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꼽문] 책새벽-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14장, 15장.
모임 정리
책새벽
작성자
neomay33
작성일
2023-11-05 14:03
조회
869
녹색아카데미 온라인 책읽기 모임 '책새벽-월' 시즌3에서는 현재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고 있습니다.
매주 읽는 내용 중 참여하시는 분들이 꼽아주신 책꼽문과 질문을 모아 이곳에 정리해두려고 합니다. 책 읽으시는 데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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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2010. 문학과지성사.
제14장
p.295.
예술가는 예술 작품을 창작하고, 예술사가는 어떻게 예술 작품이 창작되는가를 이야기한다. 문제는 예술 작품이 어떻게 창작되는가에 대한 예술사가의 이야기는 어떻게 예술가가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가와 결코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p.298.
“이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계속 내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성을 동원하여 이를 증명할 수 있지요. 우선 물질적 관찰 대상 - 예컨대, 자전거나 전기 바비큐 기구와 같은 것 - 은 좋거나 나쁜 것일 수 없습니다. 물질의 구성 요소들은 그냥 구성요소들일 뿐이지, 물질적 구성 요소들이 준수해야 할 윤리적 규범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윤리적 규범은 다만 사람들이 부과하는 것일 뿐이지요. 기계에 대한 테스트의 기준은 기계가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느냐 주지 못하느냐에 있을 뿐입니다.
p.301-302.
"현재 다루고 있는 재료의 성질이 그의 생각과 움직임을 결정하기 때문이야. 동시에 그의 생각과 움직임이 다루고 있는 재료의 성질을 바꾸게 되지. 재료와 그의 생각이 변화의 과정에 함께 변화하는 셈이지. 마침내 재료가 다루기에 적당한 것이 되는 동시에 그의 마음이 평온해질 때까지 말이야.”
“예술이 따로 없군요.” 미술 선생이 이렇게 말한다.
“그렇죠. 그건 예술이지요.” 그의 말에 내가 이렇게 말한다. “예술과 공학 기술 사이의 결별은 완전히 부자연스러운 것이지요. 결별이 이루어지고 이제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서, 둘이 언제 결별했는가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우린 이제 고고학자가 돼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어요.”
p.303.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둘러보면, 그 순간에는 아무런 감도 잡히지 않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있던 곳을 되돌아보면, 하나의 패턴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패턴에 비춰 앞을 보면, 때때로 무언가를 파악하게 되지요.”
p.304.
“공학 기술의 문제점은 공학 기술이 정신의 질료 및 마음의 질료와 그 어떤 실질적인 연결 관계도 유지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연이긴 하나 공학 기술은 맹목적이고 추한 일을 저지르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지요. 이전에는 사람들이 이 점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주된 관심사가 의식주 해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학 기술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제 그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공학 기술의 추함이 점점 더 눈에 띄게 되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정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항상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를 묻게 된 겁니다. 최근 이런 의문이 거의 전 국민이 모두 공유하는 위기 의식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공해 반대 운동이니, 공학 기술에 반대하는 공동체와 생활 양식의 대두 등등이 다 그런 위기 의식의 표현이지요”
p.304-305.
"... 우리의 위기는 기존의 사유 형식이 현재의 상황에 대처하기에 부적절한 것이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는 결코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데, 합리성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이지요.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위기를 해결해나가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반듯하게 각이 져 있는' 합리성을 완전히 포기한 채 오로지 감정에만 의지함으로써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저와 함께 온 존과 실비아가 그런 사람들이지요. 아마 그들과 같은 사람들이 수백만은 될 겁니다. 그런데 그들 역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합리성을 포기하는 것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다 정도가 아닌가 싶어요. 오히려 해결책은 합리성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합리성 자체의 본질적 경계를 넓힐 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p.310.
"... 고대 희랍의 수사학자들은 서양 세계의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선생들이었지. 플라톤은 자기 자신의 도끼를 날카롭게 갈기 위해 그의 저술에서 이 수사학자들을 심하게 욕했네. 현재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이 플라톤의 저술을 통한 것이야. 이 수사학자들에게 자기 변호의 기회가 한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전 역사를 통해 일방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람들이야. 내가 말했던 이성의 교회는 그들의 무덤 위에 세워진 거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들의 무덤이 이성의 교회를 지탱하고 있지. 그래서 그 교회의 바닥을 깊이 파헤쳐 내려가다 보면 유령들과 만나게 될 거야."
제15장
p.315-317.
이 거리를 그는 수도 없이 지나갔었다. 강의 준비 때문이었다. 그는 희랍의 소요학파들이 그러했듯이 소요의 과정을 통해 강의를 준비하곤 했다. 이 거리들이 그에게는 소요학파의 아카데미와 같은 곳이었다.
그를 이곳으로 인도한 강의 주제는 수사학이었다. 그러니까 독해, 작문, 산술로 구성된 삼과의 두번째 영역... 그는 전문 분야 작문의 고급 과정과 1학년 영어 수업의 몇 강좌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 ...
... 어떤 방식으로 작문의 규칙들이 특정한 한 상황에 적용되는가를 묻는 학생이 항상 한 몇쯤은 있게 마련이다. ... 그런데 그가 진심으로 생각하는 바는 글이 모두 완성된 다음에 그 글에 덧붙인 것이 바로 규칙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실에 앞서 상정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뒤이어 덧붙인 것, 인과 관계에 대한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p.325-332.
... 저 문을 열면 바로 세라(저자가 몬태나 주립 대학교 재직 당시 영문과 학과장)의 연구실이 나온다. ... 세라가 복도에서 들어와 자기 연구실로 가기 위해 지금 내가 있는 쪽을 지나가면서 ... 이렇게 말했다. "선생께서 학생들한테 '질(質)'을 교육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에요. ... 그때가 바로 결정체 형성을 위한 씨눈, 바로 그 씨눈에 해당하는 순간이었다. ...
그녀가 이 말을 던졌을 때 그(저자)가 어떻게 대꾸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 그때 그는 강의 노트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강의 노트 때문에 기분이 완전히 울적해진 상태였다. ... 그는 다시 강의 노트 준비에 정신을 쏟았지만, 얼마 안 있어 그녀가 한 묘한 발언에 대한 기억 때문에 하던 일에 대한 생각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질(質)이라고? ...
... 다음 날 아침 잠자리에 일어나니, 질(質)이 그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세 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도 피곤하여 그는 그날 강의를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강의 노트도 아직 준비가 다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강의실에 들어가 그는 칠판에 이렇게 섰다.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350단어의 글로 쓰시오. 사유와 진술에서 질(質)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학생들이 글을 쓰는 동안 ... 그 자신도 질(質)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질(質)이라 ... 무언가는 다른 무언가보다 낫다. 즉, 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질을 함유하고 있는 대상과 분리해서 질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면 질은 거품처럼 꺼져버리고 만다. 이야기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질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만일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그 모든 실용적 용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결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실용적 용도를 위해 그것은 정말이지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이 없다면 달리 무엇에 근거하여 학점을 매길 수 있겠는가. ... 분명히 무언가는 다른 무언가보다 낫다. ... 하지만 "낫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 도대체 질(質)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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