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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아카데미

더 나은 앎으로 푸른 미래를 가꾸는 사람들의 공부모임

새 자연철학 세미나

해결하고자 하는 큰 질문 세 가지

질문 및 토론
자연철학 일반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4-10-20 08:13
조회
781

새 자연철학 세미나(2024)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세 가지 큰 질문 (김재영)

1. 성향의 존재론

장회익 선생님의 <자연철학 강의>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새 자연철학 세미나(2024)에서 저의 가장 큰 질문은 ‘성향의 존재론’을 어떻게 세우고 체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성향’이라는 용어가 철학계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에 칼 포퍼가 확률의 성향해석을 제안하면서부터였습니다. 찰스 퍼스도 1870년대에 비슷한 이론을 펼쳤지만, 포퍼의 접근은 양자역학에서 등장하는 확률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서 맥락이 다릅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가능성 또는 잠재성이 현실성으로 변화하는 것에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상태 개념을 “대상이 변별체와 만나서 사건을 일으키는 성향”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장회익 선생님의 새로운 통찰입니다. 저는 이 개념을 확장하여 존재론 전체에 적용되는 근본적인 이론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장회익 선생님의 논의와 비교하여 상세하게 검토할 철학자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입니다. 흔히 ‘과정철학’이라 불리는 화이트헤트의 존재론을 성향의 존재론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가능성과 잠재성의 근원적 이론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화이트헤드의 접근은 독보적이고 설득력이 있지만, 성향의 존재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화이트헤드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는 분석철학의 계보에서 형이상학에서 오랫동안 활발하게 논의되어 온 잠재성의 탐구와 맞물릴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 T.E. Eastman, M. Epperson, D.R. Griffin, eds. (2016) Physics and Speculative Philosophy: Potentiality in Modern Science. De Gruyter;
  • Barbara Vetter (2015) Potentiality: From Dispositions to Modality. Oxford University Press;
  • Johanna Seibt, eds. (2003) Process Theories: Crossdisciplinary Studies in Dynamic Categories. Springer.

2. 생명과 과정적 생물학 철학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제입니다. 장회익 선생님은 <자연철학 강의>에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Autocatalytic Local Order)’의 개념을 기반으로 온생명 이론을 정립해 나가시는데, 저는 이를 과정적 생물학 철학(processual philosophy of biology)과 비교하여 이해하고자 합니다.

  • Daniel J. Nicholson, John Dupré, eds. (2018) Everything Flows: Towards a Processual Philosophy of Bi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이는 성향의 존재론을 정립하고자 하는 앞의 질문과 연결하여 가령 진화이론에서 자연선택과 관련된 적합도를 성향으로 이해한다거나, 요동으로부터 국소질서가 생겨나고 이것이 다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로 발전해 가는 과정과 계기와 기제를 성향으로 해석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3. 사람이 왜 특별한가?

저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지는 새로운 자연철학의 핵심이 이제까지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체계적이며 장기적으로 배제되어 온 사람과 삶과 생명의 위치를 제 자리에 놓는 일이라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이란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는 어떤 한 종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존재’를 말합니다. 철학에서 말하는 인식주체 또는 서술주체와 비슷합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 제안하시는 새 자연철학에서는 사람이 특별한 지위를 지니는 듯 보입니다. 양자역학에 연결된 자연철학에서는 '변별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범주를 저는 '사람'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측정장치라든가 데이터기록장치라든가 심지어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도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이라기보다는 인식주체에 더 가까울 터인데, 제가 이해하는 새 자연철학은 모든 인식을 초월하는 보편적 인식이 따로 있다고 보면 안 된다는 믿음과 연결됩니다. 특히 초월적 실재론은 적극적으로 배제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올해 3월에 출간된 <맹점: 왜 과학이 사람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가?>라는 책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 Adam Frank, Marcelo Gleiser, Evan Thompson (2024) The Blind Spot: Why Science Cannot Ignore Human Experience. The MIT Press.

