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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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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연철학 세미나

[질문에 대한 의견] 상대성원리, 특히 갈릴레오 상대성원리

질문 및 토론
상대성이론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4-11-22 10:12
조회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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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에 이*현님이 올리신 질문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대답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첫째 상대성원리에 대한 제 이해가 정확한지를 설명해보겠습니다. 갈릴레오의 배 위의 사례나 아인슈타인의 기차 안의 사례나 움직이는 매체 위에 올라타서 사물의 움직임을 관측할 경우, 정지한 상태에서 움직임을 관측할 때와 동일하다는 것이 상대성 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링크에서 본 EBS 동영상에서도 기차안에서의 빛의 움직임 관측은 양쪽의 길이가 같지만, 기차 바깥에서 바라볼 때는 다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배위에서도 공을 차면 배 안에서는 땅 위에서 찬것과 같이 느껴지지만 이를 배 바깥의 한 지점에서 본다면 다르게 보일 겁니다. 즉 다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그 속도 안에서 볼때의 움직임은 정지해서 볼 때와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정지상태에서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따라서 각각의 속도위, 즉 시공 4차원 위의 좌표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의 관측은 동일하지만 그 관측은 원래의 좌표계를 고정해서 보았을 때는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속도 변화 상태에서의 관측, 즉 4차원 좌표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지상태와 같이 움직임은 관측되지만, 정지상태, 즉 원래의 좌표계를 고정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 관측값은 상대적으로 변화한다고 말하는게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좌표계 이동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이지만, 이동 전 좌표계에서 볼때는 상대적이다."

==>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성이론 또는 상대성원리에 대해 말하지만, 막상 그 의미를 깊이 고민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먼저 분명하게 할 것은 '상대성이론(relativity theory)'과 '상대성원리(principle of relativity)'의 차이입니다. '상대성이론'은 '상대성원리'를 비롯하여 여러 다른 아이디어들을 모아 하나의 완결된 이론의 형식으로 만든 것을 가리킵니다. 이와 달리 '원리'는 자연철학 또는 물리학에서 대개 아주 명료한 수학적 형식으로 표현되는 일이 드문 편입니다. '원리'는 대체로 문장으로 서술됩니다.

또 '상대성원리'라고 부르는 것에는 '갈릴레오의 상대성원리'도 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도 있습니다. 이 둘은 다릅니다. 마침 갈릴레오가 [세계에 대한 두 주된 체계 사이의 대화(천문대화)](Dial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 del mondo, 1632)에서 이 문제를 처음 상세하게 거론했기 때문에 '갈릴레오의 상대성원리'라 부릅니다. 두 주된 세계체계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과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가리킵니다.

"당신이 어떤 큰 배의 선실에 친구와 함께 있다고 해 봅시다. 선실에는 파리와 나비가 날아다니고, 금붕어가 들어 있는 어항도 있고, 병이 하나 매달려 있고 그 밑에 큰 그릇이 있는데, 병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다고 해 봅시다. 배가 멈춰 있을 때에 주의 깊게 살펴보면, 파리나 나비는 어느 방향이나 비슷한 속도로 날아다니고, 금붕어는 어항 속에서 한가롭게 헤엄칩니다. 병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정확히 밑에 있는 그릇으로 떨어집니다. 친구한테 물건을 던진다고 할 때, 이쪽 방향으로 던지는 것과 그 반대 방향으로 던지는 것 사이에 차이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자, 이제 배가 일정한 속도로 곧바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 봅시다.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음을 알게 될 겁니다. 심지어 당신은 지금 움직이고 있는 배 안에 있는지 아니면 멈춰 있는 배 안에 있는지도 구별하기 힘들 겁니다.(Galileo, 1632)"

이 이야기가 나오게 된 맥락은 만일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옳다면 우리가 서 있는 땅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되고, 그러면 움직이는 배 안에서 걸어가기가 쉽지 않고 바람도 한쪽으로 불어제끼는 것처럼 그런 경험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심플리치오의 반론이었습니다. 여기에 살비아티가 반박하면서 한 말이죠. 배가 파도에 흔들리면서 왔다갔다 한다면 걷기도 힘들고 선실의 파리와 나비의 움직임도 단순하지 않고, 병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로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도 때문에 생기는 소위 '가속운동'을 생각하지 말고, 아주 평온한 바다에서 단지 배가 일정한 속력으로 반듯하게 나아가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이 바로 갈릴레오의 언급입니다.

