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함수, 웨이비클, 양자라는 용어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3-02 15:28
조회
5014
양자역학에서 상태를 기술하는 수학적 대상이 '상태함수'입니다. 그러나 이 수학적 대상이 이런 이름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슈뢰딩거는 1926년에 새로운 역학을 제시한 뒤에 점차 파동역학(Wellenmechanik)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거기에 나오는 특별한 함수의 이름을 '파동함수 Wellenfunktion'이라 불렀습니다.
이 용어가 영어로 번역될 때 독일어를 그대로 직역하여 wave function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과장하면) 이렇게 두 단어를 떨어뜨려 놓으면 마치 '파동' 따로 '함수' 따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 양자역학을 배우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양자역학에 앞서 파동을 수학적으로 어떻게 쓰는지 배운 뒤입니다. 따라서 $\Psi (x, y, z, t)$이라는 표현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파동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부터인가 wave function이란 용어 대신 wave-function이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함수가 아주 특별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파동'과 '함수'를 떨어뜨려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셈입니다. 더 나아가 아예 wavefunction이라는 한 단어를 만들어서 이 단어를 써야 한다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마치 상대성이론 이전에 space and time이라 하던 것을 아인슈타인-민코프스키 이후로 space-time으로 고쳐 쓰고, 결국 지금은 아예 spacetime이라는 한 단어를 쓰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입자-파동 이중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wave-particle이라고 하이픈을 넣어 두 단어를 붙여 쓰다가, 요즘에는 아예 wavicl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입자 particle'나 '파동 wave'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죠.
저처럼 입자-파동 이중성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굳이 wavicle 같은 용어를 만드는 것이 부적절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냥 '양자대상 quantum object'이란 용어를 즐겨 씁니다.
웨이비클은 명상이나 영혼의 소통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이비종교 같은 신비주의자들이 애용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림 출처: https://amzn.to/3aq8Eka)
지나가는 말로 농담 비슷하게 이야기하자면, 철학자들을 비롯하여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비전공자)이 종종 '양자'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양자' 중에는 전자뿐 아니라 양성자, 중성자, 중간자 같은 것이 있다는 (잘못된) 말까지 덧붙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양자'의 '~자'를 '입자'의 ~자'와 같은 용어라고 잘못 생각한 탓인 듯 합니다.
18세기 일본의 란학사였던 시즈키 타다오(志筑忠雄, 1760–1806)는 영어의 corpuscle에 해당하는 것을 일본어로 (더 정확히 말하면 한자로) 번역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다가 分子(분시)라는 멋진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비슷하게 여러 종류의 알갱이들을 모두 ‘-子(し)’로 끝나도록 이름붙이는 표준을 세웠습니다.
(참고: "뉴턴 물리학의 동아시아 전파")
유럽에서는 19세기말부터 이런 기본 단위를 "-on"이라는 접미사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맨 먼저 전기 electricity와 관련된 기본 단위를 electron이라 이름붙였고, 수소원자핵을 proton이라 불렀습니다. 1920년대말부터는 빛의 기본 단위를 photon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참고: H. Kragh (2014) Photon: New light on an old name)
1931년에 전기적으로 중성을 나타내는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자, 바로 neutron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중성' '중립'을 의미하는 neutral과 '입자'를 의미하는 -on을 붙인 것입니다.
19세기말부터 이미 유럽에 진출하여 활발하게 물리학 연구에 참여하고 있던 일본 학자들은 electron, proton, photon, neutron을 電子(でんし [덴시]), 陽子(ようし [요오시]), 光子(こうし[코오시]), 中性子(ちゅうせいし [추우세에시] 등으로 불렀습니다. 한국어로는 이 한자표기를 그대로 한국식으로 읽어서 그냥 전자, 양자, 광자, 중성자 등이 표준어가 되었습니다.