 이 책의 저자는 천체물리학자 애덤 프랭크, 이론물리학자 마르셀루 글레이세르(마르셀로 글레이저), 현상학을 전공한 철학자 에반 톰슨입니다. 에반 톰슨은 생물학자/생명철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 불교학자/선명상가 일리노어 로슈(엘리노어 로쉬)와 함께 The Embodied Mind: Cognitive Science And Human Experience (1991)라는 책을 썼고, 생명철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오랫동안 공동연구를 했습니다. 이 책은 [몸의 인지과학]이라는 제목 아래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이 책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와 잘 어울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흔히 ‘자연과학’이라 부르는 사유의 체계는 곧잘 16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시기 유럽에서 ‘과학혁명’이라는 긴 과정을 통해 성립했으며, 이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사실을 발견하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아이작 뉴턴이 다양한 과학혁명의 계기들을 통합하고 정리했다고 보고 ‘뉴턴 종합’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항간의 믿음은 실상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시기에 영어권 과학사 연구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서구열강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의 세력이 동아시아로 밀려닥칠 때 당시 사람들이 놀랐던 과학기술의 성과는 16세기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19세기에 시작된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 또는 전문적인 자연과학이었습니다.

데이비드 케이헌이 편집한 과학사 서술론에 대한 논문 모음의 제목이 <자연철학으로부터 과학들로: 19세기 과학사의 서술>인 것이나 에드워드 그랜트의 저서 <자연철학의 역사: 고대세계부터 19세기까지>의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1세기 과학사 서술에서는 19세기까지의 자연에 대한 탐구를 자연과학이라는 이름보다는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쪽을 선호합니다.

  • David Cahan, ed. (2003) From Natural Philosophy to the Sciences: Writing the History of Nineteenth-Century Science.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Edward Grant (2007) A History of Natural Philosophy: From the Ancient World to the Nineteenth Centu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영국의 역사학자 스티븐 셰이핀은 1996년에 낸 저서 <과학혁명>의 첫 부분을 “과학혁명이란 것은 없었다. 이 책은 그것에 관한 이야기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 Steven Shapin (1996/2018) The Scientific Revolution. Second Editi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셰이핀은 과학이 역사 속에 위치하며 사회 활동이므로,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주장하면서, 과학사 서술에서 개념, 방법, 증거 등 지적 요인(내적 접근)과 제도, 조직, 정치 및 경제, 사회적 효용 등 사회적 요인(외적 접근)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과학은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의 실천을 통해 이해해야 하며, 그런 맥락에서 과학을 사회적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벗어난 초역사적 진리로서의 과학을 주장하는 접근은 20세기의 산물이며, 과학의 본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서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셰이핀이 대변하는 새로운 과학사 서술이라 하겠습니다.

