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장회익 '질서론' 안의 개념과 원리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장회익 ‘질서론’ 안의 개념과 원리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자연의 기본 원리를 가지고 존재 세계를 이해할 때에 장회익 자연철학의 중요한 축은 질서 및 정교성 개념과 자유에너지 감소 법칙(열역학 제2법칙)입니다. 이 개념들을 정립하는 데에, 그리고 가장 원초적인 변화 방향을 정립하는 데에 대하여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1. 질서 및 정교성 개념
장회익 자연철학에서 ‘질서(order)’는 ‘혼돈(chaos)’의 반대 개념으로서 “무엇인가 구분 가능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혼돈은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이 질서를 정량적으로 논하기 위해서 질서의 ‘정도’ 또는 ‘크기’를 ‘정교성’(orderliness;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에서는 ‘정연성’)이라 정의하고, 이에 해당하는 양을 ‘부의 엔트로피’로 정의합니다.
$$O \equiv \log(\frac{1}{W})=-\log(W)=-S$$
이 정교성 개념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이 드는데 첫 번째는 간접적인 규정 방식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인식 주체와의 관련성에 대한 것입니다.
1.1. 정교성은 간접적으로밖에 규정될 수 없는가?
엔트로피는 어떤 거시상태에 해당하는 미시상태들의 수의 자릿수로서 크기가 클수록 해당 거시상태가 흔하고, 크기가 작을수록 해당 거시상태가 드물다는 바를 나타냅니다. 이것이 엔트로피의 직접적인 의미라고 한다면 이를 정교성과 연관짓는 것은 간접적인 규정일 것입니다. 정교성이 아주 높은 상태는 매우 드물고 정교성이 덜할수록 흔하다는 점을 통해 ‘정교성=형상의 드문 수준’으로 에둘러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반드시 그렇게 볼 수만은 없는 사례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예 이를 통해 질서를 재정의하는 것인가요? 흔할수록 정교성이 낮고 드물수록 정교성이 높다고 새롭게 정의를 하는 것인가요?
1.2. 형상(거시상태), 질서, 정교성은 인식 주체 의존적인 개념이라 해야 하나?
또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132쪽에서는 우주 안의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살펴보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나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질서라는 것은 우주 안에서 우리의 인식 능력을 통해 구분해낼 수 있는 형상(거시 상태)들이 지닌 특징적 성격 중 하나인데, 이 질서의 정도를 일정한 방식에 따라 표현해낸 개념이 곧 정연성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주 안의 질서를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인식 능력을 통해 구분해낼 수 있는 가능한 형상들과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정연성을 각각 살펴봐야 한다.
장회익(2013). p.132
이 언명에 따르면 통계역학적 형상(거시상태)과 질서, 정연성이 그 자체만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식 주체의 인식 능력에 따라 정의된다는 것일까요? 형상과 정연성이 그러하다면 엔트로피 역시 인식 주체 의존적인 개념이라 해야 할까요? 자연의 기본 원리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이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정의되지 못하고 인식 주체에 의존하게 된다면 자연의 기본 원리의 지위가 위태로와지는 것은 아닐까요?
2. 자유에너지의 에너지항과 질서항의 관계
우주와 물질 생성의 기본 방향은 아래의 자유에너지 정의로부터 나옵니다.
$$F \equiv U-TS=U+TO$$
자유에너지는 (내부)에너지항(U)과 질서항(TO)으로 이루어지는데 열역학 제2법칙의 부분계 중심 서술인 자유에너지 감소 법칙에 따라 대상계(부분계)의 자유에너지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상태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때 배경계의 온도(T)가 무한대에 가까울만큼 높다면 내부에너지 U가 낮은 상태보다 정교성 O가 낮은 상태가 더 자유에너지가 낮은 방향이라 대상계인 우주는 극도로 정교성이 낮은, 즉 극도로 무질서한 상태에 있게 되고, 배경계의 온도(T)가 현재와 같은 정도로 낮아질수록 내부에너지 U가 낮은 상태가 정교성 O가 낮은 상태보다 더 자유에너지가 낮아 에너지가 낮고 정교성이 높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점이 논의의 출발점이 됩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2.1. 우주 전체를 다시 부분계인 우주와 배경계인 나머지로 나눌 수 있나?
