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자(ens)와 표현: 성분이라는 개념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3-01 16:07
조회
3704
이 '성분' 개념이 좀 오묘한 데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용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약간 확장하면 '개체(entity)'와 '표현(representation)'을 구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준 역할을 하는 기저를 $\vec{f}_1$, $\vec{f}_2$, $\vec{f}_3$처럼 다른 것으로 선택하여
$$\begin{align} \vec{v} &= a_1 \vec{e}_1 + a_2 \vec{e}_2 + a_3 \vec{e}_3\\ & = b_1 \vec{f}_1 + b_2 \vec{f}_2 + b_3 \vec{f}_3\end{align}$$
와 같이, 같은 벡터라도 성분을 나타내는 값이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vec{v} = (a_1 , a_2 , a_3)$$
라고 쓸 때의 '등호'가 양쪽이 정말로 똑같다는 의미를 갖지 않게 됩니다.
기저를 어떻게 선택하는가에 따라
$$\vec{v} = (b_1 , b_2 , b_3)$$
라고 써도 되는 거죠. 이렇게 기저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성분표시를 '표현(representation)'이라 부르고, 그 표현과 달리 항상 동일성을 유지하는 그 대상을 '개체(entity)'라 부릅니다.
물리학자들은 개체와 표현을 구별하기 위해
$$\vec{v} \doteq (a_1 , a_2 , a_3)$$
처럼 새로운 기호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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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일 수도 있습니다만, 철학에서는 영어로 entity라 쓰거나 독일어로 Entität, 프랑스어로 entité라 쓰는 것을 '존재자'라고 번역합니다. 장회익 선생님은 '존재물'이라고 쓰시더군요. 이 말은 라틴어 ens의 번역어입니다. 가령 독일어 위키피디어에는 Entität가 대략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한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제가 위에서 좀 과장된 예로서 아인슈타인이라는 한 인물의 여러 '성분들'을 적어보았는데, 중세유럽의 철학적 논변들 속에 "내가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근거"라든가 "이것이 저것과 다른 이유" 같은 문제를 끔찍할 정도로 깊이 이야기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가령 가톨릭 교회 미사 때 사제가 빵을 집어 신도에게 먹여줄 때 그 빵이 예수의 몸으로 변한다는 교리가 있습니다.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이 교리를 논의할 때 이런 종류의 여러 개념들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더 깊이 이야기하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에서 변화를 '운동 motus'이라 부르면서 세상만물의 변화를 탐구하던 것이나 동아시아 성리학의 자연철학(가령 장현광)에서 '형(形)'과 '상(象)'이란 개념으로 이야기하면서 마찬가지로 세상만물의 변화를 탐구하던 것이 연관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뉴턴의 접근이 특별했던 것은 그 모든 변화에 다 집중하지 말고 그냥 위치의 변화만 보자고 했던 점입니다. 그렇지만 뉴턴은 '힘'이라는 대단히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하고 신비한 개념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위치의 변화만을 본다면, 상태를 (위치, 운동량)의 두 값으로 규정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궤적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양자역학에 오면 궤적의 개념을 부정하게 되고, 상태를 (위치, 운동량)으로 나타낼 수 없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대신 추상적인 상태함수라는 것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상태함수는 위에서 장황하게 적은 것처럼 '벡터'라는 수학적 대상이 됩니다.
그러면 상태함수는 존재자 또는 개체일까요, 아니면 일종의 표현일까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33쪽에서 다소 갑작스럽게
$$\Psi = \sum c_i \phi_i $$
라는 식이 등장합니다.
이 식의 의미를 음미해 보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더 적어 보겠습니다.)
간단하게 용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수(常數 constant) : 변수(變數 variable)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그 문자가 나타내는 값이 달라지지 않는 것을 가리킴. 가령 함수 $y = a x^2 + b x + c$에서 미리 주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는 $a, b, c$는 상수이고, 이로부터 아직 알지 못하는 변수 $x$의 값이 달라질 때 그에 따라 함께 변하는 $y$도 변수입니다. 먼저 변하는 $x$를 독립변수라 하고, 나중에 따라 변하는 $y$를 종속변수라 부릅니다.