항구에서 바다에 떠 있는 배와 움직이는 배를 비교한다면, 질문하신 내용이 적절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주 공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구라는 배라고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가 "원래의 정지 상태"라든가 "원래의 좌표계를 고정해서 보았을 때"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우주 한 복판에 있는 우주선을 타고 있다고 상상해 보죠. 이 우주선의 속도는 일정합니다. 그런데 그 속도가 일정하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일까요? 과연 우주선이 멈춰 있는지 일정한 속력으로 반듯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구별할 방법이 어떤 식으로든 있을까요?

갈릴레오 상대성원리의 핵심은 가속(즉 속도의 변화 또는 운동상태의 변화)이 없다면, 어떤 식으로도 멈춰 있다는 것과 일정한 속력으로 반듯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구별한 방법이 전혀 없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좌표계를 관성계(inertial frame)라 부릅니다. 외부에서 운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즉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원래의 운동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리라는 믿음 내지 주장 내지 가정 내지 공리적 전제입니다. 이것을 처음 명료하게 서술한 것이 바로 데카르트입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97쪽에 소개되어 있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뉴턴은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를 깊이 탐구했고, 자신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공리들 또는 운동의 법칙들"이라 이름붙인 첫 부분에서 운동의 법칙 세 가지를 서술할 때 첫 번째 법칙으로 이를 제시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물음은 빛에 관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문제시했던 왜 상대성원리가 다 적용되는데, 즉 좌표계의 이동에도 불구하고 관측값은 절대적으로 동일한데 하필 전자기의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는가라는 문제는, 즉 로렌츠 좌표변환의 문제는 광속불변의 원리와 상대성 원리를 전제로 해서 기존의 공간, 시간에 대한 이해를 무시한 상태에서 해결했고, 민코프스키는 이를 4차원으로, 즉 시간을 허수축에 대응시킨 4차원 공간 상에서 해결했습니다.