유럽에 바탕을 둔 과학의 역사에 대한 기존의 서술을 단순화시키면, 세상의 중심을 사람으로 보던 관점(프톨레마이오스 우주)이 사람을 주변으로 몰아내는 관점(코페르니쿠스 우주)으로 바뀌고, 인간이 여러 동물 나아가 온갖 종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관점(진화이론, 특히 다윈주의)이 지배적인 접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나타난 현대물리학의 두 기둥, 즉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은 ‘관찰자’라는 모호한 이름 아래 ‘사람’이라는 범주가 지니는 특별한 역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과 무관하게 비정한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서술되는 3차원 공간이 수학적으로 먼저 존재하고, 이와 별도로 실수로 서술되는 1차원 시간이 있다는 기존의 관념이 4차원 시공간 개념으로 확장됩니다. 사람과 무관하게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으로 모든 운동의 상태를 서술할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지고, 그 대신 정확히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상태함수라는 수학적 개념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대상의 상태를 서술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대성이론이 상대주의로 쉽게 이어지고, 양자이론의 해석에서 불거지는 여러 난점은 쉽사리 코펜하겐 해석이라 총칭되는 모호한 신비주의로 쉽게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섞이고 무엇이 진짜인지 올바른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이 현대물리학과 잘 어우러진다고 여겨진 1960년대 이래의 여러 사조가 이런 부주의함에서 비롯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대물리학의 세 번째 기둥인 통계역학은 물리학 나아가 자연철학 전반의 서술에서 확률과 통계 개념이 근본적임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그냥 여러 수학 이론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서술에서 확률 개념이 근간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확률이라는 것은 대상을 정확히 알 수 없음을 전제로 합니다. 이를 요동(搖動 fluctuation)이라고도 하고 섭동(攝動 perturbation)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요동 또는 섭동이 다름 아니라 성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확률이 무엇인가를 놓고 대략 주관주의와 객체주의의 입장이 다릅니다. 확률은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정도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 주관주의 해석이라면, 객체주의 해석은 주관적 믿음과 별개로 세계에 내재되어 있는 가능성과 정도를 주장합니다. 성향 해석은 그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확률에 대한 성향 해석은 다시 사람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그렇다고 단지 사람의 믿음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컨대, 현대과학에 바탕을 둔 새 자연철학을 공부해 가면서 저는 왜 사람이 특별한가 하는 문제를 명확하게 해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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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그리고 종교 (양자역학 해석 큐비즘과 두 개의 맹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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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어떤 물리적인 객체가 시공간에 분포된 사건들로 기술된다면 그것을 장으로 기술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요? 입자와 파동은 그 현상이 정성적으로 굉장히 차이나지만, 결국 장으로 기술되어야 하며 그 장의 행태를 결정하는 것은 더 많은 경험이라고 생각됩니다.
13:16
N 5. "사람의 눈이 두 개이기 때문에 관측에 주는 영향도 있을까요? 만약, 하나의 눈으로 보는 생명체가 있다면 다르게 포착됐을까요?"라는 질문은 저 같은 경우에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물음입니다. 아시다시피 눈이 두 개라서 3차원적으로 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수정체가 하나라면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의 거리를 구별하기 어렵겠지만, 수정체가 두 개이면 시차(parallax 視差)를 이용하여 거리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를 저는 그리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두 눈 사이의 거리가 너무 작아서 시차가 그리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arallax 여하간 지구에서 발견되는 동물들에게서는 눈이 두 개인 것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구아나, 코모도 도마뱀 같은 것은 눈이 세 개이고, 어류 중에 눈이 네 개인 것도 있고, 거미 중에 눈이 여덟 개인 것도 있습니다. 전갈은 눈이 12개라고 하고, 투구게 중에는 눈이 10개인 것도 있습니다. 제가 견문이 짧아서 눈이 하나인 동물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바닥에 붙어 다니는 도마뱀의 두 눈은 같은 방향을 보지 못하지만, 머리 위쪽에 있는 세 번째 눈으로 공간적 위치를 파악한다고 합니다. 종종 눈이 뒤통수에도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은 해 보았지만, 수정체의 갯수가 다르면 관측에서도 뭔가 다를까 하는 것은 차분하게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엉뚱하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판의 미로]에 나오는 캐릭터 중 눈이 손바닥에 있는 캐릭터가 기억났습니다. https://animalvivid.com/animals-with-more-than-2-eyes/
10:50
N 이와 관련하여 아래 링크의 대담이 매우 유익합니다. "[대담녹취 5-2] 장회익의 자연철학 이야기. 4장.양자역학 (2)" https://greenacademy.re.kr/archives/6340
10:31
N 4. "파동으로도 보여졌다는것도 결국 관측된 결과일텐데 어떻게 본 건가요?" 이 질문도 무척 중요합니다. 물리학/자연철학에서는 '본다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흔히 하는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된 과학철학의 개념이 "관찰의 이론적재성(theory-laden observation)"입니다. 이 말은 모든 관찰은 그 관찰에 앞서 모종의 이론을 배경에 깔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노우드 러셀 핸슨(Norwood Russell Hanson, 1924-1967)은 Patterns of Discovery: An Inquiry into the Conceptual Foundations of Scie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8) [과학적 발견의 패턴 (사이언스북스, 2007)]에서 모든 관찰은 근본적으로 이론을 등에 업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온도를 재려면 온도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온도계를 만들려면 또 다른 이론이 있어야 합니다. 온도를 그냥 곧이곧대로 관찰할 수는 없습니다. 빛이든 소리든 그것이 파동인지 아닌지 '볼' 수 있으려면, 다시 무엇을 확인해야 본 것이라 할 수 있는지 배경이론을 가져와야 합니다. 파동의 경우에는 그런 것으로 흔히 '간섭'이라는 현상을 가져옵니다. 위키피디어 해설에 있는 그림들이 간섭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Wave_interference 위키피디어에서 가져온 아래 사진이 전형적인 간섭 무늬입니다.
2025.05.21
N 3. 실틈을 왜 두 개만 열어서 겹실틈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여하간 실틈이 두 개만 있더라고 기대하는 '간섭'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보다 실틈을 많이 할 경우 기존에 확인된 것을 재확인하는 것이 됩니다. 세 개 이상으로 실틈을 열어놓는 실험은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간단한 실험으로 실틈을 두 개 열어 놓는 실험을 해 봅니다. 이게 잘 되니까 세겹실틈도 합니다. "세겹실틈(삼중슬릿) 실험"(https://bit.ly/3Znh6fB)이 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실틈이 아무 많은 여러겹실틈 실험(다중 슬릿)도 합니다. 이런 것을 격자회절 실험이라 부르면서 또 다른 종류의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202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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