우리는 지금 초기 우주 전체를 그 어떤 질서가 구현될 대상계와 그 배경을 이룰 주변계로 나누고, 온도 T를 지닌 배경 부분이 우리의 관심사가 되는 대상계와 에너지 교환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이러한 주변계의 구체적 사례로 여타의 물질계와 열적 평형을 이루어온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 체계를 상정할 수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우리의 관심사는 이러한 주변 배경을 제외한 나머지 전체 우주의 상태이며, 특히 이것이 지닌 정연성 O가 어떻게 출현하느냐 하는 점이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를 위해 정연성 O를 에너지 E의 함수로 설정하여 자유에너지 F를 에너지 E와 온도 T의 함수로 나타내야 하는데, 이것은 실제로 신뢰할 만한 우주론의 모형 안에서 ‘양자마당 이론’으로 대표되는 동역학 이론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장회익(2013). p.136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의 136쪽에는 위와 같은 설명이 있는데 전체가 되는 우주와 부분계가 되는 우주가 어떻게 다른지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2.2. 자유에너지의 에너지항과 질서항의 관계 및 비중으로 우주 질서 생성을 설명하는 데 무리는 없을까?
과연 일률적으로 “높은 온도에서는 상대적으로 보아 에너지가 크고 질서가 작은 (거시) 상태가 선호되고, 반대로 온도가 낮아지면 에너지가 작고 질서가 큰 (거시) 상태가 선호된다”라고 이야기해도 되는걸까요?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지만 너무 과감한 정리는 아닐까요?
2.3. 구조파라미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자연철학 강의』 319쪽의 그림 6의 ‘구조 파라미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구조파라미터는 정교성과 같은 것인가요, 다른 것인가요? 이렇게 관계가 역전되는 것은 우주의 온도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을 때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지금 모른다고 해도 어떠어떠한 점들을 파악하면 계산을 할 수는 있는 것일까요?
2.4. 내부에너지와 정교성
에너지가 커지면 질서는 줄어들고 에너지가 작아지면 질서는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면 항성(태양)에서 에너지가 계속 방출되는 만큼 항성(태양)의 정교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할 수 있을까요? 또한 행성(지구)는 태양에너지가 계속 유입되는 만큼 정교성이 낮아지는가요? 이는 태양으로부터 자유에너지를 받아들여서 높은 수준의 질서를 계속 유지한다는 이야기와 또 배치되는 것은 아닐까요? (장회익(2013) pp.127-128에 이 점 명기. B의 정교성 감소에도 불구하고 B의 자유에너지는 증가할 수 있다는 언급..)
2.5. 자유에너지와 정교성의 관계
“자유에너지가 이미 최소인 경우에는 어떠한 거시적 변화도 일으킬 수 없지만, 자유에너지가 최소치보다 큰 경우에는 자유에너지를 낮추는 과정에서 특정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언급이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의 129쪽 주석에 나옵니다. 이 '특정의 변화'는 높은 수준의 정교성을 유지하거나 더 정교성이 높은 상태로 거시상태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과 관계되어 있을까요? 자유에너지가 더 낮아지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른 상태 변화의 과정에서 배경계의 온도가 낮다면 질서(정교성)를 높이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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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츠만이 언급한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 엔트로피(더 정확히 말하면, 부-엔트로피)를 위해서이다. 이것은 뜨거운 태양에서 차가운 지구로의 에너지 흐름을 통해 얻을 수 있다”라는 말의 의미는 이러한 것인가? 열역학 제2법칙을 고립계 내의 부분계 중심으로 다시 서술하면 대상계(부분계)의 상태 변화는 자유에너지가 낮아지는 쪽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때 주변계의 온도가 낮다면 자유에너지가 낮아지면서 대상계의 정교성을 유지하거나 높이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자유에너지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다면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지 못할텐데 고립계 내에 뜨거운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차가운 부분으로 에너지가 흐르고 마침 차가운 부분이 대상계일 때에는 자유에너지를 보충받을 수 있어 이러한 변화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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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뜻일까요? 그렇다면 열역학적 기관의 일처럼 자유에너지와 정교성을 생각하는 셈이기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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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들은 하나같이 깊은 고민을 일으키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질문들이라 생각합니다.
첫 번째 질문 "질서 및 정교성 개념"에서 특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물리학의 영역 중 통계역학이라 부르는 분야를 비롯하여 복잡계과학에서는 엔트로피를 '무질서 disorder'로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것이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하다고들 합니다. 저는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에 나오는 '정연성 orderliness'의 개념이 도식적으로 말하면 "마이너스 무질서" 즉 흔히 그냥 '질서 order'라고 부르는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논리로 말하자면,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정도가 아니다" --> "음의 엔트로피를 질서의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 "음의 엔트로피를 '정연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와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장회익 선생님께서는 '질서 order'라는 용어가 각각의 전문영역에서 꽤 정확하고 명료하게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철학의 논의에서 그런 용어를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보시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연철학이야말로 자연과학 특히 물리과학에서 사용하는 정확하고 명료한 정의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철학 강의>에서 2013년의 '정연성' 개념을 버리신 것은 '정연성'이란 개념이 부적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또 "형상(거시상태), 질서, 정교성은 인식 주체 의존적인 개념인 아닌가?"라는 질문은 저도 이전에 "[질문] 열통계역학의 거시상태"에서 관련된 질문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미시상태의 규정은 기본동역학에서 거의 일의적으로 정해지는 반면, 거시상태는 임의적인 면이 있습니다. 저는 이를 단순히 '인식 주체 의존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류의 사회경제사와 밀접하다고 믿습니다. 즉 유럽발 산업혁명과 거기에서 가장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던 열기관이 있었기 때문에 거시상태를 온도, 압력, 부피 같은 것으로 선택하게 된 게 아닐까 합니다.
