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입자인가, 파동인가
1. 입자 vs. 파동
입자인가, 파동인가의 논쟁은 실상 국소적(local, 局所的)인가, 광역적(global, 廣域的)인가의 논쟁입니다. 입자나 강체는 여하간 어느 곳이든 어느 순간이든 딱 거기에 있는 대상입니다. 이와 달리 파동은 온통 어디에나 언제나 퍼져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유럽 대학에서도 이 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17세기 영국의 아이작 뉴턴와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앙 하위흔스 사이의 논쟁이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빛이라는 것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놓고 뉴턴은 '입자(corpuscle, 粒子)'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하위흔스는 '파동(undulation/wave, 波動)' 같은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이 두 가지만 있을까 하고 묻는다면, 실상은 꽤 복잡합니다.
물리학 또는 자연철학에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정확히 어떤 성격인지 맨 처음부터 여하간 규정을 해 두어야 그 다음으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이 근본을 따지면 일종의 점(point, 點)이라는 생각을 상세하게 펼쳤습니다.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이 모이면 면이 되고, 면이 모이면 입체가 되고, 그런 것이 세상에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뉴턴은 이 생각을 수학을 써서 아주 엄밀하게 다듬어 근대물리학을 정립했습니다.
그 다음 단계는 점 두 개, 점 세 개, 점 여러 개.... 등과 같이 나아갑니다. 그러다가 점들이 어떤 모양을 이룬 상황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을 강체(rigid body, 剛體)라 부릅니다. 점과 달리 강체는 회전도 하고 우루루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강체는 그 모양을 유지한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그렇게 이상적이고 이상한 개념을 내세운 것은 그런 식으로만 문제를 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위흔스가 1690년에 출간된 [빛에 관한 논고 Traité de la Lumière]에서 빛이 일종의 파동이라고 주장한 것은 빛이 어디 한 곳, 어느 한 순간에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입자인가, 파동인가의 논쟁은 실상 국소적(local, 局所的)인가, 광역적(global, 廣域的)인가의 논쟁입니다. 입자나 강체는 여하간 어느 곳이든 어느 순간이든 딱 거기에 있는 대상입니다. 이와 달리 파동은 온통 어디에나 언제나 퍼져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밀려 오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실상 바닷물이 밀려 오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바닷물은 실상 제자리에서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약간 회전하긴 하지만 여하간 저 멀리로부터 바닷가까지 이동하는 게 아닙니다. 헤엄을 잘 치지 못하면 바닷가 저 멀리로부터 해변까지 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닷물이 아니라 물 표면의 높이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출렁거리는 것이 저 멀리로부터 이곳 해변까지 점점 다가옵니다. 이것이 파도(波濤)이고 이런 것을 일반화하여 개념으로 만든 것이 '파도의 운동' 즉 '파동(波動)'입니다.
이렇게 눈으로 선명하게 볼 수는 없지만, 소리야말로 파동입니다. 공기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의 밀도는 일정하지 않고 어떤 곳에서는 뭉쳐 있고 어떤 곳에서는 퍼져서 흩어져 있습니다. 어느 한 곳이 뭉치면 그 옆은 흩어져 있게 되고 다시 그 옆은 뭉치고 다시 그 옆은 흩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공기의 뭉침과 흩어짐이 교대하여 반복되는 것이 바로 음파(sound wave 音波)입니다.
파동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비국소화(delocalization)'라는 어정쩡한 개념을 쓰기도 합니다. 어느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입자라면, 공간과 시간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 파동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이에 강체, 탄성체, 유체 등의 개념이 있습니다. 입자나 강체는 공간 속으로 이동할 뿐 공간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이와 달리 탄성체에는 탄성파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표면의 지각과 맨틀이 딱딱한 강체가 아니라 탄성체이기 때문에 지진파라는 것이 생겨납니다. 액체나 기체에서는 아예 무엇인가가 공간 속으로 시간에 따라 퍼져나갑니다. 이것이 유체의 파동입니다.
파동의 주요 특징과 의미를 "중첩 원리와 선형 방정식과 파동"(https://bit.ly/43qIUkD)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빛과 관련된 이야기로 1801년 무렵 영국의 토머스 영이 했다는 겹실틈 실험을 조금 더 해설해 놓은 글이 "토머스 영의 실험과 빛의 파장 측정"(https://bit.ly/3YQkEXJ)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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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라 | 2025.05.21 | 1 | 208 |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어떤 물리적인 객체가 시공간에 분포된 사건들로 기술된다면 그것을 장으로 기술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요? 입자와 파동은 그 현상이 정성적으로 굉장히 차이나지만, 결국 장으로 기술되어야 하며 그 장의 행태를 결정하는 것은 더 많은 경험이라고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아주 적절하고 중요한 지적입니다.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긴 하지만, 파동이라는 개념을 쓰기는 것보다는 마당(field 場)이라는 개념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대개 "입자 vs 파동"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더 정확하고 의미 있는 대조는 "입자 vs 마당"입니다. 실상 '마당'이라는 것도 고전적 마당과 양자 마당이 구별됩니다.
파동이라 부르는 것은 위치와 시간의 함수로서 결국 일종의 마당입니다. 다만 마당이 언제나 파동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긴 해도 대부분의 마당은 어떤 식으로든 파동과 연결됩니다. 이와 달리 입자는 마당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