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빛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
PSY님이 "빛 알갱이는 어떻게 그 존재를 측정하여 확인할 수 있나?"라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즉 "그 빛을 측정하거나 바라볼 때 그것에서 나오는 빛이 우리 눈이나 관찰기구에 전달되어야 할 텐데, ①대상으로서의 빛과 ② 그 대상을 감관에게 전달해 주는 빛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답 중 하나는 바로 '변별체'라는 개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빛을 측정하거나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간 어딘가에 빛이 있고 그 빛을 어떤 수단을 통해 측정하거나 보는 것이 아니라 여하간 무엇인가가 '광원'이라 부르는 것에서 나와서 물체의 표면에 부딪친 뒤 튀어나와서(반사되어서) 그것이 사람의 망막에 있는 광수용체를 거쳐 시신경을 지나 뇌의 시각 피질(visual cortex)에 흔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광원이 물체와 충돌(산란)한 결과를 시각 피질에서 감지하기까지를 빛의 경로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따지고 보면, 광원이라 부르는 물체가 있고, 빛이 반사되는 물체가 있고, 빛이 수송하는 에너지가 망막의 광수용체에 자극을 주거나 시신경의 전위를 높이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시각 피질이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정보로 바꿉니다.
여기에서 보거나 관측되는 것은 모두 빛이 물질적 요소에 일으킨 변화입니다. 빛이라는 실재(reality) 내지 실체(substance)에 대해 아는 것과 그것이 다양한 물질적 요소와 만나서 물질적 요소에 일으킨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앞의 것을 아는 유일한 길이 뒤의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빛이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적 요소를 변별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빛이라는 것이 다른 물질적 요소들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빛으로 빛을 볼 수 없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PSY님의 "그 빛을 측정하거나 바라볼 때 그것에서 나오는 빛이 우리 눈이나 관찰기구에 전달되어야 할 텐데, ①대상으로서의 빛과 ② 그 대상을 감관에게 전달해 주는 빛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에서 "② 그 대상(즉 ①의 빛)을 감관에게 전달해 주는 빛"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 "①대상으로서의 빛"은 철저하게 추상화되고 이론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뭐라도 알아내려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물질과의 상호작용을 하는 양상을 바라보아야 하고, 물질에 남기는 흔적을 통해서만 비로소 "①대상으로서의 빛"의 속성이나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과 과학의 역사에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슬람 황금시대를 거쳐 중세 유럽과 근대 과학혁명에 이르기까지 '빛'에 대한 상세한 자연철학적 및 형이상학적 논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참고로, 직접 관련은 되지 않지만, 마침 화요일 밤에 진행되는 '책밤'에서 칼 포퍼의 <추측과 논박>을 읽고 있는데, 그 책에 있는 그림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Popper, K. (1963) Conjectures and Refutations. Routledge & Kegan Paul. p. 145]
이 그림이 들어 있는 3장은 인간 지식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a$, $b$는 드러나는 현상을 가리키고, $A$, $B$는 그 현상의 이면에 있으리라 여겨지는 실재입니다. $\alpha$, $\beta$는 그 실재에 대한 서술 또는 기호적 표현입니다. $A$와 $B$의 본질적 (관계적) 속성을 $E$라 하면, 이를 서술하는 이론이 $\varepsilon$이 되고, 이 이론을 사용하여 $\alpha$로부터 $\beta$를 연역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론의 도움을 받아 $a$가 어떻게 $b$의 원인이 되는지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퍼의 논의는 인간 지식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라서 이를 가지고 빛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에 연결시키는 것은 어색하고 부적절합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런 일반적인 논의가 빛에 대해서도 잘 작동하는 것 같아서 함께 이야기해 보기 위한 용도로 여기에 옮겨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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