앗, '양자'라구요? 양자는 量子(りょうし [료오시])가 아니었나요? proton을 '양자'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제 짧은 경험으로는 1980년대 초에 양자역학이라든가 입자물리학을 처음 접했는데, 주로 일본 고단샤에서 나오는 과학 단행본 '블루백스' 시리즈를 통해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책들에는 '양성자'를 죄다 '양자'라고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양자역학이란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proton mechanics인 줄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일본용어로 된 한자를 그대로 음차하는 바람에 당혹스러운 상황이 된 유명한 예는 小數와 素數입니다. 일본식으로 쓰면 小数(しょうすう [쇼오스우])와 素数(そすう [소스우])와 같이 발음이 다릅니다. 한자를 항상 표기하는 일본어에서는 이 둘을 혼동할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 단어를 그대로 음차해서 한국식으로 읽어 용어로 만든 한심한 학자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일본을 통해 일본어로 수학을 배웠던 일제하 조선/한국의 수학자들은 다른 한자를 만들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채, 그냥 이 두 용어를 '소수'와 '소수'로 번역(?)해 버렸습니다. 그나마 1980년대까지는 素數를 '솟수'라 불렀습니다. 실상 근본 없는 용어였습니다. 여기에 사이시옷이 들어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1990년대에 한글맞춤법이 바뀌어 사이시옷을 최소로 하게 되면서 '솟수'는 '소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혼동을 극도로 피해야 할 수학용어에서 전혀 다른 의미의 두 개념, small number와 prime number을 둘 다 '소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하여튼 proton은 일본어를 따라 양자(陽子)라 불리는 대신 한국어 공식용어는 '양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양자(量子)는 원래 독일어에서 'Quant [크반트]' (복수 Quanten [크반텐])로서 그냥 '양(量)'이란 의미였습니다. 19세기 중엽부터 이미 어떤 물리량의 값의 단위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래서 정수처럼 띄엄띄엄 떨어진 것을 독일어에서 quantisiert[크반티지어트]라는 술어로 사용했습니다. 영어로는 quantized라고 번역하고 현재 한국어로는 '양자화된'이라고 번역합니다.
Quant 또는 Quanten은 영어로 번역되면서 quantum이라는 라틴어를 닮은 느낌의 신조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여하간 다른 입자들처럼 '-on'으로 끝나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일본 학자들이 Quant 또는 quantum을 量子라고 번역한 것이 어쩌면 '양자'라는 개념을 오해하게 만든 첫 단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quantum이란 용어는 애초부터 존재론적인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전자(electron), 양성자(proton), 중성자(neutron) 같은 것은 실상 어떻든지 상관없이, 그것이 '입자(corpuscle / particle)'라고 생각하고 존재론적으로 그렇다는 믿음을 가지고 붙인 이름입니다. '-on'이라는 접미어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란 의미의 ontos (ὄντος)라는 그리스어 단어의 속격인 on(ὄν)을 어원으로 한 것이니, 일관성 있는 이름이라 하겠습니다.
시즈키 타다오가 입자나 분자나 원자 같이 구성요소가 되는 것을 죄다 '-子[시]'라는 글자가 끝에 오도록 이름붙이자고 한 것도 현명했습니다. 한자 구성을 보고 있노라면 참 기가 막히게 잘 만든 번역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corpuscle은 그렇다 치고, particle, molecule, atom 같은 것을 粒子, 分子, 原子로 번역할 때 얼마나 고심했을까 상상해 보면, 시즈키 타다오라는 사람이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최근 어떤 사람들은 wave-particle이나 wavicle이란 용어 대신 quanton이라는 용어를 쓰자고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量子인 셈인데, 공교롭게도 quantum이 이미 '양자'이니까, quanton은 '양자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슈뢰딩거는 1926년에 새로운 역학을 제시한 뒤에 점차 파동역학(Wellenmechanik)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거기에 나오는 특별한 함수의 이름을 '파동함수 Wellenfunktion'이라 불렀습니다.
