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건의 유발 및 측정의 문제 2
자료
양자역학
작성자
자연사랑
작성일
2020-02-25 13:54
조회
4123
앞에서 마이클 레이머의 책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양자물리학>을 소개하면서, 양자물리학에 대한 이야기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과제는 세계를 온전히 알 수 없고 오직 확률로만 알 수 있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과제는 확률적 예측 이후에 대상에 대해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고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 과제를 말하기 위해서는 '상태'라는 고도로 전문적인 개념이 필요합니다. 장현광이 '형 없는 형'과 '상 없는 상'으로 이야기한 세상만물의 근본적인 모습을 뉴턴역학에서 '상태'라는 고도로 전문적인 개념으로 설명했고, 이것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 더 세련된 방식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과제를 다시 쓰면, 양자역학에서는 대상에 대해 정보를 얻은 이후에 대상에 어떤 상태를 부여하는가 하는 것이 됩니다.
첫 번째 과제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제까지 세상 만물의 세부까지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이 무모한 믿음임을 인정하면 됩니다. 이것은 비단 양자역학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19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한 사유에서 가장 심각하고 거대한 것이 바로 확률과 통계라 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성취는 놀라울 정도이지만, 이 첫 번째 과제와 관련해서 보면, 두 가지 성취를 말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은 물리량(특히 에너지와 운동량)의 값을 매우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이것도 일종의 '예측'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자역학, 조금 더 확장하면 양자마당이론까지 합하여 양자이론이란 부르는 거대한 체계 안에서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든지 디랙 방정식을 풀든지 해서 고체의 물성(반도체, 초전도체, 초유체 등등)이나 입자의 성질이나 존재 같은 것을 알아냅니다. 이것이 물리학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장회익 선생님도 한국인으로서 반도체 관련 박사 1호로서 전자띠이론을 써서 반도체와 물성을 밝히는 일을 오랫동안 하셨고, 그렇게 제자들을 키우셨습니다.
더 좁은 의미의 '예측'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의 흐름에 따른 동역학적 예측, 즉 상태의 예측입니다. 지금의 상태를 상태함수로 알 수 있다면, 나중의 상태를 완전하게 계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엄청난 성취입니다.
상태함수를 계산해 낼 수만 있다면, 우리가 관심있는 물리량의 값의 후보들이 어떤 게 있는지, 그리고 그 값들이 각각 어떤 정도의 확률로 나타날지 완전하게 알려줍니다. 즉 측정의 확률분포를 완벽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실상 이렇게 만들어낸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근본적인 지식 중 하나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두 번째 과제에서입니다. 측정을 하고 난 뒤에 상태함수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죠.
아마 이 부분이 말끔하게 명료하게 해결되었더라면, 양자역학은 자칫 그냥 아주 정교하고 뛰어난 물리학 이론에 그쳤을 겁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과제가 도무지 최종해결책을 주지 못하는 바람에, 다행히도 이로부터 '자연철학'을 끄집어 내고 그것이 더 엄청난 무엇인가로 자라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바로 [공리 4]에 있습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 그리고 통칭 '서울 해석'이라 불리는 느슨하고 열린 그룹의 관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관계론적 사유"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제 자신의 사유를 요약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다른 기회에 '현상학적 사유'라고 불렀던 것과도 연결됩니다.)
[공리 4]에서는 문득 '변별자'라는 낯선 개념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원자든, 전자든, 쿼크든, 우주든, 생명이든, 앎이든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 깊이 고민해 보면,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 만나고 부딪치는 것입니다.
직접 가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건드려 보든지 하여튼 접촉해 보고, 예상대로이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예상에 맞춥니다. 예상에서 벗어나면, 그 선택지를 제외하고 새로 시작합니다.
이것을 양자역학의 언어와 화법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여기에서 '변별체'를 조금 더 상세하게 쓰면 "사건유발 능력을 지닌 외부 물체"가 됩니다. 장회익 선생님이 이렇게 애써서 이름붙인 것을 흔히 '측정장치'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뉘앙스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은 세미나에서 더 토론해 볼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직접 만나서 대상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이 바로 '측정'이라 부르는 것의 핵심이요, 본질입니다. 새롭게 안 것이 있다면, 이제 대상에 대해 새로운 상태함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상과 주체를 떨어뜨려 놓치 않고 '변별체' 또는 '측정장치' 같은 것을 통해 만나게 하는 것이 바로 '서울 해석'의 핵심입니다. 생명이란 것도 혼자 놓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체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여러 다른 존재들과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온생명 개념의 기본 아이디어입니다. 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번째 과제는 세계를 온전히 알 수 없고 오직 확률로만 알 수 있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과제는 확률적 예측 이후에 대상에 대해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고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 과제를 말하기 위해서는 '상태'라는 고도로 전문적인 개념이 필요합니다. 장현광이 '형 없는 형'과 '상 없는 상'으로 이야기한 세상만물의 근본적인 모습을 뉴턴역학에서 '상태'라는 고도로 전문적인 개념으로 설명했고, 이것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 더 세련된 방식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과제를 다시 쓰면, 양자역학에서는 대상에 대해 정보를 얻은 이후에 대상에 어떤 상태를 부여하는가 하는 것이 됩니다.