계수(係數 coefficient): 가령 방정식 $a x^2 + b x + c = 0$에서 미리 주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는 $a, b, c$를 계수라 부르고, 이로부터 방정식의 풀이(해)는
$$x=\frac{-b \pm \sqrt{b^2 - 4 a c}}{2a}$$
와 같이 아직 알지 못하던 미지수(未知數 unknown) $x$를 계수들의 연산으로 표현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성분(成分 component): 전체의 구성요소라는 의미로서, 선형대수학을 비롯하여 벡터를 다루는 수학이론에서는
$$\vec{v} = (a_1 , a_2 , a_3)$$
과 같이 아무 벡터를 표현하는(나타내는) 숫자들을 대개 '성분'이라고 합니다. 기저(basis) 개념을 덧붙이면
$$\vec{v} = a_1 \vec{e}_1 + a_2 \vec{e}_2 + a_3 \vec{e}_3$$
이라 쓸 때 일종의 기준 역할을 하는 세 개의 벡터 $\vec{e}_1$, $\vec{e}_2$, $\vec{e}_3$를 '기저'라 하고 그 때 그 앞에 있는 숫자가 '성분'이 됩니다.
여기에서 약간 확장하면 '개체(entity)'와 '표현(representation)'을 구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준 역할을 하는 기저를 $\vec{f}_1$, $\vec{f}_2$, $\vec{f}_3$처럼 다른 것으로 선택하여
$$\begin{align} \vec{v} &= a_1 \vec{e}_1 + a_2 \vec{e}_2 + a_3 \vec{e}_3\\ & = b_1 \vec{f}_1 + b_2 \vec{f}_2 + b_3 \vec{f}_3\end{align}$$
와 같이, 같은 벡터라도 성분을 나타내는 값이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vec{v} = (a_1 , a_2 , a_3)$$
라고 쓸 때의 '등호'가 양쪽이 정말로 똑같다는 의미를 갖지 않게 됩니다.
기저를 어떻게 선택하는가에 따라
$$\vec{v} = (b_1 , b_2 , b_3)$$
라고 써도 되는 거죠. 이렇게 기저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성분표시를 '표현(representation)'이라 부르고, 그 표현과 달리 항상 동일성을 유지하는 그 대상을 '개체(entity)'라 부릅니다.
물리학자들은 개체와 표현을 구별하기 위해
$$\vec{v} \doteq (a_1 , a_2 , a_3)$$
처럼 새로운 기호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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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일 수도 있습니다만, 철학에서는 영어로 entity라 쓰거나 독일어로 Entität, 프랑스어로 entité라 쓰는 것을 '존재자'라고 번역합니다. 장회익 선생님은 '존재물'이라고 쓰시더군요. 이 말은 라틴어 ens의 번역어입니다. 가령 독일어 위키피디어에는 Entität가 대략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한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1) 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Seiendes)이나 구체적 또는 추상적인 대상을 의미하며, 상황에 따라, '물(物) Ding', 속성, 관계, 사태, 사건 등의 용어로 대치할 수 있다.
(2) 어떤 것이 현존재나 대상의 정체성에 대하여 필수적인 요소라는 의미에서 어떤 대상의 본질을 의미하며, 고전적인 실체 개념에 상응한다.
제가 위에서 좀 과장된 예로서 아인슈타인이라는 한 인물의 여러 '성분들'을 적어보았는데, 중세유럽의 철학적 논변들 속에 "내가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근거"라든가 "이것이 저것과 다른 이유" 같은 문제를 끔찍할 정도로 깊이 이야기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가령 가톨릭 교회 미사 때 사제가 빵을 집어 신도에게 먹여줄 때 그 빵이 예수의 몸으로 변한다는 교리가 있습니다.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이 교리를 논의할 때 이런 종류의 여러 개념들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더 깊이 이야기하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에서 변화를 '운동 motus'이라 부르면서 세상만물의 변화를 탐구하던 것이나 동아시아 성리학의 자연철학(가령 장현광)에서 '형(形)'과 '상(象)'이란 개념으로 이야기하면서 마찬가지로 세상만물의 변화를 탐구하던 것이 연관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뉴턴의 접근이 특별했던 것은 그 모든 변화에 다 집중하지 말고 그냥 위치의 변화만 보자고 했던 점입니다. 그렇지만 뉴턴은 '힘'이라는 대단히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하고 신비한 개념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위치의 변화만을 본다면, 상태를 (위치, 운동량)의 두 값으로 규정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궤적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양자역학에 오면 궤적의 개념을 부정하게 되고, 상태를 (위치, 운동량)으로 나타낼 수 없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대신 추상적인 상태함수라는 것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상태함수는 위에서 장황하게 적은 것처럼 '벡터'라는 수학적 대상이 됩니다.
