 오래된 이론들 (Les anciennes théories de la physique mathématique)”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1905년에 출간된 영어번역판에서 이 ‘오래된 이론’이 classical theories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푸앵카레가 말한 고전적인 역학 또는 고전적인 이론은 사실상 뉴턴의 역학, 즉 운동의 세 법칙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역학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천체역학의 방법을 제시하고 삼체문제의 풀이를 위한 새로운 체계를 정립한 푸앵카레에게는 더 정교하고 엄밀한 해밀턴 역학이나 라그랑주 역학은 ‘고전적인 역학’이 아니라 새로운 역학에 더 가까웠습니다.

볼츠만에게 클라우지우스의 열역학은 ‘고전열역학’이지만 에너지 개념을 근본개념으로 삼는 에너지학(Energetik)은 뉴턴역학에서처럼 분자와 기본입자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분리주의(Secession)이며 새로운 조류였습니다. 이와 같이 ‘고전주의적’ 물리학이나 ‘고전주의적’ 역학은 지금 확립되어 있는 ‘고전물리학’이나 ‘고전역학’과는 내포적 의미가 다릅니다.

스테일리는 1911년 1차 솔베이 회의를 주된 분기점으로 삼아 ‘고전물리학’이란 개념과 ‘현대물리학(modern physics)’이란 개념이 사실상 함께 등장했음을 주장합니다. 새로운 물리학, 새로운 과학, 새로운 이론을 내세우던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과 구별되는 이전의 주장을 ‘고전적인’ 것으로 재구성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전물리학’이라 부르는 어떤 실체적인 것이 있다기보다는 ‘현대물리학’을 말하기 위해 기존의 접근을 ‘고전적’ 또는 ‘고전주의적’이라고 구성적으로 또는 상대적으로 불렀다는 주장인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 초의 논의에서 상대성이론은 고전역학 또는 고전물리학과 대비되거나 구별되는 새로운 역학으로 자주 이야기되었고 반대로 양자물리학 또는 양자역학을 고전물리학과 구분하려는 노력에 반대하는 주장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테일리의 논의는 방대한 사료를 상세하게 검토함으로써 흔히 ‘고전물리학’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너무 쉽게 믿는 사람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었으며 이런 개념이 성립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하고 중요한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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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자세한 자료, 설명들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025.06.09
1. 변별체의 존재 양상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공부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바로 위의 답글에 쓴 물의 온도를 재는 상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장회익 선생님의 '변별체' 개념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측정장치 개념에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하여 추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관적으로는 모종의 측정장치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매우 다양한 측정장치 또는 검출장치를 사용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세미나에서 인용하신 안개상자(cloud chamber)나 거품상자(bubble chamber)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사용하는 사진건판도 변별체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loud_chamber https://en.wikipedia.org/wiki/Bubble_chamber 하지만 변별체가 측정장치/검출장치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변별체는 물리적 작용을 통해 뭔가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하지만, 또 동시에 그것을 읽어내서 인식주체의 경험표상영역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변별체는 대상과 인식주체 사이에 놓인 가교 내지 창문의 역할을 합니다. (제가 장회익 선생님의 제안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거품상자에서 기본입자가 만들어내는 궤적을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2025.06.03
2.의 질문이 흥미롭습니다. '이해'라는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상과 변별체의 만남(조우)은 원래 인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채거나 기록하거나 기억하거나 그로부터 지식을 얻는 것과 전혀 무관하게 대상과 변별체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하기에 이 세계 속의 수많은 물질적 존재자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치고 멀어져갈 것입니다. 아주 먼 우주에서 행성과 혜성이 충돌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하간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흔적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적 존재자에 생긴 흔적을 인식 주체인 '나' 또는 서술세계가 받아들이면 이제 그 흔적이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집니다. 인식주체가 없었더라면 그냥 물질적 충돌에 불과했을 것이 이제 '사건'이 되어 버립니다. 미묘하지만, 변별체와 경험표상영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변별체에 남은 흔적과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진 정보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50쪽의 그림 1-1에서 물질세계와 서술세계를 구별하는 점선을 넘나듭니다. 두 개의 네모 사이의 위아래 양쪽방향 화살표의 양면성입니다.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서 흔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과 '빈-사건'이 일어납니다. 특정 변별체에 흔적이 남지 않는 것도 흔적이 남는 것 못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해'라는 말이 직접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인용한 폰노이만의 온도 측정의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재려면 온도계를 넣어 수은/알콜의 높이를 보아야 합니다. 이 때 비커의 물이 대상이고 온도계는 변별체가 됩니다. (2) 온도계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전등의 빛이 수은/알콜의 경계면에 닿았다가 눈의 망막으로 와야 합니다. 이 때 온도계의 높이는 대상이 되고 빛(빛알)이 변별체가 됩니다. (3) 빛이 망막에 입사되면 망막에 있는 시신경에 나트륨 원소가 모이거나 흩어져서 전류가 만들어집니다. 이 때 빛이 대상이라면 시신경의 전위차는 변별체가 됩니다. (4) 시신경의 전위차는 뇌의 피질에서 뉴런을 발화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대목에서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읽어냅니다. (5) 그 다음 단계가 어렵습니다. 온도계의 높이든, 망막에 생기는 흔적이든, 시신경의 전위차든, 뉴런의 발화든 여하간 어느 단계에서 흔적의 기록이 정보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32-33쪽에 서술된 것처럼 역학 모드와 서술 모드를 구별합니다. 하지만 서술 모드만으로는 '이해'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하간 세 번째 모드로서 '의식 모드'가 작동을 해야 비로소 '이해'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라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인츠 폰푀르스터의 <이해를 이해하기> 같은 저작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Heinz Foerster (2003) Understanding Understanding: Essays on Cybernetics and Cognition. Springer. https://doi.org/10.1007/b97451
2025.06.03
3. 3차원 vs. 2+1차원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고대그리스-이슬람-중세유럽으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의 전통에서 세상의 중심은 지구였습니다. 지구 주위에는 일곱 행성(七曜) 즉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천구가 있고, 그 바깥에는 항성 천구가 있습니다. 지구는 네 개의 권역(구 껍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의 천구 바로 아래에는 불의 권역이 있고, 그 아래로 차례로 숨/바람의 권역, 물의 권역, 흙의 권역이 있습니다. 뒤의 세 권역은 현대의 기권(氣圈, Atmosphere), 수권(水圈 Hydrosphere), 지권(地圈,Geosphere)에 대략 연결됩니다. 불의 권역은 현대의 열권(熱圈, Thermosphere)이나 전리층과 비슷합니다. 여하간, 세상(우주)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이며, 이 중심을 향하는 방향이나 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이 곧 수직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지표면의 동서남북은 어느 쪽으로도 대등합니다. 이것이 바로 (2+1)차원의 세계입니다. 세계(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수직 방향도 동서남북과 대등하지 않을까 하는 관념이 펼쳐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펼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공간의 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숫자 $(x, y, z)$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비단 눈 앞에 펼쳐지는 육면체 모양의 방 안에서의 위치만이 아니라 온 우주 전체에서의 위치에도 해당합니다. 그러면 수직 방향이나 동서 방향이나 남북 방향이 모두 대등합니다. 데카르트에게 우주는 (2+1)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었습니다. [그림출처: Peter Apian (1529) Cosmographiae introductio]
2025.06.03
중요한 지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또 몇 가지 글에 대한 링크도 있었구요. 따로 답글도 있었는데 사라졌더라구요. 저의 부족한 글도 여하간 토론과 대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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