여기서의 물음은 첫 번째 물음과 관련해서 다른 모든 움직임은 좌표계 이동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이지만, 원 좌표계를 기준으로 하면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빛은 원 좌표계를 기준으로 해도 여전히 절대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차원 공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도 역시 빛은 예외적으로 보입니다. 빛에, 혹은 질량이 0인 입자에 어떤 예외적 속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 갈릴레오 상대성원리는 뉴턴 이래 19세기말까지 거의 의심된 적이 없는 확고부동한 원리였습니다. 특히 19세기 중반에 독일어권에서 관성계 개념을 가지고 논쟁이 전개되었는데, 이 때에도 당연히 갈릴레오 상대성원리를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앨버트 마이클슨이 광속을 정확하게 측정하려던 실험 탓이었습니다. 마이클슨은 정교한 간섭장치를 이용하여 지구의 공전방향과 거기에 수직한 방향으로 빛이 왕복할 때의 광로차에서 비롯한 간섭을 측정했습니다. 이를 이용하면 광속을 매우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그 간섭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지구가 에테르가 가득 차 있는 우주 공간에서 움직여 가는 속도와 거기에 수직한 방향의 속도가 같다는 말인데, 논리적으로 따져가면, 결국 광속이 광원이나 관찰자의 속도와 무관하게 똑같아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바꾸면 갈릴레오 상대성원리가 빛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또 빛이라는 것이 전기장과 자기장이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는 전자기파라는 것이 당시에 확립되어 있었으므로, 전기와 자기에도 갈릴레오 상대성원리가 적용되지 않다는 말이 됩니다.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헨드린 안톤 로렌츠(Hendrik Antoon Lorentz 1853-1928)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릴레오 상대성원리와 다른 새로운 상대성원리에 대한 변환공식을 만들었습니다. 로렌츠 변환입니다. 이름을 함부로 만든다면 이 새로운 공식에 따르는 변환과 관련된 상대성을 '로렌츠 상대성원리'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로렌츠는 마이클슨의 실험을 설명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만든 이 공식의 의미를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위치시간(Ortzeit)'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도입하여 제시하면서, 시계로 잴 수 있는 진짜 시간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로렌츠 변환은 전기, 자기, 빛을 서술해 주는 맥스웰 방정식에 대해서는 '상대성' 즉 '부스트 대칭성'을 나타내지만, 뉴턴 방정식과는 충돌합니다. 이와 달리 갈릴레오 변환은 물체의 운동을 서술해 주는 뉴턴 방정식에 대해서는 '상대성' 즉 '부스트 대칭성'을 나타내지만, 맥스웰 방정식과는 충돌합니다. 로렌츠는 뉴턴과 맥스웰, 또는 역학과 전자기학/광학의 두 편을 모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1905년 학계에 발도 들여놓지 못한 26살의 특허청 사무관은 로렌츠와 달랐습니다. 과감하게 뉴턴이 틀렸고, 갈릴레오 변환이 아니라 로렌츠 변환만이 옳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여기에 따라 뉴턴 방정식도 수정해야 하고, 뉴턴 역학 전체가 흔들려 버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빛의 성질이 아닙니다. 광속을 정확히 측정하려던 노력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구조의 새롭게 나타난 것입니다. 왜 하필 빛인가 하고 묻는다면 답이 궁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빛'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본성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빛은 신비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것'이라는 명사를 붙여도 좋을지 알 수 없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그러합니다. 뉴턴은 빛을 일종의 입자로 여겼습니다. 게다가 신의 은총이 발현되는 그런 존재로 간주했습니다. 또 뉴턴이 빛이 일곱 개의 단색광, 즉 '빨주노초파남보'라는 일곱 색의 혼합임을 처음 주장하여 유명해졌고, 심지어 '스펙트럼(빛띠)'이란 말도 만들었지만, 그가 '일곱 색'을 주장한 것은 연금술에서 일곱 금속과 일곱 행성과 일곱 천구가 있었고 기독교의 신이 7일만에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서 빛이 파동에 더 가깝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1870년대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빛이 다름 아니라 전기와 자기가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는 전자기파(electomagnetic undulation)라고 처음 주장하고 이것이 실험적으로 입증되면서 점차 빛이 다름 아니라 전자기파라는 믿음이 확립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빛의 본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빛의 속성 때문에 관성계의 정지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소 불안합니다. 빛이 뭔지 모르는데, 빛으로 정지계를 정의할 수는 없으니까요.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 나도 모르게 속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빛의 속도' 또는 '광속(光速)'이란 말이 그 예입니다. '야구공의 속도'라든가 '비행기의 속도'는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속도계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과속방지를 위한 속력계는 도플러 효과라는 것을 이용하여 자동차의 속도를 측정합니다. 비행기의 속도를 직접 측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GPS 등을 이용하여 속도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네비게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엔 스마트폰에도 GPS가 들어 있어서 움직이는 속도를 화면에 보여줍니다. 그러나 빛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전혀 불가능합니다. 빛의 속도를 어떻게 무슨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요?