첫 번째 과제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제까지 세상 만물의 세부까지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것이 무모한 믿음임을 인정하면 됩니다. 이것은 비단 양자역학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19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한 사유에서 가장 심각하고 거대한 것이 바로 확률과 통계라 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의 성취는 놀라울 정도이지만, 이 첫 번째 과제와 관련해서 보면, 두 가지 성취를 말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은 물리량(특히 에너지와 운동량)의 값을 매우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이것도 일종의 '예측'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자역학, 조금 더 확장하면 양자마당이론까지 합하여 양자이론이란 부르는 거대한 체계 안에서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든지 디랙 방정식을 풀든지 해서 고체의 물성(반도체, 초전도체, 초유체 등등)이나 입자의 성질이나 존재 같은 것을 알아냅니다. 이것이 물리학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장회익 선생님도 한국인으로서 반도체 관련 박사 1호로서 전자띠이론을 써서 반도체와 물성을 밝히는 일을 오랫동안 하셨고, 그렇게 제자들을 키우셨습니다.
더 좁은 의미의 '예측'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의 흐름에 따른 동역학적 예측, 즉 상태의 예측입니다. 지금의 상태를 상태함수로 알 수 있다면, 나중의 상태를 완전하게 계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엄청난 성취입니다.
상태함수를 계산해 낼 수만 있다면, 우리가 관심있는 물리량의 값의 후보들이 어떤 게 있는지, 그리고 그 값들이 각각 어떤 정도의 확률로 나타날지 완전하게 알려줍니다. 즉 측정의 확률분포를 완벽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실상 이렇게 만들어낸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근본적인 지식 중 하나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두 번째 과제에서입니다. 측정을 하고 난 뒤에 상태함수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죠.
아마 이 부분이 말끔하게 명료하게 해결되었더라면, 양자역학은 자칫 그냥 아주 정교하고 뛰어난 물리학 이론에 그쳤을 겁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과제가 도무지 최종해결책을 주지 못하는 바람에, 다행히도 이로부터 '자연철학'을 끄집어 내고 그것이 더 엄청난 무엇인가로 자라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바로 [공리 4]에 있습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접근, 그리고 통칭 '서울 해석'이라 불리는 느슨하고 열린 그룹의 관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관계론적 사유"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제 자신의 사유를 요약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다른 기회에 '현상학적 사유'라고 불렀던 것과도 연결됩니다.)
[공리 4]에서는 문득 '변별자'라는 낯선 개념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원자든, 전자든, 쿼크든, 우주든, 생명이든, 앎이든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 깊이 고민해 보면,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 만나고 부딪치는 것입니다.
직접 가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건드려 보든지 하여튼 접촉해 보고, 예상대로이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예상에 맞춥니다. 예상에서 벗어나면, 그 선택지를 제외하고 새로 시작합니다.
이것을 양자역학의 언어와 화법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공리4: '측정'에서 상태의 변화
대상이 상태
$$\Psi = \sum_{i} c_i \phi_i$$
에 있을 때, 지점 $j$에 해당하는 위치에 '변별체'를 놓아 대상과 접촉시키면
(1) 확률 $|c_j |^2$으로 '변별체'에 흔적을 남기고 대상은 $$\Psi'=\phi_j$$로 전환되거나
(2) 확률 $1-|c_j |^2$으로 '변별체'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phi_j$가 빠진 새로운 상태 $$\Psi'' = \sum_{i} c'_i \phi_i$$로 전환된다.
여기에서 '변별체'를 조금 더 상세하게 쓰면 "사건유발 능력을 지닌 외부 물체"가 됩니다. 장회익 선생님이 이렇게 애써서 이름붙인 것을 흔히 '측정장치'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뉘앙스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은 세미나에서 더 토론해 볼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직접 만나서 대상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이 바로 '측정'이라 부르는 것의 핵심이요, 본질입니다. 새롭게 안 것이 있다면, 이제 대상에 대해 새로운 상태함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상과 주체를 떨어뜨려 놓치 않고 '변별체' 또는 '측정장치' 같은 것을 통해 만나게 하는 것이 바로 '서울 해석'의 핵심입니다. 생명이란 것도 혼자 놓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체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여러 다른 존재들과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온생명 개념의 기본 아이디어입니다. 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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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토의할 꺼리가 풍부하네요. 주체, 대상, 관계론적 사유, 현상학적 사유, 측정장치를 통해서 만난다. 다른 존재들과 함께 본다. 앎이란 무엇인가, 예측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이 아직 발전을 덜해서 저런 문제가 발생한 것인가 아니면 자연이 원래 그런가 등등...
다음 분의 댓글을 기다립니다 !!
아닙니다. 제 글은 별 것 없고, 제가 올리는 글은 모두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를 읽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보충적인 읽을거리에 불과합니다. 사실 제가 "조교"를 자임하면서 뭔가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 도움이 되려 애쓰고 있는데, 어쩌면 제가 오독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책에 대한 보충보다 오히려 제 이야기를 쓰게 되는 면도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하루빨리 모두 모여 이야기 나눌 날을 고대해 봅니다. 그 전까지는 댓글로 질문도 하고 비판도 하고 이야기 나누는 온라인 세미나도 유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