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복습] "장회익저작읽기" 『삶과 온생명』 2장 중에서
질문 및 토론
녹색문명공부모임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3-10-13 12:27
조회
623
녹색문명공부모임 2023-2024 "장회익과 장회익 저작(생명, 문명) 읽기"
『삶과 온생명』 "2장 주역과 양자역학의 비교 검토" 중에서 질문 몇 가지 적어보았습니다.
질문 1. 비라플라스적 서술에 대하여
(p.52-53) 양자역학은 동역학, 전형적인 과학 이론 체계이다. 그러나 고전역학과는 달리 위치, 운동량과 같은 물리량들을 '실재론적'으로 설정할 수 없으며, 대상의 물리적 서술 양식에서도 이른바 '비라플라스적' 서술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서술을 채용한다.
==> 질문 : 비라플라스적 서술이란 확률적 서술을 의미. 그런데 주역과 양자역학에서의 확률이 같은 의미의 확률인가?
이 질문과 관련되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본문
"(파동은) 대상 입자가 시공간 안에서 관측될 확률과 관련되는 것으로 해석되기는 했으나, 이것은 실제 물체가 어느 시공간 안에 있으리라 추정하는 통상적 확률과도 그 성격을 달리한다. 실제로 이 파동의 값은 실수가 아니라 복소수 ... 이 값의 절대치 제곱이 대상이 그 지점에서 발견될 확률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된다."(p.207)
"... 상태함수를 통한 대상 존재자의 서술은 결코 '사건' 자체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 대상이 지닌 '사건야기 성향(event-generatiing propensity')만을 말해준다..."(p.235.)
질문 2. 주역과 양자역학의 예측적 구조의 유사성에서 '해석' 부분
(p.54-55) 주역의 물음과 답(길흉)은 물리적인 결과(산가지의 배열)를 두고 다시 해석하는 것으로서 (문자 그대로) 해석의 영역이고, 양자역학에서의 물음과 답(사건 발생 여부, 사건 야기 성향)은 물리적인 결과 그 자체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한 것 같다. 여기서 이러한 둘의 구조가 비슷하다고 한다면 양자역학의 물음과 답도 주역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영역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인가? 주역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해석의 기법에 따라, 양자역학은 수학적 해석의 기법에 따라?
질문 3. '상태' 개념의 실재성
(p.74-76) "서구과학의 긴 역사적 과정에서도 양자역학 이전까지는 '실재성'을 원리적으로 배제하는 서술을 상상할 수 없었으며, 양자역학에서 이 문제가 처음으로 대두되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 ... 그러므로 그 어떤 '실재성'을 부여하지 않고 주역에서의 '괘상'을 이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서구 과학과는 다른 학문 전통과 관념 체계에서 출발한 주역이 처음부터 '실재성'이란 관념적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에서 우리의 커다란 관심사가 될 수 있다. ... 괘상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설문자의 주체적 행위와 연관되어 나타날 결과들의 기륭에 관한 것이며, 따라서 통상적 의미의 '물리적' 실재와는 다르다.
==> 질문 : 줄친 부분의 문장이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 양자역학은 실재성을 포기한 것? 주역은 처음부터 실재성 개념을 택하지 않음으로써 처음부터 비라플라스적 서술로 간 것?(이 질문은 다음 질문 4로 연결)
질문 4. 비라플라스적 서술 & 비 실재성(?) & 사실-당위
주역의 추구하는 앎이 대생지식적이라고 볼 때, 비라플라스적(확률적)이고 실재성이 담겨 있지 않고 사실로부터 당위를 추출하는 이러한 특성은 주역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특성 아닐까? 인간의 삶, 사회, 국가의 모습, 길흉의 종류라는 것은 (주역이 응용되어온) 수천 년 동안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을 것이므로, 만일 주역이 라플라스적이고, 실재성을 담고 있고, (자유롭게 추출해낼 수 있는 당위가 아니라) 주어진 사실로부터 바로 연결되는 고정적인 사실만을 뽑아낼 수 있다면 융통성 있게 주역이라는 예측 메카니즘을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산가지로 뽑아내는 '상태'(숫자, 괘상)도 추상화되었기 때문에 어느 시대나 장소와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즉 주역의 기능, 목적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특성을 가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두서없는 질문이지만, 일단은 그냥 써보았습니다. (황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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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질문들을 던지셨네요.
제 의견을 몇 가지 달아봅니다.
