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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연철학 세미나

[자료] 빛 입자 또는 빛에 대한 물리학적 논의

질문 및 토론
자연철학 일반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5-05-15 12:34
조회
169

PSY님이 빛 입자에 대한 흥미로운 의문을 적어 주셔서 그와 관련된 것을 조금 덧붙이고자 합니다. 우선 질문에서 말씀하신 '광자' 또는 '빛알'에 대해 물리학의 관점에서 짧게 정리한 뒤, 나중에 전통적인 형이상학 특히 존재론과 관련된 이야기를 대략 적어보겠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실상 빛을 다루지 않습니다. 빛은 양자역학이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양자역학이라 부르는 물리학의 이론은 원론적으로 비상대론적 대상을 다루며, 전자나 원자 같은 것을 다루기에 적합하지만, 빛은 전혀 다루지 못합니다. 양자역학의 초기역사 즉 1925년 무렵 양자역학의 여러 형태가 처음 등장하기 전에 준비 과정에서는 '빛의 양자'(독일어로 리히트크반텐 Lichtquanten, 영어로 포톤 photon, 일본어로 코시 こうし 光子)라는 개념이 자주 사용되었지만, 빛은 애초부터 상대론적으로만 다룰 수 있습니다. 빛이 광속보다 느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어 번역어인 '코시 こうし 光子'를 그대로 음차해서 '광자'라는 용어가 널리 퍼져 있지만, 한국물리학회는 '빛알'이라는 순우리말을 30여년 전에 도입해서 열심히 홍보하고 있습니다.

빛을 제대로 다루는 양자이론은 양자마당이론(quantum field theory) 또는 양자장이론입니다. 특히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라 부르는 또 다른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에서 다루는 대상은 빛알과 전자와 양전자입니다. 그 사이에는 전기력과 자기력이 작용합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용어로 표현하면, '동역학적 특성'은 질량, 전하, 전자기력이고 '동역학적 상태'는 전자기장이 됩니다. 

여기에서 '빛알(photon)'은 '광자'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일종의 입자(粒子)인 것으로 자주 오해됩니다. 하지만, 실상 '빛알'이라는 개념에는 어디에도 '낟알'이나 '씨앗'이나 '알갱이'의 뉘앙스는 없습니다. 아주 작은 구슬 같은 이미지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말 그대로 '빛과 관련된 양적 단위'라는 지칭만 있습니다.

그런데 PSY님이 "①대상으로서의 빛과 ②그 대상을 감관에게 전달해 주는 빛"을 구분하셨는데,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빛알을 그대로 관측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양자이론에서 다루는 빛, 즉 빛알은 그 자체로서의 존재성을 지니지 않습니다. 

아래 그림은 양자전기역학에 등장하는 파인만 도식이라는 것입니다. 상세한 것을 적기는 어렵겠지만, 실선은 전자(또는 양전자)를 나타내고 물결모양 곡선은 빛알을 나타냅니다. 여기에서 전자(또는 양전자)는 물질을 대표합니다. 세 번째 그림을 보면 전자, 양전자, 빛알 이렇게 셋이 만나서 꼭지점을 이룹니다. 이 꼭지점이 전자기 상호작용입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Quantum_electrodynamics ]

예를 들어 전자 둘("1"과 "2")이 충돌한다면 중간에 빛알이 매개를 해서 "5"와 "6"의 꼭지점에서 서로 상호작용하여 그 결과 전자 둘("3"과 "4")이 나오는 과정을 다음의 파인만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출처:  R. P. Feynman (1949). "Space–Time Approach to Quantum Electrodynamics". Physical Review. 76 (6): 769–89. DOI:
https://doi.org/10.1103/PhysRev.76.769
]

이 도식에서 볼 수 있듯이, 빛알은 중간을 매개하는 역할을 할 뿐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아래 도식처럼 빛알이 겉에 있고 전자가 매개를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래 도식은 소위 컴프턴 산란을 나타냅니다. 빛을 전자에 쪼여주면 빛의 파장(색깔)이 바뀌는 현상인데, 아래 도식을 계산하면 측정된 값과 매우 잘 맞아떨어집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Quantum_electrodynamics ]

설명이 더 필요하겠지만, 상호작용이 없는 독자적인 빛이라는 것을 알아낼 방법은 물리학에서는 전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상호작용이 없는 독자적인 전자, 원자, 물질이란 것도 물리학에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①대상으로서의 빛과 ②그 대상을 감관에게 전달해 주는 빛"을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대상으로서의 빛"이라는 관념은 일종의 추상화된 이름 붙이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빛이라는 개념을 현대물리학, 특히 양자마당이론처럼 최첨단의 이론으로 보는 게 아니라 더 오래된 전통에 따라 따져보면 또 다른 문제들이 드러납니다. 