갈릴레오는 산에 올라가 등불을 켜고 끄는 방식으로 광속을 재 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같은 시대의 덴마크 천문학자 뢰머는 목성의 위성 이오의 '월식' 현상을 이용하여 광속을 알아냈습니다. 푸코는 교묘하게 만든 팔각거울을 이용하여 광속을 알아냈습니다. "알아냈다"라고 말한 것은 직접 측정한 것이 아니라 측정된 값들로부터 계산을 통해 광속을 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이클슨은 대단히 정교한 간섭계를 만들어 광속을 알아내려 했는데, 모든 다른 것이 맞다고 여겼음에도 결과가 나오지 않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빛이 무슨 입자가 아니라면 빛의 속도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빛이 파동의 일종이라면 파동이 퍼져나가는 속도를 정할 수 있습니다. 맥스웰이 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빛이 전기와 자기의 파동 즉 전자기파임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파동이라 여겨지는 빛의 퍼져나가는 속도를 계산한 값과 전기와 자기의 파동이 퍼져나가는 속도를 계산한 값이 거의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맥스웰은 전자기파가 다름 아니라 빛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제안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 안에서 빛이 전자기파임을 직접적으로 증명한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제가 "상대성이론의 존재론: 아인슈타인, 민코프스키, 로렌츠"에서 소개한 로렌츠의 상대성이론 해석이 있습니다. 로렌츠는 아인슈타인과 민코프스키가 주장한 것처럼 관성계들 사이의 상대성을 받아들였지만, 빛은 특별하다고 믿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빛 에테르의 정지좌표계는 절대적인 정지계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합니다.

  (a) 물체는 시간 속에서 지속성을 갖는 3차원 공간의 존재자이다.
  (b) 절대 좌표계 S0에서는 빛의 속도가 어느 방향으로나 똑같은 값이며, 또한 광원의 속도와 무관하다.
  (c) 절대 좌표계 S0을 기준으로 이에 대하여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좌표계에서는 길이가 줄어들고 시간이 늘어나는 상대론적 효과가 있다.

이렇게 하면 상대성이론과 관련된 모든 관측적 사실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빛의 정지계라는 절대적 좌표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모든 관성계가 다 대등하고 상대적이라는 주장을 수용할 수 없었던 로렌츠의 영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저는 질문에서 "다른 모든 움직임은 좌표계 이동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이지만, 원 좌표계를 기준으로 하면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빛은 원 좌표계를 기준으로 해도 여전히 절대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차원 공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도 역시 빛은 예외적으로 보입니다."라는 구절을 보고 맨 먼저 로렌츠의 해석을 떠올렸습니다. 아인슈타인도 대단히 존경하고 흠모했던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로렌츠와 같은 생각을 해 내신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로렌츠의 해석은 당시 물리학계에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상대성이론은 초기에 로렌츠-아인슈타인 이론이라고 자주 불릴 정도로 사람들은 그 이론을 아인슈타인의 것이 아니라 로렌츠의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점차 세월이 흐르고 로렌츠는 원로학자가 되고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을 새로운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1911년에 처음 시작하여 이론물리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솔베이 회의(Congrès Solvay)의 사진이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점이 있습니다. 솔베이 회의에서 단 한 사람 가장 중요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헨드릭 안톤 로렌츠입니다. 새로운 물리학 문제의 성격과 한계를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190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국제적인 명망을 지니고 있었으며, 모든 물리학자들에게 존경받던 로렌츠가 있었기에 솔베이 학술회의가 성공적이었습니다. 초기 참석자는 독일, 영국, 프랑스,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에서 왔는데, 실제 학술회의 진행에서는 어떤 언어를 쓸 것인지가 문제였습니다. 학술회의의 보고서는 프랑스어로 출간되었지만 학술회의에서 오고 간 공식언어는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였습니다. 로렌츠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고 이 언어에서 저 언어로 쉽게 바꿀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진행되는 물리학 이야기 모두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의장이자 좌장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학술회의를 조직한 벨기에의 사업가 에르네 솔베(Ernest Solvay 1838-1922)와 독일의 물리화학자 발터 네른스트(Walther Nernst 1864-1941)와 더불어 로렌츠는 기념사진에서 항상 앞자리 중앙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27년의 사진에는 앞자리 중앙에 불과 48살밖에 되지 않던 아인슈타인이 앉아 있습니다. 그 사이에 학계에서 아인슈타인의 위치가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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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 회의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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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 회의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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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 회의 1924)

