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질문] 최우석 - '선택의 여지' 그리고 '앎과 실재'
Q1. 자연 가운데 '선택의 여지'는 어디에 있는 걸까?
Q1-1. 물질세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은 ‘특성’, 특히 외력을 변화시키는 것인가?
“이는 말하자면 ‘특성’에 어떠한 변화가 가해지면 ‘상태’도 이에 따라 변해갈 것을 예측하는 것인데, 이것 또한 이러한 틀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지식의 형태를 취한다. 이때 외부에서 가해지는 조처는 ‘특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동일한 ‘상태’에 있는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 ‘특성’에 차이가 가해짐으로써 ‘상태’의 변화 양상에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고, 의사는 바로 이 점을 활용해 병을 치료한다.” (<자연철학 강의> p. 470)
위의 인용문을 다시 눈여겨 보기 전에는 어떤 변화를 일으키자면 초기상태에 변화를 가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글을 보면 대상의 특성을 변화시켜서 상태에 변화를 일으키는 방식으로만 외부에서 어떤 변화를 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상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식은 특성에 변화를 가하는 것인가요?
Q1-2. 특성, 특히 외력의 변화는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는가?
대상의 특성을 질량과 대상이 받고 있는 힘이라고 하면 외부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건 외력 뿐일 것 같습니다.
장현광의 언명에서 찾아낼 수 있는 '예측적 앎의 바탕 구도'로 보자면 대상의 상태는 보편 변화의 원리를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를 알게 되면 미래의 상태도 알 수 있게 되고, 과거의 상태도 되짚어 알 수 있습니다. 라플라스의 말에서는 이 점이 "우주의 현재 상태는 이전의 상태로부터 도출된 결과이며 앞으로 닥쳐올 상태에 대한 원인이라고 보아야 한다."라고 표현됩니다.
이러한 예측적 앎의 바탕 구도를 '결정론적 서술'이라고 한다면 이는 대상의 상태 변화에 국한된 것인가요? 아니면 대상의 특성, 특히 외력 또한 결정론적 서술로 서술되는 것인가요?
Q1-3. 자연 가운데 '선택의 여지'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삶의 주체인 '나'를 전제한 대부분의 논의는 '선택'과 관계됩니다. 자연이 이러이러하고 나의 삶은 이러이러하니 이러한 선택이 마땅하다, 삶과 당위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이런 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사람만이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자연 또한 선택을 한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자연 세계에는 신도 없고 어떤 목적도 없지만 기나긴 시간과 환경의 변화 가운데에서 어떤 형질은 선택되고 어떤 형질은 선택되지 않는 방식으로 생물종의 진화가 일어난다는 자연선택의 원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인공선택이 되었건 자연선택이 되었건 어떤 '선택'이 가능하려면 자연 가운데에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라플라스의 말로 표현되는 '결정론적 서술'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대상의 상태는 결정론적으로 변화하지만 대상의 특성은 그러하지 않아 특성의 변화에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면 동역학적으로는 대상의 상태도 결정론적으로 변화하고, 대상의 특성 또한 다시 다른 대상의 상태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대상의 특성과 상태 모두가 결정론적으로 변화한다고 이해해야 하지만 여러 대상들이 계를 이루는 통계역학적 서술에서 다소간의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고전역학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선택의 여지'가 양자역학에서는 허용된다고 보아야 할까요?
예측적 앎의 바탕 구도는 기본적으로 결정론적 자연 이해 위에서 성립하는 것일텐데 예측적 앎의 바탕 구도는 어디에 '선택의 여지'를 두고 있는 걸까요?
Q2. 우리의 '합의된 앎'이 곧 '실재'인가?
Q2-1. 실재에 대한 우리의 (현대과학적) 앎을 곧 '실재'라 여길 수 있을까?
- 앎의 주체는 ‘대상 층’과 만날 길이 없다.
- 앎의 주체는 ‘사건 층’에서 얻게 되는 단편적인 정보들로 대상 세계에 대한 추측, 가설을 시험하고 검증, 반증하는 방식으로만 대상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
- 따라서 “무엇이 어떻게 실재하는가”에 대한 유일한 답은 “우리가 무엇이 어떻게 실재한다고 인식하는가”이다.
