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은 확률 계산 도구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18-220쪽과 234-237쪽에 있는 양자역학의 공리 넷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 책에서 처음 양자역학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독자라면,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제가 짐작하기에, 장회익 선생님은 이미 <과학과 메타과학>이나 <물질, 생명, 인간>, <양자, 정보, 생명> 등에서 여러 차례 다양하게 양자역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정리하고 소개하신 바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굳이 기존에 있는 내용을 반복하시지 않은 듯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네 개의 공리를 대뜸 써 놓은 것이야말로 양자역학과 관련된 혼동스러운 이야기들을 넘어서 양자역학을 일목요연하게 잘 소개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의 글에 덧붙인 답글 중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썼습니다.
"양자 베이즈주의(QBism)에 따르면, 양자역학은 과거의 경험에 바탕을 두어 이후의 경험에 대한 확률적 기대를 계산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What is QBism?)
양자 베이즈주의가 무엇인지 상세하게 해명할 필요 없이, 이 한 문장은 양자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요약해 줍니다.
다른 답글에서 MIT의 컴퓨터 공학자인 스캇 아론슨(Scott Aaronson)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책 제목은 Quantum Computing since Democritus입니다. 이 책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양자역학은 다른 물리학 이론들이 응용 소프트웨어로 작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운영체제(O/S)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보통의 의미의 물리학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서 물질이나 에너지나 파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양자역학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 내가 보기에, 양자역학은 정보와 확률과 관측가능량,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론슨의 접근을 단순화시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확률은 곧 $(p_1 , p_2 , \cdots , p_n )$과 같은 확률분포로 주어지는데, 이 확률들은 \[ \sum_{i=1}^n p_i = p_1 + p_2 + \cdots + p_n = 1\]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여기에서 '확률'이라고 따옴표 안에 넣어 말한 것은 흔히 말하는 확률이 아닙니다. 흔히 '확률진폭'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진폭 amplitude'이란 것은 역사적으로 '파동'이란 모델과 비유 덕분에 생긴 이름입니다. 여러 개의 파동이 겹쳐 있을 때, 그 특정 부분파의 진동의 크기를 가리키는 말이 진폭이고, 확률은 그 진폭의 절대값 제곱이라는 겁니다.
양자역학은 이 조건 대신 \[ \sum_{i=1}^n |c_i|^2 = |c_1|^2 +|c_2|^2 + \cdots + |c_n |^2= 1\]이라는 새로운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하고, '확률'이 음수도 되고 복소수도 되게 허용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양자역학은 무엇보다도 엄격한 규칙에 따라 사건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게 해 주는 이론적 도구입니다.
구체적으로 대상의 상태함수가 \[ \psi = \sum c_i \phi_i = c_1 \phi_1 + c_2 \phi_2 + \cdots + c_n \phi_n \]으로 주어지고, $\phi_i $ ($i=1, \cdots, n$)가 고유값 $a_i$ ($i=1, \cdots, n$)에 대응하는 고유벡터라고 할 때, 측정의 결과로 나올 수 있는 값의 후보는 그 고유값 중 하나이고, 마침 $i$번째 고유값이 나올 확률은 \[ p(a_i | \psi) = |\langle \phi_i | \psi \rangle |^2 = |c_i|^2 \]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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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조금 낯선 기호를 도입했는데, 월든님의 지적대로 읽는 법을 덧붙이겠습니다.
먼저 $\sum$은 그리스 문자 중 '시그마'에 해당하는데, 더하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summa에서 s를 따고, 그리스어 문자 중에서 s에 대응하는 '시그마'의 대문자를 가져온 것입니다. 읽을 때에는 '시그마'라고 읽습니다. \[\sum_{i=1}^n p_i \]라고 쓴 것은 "$i$가 1부터 $n$까지 차례로 늘어날 때, 오른쪽에 있는 표현 중에서 $i$에 그 수를 대입하여 모두 더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sum_{i=1}^3 p_i = p_1 + p_2 + p_3 \]임을 알 수 있다면 성공입니다.
\[ \sum_{i=1}^{100} p_i = p_1 + p_2 + \cdots + p_{100} \]이 될 텐데, 100개의 항을 모두 쓸 수는 없으므로, 중간에 생략된 것은 $\cdots$로 나타냅니다. 그렇게 써 놓으면 알아서 짐작하라는 의미입니다. 좀 불친절하죠.
$p(a_i | \psi)$는 확률이론에서 조건부 확률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읽을 때에는 "대상이 $\psi$ 상태에 있을 때, 측정값이 $a_i$가 될 확률"이라고 읽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이제까지 도입한 적이 없는 낯선 기호입니다. $\langle \cdot | \cdot \rangle$는 $\cdot$가 있는 곳에 어떤 수학적 대상(이 경우에는 상태함수)을 넣어 곱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곱하기가 꽤 복잡하고 추상적입니다. 공식 용어로는 '내적(內積)'이라고 부릅니다.
$|\quad|$는 절대값을 의미합니다. 가령 $|3|=3$, $|-4|=4$, $| 3+ 4 i | = 5$입니다.
복소수의 절대값은 \[ |z| := \sqrt{ z z^*}\]으로 정의합니다. 여기에서 별표는 켤레복소수를 의미합니다. 즉, \[z = a + b i\]일 때 \[ z^* = a - b i\]가 되고, \[ |z| = \sqrt{ (a+b i )(a-bi)} = \sqrt{a^2 + b^2}\]가 됩니다. 따라서 \[ | 3 + 4 i| = \sqrt{ 3^2 + 4^2 } = \sqrt{25} = 5\]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상태함수가 복소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곱하기의 결과가 반드시 실수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절대값을 붙인 뒤에 제곱을 합니다. 왜냐하면 확률은 항상 0보다 크거나 같아야 하거든요. 게다가 1보다 항상 작거나 같다는 조건도 충족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0 \le p_i \le 1$이라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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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님의 요청에 맞추어, 수식 읽는 법을 밑에 적어 놓았습니다. 수식도 일종의 언어이고 읽고 쓰는 법이 하나의 규칙으로 자리를 잘 잡고 있습니다. 언어는 자꾸 사용해야 조금씩이라도 느는 것처럼, 수식이라는 언어도 자꾸 사용해야 늘지만, 일상에서는 쓸 일이 없기 때문에, 실상 읽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그래도 자연철학적 탐구를 위해서는 이런 기호를 익히는 과정이 분명히 어느 단계에서는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마치 괴테의 '베르터의 슬픔'을 읽기 위해 독일어 단어를 배우고 문법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