이 용어가 영어로 번역될 때 독일어를 그대로 직역하여 wave function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과장하면) 이렇게 두 단어를 떨어뜨려 놓으면 마치 '파동' 따로 '함수' 따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 양자역학을 배우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양자역학에 앞서 파동을 수학적으로 어떻게 쓰는지 배운 뒤입니다. 따라서 $\Psi (x, y, z, t)$이라는 표현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파동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부터인가 wave function이란 용어 대신 wave-function이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함수가 아주 특별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파동'과 '함수'를 떨어뜨려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셈입니다. 더 나아가 아예 wavefunction이라는 한 단어를 만들어서 이 단어를 써야 한다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마치 상대성이론 이전에 space and time이라 하던 것을 아인슈타인-민코프스키 이후로 space-time으로 고쳐 쓰고, 결국 지금은 아예 spacetime이라는 한 단어를 쓰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입자-파동 이중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wave-particle이라고 하이픈을 넣어 두 단어를 붙여 쓰다가, 요즘에는 아예 wavicl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입자 particle'나 '파동 wave'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죠.
저처럼 입자-파동 이중성을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굳이 wavicle 같은 용어를 만드는 것이 부적절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냥 '양자대상 quantum object'이란 용어를 즐겨 씁니다.
웨이비클은 명상이나 영혼의 소통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이비종교 같은 신비주의자들이 애용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림 출처: https://amzn.to/3aq8Eka)
지나가는 말로 농담 비슷하게 이야기하자면, 철학자들을 비롯하여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비전공자)이 종종 '양자'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빛과 전자는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고 사실은 양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양자' 중에는 전자뿐 아니라 양성자, 중성자, 중간자 같은 것이 있다는 (잘못된) 말까지 덧붙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양자'의 '~자'를 '입자'의 ~자'와 같은 용어라고 잘못 생각한 탓인 듯 합니다.
18세기 일본의 란학사였던 시즈키 타다오(志筑忠雄, 1760–1806)는 영어의 corpuscle에 해당하는 것을 일본어로 (더 정확히 말하면 한자로) 번역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다가 分子(분시)라는 멋진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비슷하게 여러 종류의 알갱이들을 모두 ‘-子(し)’로 끝나도록 이름붙이는 표준을 세웠습니다.
(참고: "뉴턴 물리학의 동아시아 전파")
유럽에서는 19세기말부터 이런 기본 단위를 "-on"이라는 접미사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맨 먼저 전기 electricity와 관련된 기본 단위를 electron이라 이름붙였고, 수소원자핵을 proton이라 불렀습니다. 1920년대말부터는 빛의 기본 단위를 photon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참고: H. Kragh (2014) Photon: New light on an old name)
1931년에 전기적으로 중성을 나타내는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자, 바로 neutron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중성' '중립'을 의미하는 neutral과 '입자'를 의미하는 -on을 붙인 것입니다.
19세기말부터 이미 유럽에 진출하여 활발하게 물리학 연구에 참여하고 있던 일본 학자들은 electron, proton, photon, neutron을 電子(でんし [덴시]), 陽子(ようし [요오시]), 光子(こうし[코오시]), 中性子(ちゅうせいし [추우세에시] 등으로 불렀습니다. 한국어로는 이 한자표기를 그대로 한국식으로 읽어서 그냥 전자, 양자, 광자, 중성자 등이 표준어가 되었습니다.