고대 인도 베단타 철학에서는 사람들이 처음에 빛을 먹고 살아서 '무게'가 없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지비(地肥)'를 먹는 바람에 '무게'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유대교가 모두 경전으로 삼고 있는 '타나크'(구약성서)의 맨 처음에는 신이 가장 먼저 '빛'을 만들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철학과 과학의 역사에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슬람 황금시대를 거쳐 중세 유럽과 근대 과학혁명에 이르기까지 '빛'에 대한 상세한 자연철학적 및 형이상학적 논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다른 글에서 빛의 존재론과 관련된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백과사전에 있는 다음 항목이 유익합니다.

https://inters.org/schultzinger-metaphysics-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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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입자에 대한 의문..
[자료] 빛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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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자세한 자료, 설명들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025.06.09
1. 변별체의 존재 양상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공부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바로 위의 답글에 쓴 물의 온도를 재는 상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장회익 선생님의 '변별체' 개념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측정장치 개념에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하여 추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관적으로는 모종의 측정장치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매우 다양한 측정장치 또는 검출장치를 사용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세미나에서 인용하신 안개상자(cloud chamber)나 거품상자(bubble chamber)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사용하는 사진건판도 변별체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loud_chamber https://en.wikipedia.org/wiki/Bubble_chamber 하지만 변별체가 측정장치/검출장치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변별체는 물리적 작용을 통해 뭔가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하지만, 또 동시에 그것을 읽어내서 인식주체의 경험표상영역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변별체는 대상과 인식주체 사이에 놓인 가교 내지 창문의 역할을 합니다. (제가 장회익 선생님의 제안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거품상자에서 기본입자가 만들어내는 궤적을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2025.06.03
2.의 질문이 흥미롭습니다. '이해'라는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상과 변별체의 만남(조우)은 원래 인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채거나 기록하거나 기억하거나 그로부터 지식을 얻는 것과 전혀 무관하게 대상과 변별체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하기에 이 세계 속의 수많은 물질적 존재자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치고 멀어져갈 것입니다. 아주 먼 우주에서 행성과 혜성이 충돌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하간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흔적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적 존재자에 생긴 흔적을 인식 주체인 '나' 또는 서술세계가 받아들이면 이제 그 흔적이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집니다. 인식주체가 없었더라면 그냥 물질적 충돌에 불과했을 것이 이제 '사건'이 되어 버립니다. 미묘하지만, 변별체와 경험표상영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변별체에 남은 흔적과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진 정보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50쪽의 그림 1-1에서 물질세계와 서술세계를 구별하는 점선을 넘나듭니다. 두 개의 네모 사이의 위아래 양쪽방향 화살표의 양면성입니다.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서 흔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과 '빈-사건'이 일어납니다. 특정 변별체에 흔적이 남지 않는 것도 흔적이 남는 것 못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해'라는 말이 직접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인용한 폰노이만의 온도 측정의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재려면 온도계를 넣어 수은/알콜의 높이를 보아야 합니다. 이 때 비커의 물이 대상이고 온도계는 변별체가 됩니다. (2) 온도계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전등의 빛이 수은/알콜의 경계면에 닿았다가 눈의 망막으로 와야 합니다. 이 때 온도계의 높이는 대상이 되고 빛(빛알)이 변별체가 됩니다. (3) 빛이 망막에 입사되면 망막에 있는 시신경에 나트륨 원소가 모이거나 흩어져서 전류가 만들어집니다. 이 때 빛이 대상이라면 시신경의 전위차는 변별체가 됩니다. (4) 시신경의 전위차는 뇌의 피질에서 뉴런을 발화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대목에서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읽어냅니다. (5) 그 다음 단계가 어렵습니다. 온도계의 높이든, 망막에 생기는 흔적이든, 시신경의 전위차든, 뉴런의 발화든 여하간 어느 단계에서 흔적의 기록이 정보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32-33쪽에 서술된 것처럼 역학 모드와 서술 모드를 구별합니다. 하지만 서술 모드만으로는 '이해'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하간 세 번째 모드로서 '의식 모드'가 작동을 해야 비로소 '이해'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라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인츠 폰푀르스터의 <이해를 이해하기> 같은 저작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Heinz Foerster (2003) Understanding Understanding: Essays on Cybernetics and Cognition. Springer. https://doi.org/10.1007/b97451
2025.06.03
3. 3차원 vs. 2+1차원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고대그리스-이슬람-중세유럽으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의 전통에서 세상의 중심은 지구였습니다. 지구 주위에는 일곱 행성(七曜) 즉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천구가 있고, 그 바깥에는 항성 천구가 있습니다. 지구는 네 개의 권역(구 껍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의 천구 바로 아래에는 불의 권역이 있고, 그 아래로 차례로 숨/바람의 권역, 물의 권역, 흙의 권역이 있습니다. 뒤의 세 권역은 현대의 기권(氣圈, Atmosphere), 수권(水圈 Hydrosphere), 지권(地圈,Geosphere)에 대략 연결됩니다. 불의 권역은 현대의 열권(熱圈, Thermosphere)이나 전리층과 비슷합니다. 여하간, 세상(우주)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이며, 이 중심을 향하는 방향이나 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이 곧 수직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지표면의 동서남북은 어느 쪽으로도 대등합니다. 이것이 바로 (2+1)차원의 세계입니다. 세계(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수직 방향도 동서남북과 대등하지 않을까 하는 관념이 펼쳐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펼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공간의 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숫자 $(x, y, z)$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비단 눈 앞에 펼쳐지는 육면체 모양의 방 안에서의 위치만이 아니라 온 우주 전체에서의 위치에도 해당합니다. 그러면 수직 방향이나 동서 방향이나 남북 방향이 모두 대등합니다. 데카르트에게 우주는 (2+1)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었습니다. [그림출처: Peter Apian (1529) Cosmographiae introductio]
2025.06.03
중요한 지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또 몇 가지 글에 대한 링크도 있었구요. 따로 답글도 있었는데 사라졌더라구요. 저의 부족한 글도 여하간 토론과 대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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