- “우리가 우주의 운행원리를 알려면 이렇게 얻어진 우리 앎을 들여다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적어도 이 앎은 40억 년의 긴 시간 동안 우리 온생명 전체가 생존을 걸고 다듬어온 최종 결과이기 때문이다.” (<자연철학 강의, pp. 483-484)
그런데 현대 자연철학이 자연을 서술하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일상적인 '소박한 실재관'과는 거리가 먼 서술, 이해를 줄곧 만나게 됩니다. 가령 시간과 공간은 4차원 시공간, 4차원 운동량-에너지 공간으로 표현되는데 장회익 자연철학에서는 이를 이해를 돕기 위한 수학적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실재'로 본다고 파악됩니다. 양자역학은 이 두 공간이 맞공간을 이루고 있다는 새로운 바탕관념 위에 서있다고 정리되는 데 이때 이 새로운 바탕관념은 새로운 도구의 도입이 아니라 그야말로 새로운 시공간 이해인 것이니까요. 또 대상이 '성향'으로서 존재한다고 하는 새로운 존재론 역시 현대 양자역학이 보여주고 있는 자연 서술이 도구적인 것 이상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재관'은 굉장히 낯설면서도 우리의 '소박한 실재관'과는 거리가 멀어서 소화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거니와 현대과학의 언어와 서술방식을 모르면 실재에 대한 상을 갖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큰 장벽을 안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Q2-2. 장회익 자연철학의 '실재관'은 90년대에 비해 변경되었는가?
오늘 궁금한 참에 과거 장회익 자연철학의 실재관은 어떠했는지 이해하려고 <양자역학과 실재성의 문제 - 벨의 부등식 해석을 통한 고찰> (1994, 계간 과학사상, pp.93-112)을 대강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번 보아야 이해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말미의 다음 문장이 눈에 크게 들어왔습니다.
"이러한 비라플라스적 서술의 경우 우리는 관측된 물리량들의 값을 대상에 부여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다. 오직 이로부터 유추된 상태만을 대상에 부여하여 미래 상태 산출에 활용하게 되지만 이것 또한 새로운 예측을 위한 조작적 의미 이상을 부여받는 것은 아니다. 즉, 대상에 부여되는 이러한 상태조차도 실재성을 지닌 그 어떤 것으로서가 아니라 다음 관측이 이루어질 때까지 일시적으로 유효한 일종의 '정보 집약물'로서 부여하는 것이다." (p. 109)
최근 읽기 모임에 끼어들어 겨우겨우 읽고 있는 포퍼의 ⟪추측과 논박⟫ 1권의 3장 "인간의 지식에 관한 세 가지 견해"에서 포퍼는 과학적 이론이 실재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을 '본질주의'와 '도구주의', 그리고 포퍼 자신의 '진정한 추측들'이라는 세 가지로 나누고 있더군요. 당연히 포퍼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모두 배격하고, 세 번째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고 있는데요, 저는 장회익 자연철학의 실재관도 포퍼의 이 세 번째 견해와 같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94년 위 논문의 인용문은 이 때만 해도 과학적 이론을 그 자체로 '실재'로 받아들일 필요 없이 '도구'로 이해하는 게 적당하다는 입장에 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제 오해인가요, 아니면 입장의 변화가 있던 걸까요?
Q2-3. 우리의 '앎'이 곧 '실재'라고 하면 '상대주의적 실재관'이 허용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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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들은 매우 중요하고 심오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그레테 헤르만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Grete_Hermann
그레테 헤르만이 1933년 "결정론과 양자역학"이란 논문을 썼고, 1935년에 "양자역학의 자연철학적 기초"라는 제목의 긴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헤르만의 접근이 위에 올리신 첫 번째 묶음의 질문과 직접 연결됩니다. 나중에 기회 되는 대로 그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양자역학 나아가 물리학 그리고 자연철학 전반에 대한 장회익 선생님의 입장이 도구주의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질문은 30년쯤 전에도 자주 나왔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 그 때 장회익 선생님의 대답은 기존의 과학적 실재론 논쟁에서 말하는 실재론(본질주의)-반실재론(도구주의)의 틀은 부적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칼 포퍼도 1950년대와 달리 1970년대 이후에는 실재론-반실재론의 대립구도가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합의된 앎이 곧 실재라고 말하게 되면, 어떤 의미에서는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충 분류하는 철학적/예술적/문학적 사조와 통할 수도 있겠습니다. 가령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아주 긴 주석이라고들 하는데, 들뢰즈는 플라톤의 사유에서 이데아를 빼 버립니다. 즉 원본 없는 모사들만이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식/앎/진리 등에 대한 상대주의적 접근으로 연결되는 듯이 보입니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참인가 하는 문제를 합의로 정한다는 것은 가령 '본질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합리하고 부적절한 일이겠습니다. 최근의 정치적 상황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이 '포스트진리(post-truth)'라는 개념일 것입니다. 무엇이 진짜 진리인가 하는 것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인 방식으로 정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입니다. 지금도 다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