앗, '양자'라구요? 양자는 量子(りょうし [료오시])가 아니었나요? proton을 '양자'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제 짧은 경험으로는 1980년대 초에 양자역학이라든가 입자물리학을 처음 접했는데, 주로 일본 고단샤에서 나오는 과학 단행본 '블루백스' 시리즈를 통해서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책들에는 '양성자'를 죄다 '양자'라고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양자역학이란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proton mechanics인 줄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일본용어로 된 한자를 그대로 음차하는 바람에 당혹스러운 상황이 된 유명한 예는 小數와 素數입니다. 일본식으로 쓰면 小数(しょうすう [쇼오스우])와 素数(そすう [소스우])와 같이 발음이 다릅니다. 한자를 항상 표기하는 일본어에서는 이 둘을 혼동할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 단어를 그대로 음차해서 한국식으로 읽어 용어로 만든 한심한 학자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일본을 통해 일본어로 수학을 배웠던 일제하 조선/한국의 수학자들은 다른 한자를 만들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채, 그냥 이 두 용어를 '소수'와 '소수'로 번역(?)해 버렸습니다. 그나마 1980년대까지는 素數를 '솟수'라 불렀습니다. 실상 근본 없는 용어였습니다. 여기에 사이시옷이 들어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1990년대에 한글맞춤법이 바뀌어 사이시옷을 최소로 하게 되면서 '솟수'는 '소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혼동을 극도로 피해야 할 수학용어에서 전혀 다른 의미의 두 개념, small number와 prime number을 둘 다 '소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하여튼 proton은 일본어를 따라 양자(陽子)라 불리는 대신 한국어 공식용어는 '양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양자(量子)는 원래 독일어에서 'Quant [크반트]' (복수 Quanten [크반텐])로서 그냥 '양(量)'이란 의미였습니다. 19세기 중엽부터 이미 어떤 물리량의 값의 단위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래서 정수처럼 띄엄띄엄 떨어진 것을 독일어에서 quantisiert[크반티지어트]라는 술어로 사용했습니다. 영어로는 quantized라고 번역하고 현재 한국어로는 '양자화된'이라고 번역합니다.
Quant 또는 Quanten은 영어로 번역되면서 quantum이라는 라틴어를 닮은 느낌의 신조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여하간 다른 입자들처럼 '-on'으로 끝나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일본 학자들이 Quant 또는 quantum을 量子라고 번역한 것이 어쩌면 '양자'라는 개념을 오해하게 만든 첫 단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quantum이란 용어는 애초부터 존재론적인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전자(electron), 양성자(proton), 중성자(neutron) 같은 것은 실상 어떻든지 상관없이, 그것이 '입자(corpuscle / particle)'라고 생각하고 존재론적으로 그렇다는 믿음을 가지고 붙인 이름입니다. '-on'이라는 접미어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란 의미의 ontos (ὄντος)라는 그리스어 단어의 속격인 on(ὄν)을 어원으로 한 것이니, 일관성 있는 이름이라 하겠습니다.
시즈키 타다오가 입자나 분자나 원자 같이 구성요소가 되는 것을 죄다 '-子[시]'라는 글자가 끝에 오도록 이름붙이자고 한 것도 현명했습니다. 한자 구성을 보고 있노라면 참 기가 막히게 잘 만든 번역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corpuscle은 그렇다 치고, particle, molecule, atom 같은 것을 粒子, 分子, 原子로 번역할 때 얼마나 고심했을까 상상해 보면, 시즈키 타다오라는 사람이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최근 어떤 사람들은 wave-particle이나 wavicle이란 용어 대신 quanton이라는 용어를 쓰자고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量子인 셈인데, 공교롭게도 quantum이 이미 '양자'이니까, quanton은 '양자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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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이야기하다 말고 잠시 화제를 바꾸어 小數와 素數에 대해 썼는데, 이와 관련하여 제가 즐겨 드는 예는 行星과 惑星입니다.
동아시아 천문학에서 붙박이별(fixed stars)은 항성(恒星)으로 불렸고, 1년 여에 걸쳐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듯 보이는 일곱 개의 떠돌이별을 행성(行星)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일본어로 읽으면 恒星(こうせい [코오세에])과 行星(こうせい [코오세에])의 발음이 똑같습니다. 정밀한 천문력을 만들고 계산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다른 개념에 대해 발음이 같은 용어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惑星(わくせい[와쿠세에])라는 용어를 대신 만들어냈습니다. 밤하늘에서 선명하게 붉은 색으로 보이는 화성을 熒惑이라 불렀기 때문에 그 惑자를 따온 것입니다.
