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데카르트 vs 뉴턴
제가 세미나 시간에 충분한 근거를 대지 않은 채, 과학사 분야에서는 데카르트와 뉴턴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을 보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써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분명히 할 것은 데카르트는 뉴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뉴턴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세상을 떠날 때 뉴턴(Isaac Newton 1642-1726/7)은 불과 여덟 살의 어린이였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이 둘을 대비시킬 때에는 뉴턴이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컬리지에 다닐 무렵에 다름 아니라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를 매우 세밀하고 깊게 공부하고 탐구했다는 점과, 뉴턴이 주요 저서들을 냈을 때 유럽 대륙 여러 곳에 퍼져 있던 데카르트 자연철학의 후예들이 뉴턴을 맹공격했다는 점을 염두에 둡니다.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 표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99-101쪽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뉴턴 자신은 처음에 데카르트를 존경과 흠모의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그의 저서를 탐독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후의 저서와 논문은 대체로 데카르트를 공격하고 비판하거나 심지어 비난하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그래도 뉴턴의 서술에서는 자주 데카르트의 흔적이 드러납니다. [프린키피아]라고 불리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 담긴 세 개의 운동법칙은 [철학의 원리]에 있는 세 가지 자연 규칙을 빼닯았습니다.
[철학의 원리]에 담겨 있는 자연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르네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 (원석영 옮김. 아카넷, 2012)
- 36. 신은 운동의 제1원인(primara motus causa)이며, 우주에 항상 동일한 운동의 양(motus quantitas)을 보존한다.
- 37. 자연의 제1법칙: 각각의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한 항상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고자 한다. 따라서 일단 움직여진 것은 항상 운동을 유지하고자 한다. "첫 번째 법칙은 단순하고 나누어져 있지 않은 한 각각의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한 ... 외적인 원인에 의하지 않고선 결코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39. 자연의 제2법칙: 모든 운동은 그 자체로서는 직선 운동이다. 그 때문에 원운동을 하는 것은 항상 자신이 그리는 원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한다.
- 40. 자연의 제3법칙: 물체가 자신보다 더 강한 물체와 부딪치면 운동의 양을 조금도 잃지 않지만, 더 약한 물체와 부딪치면 그것은 이 물체에 전달하는 양만큼의 운동의 양을 잃는다.
뉴턴의 세 가지 운동법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모든 물체는,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멈춰 있거나 일정하게 반듯하게 나아가는 상태를 유지한다.
- (2) 운동의 변화는 가해진 힘에 비례하며, 그 변화의 방향은 힘의 방향과 같다.
- (3) 모든 작용에는 그것과 크기는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뉴턴의 첫째 운동법칙이 데카르트의 자연규칙 중 첫 번째와 두 번째를 합한 것에 해당한다는 점입니다. 또 셋째 운동법칙은 논리적으로/수학적으로 따지면 운동의 양이 일정하다(보존된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셋째 자연규칙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뉴턴은 미묘하면서도 분명하게 데카르트의 주장에 선을 긋고 있습니다. 분명한 차이는 뉴턴의 논의에서는 문득 '힘'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데카르트는 이러한 규칙을 운동의 법칙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변화에 대한 규칙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데카르트에게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모두 신의 선택과 섭리 덕분입니다. 뉴턴 자신도 신학자로서 신의 존재와 섭리를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으로 여겼지만, '힘'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데카르트와는 다른 주장을 펼칩니다. 그리고 뉴턴 자신은 첫째 법칙과 둘째 법칙이 이미 수학자들과 자연철학자들이 확립해 놓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둘째 법칙은 꽤 새롭습니다. 이와 유사한 논의를 이전에 전개한 사람은 대략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정도이고 당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자연철학자들 중 누구도 이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점에서도 데카르트와 차별성을 보입니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프린키피아]의 제2권은 데카르트의 소용돌이 이론에 대한 공격과 비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제2권에는 현대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을 만큼 오류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뉴턴의 그 유명한 저서의 제목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1687)는 다름 아니라 데카르트의 저서 Principia philosophiae (철학의 원리, 1644)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선택한 것이라고들 합니다.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가 그 전까지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새로운 철학을 제안한 것이라면, 뉴턴은 다시 데카르트를 비판하면서 철학, 특히 자연철학을 제대로 하려면 수학적 원리를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한 셈이 됩니다.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표지)
[철학의 원리]에 담긴 자연의 규칙을 꼼꼼하게 보면, 맨 처음에 "36. 신은 운동의 제1원인(primara motus causa)이며, 우주에 항상 동일한 운동의 양(motus quantitas)을 보존한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37. 자연의 제1법칙: 각각의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한 항상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고자 한다. 따라서 일단 움직여진 것은 항상 운동을 유지하고자 한다."와 같은 서술을 보면, 운동의 근본 원인을 신에 두고 있고, 운동을 하는 것의 정확한 개념이 없습니다.
데카르트도 기하학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하지 않은 게 아니지만,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철저하게 수학 특히 기하학의 원리에 따라 근본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뉴턴이란 이름을 듣도보도 못했지만, 그의 사상의 계보를 잇는 유럽 대륙의 철학자들은 뉴턴이 데카르트의 자연철학을 공격한 것을 변호하면서, 오히려 뉴턴의 접근이 신비주의적인 것이라고 맹공격했습니다. 중세 말기 또는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 널리 퍼져 있던 헤르메스주의라든가, 소위 '은비(隱秘)의 질(質)'[occult qualities]이 뉴턴의 자연철하게 깊이 내재해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보편중력(universal gravitation)이라고도 하고 흔히 '만유인력(萬有引力)'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고 매우 신비한 방식으로 서로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이것이 소위 '원격작용(actio in distance; action-at-a-distance)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그럭저럭 해결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가서야 전기와 자기에 대해 마이클 패러데이가 '힘의 선'이란 개념을 고안하고,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다시 이를 수학적으로 다듬어 '마당이론(場論)'을 세운 다음입니다. 중력의 경우는 패러데이-맥스웰의 계보를 이어 아인슈타인이 1916년쯤에야 비로소 중력장이론을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뉴턴의 신비스러운 보편중력(만유인력)이 1687년에 발표되었으니 거의 23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새로운 중력이론은 뉴턴이 틀렸고 데카르트적인 접근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뉴턴 vs 데카르트"에 대한 참고자료로 다음의 논문들이 유용합니다.
- Domski, M. (2022). Newton and Descartes. In: Jalobeanu, D., Wolfe, C.T. (eds) Encyclopedia of Early Modern Philosophy and the Sciences. Springer, Cham. https://doi.org/10.1007/978-3-319-31069-5_113
- Domski M (2018) Laws of nature and the divine order of things: Descartes and Newton on truth in natural philosophy. In: Ott W, Patton L (eds) Laws of Nature.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pp 42–61.
- Brading K (2011) Newton’s law-constitutive approach to bodies: a response to Descartes. In: Janiak A, Schliesser E (eds) Interpreting Newton: Critical Essays.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pp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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