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존재론의 네 가지 의미
지난 세미나에서 '존재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이야기도 나오고, 아인슈타인의 논문 "물리학과 실재"에 나오는 구절 "일반적인 개념의 창출"이 왜 '존재론'이 되는가 하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존재론(存在論)은 라틴어 ontologia (영어 ontology, 독일어 Ontologie)의 번역어입니다. 온톨로기아(ontologia)라는 말은 '존재', '있음', '발현'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온토스(ὄντως)와 학문을 의미하는 로기아(λογία)를 합해 만든 용어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 참고문헌이 유용합니다.
- Dale Jacquette (2002) Ontology. Routledge.
https://doi.org/10.4324/9781315710655
이에 따르면, 존재론은 적어도 네 가지의 구별되는 의미를 지닙니다.
"순수한 철학적 존재론(pure philosophical ontology)은 응용 과학 존재론(applied scientific ontology)과 구별된다. 응용된 과학적 의미에서 존재론은 학문으로서의 존재론 또는 영역으로서의 존재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학문으로서의 존재론(ontology as a discipline)은 존재의 개념이나 사실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탐구하는 방법 또는 활동이다. 영역으로서의 존재론(ontology as a domain)은 학문으로서의 존재론의 결과물 또는 주제이다. 존재 영역을 통해 해석되는 응용 과학 존재론은 이론적 영역의 존재론(ontology of theoretical domain)과 현존 영역의 존재론(ontolgoy of extant domain)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이론적 영역의 존재론은 존재하는 실체의 선호되는 선택을 다루며, 현존 영역의 존재론은 전체로 여겨지는 실제 세계를 포함한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 자체를 다룬다. 따라서 이론적 영역으로서의 존재론은 특정 이론에 따라 존재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설명 또는 목록이며, 이는 참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존하는 영역으로서의 존재론은 실제 존재하는 모든 실체의 실제 세계이며, 이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참으로 완전한 응용 존재론 이론에 의해 식별된다. 따라서 우리는 존재론에 관한 철학적 저작을 읽을 때 저자가 추가 설명 없이 '존재론'이라는 단어를 통해 말하려는 의미를 다른 의미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pp. 2-3)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에서 말하는 존재론은 (1)의 의미, 즉 순수한 철학적 존재론이 아니라, 개별과학에서 다루어지는 응용 과학 존재론일 것입니다. 후자의 의미에서 '존재론'은 "존재의 개념과 사실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탐구하는 방법 또는 활동"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언급한 "일반적 개념들의 창출과 그 개념들 사이의 관계(Schaffung allgemeiner Begriffe und Beziehungen zwischen diesen Begriffen)"를 존재론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에서는 "일반적 개념들의 창출"을 '존재론'으로 보고, "개념들 사이의 관계"는 '정식화'로 보고 있습니다.)
하이데거, 볼프, 후설 등의 이름과 연결되는 존재론은 '순수 철학적 존재론'이며, 이것은 "존재하는 것은 도대체 왜 있으며 차라리 없음이 아닌가?"(Warum ist überhaupt Seiendes und nicht vielmehr Nichts?)라는 하이데거의 유명한 물음과 관련됩니다. 이 질문은 1953년에 출간된 [형이상학 입문(Einführung in die Metaphysik)]에서 다루는 물음입니다. 저는 이전에 하이데거를 읽으며 너무 추상적이고 이해가 어려워서 무척 고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다시 보아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따라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다행히(?) 양자역학을 통해 살펴봐야 할 존재론은 하이데거가 논의한 그 존재론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데일 자케트가 응용 존재론 또는 과학의 형이상학으로 논의하는 것은 (a) 물리적 실체(공간, 시간, 물질, 인과, 상태, 사건, 자연법칙 등), (b) 추상적 실체(수, 집합, 속성, 질, 관계, 명제, 가능성 등) (c) 마음의 주체성 (d) 신(神) (e) 문화의 존재론(언어, 예술, 인공물) 등입니다.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에서 다루어지는 '존재론'이 위의 네 가지 의미 중 어느 것에 해당할지 더 이야기해 볼 수 있겠습니다. 대략 (2)의 의미와 (3)의 의미가 모두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편 양자역학의 존재론과 관련한 것은 이전에 "양자역학의 존재론"(https://bit.ly/3H0nOlz)이란 제목의 글로 정리해 둔 적이 있습니다.
- Peter J. Lewis. (2016) Quantum Ontology: A Guide to the Metaphysics of Quantum Mechanics. Oxford University Press.
이 책은 분석형이상학 특히 존재론을 전공하는 철학자 피터 루이스가 양자역학의 형이상학을 설명하고 있어서, 여러 독자들에게 훌륭한 입문서 역할을 해 오고 있습니다. 피터 루이스는 양자역학과 관련된 존재론 문제를 1. 현상과 이론, 2. 실재론, 3. 과소결정, 4. 미결정성, 5. 인과, 6. 결정론, 7. 차원, 8. 부분과 전체라는 여덟 가지 부류로 나누어 논의합니다.
루이스의 접근에서 주목할 점은 양자역학이라는 이론이 아니라 간섭과 얽힘이라는 특별한 현상을 먼저 제시한 뒤, 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을 소개하면서 이에 대한 해석으로 나아간다는 점입니다. 또 단순히 양자역학이라는 이론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의 주요 주제에 어떤 새로운 함축이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가고 있어서 양자역학의 존재론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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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논문에서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감각경험들 사이에 어떤 질서를 형성시키는 일은 일반적 개념들의 창출, 이들 개념 사이의 관계들, 그리고 개념들과 감각경험 사이를 잇는 특정의 관계들을 통해 형성된다."
("durch Schaffung allgemeiner Begriffe und Beziehungen zwischen diesen Begriffen, sowie durch irgendwie festgelegte Beziehungen zwischen Begriffen und
Sinneserlebnissen zwischen letzteren irgend eine Ordnung herstellen")
("the production of some sort of order among sense impressions, this order being produced by the creation of general concepts, relations between these concepts, and by relations between the concepts and sense experience, these relations being determined in any possible m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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