(솔베이 회의 1927)

전체 3

  • seunghyun lee seunghyun lee
    2024-11-23 14:30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질문을 드린 것에 비하면 과하게 상세한 답을 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와 폭을 겸비한 설명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이 많은 내용을 전부 꿰고 계시다는 게 또한 신비롭습니다. 수학도 물리도 정말 모르지만 그래도 먼가 자꾸 질문을 해봐야겠다는 의욕이 넘치게 만드는 답글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자연사랑 자연사랑
      2024-11-24 23:25

      "아무 것도 모르고 질문을 하셨다"는 표현을 쓰셨지만, 제 의견은 다릅니다. 상대성이론에서 절대정지계가 있을 수 있고 이것이 빛의 정지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고 여러가지 가능성을 고려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보다 오히려 더 뛰어났던 로렌츠의 해석을 직접 생각해 내신 것이겠습니다. 다음 세미나에서 이 문제를 더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자연사랑 자연사랑
      2024-11-24 23:22

      제가 저의 의견을 너무 과하게 적어서 죄송합니다. 간결하고 일목요연하게 저의 생각을 적지 못하는 것이 저의 약점입니다. 깊이도 얕고 폭도 넓지 않은데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 나름대로는 녹색아카데미의 여러 모임에 기여하는 것이 부족한 것을 메우려고 질문들에 대해 더 심화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저의 의견을 덧붙이려 애쓰고 있습니다.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기 때문에 의견을 다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결국 온라인 세미나도 이렇게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고 서로 생각을 교환하는 상호작용을 위한 것일 터이므로, 이를 통해 차근차근 새로운 자연철학에 대한 탐구도 더 깊어지지 않을까 믿고 있습니다.