그러면 상태함수는 존재자 또는 개체일까요, 아니면 일종의 표현일까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233쪽에서 다소 갑작스럽게
$$\Psi = \sum c_i \phi_i $$
라는 식이 등장합니다.
이 식의 의미를 음미해 보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더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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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함수는 존재자 또는 개체일까요, 아니면 일종의 표현일까요?" 예전에 어떤 블로그에서 읽었던 논의가 생각났습니다... 데이비드 머민이란 사람의 글을 김효진이란 분이 번역한 것인데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YJHp&articleno=895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그 "사물의 풍경"이라는 블로그에 종종 가서 좋은 글들을 읽고 합니다. 제 관심사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서 아주 유익합니다. 말씀해 주신 글은
데이비드 머민: 오늘의 논평-양자역학에 관하여
일 것 같습니다. Physics Today에 실린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Quantum mechanics: Fixing the shifty split
이 글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소위 '양자 베이즈주의 QBism'입니다. 베이즈주의(Bayesianim)라는 것은 확률을 해석하는 한 조류인데, 양자역학에 고유한 확률의 문제를 이 베이즈주의 해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머민이 글에서 논평하고 있듯이, 상당히 좋은, 그래서 깊이 고민해볼만한 의미 있는 접근인데, 이상하게도 물리학자들은 물론 과학철학자들도 그리 관심 있게 살피지 않고 있어서, 좀 이상할 정도이기도 합니다.
양자 베이즈주의에서는 측정결과라는 것은 말 그대로 측정의 수행 이전에 존재하는 어떤 물리량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측정 결과는 주체가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경험이 있기 전에 이미 존재하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확률의 베이즈주의 해석은 확률은 주체의 지식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봅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과 양자 베이즈주의(QBism)는 통하는 바가 꽤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양자이론의 기초를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다른 모임에서 제가 이 주제를 짧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장회익 선생님은 양자 베이즈주의의 접근에 찬성하시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데이비드 머민은 제가 #89번 글에서 소개한 고체물리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교과서의 집필자이기도 합니다. 양자역학의 기초에 관련한 좋은 논문들을 많이 썼고, 또 상대성이론에 관련된 매우 멋진 책도 있습니다.
N. David Mermin (2005). It's About Time: Understanding Einstein's Relativ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제가 "존재자(개체) vs. 표현"으로 대비시키려 했던 것은 QBism과는 상당히 다른데, 이것을 상기하셨다니 무척 흥미롭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분명히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 고민을 해 봐야겠습니다.
아 머민의 그 글이 아니라, "데이비드 머민: 오늘의 에세이-실재와 추상물에 관하여(What's bad about this habit)"에 관한 글입니다. http://blog.daum.net/nanomat/895
머민의 말 "양자 상태는 여태까지 우리가 찾아낸 가장 강력한 추상물일 것이다. (여기서 "찾아낸"이라는 낱말은 유용한 낱말인데, 실재-추상 축 상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 낱말이 "발견된" 아니면 "발명된"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 상태는 실재적인 것인가?"
감사합니다. 제가 엉뚱한 글을 가지고 엇나간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
실재와 추상물에 관하여
Physics Today 62, 5, 8 (2009); https://doi.org/10.1063/1.3141952
머민의 접근은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과 깊이 연관됩니다. 머민이 이타카에 있는 코넬 대학에 재직했기 때문에, 1990년대 중반에 "양자역학의 이타카 해석"이란 것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양자역학의 서울 해석"과 연결시킬 수 있는 대목이 꽤 있습니다.
물체의 상태를 위치와 운동량으로 삼는 것은 곧 궤적을 볼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물체의 상태를 상태함수라는 추상적인 수학적 장치로 서술한다는 것은 구체적이거나 경험적인 궤적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는 것에 해당할 겁니다.
