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자연의 규칙 또는 뉴턴의 운동의 법칙 중 첫 번째의 의미
어제 세미나에서 최우석님이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제2장의 내용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정리해서 발표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수정할 부분이 있어서 짧게 적습니다.
위의 슬라이드는 데카르트가 말한 자연의 규칙 세 가지([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97쪽]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수정할 점은 뉴턴의 세 가지 운동법칙이 데카르트의 세 가지 자연규칙에서 나온 것처럼 묘사된 것입니다. 뉴턴은 데카르트의 영향을 분명히 받은 것이 틀림없지만 어디에서도 데카르트를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자신이 알아낸 것처럼 책을 저술했습니다. 이 그림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97쪽의 구절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장회익 선생님의 지적도 데카르트의 세 가지 자연규칙을 이해하려면, 나중에 나온 뉴턴의 세 가지 운동법칙의 내용과 같다는 것입니다.
"데카르트의 첫째 규칙과 셋째 규칙을 합한 것이 방향까지 고려한 뉴턴의 첫째 법칙"이라는 서술에서 '방향까지 고려한'이란 구절이 중요합니다. 데카르트는 방향에 대한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상 데카르트의 자연규칙을 물체의 충돌에 적용하면 대체로 다 틀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다음 문장은 "데카르트의 둘째 규칙은 이른바 운동량 보존법칙이며, 이 운동량 보존법칙이라는 것은 뉴턴의 둘째 법칙과 셋째 법칙의 합성이다."라는 뜻입니다. 위의 그림에서처럼 반대방향으로 데카르트의 둘째 규칙이 뉴턴의 둘째 법칙과 셋째 법칙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뉴턴의 운동법칙에서 둘째 법칙은 데카르트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주장입니다.
그리고 위의 슬라이드에서 수정하는 게 좋을 부분은 $\frac{d}{dt}p=0$에 수평선이 그어져 있는 곳입니다.
데카르트의 첫째 규칙은 "물체의 각 부분은, 다른 힘이 그 상태를 바꾸지 않는다면, 같은 상태를 항상 지속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1687년에 출간된 아이작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운동의 첫째 법칙과 유사합니다.
라틴어 원문은 아래과 같습니다.
Axiomata, sive Leges Motus
Lex I. Corpus omne perfeverare in statu suo quiescendi vel movendi uniformiter in directum, nisi quatenus illud a viribus impressis cogitur statum illum mutare.
영어 번역 중 가장 권위가 있는 I. 버나드 코헨과 앤 위트먼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Every body perseveres in its state of being at rest or of moving uniformly straight forward except insofar as it is compelled to change its state by forces impressed."
직접 한국어로 옮기면 "모든 물체는, 힘이 가해져 그 상태를 강제로 바꾸지 않는 한, 멈춰 있거나 일정하게 반듯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 상태를 유지한다."로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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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현대 물리학의 초급단계에서는 뉴턴의 둘째 운동법칙이 $\frac{dp}{dt}=F$이므로, $F=0$이면 $\frac{dp}{dt}=0$이고, 이것은 곧 $p=\mathrm{const.}$ 다시 말해 운동량이 일정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운동량은 질량과 속도를 곱한 값이므로, 운동량이 일정하다는 것은 속도가 0이거나 0이 아닌 일정한 값을 가질 때 그 값이 변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이 설명은 뉴턴의 자연철학을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만일 첫째 법칙이 둘째 법칙의 특별한 경우에 불과하다면, 둘째 법칙을 제시한 뒤 따름정리로 간단하게 덧붙였을 것입니다. 또 데카르트와 뉴턴이 이 '규칙' 또는 '법칙'을 말할 때에는 무슨 사람 이름 붙은 단순한 법칙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뉴턴의 책에서 명시적으로 "공리 또는 운동의 법칙들(Axiomata, sive Leges Motus)"이라는 제목 아래 단 세 개의 공리(운동법칙)가 서술됩니다. 이런 식의 서술은 19세기에 정립된 열역학에서도 "열역학 첫째 법칙, 둘째 법칙, 셋째 법칙, 영째 법칙"이 공리로 제시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데카르트의 첫째 규칙이나 뉴턴의 첫째법칙은 둘째 규칙이나 둘째 법칙보다 반드시 먼저 서술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소위 '관성계(inertial frame)' 또는 '관성구조(inertial structure)'로 이해해야 한다는 내용을 이전에 이 게시판에 적은 적이 있습니다.
관성계 또는 관성구조는 이후의 운동법칙이 성립하기 위해서 맨 처음에 가정하거나 전제해야 하는 공리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데카르트 이전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자연스러운 운동'과 '강제된 운동'으로 나누었습니다. 자연스러운 운동 또는 자연운동(natural motion)은 따로 힘을 가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움직이며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운동을 가리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에서는 두 종류의 자연운동이 있습니다. 하나는 달의 천구 아래, 즉 지상계의 운동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지구이며, 지구의 맨 아래에는 흙(terra)이 있고, 그 위에 물(aqua)이 있고, 그 위에는 숨(aer)과 불(ignis)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른바 '자연스러운 위치'입니다. 지상계를 이루는 네 가지 원소(리조마타)는 그 자연스러운 위치에 놓이게끔 되어 있습니다.
흙과 물은 근본적으로 '무거움(gravitas)'이라는 속성을 지니는데, 이것은 우주의 중심(즉 지구의 중심)을 향해 모이려는 것입니다. 반대로 숨과 불은 근본적으로 '가벼움(levitas)'이라는 속성을 지니는데, 이것은 우주의 중심(지구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그 움직임은 직선방향입니다. 그래서 지상계에서 자연스러운 운동은 직선운동입니다.
이와 달리 달의 천구 위, 즉 천상계에서 자연스러운 운동은 영원히 회전하는 원운동입니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을 줄곧 배웠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데카르트 이전에 갈릴레오는 낙하운동은 자연스러운 운동이 아님을 주장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철학의 주장을 반박했지만, 천상계에서 원운동이 자연스러운 운동임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데카르트는 갈릴레오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원운동을 자연스러운 운동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낙하운동도 자연스러운 운동이 아닙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자연스러운 운동은 다른 것이 와서 힘을 가해 주지 않는 한, 원래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운동의 첫째 규칙(법칙)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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