이런 관점은 가령 물리사학자 클리포드 트루스델도 비슷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Clifford Ambrose Truesdell III (1980). The Tragicomical History of Thermodynamics, 1822–1854
장회익 선생님께서 제 질문에 답변글을 주셔서 제가 대신 올립니다. -최우석
1.1. 정교성은 간접적으로밖에 규정될 수 없나요?
⇒ 기본적으로는 네거티브-엔트로피의 수학적 정의에 대한 의미를 적절히 대변할 명칭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개념에 해당하는 비교적 가까운 용어를 택한 것이 ‘정교성’입니다. 정교성을 정의하자는 게 아닙니다.
1.2. 형상(거시상태), 질서, 정교성은 인식 주체 의존적인 개념이라 해야 하나요?
⇒ “(우리의 인식 능력을 통해 구분해낼 수 있는) 형상(거시 상태)들이 지닌 특징적 성격 중 하나”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 특징적 성격은 대상이 가지고 있고 그 대상에 대한 엔트로피를 말합니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도 그 성격을 구분해낼 수 없다면 그 형상은 정의되지 않는 것입니다.
2.1. 우주 전체를 다시 부분계인 우주와 배경계인 나머지로 나눌 수 있나요?
⇒ 우주 안에서 어떤 특정 형상이 나타난다면 그 형상을 구성하는 부분과 나머지를 구분할 수 있으리라는 겁니다.
2.2. 자유에너지의 에너지항과 질서항의 관계 및 비중으로 우주 질서 생성을 설명하는 데 무리는 없을까요?
⇒ 일반적 경향이 그러하다는 것이고 그것을 무슨 정리 형태로 가져가는 것은 아닙니다.
2.3. 구조파라미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이것을 생각하기 위해 첨부한 ppt 자료의 “물의 형상” 사례를 보면 도움이 될 겁니다. 일정량의 물(예 1kg)을 대상으로 한다면 물과 얼음 사이에서 그 에너지와 엔트로피가 각각 정해지고 온도와 구조 파라미터의 함수로 자유에너지가 그림 1, 2와 같이 주어집니다. ‘물’ 상태도 하나의 구조 파라미터로 나타나고 ‘얼음’ 상태도 다른 구조 파라미터로 나타나고 심지어 그 중간의 과도적 상태들도 구조 파라미터로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구조 파라미터는 가능한 거시 상태의 ‘구조’를 대변하는 임의적인 파라미터로 보면 됩니다.
2.4. 내부에너지와 정교성
⇒ 항성의 경우에는 그 내부에서 계속 핵반응이 일어나 에너지를 분출하기에 취급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지구와 같은 행성의 경우 에너지를 계속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엔트로피가 증가하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들어오는 에너지와 나가는 에너지(장파장의 복사열)가 거의 같아서 그러한 효과는 적습니다.(요즘 같은 온난화 과정에는 예외지만 그렇더라도 전체 에너지 축적량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한편 태양광을 통해 일정 비율의 자유에너지가 전달되므로 이 부분은 완전 소모하지 않고 일부 축적되는 것이 가능합니다.
2.5.1. 자유에너지와 정교성의 관계 - 자유에너지를 낮추는 과정에서 특정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대상의 정교성을 유지하거나 높이는 것을 말하는가요?
⇒ 그렇지요. 생명체계가 바로 그렇게 유지 발전하지요. 둘째 질문에서는 물이 어는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2.5.2. 자유에너지와 정교성의 관계 - 자유에너지와 정교성을 열역학적 기관의 일처럼 생각할 수 있나요?
⇒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열기관의 일이라는 것이 곧 자유에너지의 활용 또는 전환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첨부파일 : 자유에너지문답22.pptx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관련 참고할만한 질문 : '구조 파라미터'에 대한 글이 게시판에 있을까 해서 찾아보니, 자연철학게시판에 2022년 시인처럼님이 올려준 질문에 포함되어 있네요.(『장회익의 자연첧학 강의』 세미나 중에 올린 질문입니다.)
댓글에 자연사랑님과 장회익선생님께서 답해주신 설명도 있습니다. 질서, 정교성, 인식 주체, 자유에너지(에너지항, 질서항, 구조 파라미터, 내부에너지 등)에 대해서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