머민의 그 글에서는 4차원 시공간이 실재인지, 아니면 이론적 추상인지 고민해 볼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양자 상태 함수라는 것이 실재일까, 아닐까 고민해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롭고 유익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떤 이론이 세상을 서술해 준다고 할 때, 그 이론이 실재인가 아닌가 묻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가령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서술로서 얼마나 실재에 가까울까요? 실재라는 게 있긴 있을까요?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지점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이론이 실재인가?'라고 묻는 것은 '그 이론이 참인가?' 라고 묻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만약 어떤 이론을 참이라고 인식할 인간들이 모조리 사라져도 그 이론을 실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는군요. 돌멩이는 인간들이 사라져도 실재할 것 같고, 물리학의 법칙들은 인간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실재했을 것 같습니다만…만물이 그 법칙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할 때조차도 저는 여전히 우주 안에서 생각하고 있지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불가능하군요.
"이론이 실재인가?(Is the theory T reality?)"라는 질문은 실상 부적절한 면이 있습니다. 제가 상태가 실재인가, 벡터가 실재인가 등등 이론적 용어나 개념이 실재인가 여부를 묻고 따지는 글에 댓글을 달면서 갑자기 "어떤 이론이 세상을 서술해 준다고 할 때, 그 이론이 실재인가 아닌가 묻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라고 적은 것은 맥락을 흐리는 부적절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와 별개로 이론의 진리성 여부를 이론을 인식하는 사람들의 존재와 연결시키는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신유물론 또는 신실재론 또는 사변적 실재론에서 바로 그러한 전통적 철학들을 '상관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성격을 실재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보셨을 것 같긴 하지만, 가령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된 릭 돌페인(Rick Dolphijn)의 책 Philosophy of Matter: A Meditation의 일독을 추천드립니다. 녹색아카데미와도 인연이 있는 우석영 작가가 [지구와 물질의 철학]이란 제목으로 번역하셔서 최근에 출간되었습니다. 한국어판에는 저자의 이름이 '돌피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개념이 있어야 이론을 구성할테니 같은 맥락의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링크해주신 글에서 다음 부분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파동함수는 쥐의 관찰 행위에 의해 붕괴될 수 있는지 물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벨은 그것에 부연하여, 세계에 대한 파동함수는 붕괴하기 전에 박사학위를 받은 물리학자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지 물었다. 큐비스트는 두 질문 모두에 대해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서점에 ‘지구와 물질의 철학’ 발행일이 바로 오늘(2023.04.17)이라고 나오네요?. 도서관에는 없을테니 구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존재자(개체) vs. 표현"의 문제는 실상 여기저기에서 드러나는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입니다. 가령 내가 어떤 멋진 노래를 마음 속에서 그려냈는데, 그것을 악보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내 것이라고 온전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표현은 꼭 악보여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컴퓨터 파일일 수도 있고, 녹음한 음성일 수도 있습니다.
벡터는 추상적이고 낯설지만, 여하간 어딘가에 있는 녀석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용하고 받아들이고 다루려면 일정한 기준축을 선택하고 거기에 드리워진 그림자들을 이용하여 성분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의 문제는 그 성분 표시가 그 벡터에 유일하게 할당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벡터가 기하학적으로 '존재자(개체)'라면, 그 성분들은 '표현'입니다.
이것은 양자역학에 나오는 벡터뿐 아니라 상대성이론에 나오는 벡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성이론의 핵심은 기하학적으로 동일한 대상(즉 '존재자')을 다른 관점(좌표계)에서 묘사하려고 할 때 드러나는 좌표(즉 '표현')가 달라진다고 해도 대상은 여전히 동일함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를 좌표변환에 대한 불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좌표변환이 회전과 평행이동이라면 그 벡터는 3차원 유클리드 벡터이고, 거기에 로렌츠 변환을 덧붙이면 그 벡터가 4차원 민코프스키 벡터가 됩니다. 더 나가서 아무 좌표변환이나 다 허용된다고 하면, 그 벡터가 리만 벡터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익숙하지 않지만, 문학에서는 이 본성적 존재자와 겉으로 드러난 표현 내지 속성의 분리를 다루는 작품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다고 합니다. 어떤 한 사람이 꼭 지금 드러난 그 모습으로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이야기 말입니다.