      저의 부족한 글이 또 다른 질문에 대한 의욕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칭찬해 주시니, 앞으로도 열심히 저의 의견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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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한 의견] 수학의 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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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해밀턴 함수와 동역학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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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양자와 마음: 양자역학과 의식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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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입자인가, 파동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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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후에 질문드립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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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자세한 자료, 설명들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2025.06.09
1. 변별체의 존재 양상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공부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바로 위의 답글에 쓴 물의 온도를 재는 상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장회익 선생님의 '변별체' 개념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측정장치 개념에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하여 추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관적으로는 모종의 측정장치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매우 다양한 측정장치 또는 검출장치를 사용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세미나에서 인용하신 안개상자(cloud chamber)나 거품상자(bubble chamber)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겹실틈 실험에서 사용하는 사진건판도 변별체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loud_chamber https://en.wikipedia.org/wiki/Bubble_chamber 하지만 변별체가 측정장치/검출장치와 동의어는 아닙니다. 변별체는 물리적 작용을 통해 뭔가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하지만, 또 동시에 그것을 읽어내서 인식주체의 경험표상영역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변별체는 대상과 인식주체 사이에 놓인 가교 내지 창문의 역할을 합니다. (제가 장회익 선생님의 제안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사진은 거품상자에서 기본입자가 만들어내는 궤적을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2025.06.03
2.의 질문이 흥미롭습니다. '이해'라는 문제를 직접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대상과 변별체의 만남(조우)은 원래 인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채거나 기록하거나 기억하거나 그로부터 지식을 얻는 것과 전혀 무관하게 대상과 변별체가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하기에 이 세계 속의 수많은 물질적 존재자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부딪치고 멀어져갈 것입니다. 아주 먼 우주에서 행성과 혜성이 충돌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여하간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흔적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적 존재자에 생긴 흔적을 인식 주체인 '나' 또는 서술세계가 받아들이면 이제 그 흔적이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집니다. 인식주체가 없었더라면 그냥 물질적 충돌에 불과했을 것이 이제 '사건'이 되어 버립니다. 미묘하지만, 변별체와 경험표상영역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변별체에 남은 흔적과 경험표상영역에 새겨진 정보는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50쪽의 그림 1-1에서 물질세계와 서술세계를 구별하는 점선을 넘나듭니다. 두 개의 네모 사이의 위아래 양쪽방향 화살표의 양면성입니다.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대상과 변별체가 만나서 흔적을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과 '빈-사건'이 일어납니다. 특정 변별체에 흔적이 남지 않는 것도 흔적이 남는 것 못지 않은 정보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해'라는 말이 직접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세미나에서 인용한 폰노이만의 온도 측정의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재려면 온도계를 넣어 수은/알콜의 높이를 보아야 합니다. 이 때 비커의 물이 대상이고 온도계는 변별체가 됩니다. (2) 온도계 높이를 알기 위해서는 전등의 빛이 수은/알콜의 경계면에 닿았다가 눈의 망막으로 와야 합니다. 이 때 온도계의 높이는 대상이 되고 빛(빛알)이 변별체가 됩니다. (3) 빛이 망막에 입사되면 망막에 있는 시신경에 나트륨 원소가 모이거나 흩어져서 전류가 만들어집니다. 이 때 빛이 대상이라면 시신경의 전위차는 변별체가 됩니다. (4) 시신경의 전위차는 뇌의 피질에서 뉴런을 발화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대목에서 비커에 담긴 물의 온도를 읽어냅니다. (5) 그 다음 단계가 어렵습니다. 온도계의 높이든, 망막에 생기는 흔적이든, 시신경의 전위차든, 뉴런의 발화든 여하간 어느 단계에서 흔적의 기록이 정보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는 과정은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32-33쪽에 서술된 것처럼 역학 모드와 서술 모드를 구별합니다. 하지만 서술 모드만으로는 '이해'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하간 세 번째 모드로서 '의식 모드'가 작동을 해야 비로소 '이해'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라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인츠 폰푀르스터의 <이해를 이해하기> 같은 저작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Heinz Foerster (2003) Understanding Understanding: Essays on Cybernetics and Cognition. Springer. https://doi.org/10.1007/b97451
2025.06.03
3. 3차원 vs. 2+1차원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고대그리스-이슬람-중세유럽으로 이어지는 자연철학의 전통에서 세상의 중심은 지구였습니다. 지구 주위에는 일곱 행성(七曜) 즉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의 천구가 있고, 그 바깥에는 항성 천구가 있습니다. 지구는 네 개의 권역(구 껍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의 천구 바로 아래에는 불의 권역이 있고, 그 아래로 차례로 숨/바람의 권역, 물의 권역, 흙의 권역이 있습니다. 뒤의 세 권역은 현대의 기권(氣圈, Atmosphere), 수권(水圈 Hydrosphere), 지권(地圈,Geosphere)에 대략 연결됩니다. 불의 권역은 현대의 열권(熱圈, Thermosphere)이나 전리층과 비슷합니다. 여하간, 세상(우주)의 중심은 지구의 중심이며, 이 중심을 향하는 방향이나 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이 곧 수직 방향입니다. 이와 달리 지표면의 동서남북은 어느 쪽으로도 대등합니다. 이것이 바로 (2+1)차원의 세계입니다. 세계(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수직 방향도 동서남북과 대등하지 않을까 하는 관념이 펼쳐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펼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르네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공간의 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숫자 $(x, y, z)$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비단 눈 앞에 펼쳐지는 육면체 모양의 방 안에서의 위치만이 아니라 온 우주 전체에서의 위치에도 해당합니다. 그러면 수직 방향이나 동서 방향이나 남북 방향이 모두 대등합니다. 데카르트에게 우주는 (2+1)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었습니다. [그림출처: Peter Apian (1529) Cosmographiae introductio]
2025.06.03
중요한 지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또 몇 가지 글에 대한 링크도 있었구요. 따로 답글도 있었는데 사라졌더라구요. 저의 부족한 글도 여하간 토론과 대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리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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