18세기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 천문학이 들어온 뒤, 중국-조선의 '행성(行星); 대신 遊星(ゆうせい [유우세에])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은 일본에서 遊星(ゆうせい [유우세에])는 쓰지 않고 모두 惑星(わくせい[와쿠세에])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流星(りゅうせい[류우세에])와 발음이 유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遊星(ゆうせい [유우세에])를 한국어 식으로 읽으면 '유성'이 되는데, 이것은 流星(りゅうせい[류우세에])과 같은 발음이 됩니다. 流星은 글자 그대로 흐르는 별, 즉 별똥별을 가리킵니다. 일본어를 그대로 음역한 책에서는 '행성'이라고 써야 할 곳에 그냥 '유성'이라고 쓰는 바람에 별똥별과 혼동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가령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유성가면 피터>는 일본어 원작 제목이 <遊星仮面> 즉 '행성 가면'입니다.
그런데 19세기까지 조선의 천문학은 정교하게 발전해 갔지만, 20세기 이후 일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천문학이 밀려들어왔습니다. 최남선이나 이광수도 천문학과 관련된 글들을 남겼습니다. 19세기까지 최한기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자연철학의 전통 아래 천문학적 사유가 깊이 전개되어 왔지만, 일본에 유학했던 상류층 지식인들은 일본을 통해 접한 서양과학에 금세 매료되었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동아시아 천문학의 용어 중 하나인 行星을 버리고 일본에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새로운 용어 惑星을 퍼뜨리게 됩니다.
성리학적 자연철학에서는 세상의 근본원리로서 음양오행을 하늘의 칠요(七曜), 즉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에 대응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7개의 떠돌이별들을 '태양', '태음', 5행성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세상만물의 기본원리인 5행과 밤하늘의 떠돌이별을 연결시켜 '행성'이라 부른 조화로운 자연철학은 서양 과학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던 19세기 말 메이지 일본의 시대정신 속에서 성리학적 자연철학과는 분리되어 서양 과학의 번역이 학문의 기본 바탕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것 때문에 역사적 맥락을 잊어버리고 그냥 '혹성', 심지어 '소혹성'이란 용어를 쓰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화 Planet of the Apes (유인원들의 행성)이 "혹성탈출"이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사는 곳은 한동안 "소혹성 B612"였습니다.
조금 엉뚱한 이야기로 사족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오래 전에 어느 책에서 양자역학과 관련된 상품광고가 있다면서 아래 링크에 있는 광고를 소개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http://theinspirationroom.com/daily/2007/ricoh-intelligent-models-talk-quantum-physics/" target="_blank" rel="noopener">Ricoh Intelligent Models Talk Quantum Physics <------ 클릭!
리코라는 프린터 제조사에서 "Intelligent Model"이라는 이름의 새 모델을 출시하면서, 이 단어를 문자 그대로 읽어서 "지성적인 모델"로 보고, 그 내용을 광고에 넣은 것입니다.
모델들이 나누는 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델 1: 하지만 양자역학이 보통의 의미의 물리학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서 물질이나 에너지나 파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그럼 뭐에 관한 거지?
모델 2: 글쎄, 내가 보기에, 양자역학은 정보와 확률과 관측가능량,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한 얘기야.
모델 1: 그거 재미있네!"
이 광고를 소개한 사람은 MIT의 스캇 아론슨(Scott Aaronson)입니다. 책 제목은
Quantum Computing since Democritus
인데, 저는 이 책을 무척 즐기면서 읽었습니다. 아론슨이 리코 광고영상을 소개한 이유는 그 광고영상에서 모델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론슨이 자기 블로그에 올린 문장을 한 단어도 안 틀리고 그대로 표절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https://www.scottaaronson.com/blog/?p=277" target="_blank" rel="noopener">Australian actresses are plagiarizing my quantum mechanics lecture to sell printers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양자역학이란 것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를 잘 보여준 광고영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우 인텔리전트한 광고네요. ^^;
이 광고영상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어요. 이전에 다른 기회에 이 영상을 소개했더니, 여성 모델을 폄하하는 것 같다고 불쾌하다는 사람도 있었구요. 다른 사람의 블로그 (나중에는 책)에 있는 문장을 이렇게 맘대로 가져다 써도 될까 하는 것도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죠. 그런데 그보다도 스캇 아론슨이 쓴 문장 자체를 음미해 보는 것도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 틈 날 때 그 점에 대해 글을 올려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