1. 비라플랴스적 서술과 확률 개념
장회익 선생님께서 '비라플라스적 서술'이라고 명명하신 것은 사건에 대해 결정론적 서술을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건을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다면 그 서술체계는 비라플라스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양자역학과 마찬가지로 주역도 라플라스적 서술이 아닐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시적인 최소단위의 상태가 아니라 뭉뚱그려진 개괄상태를 다룬다는 의미라서 일종의 '열역학적 서술'입니다.
다만 확률적 예측이라 해도 주역의 확률은 아마 표준적인 확률의 공리들을 충족시킬 것입니다.
Probability axioms
이와 달리 양자역학의 확률은 표준적인 확률의 공리를 충족시키지 않음이 알려져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주역의 확률과 양자역학의 확률이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주역에서 말하는 확률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확률의 의미고요.
2. 양자역학과 주역의 '해석'
어떤 이론의 해석(interpretation)이라는 개념은 꽤 복잡합니다. 양자역학에서도 두 가지 다른 '해석'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른의 해석규칙이라는 것으로서 이것은 수학적으로 서술된 상태로부터 사건의 분포확률을 말해 주는 규칙입니다. 1950년대쯤만 해도 이것도 여러 해석들 중 하나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모든 양자역학이 반드시 공유해야 하는 기본 규칙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해석 규칙'은 임의적이거나 자의적으로 설정되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유일하거나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 서울 해석, 여러세계 해석, 봄 해석, 결풀림 해석, 양자베이즈주의 해석 등 존재론적으로 추가 요소를 덧붙여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해석은 형식체계와 충돌하지 않게 구성하기만 하면 꽤 자유로운 편입니다.
주역에서 '역문易文'은 괘상을 해석하는 규칙과 설명으로서 괘사, 효사, 십익 등은 이미 계사전에 확정된 것이기 때문에 '보른의 해석규칙'처럼 이미 명료하거나 유일하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계사전에 있는 역문을 현실과 연결시키려면 다시 그 다음 단계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주역의 전문가나 역술인이 할 수 있는 추가적인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3.과 4.의 질문이 아주 흥미로운데, 이 게시판에서라도 함께 이야기해 보고 토론이 벌어지면 유익할 것 같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거의) 항상 좋은 질문이라고 말씀해주시긴 하지만, 감사합니다. 저처럼 질문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두려운 사람은 이런 말씀이 솔직히 도움이 됩니다. ^^;;
저는 보른의 해석규칙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세미나 당시에도 이해를 못했던 것 같고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도 잘 안 나네요. (다시 공부해야...)
4번 질문은, 책을 읽다보니 세 가지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하나의 속성(?)에서 나온 것 같아서 적어보았습니다. 1장에 나오는 '대생지식'으로서 동양의 지식이 작동하려면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속성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임 후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 동서양의 지식, 학문의 차이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요. 장회익선생님의 대생지식 차원에서 이해하는 접근은 요즘으로 치면 여러 분과를 통합한 것과 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에는 기후위기 대응이 사회학, 인문학, 예술, 도시 거버넌스, 정치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런 접근을 크게 보면 대생지식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초기에는, 대물지식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의 지식, 학문 전통에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를 주로 (기후)과학 중심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되니까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게 되고 점점 넓혀가게 된 거죠. 물론 아직도 탄소 중심, 온도 중심의 패러다임이 주류이기는 합니다만.
기후위기, 현대 문명이 만들어내고 있는 여러 가지 환경 문제들을 동양적인 지식, 지혜, 학문을 통해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한다면, 생태적인 것 혹은 자연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물론 이런 것도 추구해야겠지만요. ^^;) 장회익선생님께서 이 책에서 분석, 탐색하시는 것처럼 동양의 지식, 학문은 어떠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엇을 해결하고자 했고 실제로 해결해냈는가 이런 것을 더 알아보는 작업이 중요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질문이라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질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확률의 의미를 더 파고들 필요가 있지만, 지난 번 세미나에서는 더 들어가면 아무래도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핵심만을 다루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게시판에서는 더 심화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믿습니다.
기후위기를 대하는 태도와 기본적인 세계관의 차이도 진지하게 검토해볼 문제라 생각됩니다.
^^;; 왠지 장금이가 생각나네요. (드라마는 못 봤지만...)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는데 왜 홍시 맛이 나냐고 물으시면... ㅎㅎ 썰렁 농담은 여기까지.
지금 <삶과 온생명> 목차를 다시 보니, 책 전체가 1부 1장 아래에 있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1부 1장을 다시 꼼꼼히 읽고, 이 내용을 늘 염두에 두고 이후 내용을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