가령 구로사와 아키라의 오래된 영화 <라쇼몽 羅生門>은 어느 날에 있었던 사건들의 연결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요즘 항간에 자주 이야기되는 영화 <기생충>을 갖다 붙인다면, 지금의 영화는 모두 기택의 가족들이 바라보고 겪는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문광-근세 가족의 버전이나 김사장 가족의 버전은 이 이야기와 사뭇 다를 것입니다. 어느 이야기가 '존재자'일까요?
설명 고맙습니다. 엄청난 철학적 과학사적 배경(?)이 있네요...
이렇게 금방 설명을 달아주시는 게 더 엄청나고 신기합니다. ^^;
아닙니다. 산만한 글을 읽어주셔서 더 고맙습니다. 요즘 머릿속이 늘상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문장 하나하나를 반복해서 곱씹고 있습니다. 답글을 읽으면, 이리저리 섞여 있던 생각들이 갑자기 하나로 싸악 연결되면서 얼른 답글을 달고 싶어집니다. 어쩌면 아무 모임도 없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게시판이 생각을 나누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답글을 써 주시는 게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닙니다.
'상태함수는 존재자 또는 개체일까요, 아니면 일종의 표현일까요?' 라는 질문을 '상태함수는 존재론적 술어인가 아니면 인식론적 술어인가?' 라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개체와 표현이란 개념쌍은 존재론적/인식론적이란 개념쌍과는 맥락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위의 글에서 '성분(component)'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하고 있는데, 성분의 개념을 더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 $M = a_1 u_1 + a_2 u_2 = b_1 v_1 + b_2 v_2$라고 쓰는 것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M$이라 부르는 무엇인가(수학적 대상, 물리적 대상, 물체, 존재자, 개체 등등)를 나타낼 때 두 가지 다른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u_1, u_2$를 염두에 두고 $M$을 바라보면, 그 성분이 $(a_1, a_2)$가 되지만, $v_1, v_2$를 염두에 두고 보면 그 성분이 $(b_1, b_2)$가 됩니다. 여기에서 $u_1, u_2$ 또는 $v_1, v_2$를 기저라고 합니다. 요약하면, 대상의 성분은 기저의 선택에 따라 표현이 달라집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은 대개 '성분'이지만, 그 성분 뒤에 개체(존재자)가 있어서 표현과 독립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떄 표현 이전에 설정한 대상의 본성적 존재자는 표현과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이 궁금해집니다.
그러면 이러한 개념쌍을 존재론적 술어와 인식론적 술어의 개념쌍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Q1. ‘상태함수는 존재자일까요 아니면 일종의 표현일까요?’ 라고 물어보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러한 구분은 무엇을 함의하고 있는지요?
제가 표현을 ‘인식론적 술어’로 볼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은, ‘존재자(개체)는 그것이 드러내는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는가?’ 라는 뜻이었습니다. ‘존재론적 술어’는 저도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썼군요.
Q2. ‘표현’을 ‘성질 혹은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존재자의 성질이 드러난 것이 표현이라면, 표현은 ‘존재자가 행하는 것’ 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상태함수는 존재자인가 아니면 존재자가 행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이 가능할까요?
존재자와 표현의 관계는 수학에서 흔히 하는 작업입니다. 어떤 수학적인 대상(=존재자)이 있을 때, 그것을 특정의 기저에 대한 표현(representation)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벡터와 그 성분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수학에서 말하는 표현은 존재자가 '행하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벡터가 무엇인가를 행하는 주체가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여하간 상태함수는 인식론의 문제를 말하는 동시에 존재론의 문제도 말한다고 보는 게 현명할 것 같습니다.
상태함수를 $\Psi = a u + b v$처럼 쓴다고 할 때, $u$, $v$를 기준으로 보면 $\Psi = (a , b)$라고 쓸 수 있습니다. 존재자가 $\Psi$라면, 표현은 $(a, b)$입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더 고민해 보면 생각보다 심오한 듯 하면서 어찌 보면 쓸데없는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당혹스럽게도 이 답글을 쓰고 다시 보니 거의 같은 내용을 지난 4월 16일에도 달아놓았네요. 제 생각하는 방식이나 자원이 빤한 모양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